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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262화 (262/275)

#262화

놀런 갤러거.

그는 본선 128강에 진출한 몇 안 되는 순수 헌터였다.

여기서 순수 헌터는 무공이나 마법을 익히지 않은 헌터를 의미하였다.

물론 요즘은 ‘배후령’이란 것을 가진 헌터도 순수 헌터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성좌의 후원을 받고 더 강해졌는데, 똑같은 헌터 취급을 할 순 없었으니까.

뭐가 됐건 놀런 갤러거는 순수 헌터란 이유로 꽤 주목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놀런 갤러거보다 주목을 받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게 바로 그의 대결 상대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의 대결 상대는 헌터가 아니었다.

본선 진출자 중 유일한 비각성자가 그의 대결 상대였던 것이다.

‘비각성자 따위가 주제도 모르고 이런 큰 대회에 참가하다니.’

놀런 갤러거는 이를 갈았다.

상대가 비각성자라면 오히려 좋아하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초조함을 느꼈다.

비각성자에게 패배할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

놀런 갤러거는 그걸 두려워하고 있었다.

“봐주는 일은 없을 거다.”

“처음부터 그런 건 기대하지도 않았어요.”

안능희의 태연한 대답을 듣고 놀런 갤러거는 더욱더 기분이 나빠졌다.

두 사람 중 긴장해야 하는 사람은 안능희였다.

그런데 우습게도 S랭크 헌터인 놀런 갤러거가 더 긴장하는 분위기였다.

‘빌어먹을. 무공이란 게 생각보다 변수란 말이지.’

무공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괜히 본선 진출자 중 과반수가 무공을 익힌 헌터인 게 아니었다.

S랭크 헌터조차 초일류급 무인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아니, 초일류는커녕 일류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일류 무인은 헌터 랭크도 높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즉, 뛰어난 스킬을 가지고 있으니 S랭크 헌터도 일류 무인을 상대하기 어려워하였던 것.

‘하지만 저년은 스킬이 없다.’

놀런 갤러거는 애써 불안감을 털어냈다.

무공의 위력이 상당하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스킬을 가진 헌터가 무공을 배웠을 때 위력적이라는 의미였다.

스킬이 없는 비각성자가 무공 하나 배웠다고 뭐 그리 위협이 되겠는가?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놀런 갤러거는 기겁하고 말았다.

방심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치 S랭크 가속 능력자를 보듯, 바로 그의 코앞까지 도달한 안능희를 보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르르!

다급히 화염 스킬을 사용하여 적의 돌진을 막으려 하였으나,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안능희가 검을 휘두르자 화염이 반으로 갈라졌던 것이다.

반으로 갈라진 그 사이로 다시 돌진하는 안능희의 모습에 놀런 갤러거는 이를 악물었다.

“저 여자 뭐야! S랭크가 밀린다고?”

“이거 설마 반전이 일어나는 건가?”

관중들의 반응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놀람, 당혹, 흥분.

놀런 갤러거는 그런 관중들의 반응을 느끼며 더욱더 초조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그 역시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밖에.

화염 스킬을 사용하여 간신히 거리를 벌린 그는 또 다른 스킬을 준비하였다.

익스플로전이라는 스킬이었다.

그를 S랭크로 만들어준 스킬답게 엄청난 위력을 보여주었다.

여자 관중들의 비명을 들은 놀런 갤러거는 직감하였다.

자신이 승리하였다고.

마침 그의 눈에 회복 스킬을 가진 IHA 요원들이 다급히 움직이는 모습도 보였다.

그들도 연기로 가려진 안능희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죽었어도 어쩔 수 없다.’

지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하필 그 죽은 자가 비각성자라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놀런 갤러거가 승리를 확신할 때, 연기 속에 가려져 있던 안능희는 반격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위험했어.’

상대의 마력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어떤 스킬이 올 거라고는 예상하였다.

그리고 이미 상대의 정보를 철저하게 파악한 상태였기에 그 스킬이 익스플로전이란 것도 눈치챘던 그녀였다.

하지만 적의 스킬을 안다고 무조건 피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익스플로전처럼 즉발형 스킬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 역시 자신이 엄청난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꼈었다.

하지만 그녀에겐 비장의 수가 있었다.

원래라면 일류 수준으로 알려진 그녀는 펼치기 어려운 기술인, 검막.

그녀는 바로 그 검막을 사용하여 놀런 갤러거의 공격을 완벽히 막아냈다.

“사, 살았는데?”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연기가 걷히고 너무도 멀쩡히 등장한 그녀의 모습에 관중들은 놀람을 금치 못하였다.

물론 가장 놀란 것은 그녀의 대결 상대였다.

“이, 이럴 수가.”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패닉에 빠진 듯,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는 놀런 갤러거.

그녀는 그런 놀런 갤러거를 향해 보법을 펼쳤다.

뒤늦게 반응하려 하였지만 이미 늦었다.

안능희는 안개 안에 있었을 때부터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검이 목을 겨누자 놀런 갤러거는 패배를 인정하였다.

유일한 비각성자가 64강에 진출한 광경을 지켜본 관중들은 미친 듯이 환호하였다.

그런 관중들의 환호에 안능희는 주먹을 쥐었다.

안능희는 고개를 돌려 박한새가 자리하고 있을 VIP석을 보았다.

‘또 이겼어요. 저.’

‘나를 보는 것인가?’

안능희와 눈이 마주친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기분만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하였기에 열심히 박수를 쳐줬다.

그러자 안능희가 내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내 박수에 화답하는 분위기였다.

“대단하네요. 검막까지 저렇게 자유자재로 사용할 실력일 줄은 몰랐어요.”

유지은이 옆에서 감탄하였다.

절정 고수인 그녀가 보기에도 놀라울 것이다.

사실 검막보다 대단한 것은 내공 관리였다.

안능희는 비각성자였기에 내공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런데 그녀가 경기를 펼치는 모습을 보면 내공이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내공 관리를 잘했다는 의미였다.

“저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엄청난 재능이네요. 시작 지점이 다른데도 벌써 저 정도 실력이라니. 헌터였다면 이미 절정이 되고도 남았을 거 같은데요?”

나는 재능이란 말로 그녀의 노력을 폄하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직접 가르칠 때도 안능희는 엄청난 노력가의 모습을 보여줬었다.

그 이후로 실력이 크게 상승한 걸 보면 혼자서도 계속 열심히 노력했을 터.

‘이왕이면 32강까지 가줬으면 좋겠군.’

지금도 충분히 기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안능희가 더 큰 기적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녀가 비각성자들의 희망이야.’

내가 비무회를 개최한 이유는 단순히 헌터들에게 무공을 알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미 무공의 홍보는 충분히 된 상태.

나는 그 이상을 노렸다.

그중 하나가 비각성자도 강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 안능희의 활약으로 비각성자가 헌터 출신의 무인보다 강해질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만약 여기서 32강까지 간다면 이제는 그 누구도 비각성자를 무시할 수 없게 되리라.

“본선 진짜 장난 아니다.”

“그러니까. 숨은 고수들이 뭐 저리 많아?”

“다 나보다 늦게 배웠을 텐데….”

“원래 무공이란 게 재능빨이잖아.”

“헌터도 재능빨, 무공도 재능빨, 재능충들 진짜 다 뒤졌으면.”

요즘 무공 학교 학생들의 일과가 하나 추가되었다.

비무회를 관람한 후,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것.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그와 같은 일을 하였다.

그리고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선수는 다름 아닌, 안능희였다.

“저 누나 진짜 대단하긴 해. 어떻게 비각성자가 64강까지 갔지?”

“비각성자라서 대단한 것보다, 일류 수준으로 64강 간 게 나는 더 대단하게 느껴져.”

“사실 내공 때문에 초일류나 절정이 되지 못했을 뿐이지, 내공만 받쳐 줬다면 초일류 이상은 그냥 갔을걸?”

“레알?”

“그렇다니까. 비각성자인데도 저 정도 수준인데, 만약 헌터였다면 어느 정도 수준이었을지 생각만 해도 개쩔지 않냐?”

사실 안능희는 무공 학교에서 언급이 안 될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일단 미녀라는 이유로 인기가 많았다.

거기에 그녀는 본선 진출자 중 유일한 비각성자였고 과거에 박한새와 군대 인연까지 있었다.

비각성자 출신 무인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헌터 출신들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었다.

물론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안능희를 질투하는 학생도 많았다.

의외로 비각성자들이 더 질투하였다.

워낙 혼자만 독보적인 실력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 정도의 재능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게. 나는 사실 헌터들보다 안능희의 무공 재능이 훨씬 더 부럽다니까.”

“우리 아빠는 맨날 안능희 얘기만 해. 안능희는 일류 무인인데 왜 너는 삼류 무인이냐면서.”

비각성자 출신의 무인은 항상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안능희가 활약하면 활약할수록 더더욱 비교되었다.

그렇다 보니 일부 비각성자 무인들은 안능희를 부러워하면서 한편으로는 시기하였다.

“나는 평생 수련해봤자 일류가 한계일 거 같은데, 앞으로 뭐 먹고 사냐.”

“경호원이라도 하든가.”

“헌터도 못 이기는 실력으로 경호원을 하라고?”

“아파트 단지의 경비는 설 수 있겠네.”

“무공까지 익혀서 그러고 싶냐.”

물론 이 같은 질투와 시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엮여있었다.

이른바 밥벌이 문제.

즉, 자신들은 밥벌이 문제도 해결하기 어려운데 안능희는 헌터 이상의 실력을 보여줬으니 질투하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각성자 출신 무인들이 안능희를 질투하고 시기한 순간은 잠시뿐이었다.

“박상현 님. 세현 길드에서 나왔습니다.”

“세현 길드요? 무슨 일이시죠?”

“혹시 저희 길드에 오셔서 강의 좀 해주실 수 있나요?”

“강의라면 설마 무공 강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저희 길드원들을 위해 귀한 시간을 내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제 실력은 삼류에 불과한데요?”

“삼류여도 벌써 무공을 익힌 지 2년이나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무공 경력이 그렇게 길다면 저희에게는 전문가입니다.”

안능희가 활약하기 전까지만 해도 비각성자 출신 무인들의 입지는 무척이나 약했었다.

이론으로는 웬만한 고수보다 해박한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들은 단지 비각성자라는 이유로 무시당하였다.

하지만 안능희가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약하기 시작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지금껏 주목받지 못했던 비각성자 출신의 무인들이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나 이번에 연희 대학교에서 강의해보려고.”

“얼마 들어왔는데?”

“한 번에 300.”

“와, 연희는 세게 불렀네. 나는 250 받고 하기로 했었는데.”

“나는 국내 말고 외국에 가보려고.”

“외국 어디?”

“어디를 가든 한국보단 많이 받을걸? 한국은 워낙 무공 전문가가 많으니 말이야.”

밥벌이를 걱정했던 비각성자 출신 무인들은 강사 일만 하고도 천문학적인 수익을 벌어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단순히 강의 제안만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그들의 이론적인 지식만 높게 평가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무력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비각성자 출신 무인들이 성공 신화를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본 비각성자들은 더더욱 무공에 관심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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