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대신 회귀함-257화 (257/275)

#257화

비무회의 참가 제한을 푼다는 말에 사람들은 환호하였다.

자신들이 응원하는 헌터가 대회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상혁이도 참가하겠지?”

“갓상혁! 갓상혁!”

“갓상혁이 진짜 무인들 제대로 발라줬으면 좋겠다.”

“나는 김동하의 성적이 궁금하던데. 맨날 자신은 S랭크 헌터보다 강하다고 나불댔잖아.”

“김동하, 그 자식 A랭크 아니었어?”

“근데 워낙 스킬이 유니크해서 궁금하긴 해. 과연 무인들을 상대로 어디까지 갈지.”

“그래도 예선은 거뜬히 통과하지 않을까?”

“모른다. 워낙 규모가 큰 대회라서 변수 존나 많을 듯.”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우리 자림이 누나 실컷 볼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의 응원을 받는 고위급 헌터들은 박한새의 조치를 썩 반가워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아니, 그냥 무인들의 축제로 할 것이지 왜 우리를 억지로 끼게 만들려는 거야?”

“뻔하잖아. 우리를 들러리로 세우려는 거지.”

“젠장. 무공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건가.”

헌터들은 이미 알았다.

대세는 넘어갔다는 사실을.

특히 한국의 헌터들은 거의 전부가 무공 학교에 입학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그만큼 한국 헌터들은 무공의 힘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엄청난 상금이 걸려있는데도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오히려 꺼려 했다.

나가봤자 굴욕만 당할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질 게 뻔해도 나갈 수밖에 없는 여론이 조성되었다는 점이었다.

“김동하 헌터님, 소문으로는 비무회에 참전한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평소 무인들의 실력이 과대평가되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번에 입증하실 수 있으시겠죠?”

“우승은 염두에 두고 계십니까?”

인지도 있는 헌터들의 경우 기자들이 찾아와 참전 의사를 물었다.

몇몇 기자들은 이미 그들의 참전을 기정사실화하고서 몇 위를 예상하는지 물어볼 정도였다.

이는 아직 무공의 힘을 제대로 겪지 못했던 유럽 대륙이나 호주 대륙에서 더 자주 일어났다.

“전 세계는 착각 속에 빠져있습니다. 일개 비각성자가 최강자라니.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제가 대회에 출전하여 전 세계인들의 착각을 꼭 부수고 오겠습니다.”

“무공은 절대 저의 에스퍼 파워를 이길 수 없을 거예요!”

물론 유럽과 호주 출신의 헌터들은 한국 헌터들과 달리 무공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성좌 즉, 배후령을 둔 헌터는 흔히 계약자라 불렀다.

그리고 평소에는 엉덩이가 무겁기 그지없던 그 계약자들이 비무회의 개최에 관한 토의를 하고자 한자리에 모였다.

대부분이 헌터 사회에서 거물이라 불리는 이들이었다.

물론 랭크는 전부 S랭크였고 말이다.

“무공의 창시자가 아주 지저분한 수를 썼습니다.”

“…의도를 가지고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상황이 안 좋게 되기는 한 거 같군.”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성좌와 계약한 계약자라고 전부 여명회처럼 음지에서만 활동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인으로 활동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대형 길드를 거느리는 계약자도 존재하였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있어 헌터들의 관심이 IHA가 주최하는 비무회에 쏠리는 것은 결코 즐거워할 일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무인 놈들 때문에 레이드 경쟁이 어려워지고 있는데 무인들이 더 늘어난다니!’

‘후우. 답답하군. 성좌님은 더 뛰어난 인재를 구해오라 하는데 인재들은 죄다 무공을 배우러 가면 배우러 갔지, 내 밑으로 올 생각을 안 하니 말이야. 아마 대회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이런 양상이 더 뚜렷해지겠지?’

그렇게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나올 때, 한 사내가 앞으로 나와 말하였다.

“저의 성좌께서 의견을 내셨는데, 오히려 기회라고 하셨습니다.”

“기회? 무슨 기회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의 성좌이신 강철의 군주란 존재를 세상에 알릴 기회 말입니다.”

그 말을 듣고 계약자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성좌를 세상에 알린다고?”

“…허.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요.”

성좌들은 지금까지 자신의 존재를 대놓고 드러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아직도 성좌의 존재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였다.

계약자들 역시 본인이 어떤 성좌를 배후령으로 두고 있는지 따로 밝히지 않았다.

그들의 성좌가 그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성좌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자는 사내의 말에 계약자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렵게 생각하실 거 없습니다. 무공의 창시자인 박한새가 대회를 크게 열어 무공의 우월함을 알리려고 하듯, 우리 역시 대회에서 크게 활약하여 성좌의 우월함을 세상에 알리는 겁니다.”

“성좌께서 그것을 허락하시겠소?”

“성좌께서 바라신 일입니다.”

“…권속을 모으는 게 많이 어려워졌나 보구려.”

“다 똑같은 상황 아니겠습니까?”

모든 성좌들은 출중한 재능을 가진 헌터를 권속으로 두길 바랐다.

그래서 S랭크 헌터가 될 잠재력이 엿보이는 헌터의 경우에는 여러 성좌가 달려들어 지분율 경쟁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막대한 카르마가 소모되었고.

지금까지야 이런 경쟁이 문제가 되는 일은 없었다.

어차피 모두가 똑같은 입장이었으니까.

즉, 공정한 경쟁이었기에 선점만 잘한다면 뛰어난 인재를 손쉽게 권속으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무공이란 게 세상에 나타나자 상황이 달라졌다.

무공을 익힌 헌터는 지분율이 잘 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성좌들은 권속으로 삼을 인재를 모두 빼앗겼다.

그렇다고 박한새와의 경쟁도 쉽지 않았다.

박한새와의 경쟁은 지금까지 있었던 성좌들과의 경쟁과는 차원이 달랐다.

박한새는 단 1의 카르마 소모도 없이 무공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지분율을 쉽게 올렸다.

막대한 카르마를 투자해서 아이템이나 스킬, 스탯을 높여준 것보다 무공 하나 가르치는 게 헌터의 전투력을 높이는 것에 더 크게 기여한 것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대회에서 활약할 자신은 있고?”

“강철의 군주께서 막대한 지원을 해주셨습니다.”

“…어쩐지 기세가 사뭇 매서워졌다고 생각했는데, 투자를 더 받았었군.”

“여러분도 저와 함께 대회에 출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사내의 제안에 계약자들은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의 고민은 크게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결정을 내릴 주체는 그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 배후에 있을 성좌들이 결정을 내릴 문제였다.

‘무공의 시대가 온 걸 성좌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지.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결국엔 도태될 거라는 사실도 말이야.’

방금까지만 해도 심각한 표정을 짓던 계약자들이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참가해보겠소.”

“…광대놀이를 해야겠군.”

“저 역시 참가하겠습니다.”

결국 모두가 참가 의사를 밝혔다.

성좌들 역시 이번 대회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로 작정한 것이다.

한편 여명회에서도 대책 회의가 매일같이 이어지고 있었다.

비무회는 대격변 이전의 올림픽만큼, 아니 그보다 파급력이 큰 전 세계인의 축제였다.

심지어 무공을 익힌 ‘일반인’에 S랭크 헌터들까지 참가 선언을 하면서 한껏 관심을 끌어모은 상태.

여명회로서도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공의 인기가 많아진다는 것은 여명회에 대적하는 IHA의 힘이 더 강해진다는 사실을 의미하였으니 말이다.

“박한새의 그림자가 세계를 뒤덮고 있군.”

“…그는 그 어떤 성좌도 이루지 못한 일을 해냈습니다. 이대로 두면 그는 그야말로 신과 같은 영향력을 갖게 될 겁니다.”

“힘이 약할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했어야 했는데….”

3사도, 4사도, 6사도가 각각 한마디씩 하였다.

러시아에서 5사도가 죽을 때까지만 해도 박한새를 무시하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박한새를 일찍 제거하지 못한 것을 그 누구보다 후회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여명회에서 박한새의 존재감은 커져 있는 상태였다.

다른 사도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1사도, 매디슨은 혀를 끌끌 찼다.

‘아마 대회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그의 존재감은 더 커지겠지.’

커지는 정도일까.

전 세계 모든 헌터의 스승이 될 가능성이 컸다.

무공의 힘을 깨달은 헌터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무공을 익히려 들 테니 말이다.

‘문제는 어찌 방해하냐는 것인데.’

대회가 성공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이렇게 3사도, 4사도, 6사도가 의미 없는 말만 내뱉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여명회가 가진 무력으로도 박한새의 무력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대회의 흥행을 망치는 방법은 의외로 쉽다.”

“쉽다고? 어떻게 망치자는 거지?”

“예선전을 치르지 못하게 막는다면 대회는 중단될 수밖에 없다.”

1사도, 매디슨의 말에 9사도가 반색한 얼굴로 말하였다.

“예선전을 망칠 방법을 찾아내신 겁니까?”

“어려울 건 없다. 무력으로 경기장을 직접 공격하면 될 일이야.”

“관중들과 선수들을 공격하자는 말이군요.”

“경기장에서 수백, 수천 명이 죽는다면 제아무리 박한새라도 대회를 이어나갈 수 없을 것이다.”

죄 없는 관중을 대량 학살하자는 그의 말을 듣고도 사도들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파롤의 권속인 그들에게 있어 신도가 아닌 이들을 죽이는 것에 어떤 죄의식도 느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가능하겠나? 상대는 IHA야.”

“…만약 박한새가 나선다면 괜히 피해만 보게 될 것인데.”

사도들이 지적한 것은 오직 하나.

바로 가능성이었다.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던 사도들이 박한새에게는 두려움을 느꼈는지, 매디슨의 작전에 이견을 내세웠다.

“그러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거다.”

세계 정복을 위해 대격변 초기부터 100년 대계를 세워두었던 여명회였다.

그런 여명회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건 대계를 어느 정도 포기해서라도 목표를 이루겠다는 말과 다를 게 없었다.

여명회의 자원을 총동원한다는 뜻이니 실로 의미가 남달랐다.

시간이 갈수록 비무회를 향한 관심도는 높아져만 갔다.

각국에서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진 헌터들이라면 웬만해서는 다 참가했을 정도.

SNS에서는 라이벌 관계였던 헌터들이 대립 구도를 형성하면서 대회의 관심을 더 끌어모으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이 같은 라이벌 관계는 나라를 가리지 않았다.

‘이번 대회의 주인공은 바로 나, 무카이 켄타로가 될 것이다!’

무카이 켄타로.

일본의 B랭크 헌터인 그는 대회를 손꼽아 기다렸다.

대회에서 한국인 경쟁자들을 쓰러뜨리고 일본의 영웅이 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마침내 예선전이 치러지는 날이 되었다.

“흐흐, 비각성자가 나온다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 내 상대가 비각성자일 줄이야. 운이 좋군.”

무카이 켄타로는 실실 웃었다.

첫 경기부터 운이 좋았다.

그의 첫 상대는 가녀린 체구의 여성이었다.

물론 체격만 보고 상대의 수준을 가늠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스킬의 위력은 체격을 가리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상대가 ‘비각성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과연 운이 좋은 것일지는 두고 보면 알겠죠.”

“호오. 과연 내 주먹을 맞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지 두고 보자고.”

안능희라고 했던가?

자신을 보고 떨지 않은 건 의외였다.

하지만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경기가 치러지면 바로 무릎을 꿇게 될 상대였으니까.

‘비각성자 따위가 무공을 배워봤자 얼마나 강해지겠어?’

박한새라는 예외의 존재가 있었지만, 그런 존재가 흔했다면 이미 세계 랭킹은 비각성자로 뒤덮였을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