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아쉽네요. 상대가 너무 강했어요.”
아쉽게도 안능희가 32강에 진출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의 128강 대결 상대였던 놀런 갤러거도 기적적으로 본선에 진출한 경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본선 진출자 128명 중, 무려 114명이 무공 사용자이기 때문이었다.
14명의 일반 헌터는 전부 128강에서 탈락하였다.
그리고 안능희의 경우, 64강에서 초일류 고수를 만나 패배하게 되었다.
‘같은 경지여도 내공 차이가 너무 크지.’
안능희는 일류였지만, 사실상 초일류라고 봐도 무방한 실력이었다.
즉, 상대와 경지 자체는 동일했던 것.
하지만 헌터 출신의 초일류 고수와 비각성자 출신의 초일류 고수 사이에는 넘볼 수 없는 격차가 있었다.
스킬의 유무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내공.
비각성자 출신은 기술 하나하나도 아껴서 쓴다면 헌터 출신은 그야말로 내공을 물처럼 썼다.
당연히 압도적인 내공을 가진 헌터 출신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내공이 문제야.’
나는 새삼스럽게 영약의 필요성을 느꼈다.
영약이 많았다면?
안능희는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갔을 수도 있었다.
그녀의 노력과 재능은 진짜니까.
‘다음에는 비각성자만 나갈 수 있는 대회도 열어야겠어. 상품으로 각종 영약을 내걸고 말이야.’
영약 생산량은 점점 늘고 있었다.
물론 영약을 필요로 하는 무인들 또한 늘고 있다는 게 문제이긴 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영약의 생산량이 많이 늘어났으니 잘 분배만 한다면 비각성자 출신의 절정 고수를 볼 날도 멀지 않을 거 같았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나는 우승자와 악수하였다.
무공 학교 조교 출신이자, 오성 길드 출신의 진세희.
그녀가 제1회 비무회의 우승자였다.
“제가 우승한 건 모두 스승님 덕분입니다!”
진세희가 존경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다른 선수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다음에는 더 노력해서 반드시 우승하고 말겠습니다!”
“그래 주십시오.”
준우승한 선수도 진세희와 크게 다를 것 없는 눈빛으로 내게 존경을 표하였다.
물론 그 역시 내 제자이기에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개최한 대회인데 정작 주인공은 내 제자들이군.’
우승부터 32강 진출자까지.
거의 다 나에게서 배움을 받은 이들뿐이었다.
이 때문에 괜히 논란이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이었다.
어쨌든 비무회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결승전의 시청자는 2억을 넘어 거의 3억 명에 가까웠다고 하는군요.”
“시청자 수가 그 정도라면 전 세계인들이 봤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아닙니까?”
첫 번째로 개최된 비무회는 여러 전설적인 기록을 세웠다.
가장 많은 S랭크 헌터가 참가한 대회라는 기록부터, 가장 많은 시청자를 유치한 대회 등.
아마 이 기록을 깰 수 있는 대회는 제2의 비무회 말고는 없지 않을까 싶다.
“예, 중동 지역에서도 무공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벌써 각 학교의 교수들에게 중동 왕가로부터 영입 제안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무공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중동 왕가들이라고 더는 흐름을 부정할 수 없으리라.
“머지않아 전 세계 모든 이가 무공을 익히는 시대가 도래할 거 같습니다.”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바였다.
전 세계 모든 이가 무공을 익히는 것.
인류를 던전과 몬스터, 악신의 위협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나의 진정한 목표였다.
<모두가 무공을 익히는 시대!>
<무공을 배우고 싶으면 제일학원으로!>
<무공 교사 상시 모집 중!>
전 세계는 그야말로 무공 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부를 가진 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무인들을 영입하여 자신의 신변을 지켰다.
헌터의 경우는 공적 점수를 채우기 위해 공익 활동에 집중하였다.
일정한 공적 점수를 채워야지만 무공을 배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일반인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공 학교 입학을 노렸다.
<무공 학교 가서 6개월 배울 거, 이 영상 하나로 끝내드립니다.>
<절정 고수는 타고난 사람만 될 수 있다?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초일류가 알려주는 보법! 기초부터 탄탄하게!>
일반인들의 무공을 향한 관심이 늘자, 무인 출신의 너튜버가 대거 생겼다.
비각성자 중에서 어디에 소속되기 싫어하는 이들이 주로 너튜브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에 따라 일반인들은 쉽게 무공을 접하게 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졌다.
이로써 일반인들은 무공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기초 호흡법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너튜브로 무공을 배운다고 사람들이 만족할 리는 없었다.
오히려 무공 학교에 들어가야겠다는 의지만 더 강해질 뿐이었다.
그리고 이때 마침 전 세계의 무공 학교에서 기쁜 소식을 발표하였다.
내년에는 더 많은 비각성자를 뽑겠다는 그런 소식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더 열광한 소식은 따로 있었다.
바로 봉사 점수 제도를 신설한다는 소식이었다.
즉, 그 사람의 재능이나 재력, 사회적 신분보다는 봉사 점수에 기초하여 학생을 뽑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에 따라 일반인들은 거리에서 청소하거나 보육원 시설에서 봉사하는 등, 봉사 점수를 따기 위해 사력을 다하였다.
한편 무공에 대한 평가가 더욱더 좋아지면서 헌터들은 그 어느 때보다 열성적으로 공적 점수를 노렸다.
채산성 없는 던전도 공적 점수를 채우기 위해 노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공적 점수를 채우기 위한 활동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빌런 사냥’이었다.
빌런 사냥은 일단 엄청난 현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IHA가 빌런들을 대대적으로 잡아들일 때, 공격적인 현상금을 내걸었던 것이다.
그런데 빌런을 잡으면 단순히 고액의 현상금만 받는 것이 아니었다.
공적 점수도 덤으로 받을 수 있었기에 많은 헌터들이 빌런 사냥을 겸직 삼아 하였다.
그 덕에 빌런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과거 남미의 모든 권력을 지배하던 남미 출신 빌런들은 이미 모습을 감춘 지 오래였다.
이제는 여명회와 깊은 관계를 가진 빌런 단체가 주 타깃이 되고 있었다.
<마법사의 가면을 쓴 빌런?>
<최초의 마법사, 앤디 올드먼. 사실은 수십 명의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었다!>
<연이어 전해지는 마법 학교에 관한 논란들. 과연 마법 학교는 악의 소굴이 맞을까?>
그중 가장 핵심이 앤디 올드먼을 위시한 영국과 미국의 마법 학교였다.
IHA는 아직 런던 마법 학교와 워싱턴 마법 학교를 공식적으로 빌런 단체라고 선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각종 언론에서 여러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최초의 마법사이자 두 학교의 총장인 앤디 올드먼의 경우는 도주자 신세가 되었을 정도.
앤디 올드먼 외에도 그의 제자로 알려진 교수들의 범죄 행각도 발견되었다.
이에 따라 공적 점수를 노리는 헌터들은 호시탐탐 마법 학교의 인물들을 노리고 있었다.
한때는 무공 학교와 대립각을 세우며 라이벌 행세를 하였던 마법 학교는 그렇게 철저히 몰락하였다.
마법사들은 IHA가 주최한 비무회를 얌전히 지켜봤다.
방해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현실이 방해하였다.
그래서 애써 무시한 채 마법 연구와 교수 활동 등에 집중하였다.
하지만 비무회가 끝나자 여론이 비정상적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유럽 언론들이 독일에서 일어날 뻔했던 테러 사건을 재조명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테러범들의 정체는 여명회고 이 여명회와 연관된 빌런 단체가 적지 않을 거라는 보도가 흘러나왔던 것이다.
IHA는 언론에서 이런 보도가 흘러나오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몇몇 단체를 수사하기 시작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법사들은 이 일이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IHA의 주도하에 진행되는 수사가 점점 그들의 스승인 앤디 올드먼으로 향하였다.
어어 하는 사이 순식간에 앤디 올드먼은 IHA에 의해 공식 빌런으로 지목되었다.
이른바 ‘재해급’ 빌런으로 지목된 것이다.
그리고 앤디 올드먼은 IHA에서 이런 발표가 있자마자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자 다른 교수들이 타깃이 되기 시작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폭거란 말인가!”
“IHA 협회장의 독재가 결국 이 사달을 일으켰습니다!”
“동지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위대한 진리의 수호자들이, 전 세계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저항해야 합니다. 단결하고 또 단결해서 스승님의 모함을 풀고 우리가 무죄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스승은 도주자 신세가 되었다.
동료들은 각종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었다.
불법을 저지르지 않은 마법사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그런 마법사들에게 논란의 중심이 된 동료 마법사들이 찾아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한다고.
IHA의 폭거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이다.
“이렇게 된 이상, IHA 협회장을 노립시다! 그자만 사라진다면 마법사에 대한 탄압이 중단될 겁니다!”
“협회장만 사라진다고 모든 게 해결되겠습니까? IHA 간부들도 모조리 타깃으로 삼아야 합니다!”
논란의 중심이 된 마법사들은 매파였다.
그들은 시종일관 강경하게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박한새를 죽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할 정도였다.
반면 비둘기파도 있었다.
“협회장을 암살한다니! 그자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도 하는 소립니까?”
“맞습니다. 협회장을 노리는 게 가능했다면 총장님이 진즉 손을 썼을 겁니다.”
비둘기파에 속한 마법사들은 앤디 올드먼을 스승이라 부르는 대신, 총장이라 불렀다.
실제로 그들은 앤디 올드먼을 스승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워낙 함께한 시간이 짧아서 정신적인 유대감이 그리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있습니까?”
“여론을 움직여서 우리의 무죄를 증명해야지요.”
“이미 모든 나라의 여론이 우리에게 등을 돌린 상태입니다.”
“각국 정부를 끌어들인다면….”
“그게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까? 그 어떤 정부도 IHA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피를 보는 선택을 한다면 상황은 더 악화할 겁니다.”
“스승님이 도주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최악의 상황이 어디 있습니까!”
“총장 한 사람보다 마법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합니다.”
두 세력의 의견은 통합되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추구하는 바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었다.
매파에 해당하는 이들은 앤디 올드먼의 직속 제자였다.
그들은 앤디 올드먼의 이상에 동조하였다.
반면 비둘기파에 속하는 이들은 전형적인 마법사였다.
마법을 연구하고 서클을 늘리는 것.
앤디 올드먼이 죽고 살고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제라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저히 말이 안 통하는 작자들입니다.”
“IHA와의 전쟁이라니. 그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마법사들이라고 전부 여명회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앤디 올드먼은 마법사 세력을 키우기 위해 재능이 있는 자라면 모두 받았다.
세뇌는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할 계획으로 말이다.
하지만 앤디 올드먼의 예상과 달리 IHA의 공격은 일찍 시작되었다.
그가 받아들인 재능 있는 마법사들은 그의 몰락이 확실시되자 다른 생각을 품기 시작하였다.
“애초에 총장께서, 여명회의 1사도란 자와 연관이 있는 것은 확실하지 않습니까?”
“심지어 그 1사도란 자가 총장의 스승이란 말도 있습니다.”
“그자도 마법사였단 말씀입니까?”
“어디까지나 들은 이야기지만, 경지가 무려 대마법사라고 합니다.”
“믿어지지 않는 정보군요.”
“하지만 뭐가 됐든, 지금 마법 학교를 둘러싼 음모론이 마냥 거짓은 아닌 게 확실합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저희라도 총장과 선을 그어서 마법사의 명예를 지켜야 합니다.”
배신이라면 배신일 수 있었다.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앤디 올드먼을 버리는 선택이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