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수용소에 쳐들어온 침입자를 본 순간, 수감자들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그들의 정체를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위구르 해방 전선입니다.”
하지만 침입자들은 말하였다.
자신들은 해방 전선이라는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고.
그리고 그 한마디로 충분하였다.
해방 전선이라는 단체가 무슨 단체인지 알기에 충분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위구르어까지 써가며 자신들을 속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여러분을 따라가겠습니다. 부디 저희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물론입니다. 여러분을 구하러 왔는데 버리고 갈 리가 없지 않습니까.”
“저는 몸이 아픈데… 저도 따라갈 수 있을까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걷기 힘드시면 저희가 업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곧, 차도 올 겁니다.”
수용소의 수감자들은 한 명도 빠지지 않고 해방 전선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였다.
그들로서는 꽤 용기 있는 결단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이번 도주가 실패한다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수용소에 남아있어도 어차피 희망이 없었다.
그렇기에 한 명도 빠지지 않고 해방 전선을 따르는 것이었다.
그때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포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주, 중국군이 쫓아오는 모양이에요!”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당장이라도 중국군이 그들을 잡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중 일부는 해방 전선 헌터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저를 버리고 가세요! 짐이 되고 싶지 않아요!”
“저에게 총을 주시면 제가 여기서 버티겠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가라.
자신도 싸울 테니 총을 줘라.
그들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자기 자신이 아닌, 전체를 위한 선택을 내렸다.
그런 위구르인들의 모습에 해방 전선 헌터들은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 놈들…. 이런 사람들을 감금하고 학대한 것인가.’
‘빌어먹을. 조금 더 빨리 왔어야 했는데!’
내몽골 출신과 티베트 출신 헌터 중에는 왜 자신이 이곳에 있는지 의문을 떨쳐내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지금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빨리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저희 해방 전선은 절대 여러분을 버리지 않을 겁니다.”
울컥한 그들은 애써 위구르인들을 위로하였다.
그러는 사이 계속해서 포탄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총 쏘는 소리도 아련히 들려왔는데 그야말로 전쟁을 방불케 하였다.
하지만 포탄이 그들 근처로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신장 군구가 싸우는 세력은 그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전차가 왜 멈추는 거지?”
“내가 어떻게 알아? 애초에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신장 군구의 소총수들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예기치 못한 영외 행군을 하는 상황이었으니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다그닥다그닥!
“응? 이상한 소리 안 들려?”
“무슨 말 달리는 소리 같은데.”
“말이라고? 어디 몽고 놈들이라도 놀러 온 건가?”
전차가 멈추자 어디서 말 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소총수들의 눈에도 말을 탄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신장 군구의 병사들은 처음에 그들을 보고 말을 탄 기마 부대로 착각하였다.
하지만 말을 탄 그들이 점차 가까워지자 신장 군구의 병사들은 그들이 인간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저, 저게 뭐야!”
“몬스터다! 인간이 아니었어!”
“갑자기 몬스터가 왜 튀어나와!”
“설마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가 몬스터 때문이었나?”
전차가 멈춘 이유도 아마 저들 때문이리라.
지휘부도 때아닌 몬스터 무리의 등장에 당황했을 테니까.
“저, 점점 가까워지는데?”
“전차는 뭐 하는 거야!”
말을 탄 몬스터 무리 즉, 듀라한 부대는 점점 가까워졌다.
그러자 신장 군구 지휘부에서도 결단을 내렸다.
전차 부대를 출격시켜 듀라한 부대의 돌격을 저지하려고 한 것이다.
수십 대의 전차가 연이어 포 사격을 하자 병사들은 크게 환호하였다.
모래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전차의 위력이라면 저 정도 크기의 몬스터는 충분히 잡아낼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모래가 걷히고 그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유령마를 탄 듀라한 부대가 포탄에 맞고도 전혀 타격을 받지 않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돌격 속도도 줄어들지 않았다.
바로 앞을 전차가 막고 있는데도 가속을 유지한 채 달려들고 있었던 것.
그러다 마침내 듀라한 부대와 전차 부대가 정면에서 격돌하였다.
우습게도 말이 전차를 이겼다.
듀라한들이 탄 유령마가 되려 전차를 밀어낸 것이었다.
유령마와 부딪친 순간, 전차 조종사는 충격으로 즉사하였다.
전차 역시 사실상 폐차 수준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유령마는 전차와 부딪쳤음에도 그 속도가 줄어들지 않았다.
여전히 맹렬하기 그지없는 기세로 전차 뒤로 따라오던 소총 부대에 돌격하였다.
그러자 마치 중세시대 기사의 습격을 받은 보병 부대가 그러하듯, 신장 군구의 병력은 순식간에 지리멸렬하였다.
“총도 안 통하는 놈들과 어떻게 싸우라고!”
“특수여단은 우리를 구하지 않고 어디서 뭘 하는 거야!”
도저히 싸움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듀라한은 8성급 몬스터였다.
헌터도 아닌 일반인이 소총 하나로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신장 군구에서 듀라한 부대를 상대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의 부대뿐이었다.
그 부대란 다름 아닌, 특수여단이란 이름의 부대였다.
한편 중국 병사들이 기다리던 특수여단 소속 헌터들은 가면을 쓴 괴인에게 습격을 받고 있었다.
이미 지휘부는 이 괴인에 의해 궤멸한 상황.
남은 것은 헌터로 이루어진 전투 대원들뿐이었다.
“침착해! 적은 한 명이야.”
장교로 보이는 B랭크 헌터가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전투 대원들을 통솔하였다.
그의 말대로 상대는 겨우 한 명이었다.
특수여단이 보유한 전력을 생각하면 설령 그 한 명이 S랭크 헌터라고 해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으리라.
하지만 문제는 상대의 무력이 S랭크 헌터를 넘어선다는 것에 있었다.
“소, 속도가 빨라서 포위를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이대로는 스킬도 맞히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저 발을 묶어야 합니다!”
무공이 등장한 지도 이제 몇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특수여단에서도 무인을 상대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가장 핵심은 무인의 발을 묶는 것.
즉, 무인이 보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핵심이었다.
“빌어먹을! 온갖 디버프 스킬을 때려 박았는데 왜 안 먹히는 거야!”
“스턴 스킬도 안 먹힙니다!”
“아, 아무래도 저 검막이란 기술로 스킬을 막아내는 거 같습니다.”
일류 이하의 무인이라면 그들의 방식이 통했을지 몰랐다.
하지만 그들이 상대하는 무인은 초일류를 넘어 절정급 무인이었다.
그리고 절정 고수는 검막이란 것도 사용할 수 있었다.
이 검막만 활용한다면 스턴이나 디버프 스킬쯤은 어렵지 않게 막아냈다.
“예측 샷이라도 날려! 저 괴물 놈이 향하는 방향 전체에 스킬을 날리란 말이다!”
장교는 괴인의 발을 묶으려는 시도는 포기하였다.
대신 화력이 센 스킬들로 괴인이 향하는 모든 곳을 공격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 역시 통하지 않았다.
괴인에게도 스킬이란 것이 존재하였기 때문이었다.
“스킬이 허공에 막혀서 움직이질 않습니다.”
“저, 저건 염동력입니다!”
괴인은 자신이 가진 염동력이란 스킬로 자신을 향한 모든 공격을 무효화시켰다.
그러자 특수여단은 할 수 있는 게 없어졌다.
그저 맨몸으로 괴인과 맞서 싸우는 방법밖에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절정 고수와 맨몸으로 맞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몸소 증명하였다.
자신들의 목숨으로 말이다.
괴인, 김수민의 싸움을 멀리서 지켜보던 타왕톨고이는 혀를 내둘렀다.
“강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명성부터 심상치 않았다.
재해급 빌런이라니.
세계 최초이자, 지금까지도 유일무이한 재해급 빌런이 바로 그녀였다.
심지어 그녀가 이룬 일들은 일개 개인이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하기엔 스케일이 어마어마하였다.
한국 10대 길드 세 곳을 무너뜨린 이후, 미국의 대형 길드를 혼자서 무너뜨렸고 마법 학교까지 공격하여 큰 피해를 안겼다.
물론 IHA를 직접 공격한 적도 있었는데, 그녀가 공격했던 IHA와 지금의 IHA는 비록 차원이 다르긴 해도 이 역시 그녀를 고평가할 수밖에 없는 업적(?)이었다.
아무튼, 이런 명성을 가진 그녀였기에 강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에게 직접 무공을 배우기도 하였었고.
하지만 막상 그녀가 실전을 치르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그녀를 과소평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지금 그녀가 보여주는 모습은 경이롭기 그지없었다.
“어이, 거기 너!”
그때 뒤에서 타왕톨고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도망치지 않고 태연하게 구경하다니. 죽고 싶은 거냐?”
“누구지?”
“미친놈! 정체를 물어야 할 사람은 나야!”
타왕톨고이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자신은 복면을 쓰고 있었다.
중국 정부에 정체를 들키지 않게 복면을 쓴 것인데, 상대 입장에서는 황당하게 느껴지긴 할 거 같았다.
‘그런데 이놈도 평범한 군인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지.’
복장이 다른 걸 보면 특수여단 소속은 아닌 거 같았다.
수용소에서도 몇몇이 입고 있던 복장인데, 저 복장을 한 이들은 전부 무공을 익혔었다.
“내 정체를 알고 싶으면 나를 제압해봐. 그럼 바로 정체를 알려주지.”
사내는 여유로운 타왕톨고이의 모습에 이를 갈더니 검을 뽑아 들고는 그대로 달려들었다.
역시 무인이 맞았던 것인지 상당히 날렵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는데, 타왕톨고이는 그런 사내를 같잖다는 듯 바라봤다.
“어설프군.”
“뭐라고? 이 새끼가 감히!”
날카로운 검격이 연이어 쏟아졌다.
검기를 가득 실은 공격이었기에 스치기만 해도 중상이었다.
하지만 사내의 공격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무공을 배운 주제에 무공이 단전과 검기가 전부인 줄 아나 보지?”
타왕톨고이가 보기에 사내의 검술은 형과 식이 없었다.
그저 마구잡이식으로 휘두르는, 검술도 뭣도 아니었다.
‘역시 같은 무공이어도 누구에게 배웠느냐에 따라 다른가 보군.’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헌터에게도 스승은 중요하였다.
괜히 헌터 학교란 것이 존재하는 게 아니었던 것.
하물며 무공처럼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같은 경지여도 스승이 누구냐에 따라 실력이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었다.
헌터의 랭크로 따지면 두 단계 이상 차이 날 수도 있으리라.
타왕톨고이가 사내를 압도하는 것도 단순히 경지 차이 때문이 아니었다.
설령 경지가 같더라도 타왕톨고이는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스승은 절정급 무인이라는 김수민이었다.
김수민은 무공 학교에 간다면 단숨에 정교수가 될 실력을 가졌기에 그의 제자인 타왕톨고이의 실력도 출중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타왕톨고이, 그는 ‘무에서 무를 이룬 자’에게 직접 가르침도 받지 않았던가.
‘무에서 무를 이룬 자’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는 IHA 협회장일 것이니 그의 무공이 아마추어에게 배웠을 눈앞의 사내보다 고강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더 볼 필요도 없군.”
타왕톨고이의 검이 사내의 목을 갈랐다.
사내는 반응도 하지 못한 채, 눈을 부릅뜬 상태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