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대신 회귀함-247화 (247/275)

#247화

타왕톨고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내몽골 헌터들의 얼굴에는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네가 언제부터 애국지사였다고?’

아마 그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터.

그리고 사실 그들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타왕톨고이, 그는 평생을 제멋대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내몽골의 독립?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잘 먹고 잘 사는 것.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그뿐이었다.

헌터가 된 이후에 하나가 더 추가된 게 있다면 ‘강자가 되는 것.’이었다.

물론 이 역시 내몽골의 독립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가 김수민을 비호하는 언행을 한 것엔 이유가 있었다.

‘나는 저 가면 쓴 계집을 따르는 게 아니야. 무공의 창시자, 박한새 님을 따르는 거지!’

솔직한 마음으로는 자신 위에 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였다.

그는 중국에서 S랭크 헌터로 인정받지 못했으나, 실질적인 실력은 S랭크 헌터보다 위에 있다고 자부하였었다.

그런 그이니 누가 자신의 위에 있다는 사실을 죽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에서 무를 이룬 자’라는 이름의 성좌를 배후령으로 삼아야 했다.

물론 그 성좌는 박한새였다.

‘누구의 지시를 따르는 건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박한새 님이라면 따를 만한 사람이니까.’

박한새의 업적.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헌터들 사이에서 무려 ‘신’으로 취급받는 성좌였다.

그런 박한새였기에 평생을 제멋대로 살아온 타왕톨고이가 그의 지시에 열성적으로 따르는 것이었다.

레비야 투르쑨.

한때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고 세계 위구르 대표대회의 의장으로 활동할 정도로 명망 높은 독립 운동가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한낱 수감자에 불과하였다.

십수 년 전, 위구르에서 발생한 유혈 사태의 배후로 지목받아 수용소에 수감되었기 때문이다.

“과연 언제쯤 우리 민족은 이런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위구르인들의 인생은 비극 그 자체였다.

과거 식민 지배를 받던 피식민지인들의 삶과 크게 다를 것이 없으리라.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겁니다.”

“…희망을 놓지 말거라.”

“희망이요? 헛된 희망만큼 부질없는 건 없습니다. 그러니 대모님도 괜한 기대를 하지 마세요.”

“주석이 교체되면 또 모르지 않겠느냐.”

“우리를 핍박하는 게 주석 하나입니까? 중국인 전체가 우리를 핍박하는데, 주석이 바뀐다고 우리 위구르의 삶이 달라질 리는 없습니다.”

레비야 투르쑨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를 대모라고 부르는 청년 위구르인조차 희망을 잃었다.

한때는 그녀가 말릴 정도로 강경파에 속하는 독립 운동가였는데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게 더 나를 절망케 하는구나.’

사실 그녀 역시도 위구르의 미래가 그리 희망적이지 않으리라 생각하였다.

위구르를 향한 중국 정부의 수탈과 압제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그녀까지도 테러범이라는 말도 안 되는 혐의로 수용소에 가둔 것만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리 민족의 삶만 악화하는 게 아니야. 이대로라면 중국인들 전체의 삶이 악화하게 될 거야.’

역설적으로 중국의 미래를 가장 걱정하는 것이 그녀였다.

그녀는 평화적인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꾀하는 인물이었다.

중국 역시 당장은 적대 국가이지만 먼 훗날에는 우호적인 국가가 될 수도 있었으니 중국의 미래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생각하기에 지금의 중국은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였다.

사회 전체가 언제 붕괴해도 이상하지 않을 시한폭탄 말이다.

그녀가 속으로 시한폭탄을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콩 볶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침입자입니다!”

“어떤 놈이 감히!”

“헌터들인데, 무력이 심상치 않습니다!”

레비야 투르쑨은 멀리서 들려오는 중국 군인들의 대화를 들으며 눈을 크게 떴다.

‘침입자라니? 설마 우리를 구하러 온 것인가?’

헛된 기대였다.

수용소에 갇힌 백만이 넘는 위구르인을 누가 구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희망이 엿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는 청년의 눈에도 희망이 자라기 시작하였다.

우광신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눈으로 검을 갈았다.

스르릉.

한때 그의 별명은 살인귀였다.

적만 보면 미친 듯이 스킬을 난사하여 적을 죽였기에 생긴 별명이었다.

하지만 살인귀라 불리던 시절의 그는 검이란 무기와 연관이 없었었다.

검은커녕 어떤 무기도 들지 않았는데, 그의 스킬이 손톱을 활용하는 종류의 스킬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는 현재 검을 패용하고 있었고 심지어 귀중한 휴식 시간에 검을 가는 것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살인귀가 아니다. 검귀. 그게 나의 새로운 별호다.’

우광신은 자신 스스로를 검귀로 불렀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검 한 번 휘둘러본 적이 없는 그에겐 과장된 별명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우광신이 검을 휘두르는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그가 스스로 붙인 검귀란 별명이 절대 과장된 것이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검에는 무려 ‘검기’가 흘러나왔으니 말이다.

우광신이 열심히 검을 갈고 있을 때, 어디선가 폭음이 들렸다.

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침입자’가 나타났다며 중국 군인들이 떠드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크큭. 침입자라. 드디어 흑암수라검법을 쓸 날이 온 건가.”

그의 입가엔 흡족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검기를 배우자 그는 검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검이 말하길, 피가 탐난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검기를 배우자마자 던전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의 검은 몬스터의 피로 만족하지 못하였다.

몬스터는 검기를 활용하기에 너무 하찮은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이왕이면 강했음 좋겠군.’

약자의 피를 묻히는 건, 그의 검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강자의 피.

그의 검이 원하는 것은 강자의 피일 게 분명하였다.

“호오, 헌터들인가.”

수용소를 지키는 군인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총까지 사용했는데도 그러했다.

수백 명의 침입자는 전부 헌터였던 것.

‘수백 명의 헌터라니. 오히려 좋지 아니한가!’

하지만 자신만만하게 ‘침입자’들을 향해 다가가던 우광신은 다급히 발걸음을 멈추었다.

처음에는 그저 선두에 선 헌터들이 가속 계열의 헌터라고만 생각하였었다.

그런데 다른 헌터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서, 설마…?’

우광신은 뭔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그 불길한 예감이란 다름 아닌, 침입자들이 우광신, 그와 같은 ‘무인’일 수도 있다는 예감이었다.

‘그럴 리 없다! 무인이 언제부터 그리 흔한 존재였다고!’

강하게 부정하였다.

아니,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기어코 보고야 말았다.

침입자 중 한 명이 ‘검기’를 발동하는 장면을.

심지어 그 검기는 우광신의 검기보다 훨씬 선명하였다.

“마, 말도 안 돼.”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보고 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이라면 모를까.

중국에서 수백 명의 무인이라니?

‘그것도 변방 중의 변방인 위구르에서!’

저 무인들이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고 이 보잘것없는 수용소를 공격했는지 그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한가하게 침입자들의 목적을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감각이 예민한 침입자들이 결국 그의 존재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저기 적이다! 제압해!”

우광신은 자신의 애검을 정면에 뻗으며 다가오는 침입자들을 향해 검기를 일으켰다.

그러자 침입자, ‘해방 전선’ 소속의 헌터들이 당황하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무인이다!”

“무인? 적비단 소속인 건가?”

“중국 정부에도 무인이 있다고 했어. 그들인 모양이야.”

예상치 못한 무인의 등장에 당황한 것은 우광신만이 아닌 모양.

하지만 우광신은 상대를 당혹하게 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무려 30명이 넘는 ‘무인’이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아아아압!”

우광신은 엄청난 기운을 담아 전방에 포효를 내질렀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왔던 방향으로 도망쳤다.

“도망치는 거 같은데?”

“미친, 그러면 소리는 왜 지른 거야?”

“강한 놈인 줄 알았건만….”

뒤에서 황당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우광신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경공에 집중하며 열심히 도망칠 뿐이었다.

‘이건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일 뿐, 절대 패배한 것이 아니다!’

물론 속으로는 절대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고 자위하였지만 말이다.

신장에서 막 들려온 소식에 주석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는 군 관계자들을 향해 외쳤다.

“도대체 수용소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그런 주석의 노기등등한 모습에 군 관계자들은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무능한 것들 같으니!”

주석은 답답한 표정을 짓고는 전화기를 들었다.

그 역시 알고 있었다.

지금 이들에게 화를 내봐야 의미 없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당장 해야 할 일을 하였다.

물론 당장 해야 할 일이란 뻔하였다.

수용소의 수감자들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 것.

하여 그는 지체하지 않고 신장 군구의 사령관에게 전화하였다.

“죄, 죄송합니다. 주석!”

“군을 총동원해서라도 잡아내! 어디로든 도망 못 가게! 단 한 놈도 외국으로 도망치게 둬서는 아니 될 거야!”

주석은 사령관의 변명을 듣지도 않고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사령관은 조금 차분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조금 과격한 수단을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과격한 수단?”

“기계화 보병사단과 차량화 보병사단을 동원하고 싶습니다.”

꽤 노골적인 말이었다.

기계화 보병사단을 동원하겠다는 말은 말 그대로 ‘전차로 밀어 버리겠다.’는 의미였으니.

“말했을 텐데. 동원할 수 있는 건 모조리 동원하라고! 범죄자 놈들이 어디로든 도망만 못 가게 만들면 된다!”

수용소에 갇혀있던 위구르인들의 숫자는 무려 100만 명.

이들 중 절반이라도 도주에 성공한다면 중국 사회는 엄청난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아니, 중국 사회가 문제인 게 아니야. 서방 놈들이 또 난리 칠 거라는 게 문제다.’

늘 인권 문제로 시끄럽게 구는 것이 서방 국가들이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중국을 견제하지 못해 안달 난 국가였다.

어쩌면 위구르 수용소를 명분으로 중국을 공공의 적으로 선포할지도 모를 일.

러시아도, 북한도 더는 중국의 편을 들지 않을 테니, 미국이 인권 문제로 중국을 공격하면 중국은 그야말로 외롭게 홀로 싸워야 했다.

‘다시 잡아내기만 하면 문제없다. 조금 시끄러워지기야 하겠지만 그 정도는 얼마든지 수습할 수 있어.’

주석은 이번 사태로 크게 분노하기는 했지만, 그리 걱정하지는 않았다.

수용소의 시설은 성인 장정도 버티기 힘들 정도로 열악하였다.

그런 수용소에서 수년을 갇혀있던 위구르인들이었다.

당연히 몸 상태가 최악일 수밖에 없었다.

절반은커녕 100만 명 중, 단 1만 명도 무사히 도주할 수 없으리라.

하물며 기계화 보병사단까지 동원한다면야.

‘아니, 이것도 부족할 수 있다. 특수여단까지 동원하는 수밖에.’

헌터로 이루어진 특수부대.

중국군의 핵심 전력이라 할 수 있는 특수여단까지 동원한다면 사태를 수습하는 것쯤은 일도 아닐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