#243화
늑대의 신이라는 이유로 우리가 ‘펜리르’라 칭하였던 악신의 화신도 어렵지 않게 제거하였다.
절정 고수 여럿이 덤벼도 승부가 나지 않기에 내가 직접 검강을 휘둘러 제거하였던 것.
그렇게 전장을 정리하고 우리는 다시 원정을 이어나갔다.
“이 기세라면 아프리카 전체를 수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민경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면 그러고 싶습니다.”
아프리카 전체를 수복하면 인류는 절대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지금도 회귀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인류의 힘은 강하였다.
일단 나 하나만 해도 웬만한 9성급 던전 보스들을 가볍게 상대할 수 있을 수준이었으니까.
러시아, 멕시코, 남미와 동남아 등.
원래라면 큰 타격을 입게 될 나라들이 멀쩡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프리카 땅까지 수복한다면?
아프리카의 인구가 설령 얼마 안 되어도 크게 상관없었다.
던전들.
그 수천, 수만 개의 던전만 인류의 것이 되어도 인류의 힘은 몇 배 더 강해질 터.
반대로 던전을 점거하고 있는 악신들의 힘은 훨씬 더 약해질 것이었다.
‘다만 쉽지는 않겠지.’
지금 인원으로는 아프리카 전체를 수복하는 건 절대 불가능하였다.
아니 사실 인원이야 더 불러오면 되기는 했다.
그보다는 악신들이 더 큰 문제였다.
‘악신들이 힘을 합치면 수비만 하는 것도 버거워질 거야.’
초절정 고수가 되었다고 방심해서 좋을 건 없었다.
내 몸이 하나인 것은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일단 지금은 북아프리카만 수복하고 나머지는 더 준비를 갖추고 천천히 수복해야 한다.’
굳이 조급하게 굴 필요는 없었다.
원래라면 시간은 적의 편이었겠지만, 전 세계가 무공을 받아들인 지금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무공 덕에 인류는 나날이 강해질 터.
악신들이나 여명회도 시간이 갈수록 계속 강해지겠지만 9성급 던전이 열리기 전까지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니 여유를 두고 천천히 수복하는 게 현명한 판단이었다.
‘초절정 고수 열 명만 더 늘어도 인류는 생존할 수 있다.’
“원정대가 모로코에까지 닿았다던데?”
사람들은 박한새가 이끄는 원정대의 활약에 혀를 내둘렀다.
“사탄이라는 악신만 죽이고 다시 돌아올 줄 알았더니, 아프리카 전체를 수복할 기세야.”
“그러게. 벌써 처리한 던전 보스가 몇 마리야? 악신은 또 얼마나 죽은 거고?”
“애초에 아프리카 대륙에 그렇게 많은 악신이 숨어있는지도 몰랐어.”
박한새의 활약은 놀람의 연속이었다.
앤디 올드먼이 고전하던 사탄이라는 악신을 순식간에 처리한 일부터 그랬다.
그 이후 북아프리카를 종횡하며 수많은 던전을 점령하고 여러 악신을 처리하기까지 하였다.
기세만 보면 당장이라도 아프리카 전체를 수복할 것처럼 보일 정도.
대격변 이후, 아프리카는 지금까지 줄곧 몬스터의 땅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근데 아프리카 대륙을 수복하면 아프리카는 누구의 땅이 되는 거야?”
물론 아프리카 일부가 인류의 땅이 되었다고 순수하게 기뻐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몇몇은 의미심장한 물음을 던지기도 하였다.
그 물음이란 다름 아닌, 수복한 영토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물음이었다.
“일단 던전은 IHA가 관리한다고 들었는데.”
“뭐, 그건 당연한 이야기인 거 같고, 영토가 문제인 거 아니야?”
“설마 영토도 IHA가 관리하려나?”
“IHA에서 영토를 수복했으니 사실 그게 이치에 맞기는 한데…. 영토까지 획득하게 되면 일개 협회라고 볼 수 없는 거 아니야?”
“사실 이미 지금도 일개 협회라고 할 수 없지. 헌터들은 조국의 말보다 IHA의 말을 더 잘 따르니까.”
지금까지 되찾은 아프리카의 영토는 오직 IHA의 힘만으로 수복하였다.
다른 어떤 나라도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것.
그나마 튀니지 망명 정부의 경우, 튀니지 결사대 덕에 어느 정도 지분을 요구할 수 있겠지만, 모로코나 알제리는?
망명 정부조차 세워지지 않은 두 나라는 IHA에게 어떤 요구를 할 권리도 없었다.
“협회장은 영토를 차지할 생각이 없지 않을까?”
“뭐로 장담해? 땅덩어리만 보면 나라 몇 개가 세워져도 될 크기인데.”
“맞아. 부족한 인구수는 무공 가르쳐준다고 하면서 꼬드기면 순식간에 채울 수 있을걸?”
“아니면 헌터들로만 나라를 구성해도 되지.”
“일종의 헌터 공화국인 셈인가.”
사람들은 명분도 있겠다, 당연히 IHA가 북아프리카의 영토를 차지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예전 같았으면 유럽에서 결사적으로 반대했을 일이지만, 한 번 박한새에게 신세를 진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지금은 박한새의 눈치를 보기 바쁜 상황이었으니 IHA가 대놓고 자신들 영토라고 선언하지 않는 한, 결사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으리라.
즉, IHA가 북아프리카 영토를 차지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여건이란 뜻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IHA는 공식 성명을 발표하였다.
수복한 영토는 추후 국제기구와 논의하여 정통성 있는 정부에 이관할 거란 발표였다.
이 발표 내용을 들은 사람들은 감탄을 거듭하였다.
“와, 그럼 박한새 협회장은 영토 욕심 없이 아프리카까지 가서 악신들을 상대하고 있는 거야?”
“진짜 대단하다. 주인 없는 땅, 자기가 가져도 아무도 뭐라 안 했을 텐데.”
“그 양반이 괜히 인류의 구원자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니까.”
“진짜 박한새 그 사람이 없었으면 어땠을지….”
“누군가는 그러더라. 박한새 없었으면 인류가 멸망했을지도 모른다고.”
원래도 박한새의 평판은 좋았었다.
특히 박한새에게 직접 구원을 받은 멕시코나 러시아, 남미 사람들은 박한새를 인류의 구원자라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공식 성명으로 이 인류의 구원자란 별명은 미국과 유럽으로까지 전해졌다.
그리고 미국과 유럽 사람들은 박한새의 별명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도 박한새는 인류의 구원자라 불릴 자격이 있었던 것이다.
“인류의 구원자라 불려서 기분이 좋겠군?”
“사부님은 원래도 그렇게 불리셨는데 모르셨습니까?”
“그래도 예전에는 인터넷상에서만 그랬고 언론은 적당히 선을 지켰잖아? 근데 지금은 언론부터 아주 금칠을 하던데.”
이정과 주현근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인류의 구원자라.
듣기 좋은 말이긴 한데,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웠다.
이보다 더 활약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이런 별명이 붙지 않아도 되는 세계에 살고 싶군.’
인류가 존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평화로운 세계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세계였으면 그저 무공을 연구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근데 아깝지 않나?”
“무엇이 말입니까?”
“땅 말이야. 이곳, 주인 없는 땅이잖아?”
“주인이 없지는 않죠.”
주인 없는 땅은 아니었다.
모로코든, 알제리든.
대격변이 일어났을 때, 다른 나라로 피난 간 사람이 적지 않았으니까.
난민으로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많을 테니, 안전만 확보된다면 어떻게 해서든 조국으로 돌아오려고 할 것이다.
“글쎄. 18세기나 19세기의 주인들만 남아있는 거 같은데. 프랑스는 벌써 알제리에 대한 탐욕을 드러내고 있잖아? 원래 자신들 땅이었다면서 말이야.”
“그들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겁니다. 프랑스가 식민지로 삼는 것을 제가 가만히 지켜보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물론 프랑스 말고 다른 나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했다고 영토를 쥐여 주겠는가.
그들에게 주느니 차라리 무공 학교를 세운 초창기부터 나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한국에 영토를 넘기는 것이 나을 것이다.
뭐 외교 관계를 고려하여 한국 정부부터 반대할 일이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협회장은 영토에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군.”
“전 오직 던전만 있으면 됩니다.”
“…존경스럽군. 아직도 초심을 지키다니 말이야.”
이정의 입에서 ‘존경’한다는 말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북아프리카 영토를 포기한 것이 그에겐 이례적으로 보였던 듯싶다.
‘사실 이런 것보다 초절정 고수가 된 게 더 대단한 일인데 말이지.’
영토야 굳이 욕심을 낼 이유는 없었다.
안 그래도 책임이 점점 늘어나는데 여기서 책임을 더 늘릴 필요는 없었으니까.
여명회라는 적이 노릴 수 있는 나의 약점이 더 늘어나는 것도 사양이었고 말이다.
그렇게 잠시 모로코에 멈춘 채 재정비 시간을 갖던 중, 장성민이 꽤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보고하였다.
“사하라 사막이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처음 그 소리를 듣고 이해하지 못하였다.
사막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고?
‘기후 변화로 사막이 커지고 있다는 말인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였는데, 실상은 내 생각과 전혀 달랐다.
“이 두 사진을 보십시오.”
“확실히 알제리 중부가 급속도로 사막화가 되고 있군요.”
사진을 보니 확실하게 알 거 같았다.
알제리 남부의 사하라 사막이 점점 북쪽으로 확대되는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알제리 정부가 존재하였다면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였을 문제가 아닐까 싶었다.
물론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는 걸 아는 나로선 그리 위기감을 느낄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왼쪽 사진은 언제 찍은 거고 오른쪽 사진은 언제 찍은 거입니까?”
“놀랍게도 두 사진의 날짜 차이는 일주일밖에 나지 않습니다. 오른쪽은 어제, 왼쪽은 일주일 전에 찍은 사진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무려 수십 km.
한국이었으면 부산에서 울산 정도의 거리가 황폐하게 바뀌었다.
그런데 그 같은 변화가 겨우 일주일 만에 생긴 변화라니?
이건 나로서도 가볍게 듣고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누가 봐도 자연이 일으킨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악신의 짓입니까?”
이런 짓을 일으킬 존재는 내가 봤을 때 악신밖에 없었다.
장성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아무래도 주변을 황폐화하는 권능을 가진 악신이 존재하는 듯합니다. 일명 사막의 신이랄까요.”
“사막의 신이라….”
그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실로 무시무시한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지금 시점에서는 어쩌면 파롤보다 더 무시무시한 존재일 수도 있었다.
파롤은 9성급 던전 브레이크 사태가 터지지 않고서야 인류 전체를 위협할 수 없었다.
몬스터의 힘을 다루는 신이니 몬스터의 힘이 아직 전성기에 이르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 힘에 한계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사막을 다루는 신이라면?
당장이라도 세계를 멸망시키는 게 가능하였다.
사막 속에서 인류가 번성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으니.
‘회귀 전에도 이런 악신이 존재하였던가?’
잠시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사막’과 관련된 악신은 떠오르지 않았다.
‘뭐 우리에게 알려진 악신은 파롤 하나뿐이었으니까.’
어쩌면 저 사막의 신이라는 악신도 파롤에게 밀려난 것일지도 몰랐다.
회귀자였던 이성은이 말하기를, 악신은 모조리 파롤의 편에 섰다고 하였으니 말이다.
‘뭐가 됐건 가만히 지켜볼 순 없는 일이야.’
지금 이 순간에도 사막은 넓어지고 있었다.
사막의 신을 견제해줄 다른 악신도 없으니 어쩌면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전체가 사막으로 뒤덮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자칫하면 인류의 구원자가 아니라, 인류의 파괴자라 불리게 될 수도 있겠군.’
만약 사막의 신이 유럽까지 넘본다면?
그때는 정말 인류의 파괴자란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