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일단 원정대를 이끌고 가는 건 힘들 거 같습니다.”
사막으로 원정대를 끌고 간다?
현실적으로 가능할 리 없었다.
차라리 이전에 겪었던 저주 같은 형태의 디버프라면 모를까.
끝도 안 보이는 사막이라니.
“소수 인원만 데리고 갈 수밖에 없겠군요.”
“그게 최선일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정해졌다.
어차피 데려갈 인원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이성은, 이정, 신경철, 주현근, 고정희 이렇게 다섯 분만 저를 따라와 주십시오.”
“나는?”
“로렌초 교수는 이곳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잔류 인원이라고 마냥 쉬는 것은 아니었다.
거점을 수비하는 것 역시도 공세 못지않게 중요하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절정 고수 다섯 명을 데리고 사막으로 향하였다.
수천 명을 이끌 때보다는 숫자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듬직하였다.
한 명, 한 명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고수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저희는 무엇을 찾아야 하는 겁니까?”
“일단 던전부터 찾아야겠지.”
악신이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방식은 보통 던전을 먼저 점령하고 그 주변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식이었다.
아마 그들이 그런 방식을 사용하는 이유는 카르마 수급 때문일 것이다.
영역을 유지하는 것엔 엄청난 카르마가 필요할 것이고, 던전이 없으면 카르마를 수급할 수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악신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던전을 점령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었다.
“근데 던전을 찾아도 점령은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주현근이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확실히 지금 인원이라면 던전을 관리하는 게 불가능하였다.
한 명, 한 명이 아무리 강한 무력을 가졌다고 해도 몸이 하나인 이상, 물리적으로 한 개 이상의 던전은 관리할 수 없으니까.
“던전을 찾으면 고정희 교수님께서 결계를 펼치고 그때 원정대를 부르면 됩니다.”
“아하. 그래서 고정희 교수를 데려온 것이군요.”
결계를 친다면 사막의 확장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을 터.
그렇게 결계로 사막의 확장을 막으면서 던전 점령을 계속 유지한다면 그 일대의 사막은 곧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던전을 찾는 게 쉽지 않은데?’
분명 좌표를 확인해두었던 던전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좌표에 가까워지고 있는데도 던전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몬스터도 거의 보이지 않는군.”
심지어 육안상으로는 몬스터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내 마력 감응력으로 확인해본 결과, 몬스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막 아래에 숨어있는 듯합니다.”
“원정대랑 같이 왔으면 꽤 성가셨겠어.”
이정의 말대로였다.
몬스터가 전부 사막 아래에 숨어있으니 원정대와 함께 왔으면 시도 때도 없는 매복 공격에 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나마 우리는 전부 날 수 있어서 매복 공격을 피해갈 수 있었지만 말이다.
‘설마 던전도 사막 아래에 파묻혔을 줄이야.’
몇 시간을 수색한 끝에 마침내 던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몬스터들이 모래에 숨어있듯, 던전 역시 모래에 파묻혀 있었다.
“원정대를 호출하였습니다.”
일단 던전을 찾았으니 원래 계획대로 던전을 점령하는 작업을 하긴 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아무리 강해졌어도 이건 어렵겠군.’
던전 하나 찾는 데 몇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모래에 파묻힌 던전의 수는 아무리 못해도 수십, 수백 개는 될 것이다.
과연 이런 방식으로 던전을 점령하는 게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 사이에 사막이 넓어질 거 같은데.’
우리가 몇 km 전진할 때, 사막의 신은 수십 km를 사막으로 뒤덮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공세를 하는 게 오히려 손해인 것.
‘만약 마법사가 있었다면 달랐을까?’
나는 잠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이 자리에 앤디 올드먼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내부의 적이니 아마 거슬리긴 했을 것이다.
어떤 식의 방해 공작을 시도할지 몰라 경계되기도 했을 것이고.
하지만 그라면 내가 하지 못했던 일을 해냈을지도 몰랐다.
사막 폭풍을 없애서 사막이 더 확산하는 것을 막았을 수도 있고 지역 전체에 비가 오게 하여 사막 자체를 없애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니까.
물론 진정한 대마법사가 아닌 앤디 올드먼의 능력으로는 사막 전체를 없애는 건 아무래도 한계가 있겠지만 말이다.
‘마법사라….’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법이 인류의 것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지금 당장은 마법이 중요한 게 아니었기에, 나는 나를 바라보는 다섯 사람을 향해 아쉬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원정은 여기서 중단해야 할 거 같습니다.”
“저도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계로 사막이 더 넓어지지 않게끔 하는 게 최선일 거 같아요.”
“쯧. 여기까지 와서 원정을 중단해야 한다니.”
다들 아쉬워하는 기색이었지만, 내가 내린 판단에는 동의하였다.
막강한 힘을 가진 적 때문에 원정을 중단하는 것이라면 나를 어떻게 해서든 설득하려 하였을 것이다.
다섯 사람 전부가 자신의 무력에 자신감이 대단한 자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우리의 적은 자연 그 자체였다.
무공으로는 자연을 이길 수 없으니 그들도 내 판단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1사도, 매디슨.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앤디 올드먼에게 말하였다.
“‘오아시스의 지배자’로 인해 원정을 중단한다더군.”
여명회는 박한새의 원정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아프리카는 그들의 영역.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박한새를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박한새의 원정을 따로 견제하거나 방해하지는 않았었다.
오히려 여론을 움직여 박한새가 더 아프리카 원정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들이 원정을 멈추면 11사도의 손을 빌리는 게 어렵게 되겠습니다.”
“그래서 문제다.”
11사도는 아프리카 남부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11사도는 운신의 제약이 있어서 아프리카 북부까지 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기다렸다.
박한새가 아프리카 남부에 도달하는 순간을.
하지만 정작 박한새는 원정을 중단하고는 아프리카 북부에 자리를 잡았다.
11사도의 손을 빌릴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실 저는 지금 상황이 오히려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지금 당장은 11사도가 박한새를 이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 말을 들은 매디슨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여명회가 자랑하는 무력이 바로 11사도와 12사도였다.
그런 11사도가 박한새라는 일개 개인을 이길 수 없다고 말하니, 매디슨으로선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그는 혼자서 루키푸구스 화신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루키푸구스의 화신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네가 11사도의 무력을 경험해 보지 못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다. 네가 대마법사 경지에 올라도 11사도를 이기는 건 어려울 거야.”
“만약 무인들이 말하는 초절정이란 경지가 대마법사와 버금가는 경지라면, 박한새가 11사도에 버금가는 무력을 가졌다고 생각해도 이상할 게 없지 않겠습니까?”
매디슨은 입을 다물었다.
초절정 고수든 뭐든 박한새가 11사도만큼 강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매디슨, 그는 냉정하고 현실주의적인 성격이었다.
‘만약 올드먼의 말이 사실이라면… 박한새는 그야말로 최악의 적인 셈이군.’
원래도 박한새를 최악의 적이라고 생각하던 그였다.
그런데 무력까지 기준치를 넘어선 것으로 보이자, 이제는 위기감까지 느꼈다.
“박한새의 무력이 정말 대마법사 수준이든, 아니든, 일단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견제해야 합니다. 그가 더 성장하면 위험합니다.”
“알고 있다. 하지만 네가 네 입으로 그랬잖아? 11사도보다 강할 수 있다고.”
“그런 그렇습니다만.”
“어차피 그를 제거할 방법은 없다. 그러니 지금으로선 7사도를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7사도라면 무언가 해줄 것이다.
박한새를 직접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견제 정도야 믿고 맡길 수 있으리라.
그는 한때 여명회 이인자 소리를 들을 정도의 수완가였으니 말이다.
네이선 첸.
중국계 미국인인 그는 카페에 앉아 멍하니 너튜브 영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튀니지를 수복했고 알제리 북부를 수복했으며, 모로코를 수복하였습니다.
영상에서는 IHA 협회장, 박한새가 덤덤한 목소리로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었다.
담화문 내용은 간단하였는데, 당장은 원정을 중단하여도 앞으로 인류의 땅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는 선언이 담겨 있었다.
‘나도 저기에 함께하고 싶었는데….’
그는 박한새를 존경하였다.
존경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박한새는 무공의 창시자이자, 인류의 구원자였으니까.
심지어 이번에 자신의 힘으로 되찾은 아프리카 땅을 본래 주인에게 넘길 거라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이런 박한새를 존경하지 않을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영상 속 박한새를 바라보는 네이선 첸의 눈빛은 아쉬움으로 가득하였다.
‘무공을 배우려면 나도 이런 원정을 함께해야 하는데, 왜 나는 함께하지 못하는 걸까?’
박한새가 러시아로 갔을 때도, 멕시코로 갔을 때도, 그리고 남미로 갔을 때도.
그는 늘 박한새와 함께하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그는 C랭크 헌터임에도 불구하고 박한새와 함께할 영광을 얻지 못하였다.
‘내가 중국계라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
말도 안 되는 생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박한새가 중국인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전 세계 사람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중국인을 싫어하는 박한새가 중국계 미국인을 싫어하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네이선 첸 헌터.”
그때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당신을 영입하기 위해 본국에서 왔습니다.”
“본국? 죄송하지만, 저의 본국은 미국입니다만.”
네이선 첸은 단호한 목소리로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는 혈통이 중국계일 뿐, 자신을 미국인이라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동양인 사내가 본국을 운운하자 황당한 심정이었다.
“미국도 당신을 미국인으로 생각합니까?”
“그러면 왜 당신이 원하는 무공은 여태 배우지 못하고 있는 겁니까?”
처음 보는 사내의 입에서 무공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줄이야.
네이선 첸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사내는 설득이 먹혔다고 생각했는지 다시금 포섭을 시도하였다.
“중국에 오십시오. 무공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중국이 무공을 어떻게 가르친다는 말입니까?”
“네이선.”
그때 새로운 인물이 사내 옆에 나타났다.
선글라스를 낀 여성이었는데, 네이선 첸은 바로 여성의 정체를 알아봤다.
“클로이?”
“바로 알아차리네.”
“네가 여기엔 어쩐 일이야?”
클로이는 그와 마찬가지로 중국계 미국인이었다.
무려 A랭크 헌터이기도 했다.
“나에게서 무공을 배워볼 생각 없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무공 배웠었어?”
“어. 무공 스승이 있거든. 한국인 무공 스승이. 그리고 너도 중국으로 오면 내게서 배울 수 있을 거야. 나도 이제 초일류 경지의 고수거든.”
옛 동료인 클로이가 초절정 고수라니?
하지만 만약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도 중국으로 가기만 하면 무공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가보자. 잃을 건 시간뿐이잖아?’
어차피 미국에 남아있는다고 무공을 배울 기회가 생기지는 않을 터.
그러니 한 번쯤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