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여명회의 12사도.
그중 절반인 여섯 명의 사도가 서로 어떤 교감도 없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영국으로 향하였다.
“7사도, 창웨이가 죽었다.”
모임이 있을 때면 언제나 사회자 역할을 하는 1사도, 매디슨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벌써 네 명째군.”
“단 한 명의 인간에게 네 명의 사도가 당하다니요. 아직도 저는 지금 일어나는 일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2사도 데미안 디아스.
5사도 아니트리 코프헤브.
10사도 크루엘라.
그리고 이번에 죽은 7사도 창웨이까지.
여명회의 12사도 중 무려 네 명이 박한새의 손에 죽었다.
그냥 평범한 사도들도 아니었다.
각각 하나 이상의 대륙을 ‘지배’할 예정이었던 사도들이었다.
2사도인 데미안 디아스는 중미를 시작으로 북미를, 5사도인 아니트리 코프헤브는 러시아를 시작으로 유럽까지.
10사도 크루엘라는 남미를, 그리고 7사도 창웨이는 중국을 지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원대한 계획은 단 한 명의 인간으로 인해 틀어졌다.
IHA의 협회장이자, 무공의 창시자인 박한새에 의해 말이다.
“심연을 들여다보시는 그분께서 박한새의 목숨을 원하신다.”
5사도가 처음 박한새에 의해 죽었을 때부터, 이미 여명회와 박한새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원수 관계였다.
하지만 정작 여명회가 숭배하는 신, 파롤은 박한새에게 관심이 없었었다.
자신의 권속이 죽든, 말든 그에게 중요한 문제는 오직 카르마 수급 문제뿐이었으니.
그런데 멕시코에서 막대한 양의 카르마를 공급하던 데미안 디아스까지 죽자, 그제야 박한새를 의식하기 시작한 파롤이었다.
그러다 이번에 창웨이가 죽고 ‘당연히’ 받아줄 거로 생각했던 제안까지 거부당하자 파롤은 극도로 분노하였다.
이 같은 분노는 곧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박한새를 죽여라.’라는 지시로 이어졌다.
“놈을 죽일 수 있었으면 진즉에 죽였겠지. 그게 아니면 매디슨, 네가 무능한 결과일 뿐이니. 내 말이 맞지 않나?”
3사도의 말에 장내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싸늘해졌다.
하지만 그의 말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매디슨을 리더로 여기는 9사도, 요한을 제외하면 다른 사도들 역시 매디슨의 능력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한새는 강하다. 그가 비각성자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놈이 강하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어. 그러니 그딴 변명은….”
“그리고 더 강해졌지. 초절정 고수가 되었으니 말이야.”
9사도 요한이 매디슨에게 물었다.
“매디슨도 이번에 대마법사의 경지에 올랐지 않습니까? 초절정 고수라는 경지는 대마법사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승률은 10%로 예상한다.”
“대마법사가 된 매디슨이 승리할 확률이 10%밖에 안 된다는 겁니까?”
“이것도 놈의 비기가 다 밝혀졌다는 전제하의 이야기다. 만약 놈이 숨겨놓은 한 수가 있다면….”
“승률은 더 떨어지겠군요.”
“절정 고수였을 때도 이길 거라는 확신이 없었을 정도니까.”
“…엄청나네요.”
사람들은 앤디 올드먼을 대마법사로 여겼다.
하지만 앤디 올드먼은 진정한 대마법사가 아니었다.
진짜 대마법사는 앤디 올드먼의 스승인 1사도 매디슨이었다.
그리고 그런 대마법사의 경지인 매디슨도 박한새를 상대로는 100%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매디슨이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르면서 11사도와 12사도 다음가는 실력자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매디슨이 못 죽이면 놈을 어떻게 잡습니까?”
“우리의 힘만으로 안 되면 다른 자의 힘을 빌려야겠지.”
“다른 자? 원래 계획대로 놈을 인도나 아프리카로 유인하려는 겁니까?”
이 자리에 없는 사도는 두 명이었다.
11사도와 12사도.
그리고 이 두 명은 여명회의 핵심 전력이었다.
하지만 두 사도에게는 10사도, 크루엘라가 그랬던 것처럼 제약이 하나씩 있었다.
11사도는 아프리카, 그중 남아프리카를 벗어날 수 없었고 12사도는 인도를 벗어날 수 없었다.
하여 여명회는 박한새가 아프리카로 향했을 때, 그를 남아프리카까지 유인하려고 하였었다.
물론 박한새가 원정을 중도에 멈추면서 이 같은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말이다.
“다른 자라는 게 꼭 같은 형제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심연을 들여다보는 그분 말고도 박한새를 싫어할 성좌는 많지 않은가.”
사도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매디슨이 다른 성좌를 거론하였기 때문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성좌는 IHA에게, 그리고 박한새에게 무언가를 빼앗긴 경험이 있지. 그게 던전이든, 아니면 우수한 재능을 가진 인재든 말이야.”
그의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었다.
만약 성좌들이 현세에 개입할 힘이 있었다면.
그들은 박한새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들의 권속이 최소 ‘절정 고수’ 수준의 무력만 가졌어도 그들은 권속에게 박한새를 죽이라고 지시하였을 것이다.
성좌들이 박한새의 행동을 지금껏 방관한 것은 그의 행동을 좋게 봐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단지 힘이 없어서일 뿐.
“하지만 과연 우리와 힘을 합치려는 성좌가 있을까 싶군.”
“설득해야지. 일부 성좌에겐 우리보다 박한새나 IHA가 더 거슬리게 느껴질 테니 말이야.”
이는 엄청난 일이었다.
지금껏 어떤 성좌 세력도 안중에 두지 않았던 여명회가 처음으로 다른 성좌 세력과의 ‘동맹’을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박한새 협회장의 검기는 다른 검기와 모양이 다르게 생겼습니다.
-확실히, 조금 더 화려하면서 복잡한 형태를 띠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겉모양만 다른 것은 아닙니다. 위력도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해졌죠.
-강필순 헌터는 그럼 인터넷에서 나오는 이야기처럼, 박한새 협회장이 경지를 올렸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절정에서 초절정으로?
-예. 저는 박한새 협회장이 초절정 경지에 들어섰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TV에서는 늘 그렇듯 박한새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박한새의 거취가 아닌, 다른 내용을 다루었다.
그 내용이란 다름 아닌, 박한새의 경지였다.
검기보다 훨씬 위력적이라느니, 검기보다 상위인 검강이라느니.
그저 위력만 조금 상승했을 뿐, 경지는 그대로일 것이라느니.
설령 경지가 올라도 이미 최강자인데 달라질 게 뭐가 있겠냐느니.
뉴스에서 다루는 내용으로 보기엔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그런 인터뷰였다.
하지만 그 어떤 시청자도 뉴스 내용을 듣고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무공은 이미 시대의 흐름이나 다를 게 없었다.
헌터든, 비각성자든 관계없이 모두가 무공에 관심을 보였다.
그들 역시 언젠가 무공을 배울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강필순 헌터의 인터뷰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물론 그 내용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말이다.
“아빠, 이게 진짜일까요? 초절정 고수라니, 안 그래도 강했는데 더 강해졌다는 거잖아요?”
“진짜일 수는 있겠지만, 설령 진짜여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왜요? 초절정 고수가 되면 더 강해지니 좋은 거 아니에요?”
“애초에 초절정 고수라는 정의는 누가 내리는 건데?”
“그야… 박한새 본인이 내리는 거 아닌가요?”
“그니까. 박한새 본인이 본인에게 초절정 고수라고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야?”
“조금 더 강해졌을 수는 있겠지만, 경지가 달라질 정도로 강해진 것은 아닐 거야. 그런데도 초절정 고수라고 한 건, 무공 창시자로서의 위신 때문이겠지.”
“위신이요?”
“박한새 제자 중에 절정 고수의 경지에 오른 제자가 한둘이 아니잖아? 어쩌면 그중에는 이미 박한새의 실력을 뛰어넘은 자들도 있을 거야. 박한새의 제자들에겐 스킬도 있을 테니까.”
“아, 그래서 일부러 자신의 경지를 높인 거군요. 실력으로 밀리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무공의 창시자로서 위신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
박한새가 초절정 고수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났다.
아프리카에 가서 악신의 화신을 잡을 때 박한새가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다는 언급이 나왔으니까.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반신반의하였다.
초절정이라는 경지는 그저 허구일 뿐이라느니.
제자와 격차를 벌리고 싶어서 억지를 부린 거라느니.
우습게도 전문가라고 할 수 없는 이들이 초절정 경지를 놓고 왈가왈부하였다.
“후우. 후우.”
비전문가들이 초절정 관련된 논란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떠들 때, 정작 전문가들은 그 어느 때보다 수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중 박한새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특히 수련에 열중하였다.
‘조금만 하면 될 거 같은데….’
정소연은 검을 내려놓고 숨을 가다듬었다.
그녀의 전신은 땀으로 젖어있었다.
몸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하지만 숨을 가다듬은 그녀는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꼭!’
단전에서 일어난 내공이 전신을 돌더니 그녀의 손으로 뻗어 나갔다.
이내 그 내공은 검을 타고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무인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검기의 형상이었다.
하지만 그 검기의 형상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였다.
조금 더 두껍고 조금 더 복잡한 형태로.
‘검강을 만들려면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는 박한새의 조언을 떠올렸다.
물론 그녀가 떠올린 박한새의 조언은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박한새는 ‘절정’ 고수를 가르치는 스승으로선 그리 자질이 없었다.
아니, 사실 다른 어떤 누구라도 절정 고수를 가르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절정 고수쯤 되면 이미 사실상 완성된 무인이라 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박한새의 조언도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초절정 경지는 이론보단 일종의 ‘감각’의 영역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의념이라고 했지.’
더 강한 의념.
초절정 고수의 조언이라기엔 너무 아쉽게 느껴지는 조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조언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였다.
박한새를 향한 그녀의 믿음은 절대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반드시 가장 먼저 초절정 경지에 오르고 말겠어!’
“한새 씨, 요즘 너무 정소연 헌터에게만 신경 쓰시는 거 아니에요?”
유지은이 불쑥 얼굴을 내밀며 그와 같이 물었다.
“딱히 정소연 헌터를 편애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여서 적극적으로 조언해줬을 뿐입니다. 물론 그리 큰 도움이 되는 조언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고요? 그 가능성이란 게 설마 초절정 경지에 대한 가능성을 말하는 건가요?”
내 대답에 유지은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의왼데요? 이성은 본부장도, 이정 본부장도, 신경철 교장도, 노홍만 교수도 아니고 정소연 헌터의 재능이 가장 뛰어나다니.”
“재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지금으로서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만 했을 뿐.”
“그게 그 뜻 아닌가요?”
“조금 다릅니다. 재능으로 따지면 정소연 헌터가 다른 이들을 압도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단지, 방향이 맞았을 뿐입니다.”
“방향이라. 저도 그럼 방향이 맞으면 다른 절정 고수들보다 먼저 초절정 고수에 오를 수 있을까요?”
지금은 누구에게나 길이 열려 있었다.
설령 초일류 고수들이라고 해도 절정 고수보다 먼저 초절정 경지에 도달할 수도 있으리라.
물론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두 번째 초절정 고수라니. 그건 꽤 끌리긴 하네요. 다만, 저는 폐관 수련을 하면서까지 무공에만 집중할 자신이 없네요.”
“그런데 보고하실 사항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맞다. 중요한 보고 사항이 있었는데, 제가 너무 다른 이야기만 했었네요.”
“어떤 겁니까? 보고하려는 내용이.”
“성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우리를, 정확히는 한새 씨를 적대하는 방향으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