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IHA 유럽 본부 소속의 요원들에게 붙잡힌 테러리스트들이 계속 테러를 이어나갈 거란 발언을 하자 세상은 떠들썩해졌다.
“포로들의 발언 이후, 대회의 여론이 악화하였어요.”
유지은의 보고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예상했던 결과였다.
이미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동원하여 경기장을 습격하였던 여명회였다.
그런 여명회가 계속해서 테러를 시도하겠다는데 여론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 베를린에서 아무런 피해가 없어서 다행이었지.’
만약 이성은과 IHA 요원들이 인명 피해를 막지 못했다면?
대회는 잠시 중단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완전히 취소해야 했을 것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대회를 계속 이어나갈 수는 없으니까.
“그나저나 포로들의 말이 사실일까요?”
“아마 대회를 망치려는 시도는 계속할 거 같습니다.”
나는 알았다.
나를 향한 여명회의 악의를.
그들은 나를 조금이라도 방해할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여명회는 왜 그렇게까지 대회를 망치려는 걸까요?”
어찌 보면 그냥 대회일 뿐이었다.
대회가 취소된다고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수는 없을 터.
단, 나를 견제한다는 측면에서는 분명히 의미가 있었다.
“IHA의 영향력이 더 강해지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 아니겠습니까.”
“하루빨리 박멸해야 할 조직이네요.”
안 그래도 여명회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맞기만 하는 건 내 성격과 맞지 않으니까.
‘아프리카를 다시 노려야겠어. 그리고 인도까지.’
원정대를 다시 꾸릴 때가 온 거 같았다.
지금 IHA의 힘이라면 11사도든, 12사도든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대회는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계속 이어갈 생각입니다.”
“여론이 어수선한데도요?”
나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명회의 의도에 놀아날 수는 없습니다.”
“하긴, 지금 대회를 취소하겠다는 건 테러리스트의 위협에 굴복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겠네요.”
딱히 명성이나 명분론에 집착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IHA라는 조직의 성격을 생각했을 때, 테러리스트들에게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봐야 좋을 게 없었다.
“그러면 미국 행정부의 결정이 중요하겠네요.”
“그래서 지금 백악관으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대통령을 설득하러 말입니다.”
내가 그리 말한 순간, 백악관이 눈에 보였다.
어느덧 내가 탄 차량이 백악관에 도착한 것.
정권이 바뀌었지만, 백악관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민주당이고 공화당이고 국가 이상의 영향력을 가진 IHA를 경계하는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나를 보는 백악관 관계자들의 눈도 그리 좋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잔뜩 날이 선 느낌이랄까.
“협회장님. 대회는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계속 진행할 생각입니다.”
“여명회에서 테러를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말입니까?”
백악관 비서실장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비서실장의 모습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누가 보면 제가 청문회라도 온 줄 알겠습니다.”
“엉뚱한 소리 하지 마시고, 제 물음에 답해주십시오.”
“한낱 빌런 조직의 허세일 뿐입니다. 여명회가 테러를 저지른다고 해도 저희는 충분히 막을 수 있습니다.”
“6성급 몬스터인 와이번을 수백 마리나 동원한 조직인데 어찌 그리 장담하십니까?”
“그 수백 마리 와이번이 모두 죽었지 않습니까. 여명회라고 무한대로 몬스터를 생산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때, 60대 중반의 사내가 무거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만약 테러로 인한 피해가 발생한다면… 협회장님은 책임을 지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마크 베기치.
해리스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새롭게 선출된 미국의 대통령이었다.
나는 그런 미국 대통령의 물음에 당당한 태도로 대답하였다.
“단 한 명의 사망자라도 발생한다면 이 자리에서 사임하겠습니다.”
대통령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통령뿐만이 아니었다.
대통령 양옆에 앉은 백악관 참모들 역시 내 말을 듣고는 눈을 부릅떴다.
‘협회장 자리가 걸려있건, 걸려있지 않건 간에 테러를 용납할 생각 따윈 없다.’
“허어. 역시 오만하기 그지없습니다.”
“대통령님을 대하는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협회장은 지금 두려운 것이 없는 겁니다.”
백악관 참모들은 박한새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두려워하였다.
박한새는 일개 개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협회장이 큰 실수를 하였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여명회의 힘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단 한 명의 사망자도 허락하지 않겠다니. 알아서 자멸해준 꼴이 아닙니까?”
“협회장이 다시 야인으로 돌아간다면 IHA도 이전만큼 경계하지 않아도 될 거 같습니다.”
박한새의 발언을 두고 백악관 참모들은 환호하였다.
굳이 그들이 견제하지 않아도 박한새가 알아서 IHA 협회장 자리에서 물러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만!”
시시덕거리며 박한새의 몰락을 언급하는 참모들을 보며 마크 베기치 대통령이 버럭 외쳤다.
그러자 백악관 참모들은 몸을 움찔하였다.
평소에는 온화하지만, 화날 때는 그 누구보다 무서운 것이 마크 베기치 대통령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부끄러운 줄 아시오! 협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나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 텐데, 그게 무슨 좋은 일이라고 그렇게 즐거워하시는 겁니까!”
그의 지적에 참모들은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참모들의 모습에 마크 베기치 대통령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는 미국의, 아니 세계의 히어로입니다. 그를 경계하는 것은 알겠으나, 최소한의 예우는 지키십시오.”
“조, 조심하겠습니다.”
사실 마크 베기치 대통령이라고 박한새를 경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IHA는 이미 초국가적인 규모로 성장한 상태.
헌터 전력을 따지면 미국을 압도하는 수준을 넘어 전 세계를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박한새 본인은 세계 최강자로 명성을 떨치고 있지 않은가.
미국 대통령으로서 박한새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마크 베기치 대통령은 합리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이었다.
‘박한새, 그는 히어로다. 그냥 히어로가 아니라, 세계를 구한 히어로야.’
미국과 세계를 구했다는 그의 생각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다.
미국 대통령이 된 그는 상원의원이었을 때는 접할 수 없었던 정보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IHA의 협회장, 박한새와 관련된 극비 정보들 역시 접하게 되었는데 그는 처음 박한새의 정보를 접했을 때 경악을 금치 못하였었다.
‘만약 그가 없었으면 이 세계는 이미 여명회라는 흑막 세력에 의해 멸망의 길을 걷고 있을지 모른다.’
놀랍게도 이는 그의 추측이 아니었다.
CIA, NSA, DHS 등.
거의 모든 정보 단체에서 공통적으로 내놓은 결론이었다.
그만큼 여명회는 막강한 힘을 가진 단체였다.
만약 박한새가 없었다면 인류는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한 채 멸망을 맞이했을 터.
그렇기에 마크 베기치는 박한새에게 우호적일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나만큼은 그를 우호적으로 대하여, 그가 미국을, 아니 인간을 혐오하지 않게 해야 한다.’
박한새가 세운 업적을 보면 그는 절대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신화나 전설 속에 나오는 위대한 영웅과도 같았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영웅이어도 사람은 사람이었다.
플라톤의 저서에 나오는 철인과 같은 사람이어도 감정은 존재하는 법.
그리고 만약 박한새의 감정이 인류를 향한 악의로 가득 찬다면 그건 인류 전체에게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인류를 멸망시킬 뻔했던 여명회보다 더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가 인류의 적이 된다는 의미였으니.
베를린에서의 테러가 실패로 끝이 나자, 매디슨은 바로 대책회의를 열었다.
늘 그렇듯, 회의는 매디슨의 주도하에 진행되었다.
“1사도.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의 결론이 뭐야?”
“다시 공격을 준비해야 한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9사도가 죽었어. 그런데 또 테러를 시도하겠다고?”
3사도가 탐탁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매디슨의 거듭된 실패를 보고 매디슨의 리더십에 의문을 느낀 상태였다.
특히 비무회라는 일개 대회에 집착하는 모습도 그리 좋게 보지는 않고 있었다.
“놈들의 힘을 봤을 텐데? 이미 강한 놈들이, 더 강해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다.”
“글쎄. 굳이 시간에 쫓길 필요가 있나? 파롤 신께서 이 땅에 강림하실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말이야.”
9성급 던전이 열리는 날.
그들의 위대한 신, 파롤도 이 땅에 강림할 수 있게 되리라.
물론 그들이라고 미래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어떤 형태로 파롤이 강림하게 될지는 아는 바가 없었다.
“파롤 신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놈을 죽이라 하셨다.”
“대회를 망치는 것과 놈을 죽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 아닌가?”
“당장 놈을 죽일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대회라도 망치겠다는 거다!”
매디슨이라고 박한새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9성급 던전이 열리지 않는 한, 박한새를 무력으로 이길 수 있는 자는 여명회에서도 단 두 사람뿐이었으니까.
‘문제는 우리가 강해지는 동안, 놈도 더 강해질 거라는 사실이야.’
그의 제자인 이성은만 봐도 심상치 않은 무력을 보여줬었다.
대마법사인 그조차 위압감을 느낄 정도.
만약 박한새의 다른 제자들까지 그런 실력을 가지게 된다면?
설령 9성급 던전이 열린다고 해도 여명회가 IHA를 압도할 거란 보장이 없었다.
“왜 죽일 수 없지? 매디슨, 너의 마력을 전부 쏟는다면 인간 하나쯤은 못 잡을 것도 없을 텐데?”
“놈의 실력을 직접 본다면 그런 말은 하지 못할 거다.”
박한새의 제자에게도 그는 죽을 뻔하였었다.
그런데 박한새 본인과 싸우게 된다면 어떨까.
대마법사인 그가 마력 전부를 사용해도 승산이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심지어 박한새가 혼자서 그를 상대하란 법도 없었기에 더더욱 까다로웠다.
“지금 가진 마력으로 부족하다면, 마력을 폭주시키면 되는 거 아닌가?”
마법사는 자신의 서클을 파괴하면 일시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이를 마력 폭주라고 하는데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서클이 많을수록 더 많은 힘을 얻게 된다.
매디슨 같은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실력자가 마력 폭주를 사용할 경우, 그야말로 신에 버금가는 무력을 가지게 되리라.
“…나보고 죽으라고 말하는 건가?”
“매디슨, 설마 목숨이 아까운 건 아니겠지?”
그 같은 도발에 매디슨이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이딴 거짓된 세계에서의 목숨을 내가 아까워할 거 같으냐!”
“그럼 마력 폭주를 일으켜서라도 놈을 잡으면 그만 아닌가?”
매디슨은 대답하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에게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2사도, 5사도, 7사도, 9사도, 10사도의 빈자리가 크게 보였다.
아군이 없는 걸 뻔히 아는데, 구차하게 굴고 싶지는 않았다.
매디슨은 죽음을 각오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하나의 조건을 걸었다.
“대신, 네놈의 박쥐 놈들은 내가 전부 가져가기로 하지.”
“혼자 뒤질 것이지, 내 수하들까지 같이 데리고 가려고? …뭐, 좋아. 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3사도의 심복은 몬스터였다.
그것도 인간형 몬스터인 뱀파이어.
‘인간과 구별이 안 되는 뱀파이어 놈들을 데리고 간다면 더 많은 피해를 줄 수 있겠지. 물론 박한새, 그놈도 죽일 수 있을 것이고.’
매디슨도 결국 죽겠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지구에서의 목숨은 그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