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이게 도대체 며칠째야!”
“참아. 정부의 명령이잖아.”
“아무리 정부의 명령이라도 그렇지. 사냥해야 할 시간에 이게 뭐냐고!”
해방 전선이라 밝힌 빌런 집단은 거의 매일같이 사건을 일으켰다.
이제는 공산당 간부들조차 바깥을 함부로 나다니지 못할 정도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뒷배 없는 헌터들은 중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강제로 수색 작전에 나가야 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수색 작전에 동원된 헌터들의 사기는 극도로 낮았다.
“애초에 해방 전선이고 뭐고 알 게 뭐야.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잖아?”
빌런이라고는 하는데 진짜 빌런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무고한 시민을 죽이거나 폭탄 테러를 하거나 은행을 털거나 그러지는 않았던 것이다.
헌터들 입장에서는 그런 해방 전선의 잔당들을 잡아내겠다며 수색 작전에 몇 날 며칠 동원되고 있었으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야, 죽을 거면 혼자 죽어.”
“제기랄. 말도 제대로 못 하겠네.”
하지만 헌터들은 정부가 두려워 불만을 표현하지 못하였다.
IHA의 영향력이 없는 나라답게 헌터들의 인권도 최악인 나라였다.
공산당에 뒷배를 둔 헌터가 아니라면 사실상 노예나 다를 게 없을 정도였다.
“방금 뭐라고 떠들었지?”
그때 붉은 옷을 입은 사내가 나타났다.
그러자 방금까지 떠들던 헌터들이 입을 다물었다.
“대답.”
“…그냥 놈들이 어디 있나 짜증이 나서 한마디 했을 뿐입니다.”
붉은 옷을 입은 사내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두 사람을 쳐다봤다.
그러더니 이내 두 사람을 비웃듯, 조소를 흘리고는 어깨를 한 대씩 툭 쳤다.
“떠들지 말고 조용히 잘 따라와.”
“예….”
“목소리가 작은데?”
사내가 그렇게 물러나자 불만을 터뜨리던 헌터, 쉬치량은 치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개 같은 새끼….”
“야, 그러다 진짜 맞는다.”
“조폭 주제에 센 척하는 거 마음에 안 들어.”
“센 척이 아니라, 강한 건 사실이잖아?”
“…그래봤자 조폭일 뿐이야.”
“조폭이 맞긴 하지. 무공을 배운 조폭이라는 게 문제지만.”
쉬치량은 그 말을 듣고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사실 그가 불만스럽게 여기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왜 자신은 무공을 못 배우는데, 빌런이나 다를 게 없는 자가 무공을 배운단 말인가.
“이게 말이 돼? 조폭이 무공을 배웠다니!”
“…원래 세상은 약육강식이라잖아.”
“약육강식은 개뿔! 정부가 저놈들을 예뻐해서 그러는 거지!”
“정부는 도대체 저런 양아치 놈들만 감싸고 왜 우리처럼 자기 일 열심히 하는 헌터들은 푸대접하는 거지? 난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단 말이야.”
중국에서 이러한 불만을 품은 사람은 쉬치량뿐만이 아니었다.
헌터들 중 그와 같은 불만을 갖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단지 그들이 고랭크 헌터가 아니었기에 불만을 표출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저놈, 죽여버릴까?”
하지만 쉬치량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인내할 생각이 없는 듯하였다.
“저 새끼도 적비단 소속일 거 아니야?”
“적비단인 걸 아는데 그 소리야?”
그의 친우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적비단인 걸 알면서도 죽일 생각을 하다니.
도저히 제정신처럼 보이지 않았다.
“인터넷 안 봐? IHA가 저놈들 잡을 때마다 최소 300점 이상의 공적 점수를 준다잖아. 설령 말단이라도 말이야.”
300점이면 결코 적은 점수가 아니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무공 학교 입학 기준이 300점이었을 정도였다.
물론 지금은 기준이 올라서 500점으로도 부족할 수 있겠지만, 그가 말한 300점은 어디까지나 말단 기준이었다.
만약 중간 관리자급이라면?
그 이상의 간부나 지도자급을 잡는다면 어떨까.
300점이 아니라, 최소 1,000점 이상 획득하는 것도 가능하였다.
“공적 점수 때문에 적비단을 공격하자는 거야? 적비단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몰라서 그래?”
중국 헌터 중에 적비단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한때는 중국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을 가진 집단이었으니까.
“우리가 했다는 게 들키지만 않으면 돼.”
“던전에서 잡자는 거지?”
“어때? 흥미 생기지 않아? 너도 무공 배우고 싶어 했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우리만으로 무공을 익힌 헌터를 어떻게 잡아?”
“우리만으로는 안 되지. 하지만 모으면 수십 명도 모을 수 있어. 그런 다음 기습하는 거지.”
“만약 성공한다 치자. 공적 점수는 어떻게 배분하려고?”
“그건 일단 잡고 나서 생각하는 게 낫지 않아? 어차피 저놈 잡는 도중에 뒤질 사람도 꽤 있을 테니까.”
죽이고 나서 생각하겠다니.
그야말로 무계획 그 자체였다.
하지만 무공을 배울 수 있다면 그 정도 리스크는 감수해도 되지 않을까?
“그래. 한번 해보자.”
쉬치량을 말리려던 헌터는 오히려 쉬치량에게 설득당하였다.
공적 점수를 얻을 기회가 주어졌으니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설마 지원군도 보내지 않고 이렇게 적비단을 쫓아낼 줄이야.’
왕자성은 중국에서 전해진 소식을 듣고 혀를 내둘렀다.
IHA 지원군이 언제 오나 오매불망 기다렸던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그런데 IHA 지원군이 오기도 전에 상황이 역전되었다.
그저 선언 하나.
적비단이 인류의 적이라고 선언하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선언 한 번에 상황이 순식간에 역전되어 이제는 적비단이 13연맹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IHA의 지원군은 기다릴 필요도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게 IHA의 힘인가….”
단순히 IHA가 가진 무력만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IHA의 진정한 힘은 바로 무공 그 자체였다.
무공이란 힘을 독점함으로써 헌터들이 IHA의 지시에 절대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번에 중국에서 일어난 사태만 봐도 그들이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대격변 초기부터 중국 정부는 헌터들을 거의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통제하였다.
어떤 불합리한 명령이라도 중국 정부가 명령을 내리면 헌터들은 무조건 이에 따랐다.
하지만 그런 중국의 헌터들이 IHA 선언 한 번에 정부에게 반기를 들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그저 공산당이 키우던 적비단을 몰래 공격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적비단이 하나둘 기습으로 죽어 나가자 그때부터는 대놓고 중국 정부의 지시에 불응하였다.
정부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었다는 걸 헌터들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지금 중국은 사실상 내전이나 다를 게 없는 상태에 빠졌다.
“IHA보다는 박한새 대협의 힘 아니겠습니까.”
“그도 그렇군요.”
왕자성은 쓰게 웃었다.
처음 박한새를 봤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큰 차이가 있지는 않았었다.
그때도 비록 박한새에게 도움을 청하는 상황이었다지만, 왕자성은 13연맹 의장인 데다 그린스킨 소속이었다.
그러니 그때까지만 해도 박한새가 충분히 닿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여겼었다.
근데 불과 몇 년 만에 박한새는 왕자성이 닿을 수 없는 입지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 무력 역시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도대체 박 대협은 어디까지 올라가려고 하는 것인지.’
중국의 상황은 날이 갈수록 악화하였다.
미국 언론사들도 매일같이 중국의 상황을 보도하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내전이 임박한 상황이었다.
“저는 아무리 상황이 좋아져도 중국이 세 개에서 네 개로 쪼개지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상황을 보니 세 개에서 네 개 정도가 아니라, 수십 개로 쪼개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성민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확실히, 처음 내 목표는 위구르, 내몽골, 티베트가 중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 세 나라를 지지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지 중국이 대놓고 여명회의 편을 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중국의 상황은 더 심각하게 흘러갔다.
헌터들은 대놓고 항명하였고 심지어 각 군구도 중앙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미 몇 명의 지휘관이 중앙의 복귀 명령을 무시한 채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을 좋아하는 장성민 비서실장께선 좋아할 만한 상황이군요. 중국이란 나라가 그만큼 많아질 거란 뜻이니.”
“그래서 저도 기대하며 중국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장성민은 작게 미소를 그리며 내 말에 호응하더니, 이같이 물었다.
“중국에서의 대계는 어느 정도 마무리된 거 같은데, 혹시 앞으로의 대계도 조금만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대계 말씀입니까?”
“사부님께서 그리고 계시는 그림을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보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요 근래 내가 너무 독단적으로 행동하긴 했나 보다.
비서실장인 그가 이런 말을 할 정도면.
하긴, 최근 일만이 아니었다.
IHA 간부들 사이에서 괜히 독재자 소리가 나온 게 아니었으니.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미래를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특히 여명회에 관한 정보는 내가 가장 많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것도 중국 정부의 뒤에 여명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였다.
물론 증거는 없어서 간부들에게 알리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대계라고 거창하게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아프리카를 정화하는 것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아프리카를 정화하는 것이 인류를 구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
“꼭 필요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프리카에서 악신들이 힘을 기르고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
“여명회가 숭배하는 악신도 아프리카에서 힘을 기르고 있다 하셨으니, 필히 아프리카를 정화하긴 해야겠습니다.”
“예. 그리고 인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도 말씀입니까? 인도는 아프리카와 상황이 다른 거 같은데, 제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나 봅니다.”
“겉으로 봐서는 멀쩡한 나라처럼 보여도 여명회의 신도가 인도에서 힘을 기르고 있습니다.”
여명회의 12사도가 인도를 세력권으로 두고 있었다.
가만히 놔두면 먼 훗날 인류를 위협할 세력이 될 것이다.
“물론 가장 시급한 것은 7사도를 처리하는 일입니다.”
7사도, 창웨이.
이제 그자를 정리할 때가 온 거 같았다.
IHA와 중국 정부의 대립은 인터넷에서 화제였다.
[갑자기 중국이 왜 IHA에 시비 거는 거임?]
[원래 둘이 사이 존나 안 좋았는데, 이번에 IHA가 무공 학교 설립하는 거 때문에 개빡친 듯.]
[무공 학교 설립하면 오히려 반겨야 하는 거 아닌가 ㅋㅋㅋㅋ]
[적비단을 빌런 집단으로 선포한 게 마음에 안 들었나 봄.]
[ㅁㅊ 누가 봐도 빌런이 맞는데.]
[근데 일개 협회가 너무 나대는 거 같지 않나?]
[잘하는 일 하는데 왜 ㅈㄹ임?]
[아니, 중국도 중국이지만 여기저기 정치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 나는 문제 있다고 봄.]
[난 그보다 누가 이길지 궁금한데.]
[중국 vs IHA? 당연히 중국이 이기지. 세계 2위 나라인데 ㅋㅋㅋ]
[응 아니야. IHA가 훨씬 세~. 절정 고수만 수백 명임.]
[이제 중국에서도 고수 나오기 시작했죠? 중국 헌터 수가 세계 최대인데 그들 전부가 무공 배우면 IHA도 질 수밖에 없음.]
일개 협회와 세계 2위인 중국의 대립.
두 세력의 충돌을 두고 사람들은 장난스럽게 누가 이길지 내기하였다.
표가 많이 모인 쪽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지만, 중국이었다.
한 나라, 심지어 세계 2위이고 무공까지 정식으로 도입한 중국이 일개 협회에게 질 수 없다는 여론이 대세를 이룬 것이다.
[ㅋㅋㅋㅋㅋ 중국이 이긴다는 새끼들 다 어디 감?]
[중국이 이기기는 개뿔 ㅋㅋ. 혼자 자멸하는데?]
[이제 중국 여러 개 될 테니 중국이 이기긴 하겠네. 아무리 IHA라도 1:10은 힘들 거자너 ㅋㅋㅋ]
하지만 여론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중국의 상황이 그만큼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