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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251화 (251/275)

#251화

흔히 주석의 문고리 6인방이라 불리는 주석의 최측근들이 고개를 숙인 채 주석의 눈치를 살폈다.

“호랑이든, 파리든 모조리 때려잡아야겠군.”

주석이 그렇게 입을 열자, 6인방은 몸을 움찔하였다.

호랑이든, 파리든 모조리 때려잡겠다는 말은 대대적인 숙청을 예고하는 말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나에게까지 영향이 오는 건 아니겠지?’

‘제기랄, 21집단군에게 받은 게 조금 있는데.’

그들은 중국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의 안위만 걱정할 뿐이었다.

물론 주석 역시도 중국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았다.

이 정도 위기쯤,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되리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마침 ‘해결사’가 그를 찾아오고 있기도 했고.

“7사도가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해결사가 왔군.”

지금의 사태를 해결할 해결사는 다름 아닌, 여명회의 7사도 창웨이였다.

창웨이는 대격변이 처음 일어났을 때부터 주석의 해결사 노릇을 해주었다.

정적을 제거해주었고 말 안 듣는 헌터들을 정리해주었다.

‘적비단은 제 할 일을 못 하고 있지만 말이야.’

주석은 속으로 혀를 찼다.

창웨이의 능력은 여전히 굳게 신뢰하고 있었지만, 최근 적비단이 보여준 실태는 그 역시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7사도, 어서 오시게.”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얼마나 걸리겠나?”

그가 그리 묻자, 창웨이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오늘 안에 주석의 고민도 다 해결이 될 겁니다.”

“…오늘 안에 해결이 될 거라고?”

몇 달은 걸릴 것이다, 라고 말했으면 바로 지적을 하려고 했었다.

주석도 내심 사태를 수습하는 데 몇 달 정도는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긴 하였다.

지금 그의 명령에 불응하는 인민해방군 지휘관들이 한둘이 아니었고, 해방 전선의 활동 영역도 점점 넓어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창웨이의 물주였다.

물주로서 더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오늘 안에 사태가 해결된다면 그 역시 지적질을 할 이유가 없었다.

지적질은커녕 오히려 큰 상을 내릴 생각이었다.

“주석이 죽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어?”

“뭐, 뭐라고?”

창웨이의 손이 주석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러자 6인방을 포함한 주석의 경호원들은 크게 경악하였다.

“이, 이게 무슨!”

“뭐, 뭐 하고 있습니까! 저자가 주석을 살해하였는데!”

뒤늦게 6인방 중 한 명인 군사위 부주석이 반응하였지만 이미 한참 늦었다.

창웨이의 수하들이 나서자 주석의 최측근인 6인방도 모두 제거된 것이다.

“깨끗하게 정리하였습니다.”

수하의 보고에 방금까지 주석이 앉아있던 자리에 앉은 창웨이가 나른한 표정으로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수하는 고개를 숙이고는 조용히 물러났다.

“주석이란 패를 이렇게 빨리 정리하게 될 줄은 몰랐군.”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정리할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여명회의 천하가 온다면 주석 같은 정치인을 굳이 살려둘 이유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사태가 워낙 급박하게 전개되자 창웨이는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IHA와의 전쟁이 시작된 상황이다.

더 몸을 숨길 필요 없이 전면에 나서서 중국을 지휘하는 게 나으리라.

하여 그는 주석을 죽였다.

주석을 대신하여 중국의 최고 권력자가 되기 위함이었다.

‘문제는 박한새, 그자가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는 거다.’

툭. 툭.

창웨이는 턱 끝을 괴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그가 주석을 죽였으니 IHA, 정확히는 박한새가 움직일 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제자들을 데리고 직접 중국으로 올 수도 있으리라.

‘그래도 이제 개미 병사의 양성이 가능해졌다.’

박한새가 마냥 두렵지 않았다.

러시아에서 나타났던 8성급 몬스터인 병정개미에 대한 연구가 끝이 났기 때문이었다.

자원만 충분하다면 개미 인간을 얼마든지 양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자원은 주석 덕에 충분해졌지.’

십수 년간 부정부패를 일삼으며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만들어온 것이 중국 주석이었다.

창웨이는 바로 그 주석의 비자금을 얻었으니 자금력은 넘쳐흐른다고 해도 절대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다.

이 자금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개미 인간을 양성한다면 IHA도 함부로 중국을 쳐들어오지 못하리라.

“과연 이 나라 14억 인구 전체가 개미 인간이 되어버리면 박한새 그자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군.”

“그런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

어눌한 중국어를 들으며 창웨이는 눈을 크게 떴다.

절대 들리면 안 될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기 때문이었다.

“네, 네놈이 여기는 어떻게?”

그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IHA의 수장, 박한새가 있었다.

‘놈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게 될 날이 올 줄이야.’

눈을 부릅뜬 창웨이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조소를 흘렸다.

나에게 있어 최종 보스처럼 느껴지던 존재가 바로 7사도, 창웨이였다.

창웨이는 이성은이 회귀했던 회차인 전 회차와 회귀자가 존재하지 않았던 전전 회차에서 한국을 파멸로 이끌었던 악인이니까.

여명회의 그 누구보다 창웨이에 대한 악감정이 컸다.

내가 적비단에 유독 집요하게 굴었던 이유도 바로 이 창웨이 때문이었다.

“IHA의 정보력을 우습게 보는 모양이야.”

“…주석을 감시했었나?”

“아니. 여명회의 중국 지부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겠군.”

“이미 은신처까지 모두 파악한 상태다.”

IHA의 정보력은 나날이 발전해 가고 있었다.

무공을 익힌 정보원들이 대거 동원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공은 단순히 개인 무력만 상승시켜주는 것이 아니었다.

스킬 효과도 증가하게 해주는데, 첩보에 사용되는 스킬 역시 효과가 대폭 증가하였다.

유지은만 해도 사이코메트리로 하루에 수백 명의 기억을 엿볼 수 있을 정도였다.

“박한새. 확실히 당신은 위협적이야.”

“유언은 그게 끝인가?”

“…날 죽인다고 달라질 것은 크게 없을 거다.”

“12사도 중 한 명을 제거했는데 달라지는 게 없지는 않겠지.”

“그리고 나는 너만 죽일 거라고 하지 않았다.”

창웨이는 시작에 불과하였다.

지금껏 내가 죽인 사도의 숫자는 겨우 네 명.

2사도, 5사도, 7사도, 10사도.

이렇게 네 명만 죽였을 뿐이었다.

여명회의 사도는 총 열두 명이니 아직 내가 죽여야 할 숫자가 여덟 명이나 남아있었다.

‘저승에서 기다려라. 곧 너희 동지들도 저승으로 내려 보낼 테니.’

창웨이의 시신이 갑자기 들썩이기 시작하였다.

목을 확실하게 갈랐는데 부활하다니.

이런 경우는 난생처음이었다.

하지만 당황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적의 변신을 기다리느니, 그 시간에 치명타를 날리리라.

-박한새! 인간이면서 성좌의 자리에 오른 ‘무에서 무를 이룬 자’여.

내가 검을 휘두르려던 찰나,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음성이 전해졌다.

탁하면서 뭔가 끈적하게 느껴지는 그런 목소리였다.

“파롤인가.”

순간적으로 상대가 파롤일 거란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상대가 긍정하였다.

-그렇다. 정확한 이름은 파보루 레…….

“정확한 이름까지 알고 싶지는 않군.”

이름 따윈 관심 없었다.

내가 궁금한 것은 파롤이 왜 나에게 접촉했는지였다.

“왜 현신한 거지? 그것도 다 죽어가는 권속의 몸에?”

-박한새, 너와 협상을 하고 싶다.

“협상이라.”

나도 모르게 코웃음이 나왔다.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은 상대가 파롤이었다.

파롤을 죽일 수 있다면 내 목숨도 아깝지 않을 정도.

그런 상대와 협상한다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그대를 이 세계의 지배자로 만들어주겠다.

“이 세계의 지배자라고?”

-황제라고 해도 좋겠지. 지구 전체를 지배하는 세계 황제 말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무언가가 내 감정을 자극하였다.

지배욕, 재물욕, 권력욕, 명예욕 등등.

머릿속으로는 세계의 황제가 된 나를 떠올리고 있었다.

한때 내게 오만하게 굴었던 유럽의 지도자들이 내 발밑에 무릎을 꿇었고 미국인들은 내게 ‘박한새 황제 만세’를 외쳤다.

이어서 유지은, 김수민, 고정희, 정소연, 김민경, 제니퍼, 나즐라 등이 내 옆에 나타났다.

그녀들은 나를 남편이라고 불렀다.

‘웃기는군. 이런 것으로 나를 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물론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으면 흔들렸을지도 몰랐다.

원래 정신 공격은 막기 어려웠고, 이런 종류는 특히 그랬다.

세계의 황제라니.

욕구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탐을 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회귀까지 경험한 나는 겨우 이런 정신 공격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잠시 호흡에 집중하니, 내 머릿속을 지배하던 모든 잡념이 사라졌다.

“내가 이 세계의 지배자가 될 때, 너는 무엇을 얻지?”

어차피 그와 협상할 생각 따윈 없었다.

그저 그의 저의를 알고 싶었을 뿐.

-아무것도.

“말이 안 되는데? 성좌가 남 좋은 일만 할 리는 없잖아? 그것도 나는 성좌들이 무시하는 인간 출신인데 말이야.”

-단, 네가 죽을 때 이 세계는 내가 가져가겠다.

단기전으로는 안 될 거 같으니, 장기전으로 가겠다는 건가?

근데 나름 솔직하다면 솔직한 거 같았다.

지구를 지배하겠다는, 정확히는 지구를 파멸하려는 계획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기어코 지구를 파멸시키겠다는 뜻이군.”

-어차피 상관없지 않나? 너는 이미 죽고 난 이후일 테니?

파롤은 너무 당연하다는 듯 그리 말하였다.

죽고 난 뒤의 미래가 무슨 상관이냐는 태도였다.

하지만 나는 인류의 미래와 나 하나의 목숨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일말의 망설임 없이 인류의 미래를 선택할 사람이었다.

그런 내게 파롤이 내건 조건은 절대 들어줄 수 없는 조건이었다.

‘애초에 저 약속 자체가 거짓이지.’

설령 내가 나 자신밖에 모르는 욕망덩어리라도 파롤과 협상할 생각 따윈 하지 않았을 것이다.

파롤이 순순히 내게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권리를 줄 리는 없을 테니까.

“그딴 개수작이 내게 통할 거 같아?”

-왜지? 인간이라면 이 조건을 거부할 이유가 없을 텐데? 그댄 후손도 없는 것으로 아는데 말이야. 앞으로 낳을 생각도 없어 보이고.

목소리가 정말 의아하다는 듯 느껴져서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파롤은 어지간히 인간을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종족으로 보는 듯하였다.

‘더 들어줄 필요는 없겠지.’

나는 다시 한번 창웨이의 몸을 갈랐다.

이번에는 검강을 가득 실었기에 루키푸구스의 화신을 잡았을 때처럼 공간이 붕괴되었다.

그러자 공간 너머로 파롤으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보였다.

파롤의 외형은 의외로 평범하게 느껴졌다.

그냥 사람이라고 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하지만 외형 따위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평범한 인간의 외형이 아니라, 아름다운 천사의 외형을 하고 있다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파롤이 절대 악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데 말이다.

그러니 외형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파롤을 죽이는 것만이 중요할 뿐.

나는 일체의 망설임 없이 공간 너머인 파롤의 세계로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려고 했다.

악마의 손처럼 생긴 검은 손이 열린 공간 속에서 튀어나오더니 나를 밀쳐냈다.

내가 다시 달려가려 했지만 이미 차원은 닫힌 뒤였다.

-차원까지 뛰어넘으려 하다니. 그대는 확실히 위협적이군.

“열어! 성좌가 인간이 두려워서 피하려는 거냐!”

-나를 죽이려 한 대가는 꼭 치르게 해주지.

파롤의 목소리는 내게 복수를 선포하고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방금까지 열려있던 공간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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