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나는 비무회가 한창 진행 중일 때, IHA 이사들과 함께 여명회를 향한 대대적인 공격을 준비하였다.
IHA의 정보력은 이미 특이점이 올 정도로 엄청나게 발전한 상태였다.
여기에 나의 미래 정보까지 더해지자, 여명회가 양지에 세운 모든 세력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명회를 완전히 몰락시키는 것은 불가능해도 세력을 10분의 1로 줄이는 것은 가능해졌다는 의미였다.
“협회장님의 말씀처럼 마법 학교 소속의 교수들 절반 가까이가 여명회와 깊게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각각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도 밝혀냈습니까?”
“예. 괜히 빌런이 아닌지, 마법사가 되기 이전부터 범죄를 일으킨 자들이 많았습니다.”
가장 가시적인 성과는 마법사들의 범죄 이력을 파악했다는 점이었다.
안 그래도 눈엣가시 같았던 마법 학교였다.
그런 마법 학교를 견제할 확실한 명분이 생겼으니 실로 가시적인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절반 가까이가 여명회와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말은 반대로 말하면 절반 이상은 여명회와 관련이 없다는 뜻이겠군요.”
“맞습니다. 마법사라고 전부 여명회 소속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거 같습니다.”
나는 이 같은 말을 들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란 다름 아닌, ‘회유’였다.
“그들을 IHA에 합류하게 만들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예? 마법사를 IHA에 말입니까?”
“마법사라고 IHA에 들어오면 안 되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이사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껏 마법사를 적대하였던 내가 이런 말을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협회장께서 말씀하시길, 마법은 유일하게 무공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정확하게는 마법이 우리를 위협하게 될 거라는 식으로 말했었다.
미래를 본 나는 마법의 진면목을 알고 있었으니까.
“인제 와서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무공의 입지는 이미 독보적이니.”
“하긴,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만약 내가 제때 견제하지 않았다면 마법 세력은 무섭게 성장했겠지.
어쩌면 내가 이룩한 무인 세력에 비견될 정도로 성장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IF일 뿐이었다.
현재 두 세력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애초에 재능 있는 헌터들은 거의 다 무공을 익히기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이들이 이미 익힌 무공을 버리고 마법을 선택할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사실상 무공과 마법의 전쟁은 이미 끝난 셈이다.
“무엇보다 마법사들의 지도자가 인류의 편이라면 마법이 무공의 입지를 위협한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습니다.”
내가 마법을 견제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마법 세력을 이끄는 자가 여명회 소속이기 때문이었다.
즉, 앤디 올드먼이 마법 세력의 수장으로 있는 한 나는 마법을 견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앤디 올드먼이 권세를 잃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굳이 마법 세력을 적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만약 마법까지 인류가 품는다면 인류의 힘은 더욱 강해지게 될 거야.’
무공 하나만으로도 웬만한 위기는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마법까지 추가가 된다면?
그때부터 인류는 위기를 극복하는 수준이 아니라, 더 나은 문명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무공이 무언가를 파괴하는 것에 어울리는 힘이라면, 마법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에 어울리는 힘이지.’
미래를 경험한 나는 마법이 만들어낸 문물이 어느 수준인지를 알았다.
만약 여명회에서 마법이란 힘을 인류를 위해 사용했다면 인류의 문명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으리라.
회귀 전, 여명회가 전 세계의 경제를 장악하기 위해 만들어낸 각종 마도구만 해도 인류의 생활에 상당한 변화를 주었었으니 말이다.
마법사를 회유하려는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워싱턴 마법 학교의 교수로 재직 중인 제라트라고 합니다.”
“IHA에서 혹시 오해하고 있을까 걱정이 되어 오해를 풀고자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마법 학교의 교수가 찾아왔다.
지금껏 앤디 올드먼 말고 나에게 따로 접촉한 마법사가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떤 오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희 마법사들이 여명회와 관련되어 있다는 오해 말입니다.”
제라트라는 마법사는 간절한 목소리로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였다.
마법사가 된 과정과 마법사가 된 이후 자신의 행적을 설명한 것이다.
나는 그의 설명을 다 듣고 나서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제라트 교수님은 여명회와 연관된 바가 없는 듯하군요.”
“미, 믿어주시는 겁니까?”
“애초에 저는 제라트 교수님을 빌런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듣기로 협회장님은 마법사를 적대한다고 하였는데….”
“그거야말로 오해입니다.”
“제가 적대했던 것은 앤디 올드먼입니다. 여명회의 사람인 그가 마법사들 위에 군림하고 있었기에 마법 학교를 견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말에 그가 반색하였다.
그는 단순히 마법사라는 이유로 핍박당할 거라고 걱정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만약 제가 마법사를 싫어한다면 IHA 이사로 마법사를 영입하려는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을 겁니다.”
제라트가 눈을 크게 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IHA는 협회장인 나부터 무인인 기관이었다.
핵심 간부들 역시 대부분이 무인일 정도로 무인 친화적이었다.
앤디 올드먼이 괜히 마법사도 받아달라고 생떼를 부린 게 아니었다.
그런 IHA에 마법사를 이사로 영입한다고 하니 제라트로선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혹시 저도 IHA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제라트.
표정만 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IHA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제라트 교수님은 마법 학교의 교수이시지 않습니까?”
“제가 교수로 활동한 것은 어디까지나 앤디 올드먼이 후학을 양성하라고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교수라는 직책에 미련이 없다는 말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예, 전혀 미련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후학을 양성하는 일보다 마도구를 제작하는 것에 더 관심이 큽니다.”
“호오. 그렇습니까?”
사실 내가 제라트의 접견 요청을 받아들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제라트는 미래에 아주 유명한 마도구 제작자였다.
걷는 속도를 500% 향상하는 신발부터 각종 건설 현장에 쓰일 다목적 골렘까지.
그는 종목을 가리지 않고 온갖 마도구를 제작하였다.
그 마도구는 여명회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말이다.
‘지금의 여명회는 이런 제라트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지.’
마법을 배운 지 겨우 몇 년밖에 안 됐으니 앤디 올드먼으로서도 모를 만했다.
반면 나는 그의 잠재력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영입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좋습니다. 제라트 교수님의 뜻이 그렇다면 IHA로의 영입을 긍정적으로 고려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가 IHA로 오는 것은 나에게 엄청난 이익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제라트는 오히려 내게 감사 인사를 표하였다.
그만큼 IHA 이사직의 사회적 위치는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본인의 재능을 알면 독립하려 할 수도 있으니 최대한 장기로 계약을 맺어야겠어.’
제라트가 IHA 안에 있어야 그가 제작할 각종 마도구들이 인류를 위해 쓰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무리해서라도 그를 장기 계약으로 묶어두기로 마음먹었다.
미국에서 도망친 앤디 올드먼이 향할 곳은 뻔했다.
바로 그의 스승이 있는 영국이었다.
“제자들이 다른 뜻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앤디 올드먼은 비통한 목소리로 자신의 스승인 매디슨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매디슨은 쓰게 웃었다.
“그렇겠지. 너를 곧 가라앉을 배로 생각할 테니까.”
“저는 저 배신자들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습니다.”
“가만히 있어야 한다.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어.”
매디슨이라고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그가 십수 년에 걸쳐 이룩한 제국이 무너지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하나의 지역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전 세계의 지부가 동시에 무너지고 있었다.
사실상 양지의 세력은 전부 잃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하지만 IHA는 너무 강하다.’
이미 몇 번의 실패를 겪은 그다.
그리고 그 실패의 대가는 실로 참혹하였다.
죽은 12사도의 숫자만 생각해도 그랬다.
자신들을 반신이라 부르던 12사도도 이제는 절반도 채 남지 않은 상태.
대의를 위해서라도 지금은 힘을 비축할 때였다.
“기다린다고 상황이 더 좋게 바뀔 거 같습니까?”
“그러면 또 희생을 각오하고 IHA를 공격하자는 말이냐?”
“지금껏 희생이 컸던 것은 작전이 너무 무모하고 현실성이 없어서 그랬던 것입니다.”
“내가 무능하여 희생이 컸다는 뜻이로군.”
“예, 스승님은 너무 무능합니다.”
매디슨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간혹 다른 사도들이 그를 무능하다고 비난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설마 자신의 제자에게까지 이런 소리를 들을 줄이야.
“그렇기에 스승님의 역할을 제가 대신하고자 합니다.”
앤디 올드먼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의미심장하게 말하였다.
그러자 매디슨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갑자기 그의 입에서 선혈이 흘러내렸다.
“이, 이것은?”
“히드라의 독입니다.”
“…히드라의 독을 네가 어떻게?”
“스승님이 무능하다고 생각하는 건 저뿐만이 아니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매디슨은 눈을 부릅떴다.
다른 사도들도 이 일에 관여했다는 의미로 들렸다.
‘설마 11사도인가? 아니면 12사도?’
여명회에서 가장 강한 무력을 가진 두 사람.
매디슨을 죽일 만한 자는 두 사람 외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마침 앤디 올드먼이 자신의 다음 행적지를 밝혔다.
“저는 인도로 갈 겁니다.”
“12사도만으로 박한새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앤디 올드먼은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파롤의 품에서 기다리시지요. 제가 만들 새로운 세계를.”
히드라의 독에 당한 매디슨.
하지만 앤디 올드먼은 자신이 스승을 죽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구에서의 죽음은 그에게 있어 잠깐의 휴식에 불과했던 것이다.
매디슨 역시도 이와 다르지 않았기에 저항하지 않고 본인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마법사들에겐 두 가지 길이 있었다.
빌런으로 선포되어 구속되거나, IHA에 항복하여 대세에 따르거나.
그리고 두 가지 길을 두고 내린 선택의 결과는 곧 나왔다.
제라트를 위시한 이른바 ‘비둘기파’의 마법사들은 IHA에 합류하거나 마법 학교의 교수로 계속 재직하였다.
반면 ‘매파’에 해당하는 친여명회 마법사들은 모조리 빌런으로 선포되었다.
물론 빌런으로 선포된 마법사들은 IHA 요원이나 공적 점수를 노린 헌터들에 의해 체포되었고 말이다.
“앤디 올드먼의 위치는 아직 파악이 안 됐습니까?”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한 명.
앤디 올드먼만큼은 잡지 못하고 있었다.
“영국으로 갔다가 다시 다른 나라로 이동하였는데, 위치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앤디 올드먼만큼은 내 손으로 잡을 생각이었다.
이왕이면 그 뒤에 있는 1사도까지도.
하지만 어디로 몸을 감춘 것인지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1사도라 불리는 매디슨의 위치는 파악하였습니다.”
“그 위치가 어디입니까?”
“영국 런던입니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는 겁니까?”
“그자가 죽었답니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명회의 리더나 다를 바 없는 1사도가 죽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