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악마의 숲.
이름만 들으면 기괴한 형상을 띠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몬스터 부대를 돌파하고 마주하게 된 악마의 숲은 어딘가 신성하게 느껴졌다.
푸르른 녹음이 우거지는 거대한 숲.
나무의 나뭇가지는 왠지 모르지만 하얀 광채를 뿜어내고 있기까지 하였다.
“저 숲을 한 번에 없애야 한다는 거지?”
장클로드 반담은 어딘가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생기 가득한 숲을 없애야 한다는 게 그로선 찝찝하게만 느껴졌다.
“협회장님의 말대로라면 그렇다는데?”
“근데 협회장은 그런 공략법을 어떻게 알아낸 거야?”
“협회장님이 모르는 게 어디 있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따르면 돼.”
가스파르 들롱의 말에 장클로드 반담은 혀를 찼다.
“언제부터 그렇게 협회장의 충신이었다고.”
사실 이런 말을 하는 장클로드 반담도 박한새에게 고마운 감정을 품고 있었다.
무공을 가르쳐 준 것.
그리고 멸마대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두 가지만으로 박한새는 그의 은인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성좌님도 협회장에게 잘 보이라고 주문할 정도이니.’
우습게도 성좌들조차 박한새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사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프리카의 악신은 말이 악신이지, 그들 역시 성좌였다.
즉, 똑같은 성좌라고 해도 IHA의 말 한마디에 의해 악신이 될 수도 있고 선신이 될 수도 있다는 뜻.
그렇기에 성좌들은 박한새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생사여탈권까지는 아니지만, 박한새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뭔가 떨어졌는데?”
멸마대가 악마의 숲에 접근하자, 갑자기 변화가 일어났다.
한 나무에서 하얀 광채를 띠는 무언가가 지상으로 낙하한 것이다.
“저게, 협회장이 말한 하얀 악마라는 것인가?”
지금까지 아프리카에서 마주친 몬스터와는 전혀 궤를 달리하는 존재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몬스터는 마치 성스러운 무언가처럼 하얀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악마라는 말보단 어딘가 천사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게 생긴 그런 몬스터였다.
“별로 강해 보이지는 않는데?”
멸마대의 다른 동료들이 전투태세를 갖출 때, 장클로드 반담은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가 보기에는 하얀 악마란 존재가 그리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와 달리,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던 가스파르 들롱은 긴장된 얼굴로 하얀 악마를 노려봤다.
“…눈깔이 썩었네.”
“저게 강해 보이지 않는다고?”
장클로드 반담이 느끼지 못한 것을 가스파르 들롱은 느꼈던 모양이다.
하얀 악마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다급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사라졌어!”
“어디로 간 거냐!”
“제길! 보법보다 빠르잖아?”
“조심해! 어디로 올지 모른다!”
절정급 무인의 움직임이 떠오를 만큼 하얀 악마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멸마대의 대원들조차 순간 하얀 악마가 어디로 움직였는지 파악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멸마대의 대원들이 괜히 정예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채앵!
가스파르 들롱은 간신히 하얀 악마의 공격을 막아냈다.
원래는 장클로드 반담을 노린 공격이었는데, 그가 대신 막아낸 것.
“네놈이 아무리 강한 몬스터라도 일대일로는 나를 절대 이길 수 없다!”
박한새와도 일대일 승부를 걸어보려고 했던 게 가스파르 들롱이었다.
그런 그가 하얀 악마 따위를 두려워할 리 없었다.
“한 놈이 아니야!”
“빌어먹을, 뭐가 저리 많아?”
문제는 하얀 악마의 숫자였다.
멀리서만 봤을 때는 성스럽게만 느껴졌던 흰색 빛의 정체.
그 정체는 다름 아닌, 하얀 악마들이었다.
악마의 숲에서 나타난 하얀 악마의 숫자는 족히 수백은 되어 보였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초일류 무인 수준의 전투력을 보여주는 몬스터가 수백 마리나 나타난 것.
제아무리 멸마대의 대원들이라고 해도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협회장님이다!”
위기에 처하면 늘 나타나는 존재.
그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무공의 창시자이자, IHA의 협회장인 박한새가 나타난 것이다.
멸마대 대원들에게도 절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하얀 악마들이었다.
하지만 박한새 앞에서는 그야말로 녹는다는 표현을 써도 될 정도로 픽픽 죽어 나갔다.
초절정 고수라는 경지는 이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하얀 악마는 그야말로 끝도 없이 나타났다.
나는 하얀 악마를 향해 검을 휘두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만약에 저 악마의 숲이 아프리카가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에 있었으면….’
유럽이나 미국도 아마 아프리카처럼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한 마리, 한 마리가 거의 초일류 무인 수준으로 강했으니까.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공격 패턴이 너무 단조롭다는 단점이 있었다.
지금이야 첫 격돌이었기에 제대로 된 공략법이 없어서 조금 고전했던 것일 뿐, 하얀 악마를 연구한 뒤에 싸웠다면 일류 무인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위험한 존재인 것은 매한가지야.’
아직 8성급 던전밖에 열리지 않은 상태인데도 이 정도였다.
만약 9성급 던전까지 열린다면?
인류가 더 강해진 상태였다고 해도 마냥 안심할 수는 없었으리라.
“화력조, 준비 끝났습니다.”
내가 강기를 사용하여 하얀 악마를 밀어내고 있을 때, 최익현이라는 대원이 내게 보고하였다.
그는 화력조의 리더였다.
이번에 화력조를 지휘할 인물도 그였다.
“그럼 동시에 스킬을 발사하십시오.”
화력조가 스킬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다시 하얀 악마를 상대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11사도도 우리의 계획을 눈치챈 것일까?
악착같이 하얀 악마를 내보내서 화력조를 방해하려 들었다.
물론 내가 있는 한, 그런 시도는 의미 없었다.
‘나만 있는 것도 아니지.’
노홍만, 이정, 고정희, 김민경….
절정을 넘어 초절정 경지에 근접한 무인 여럿이 함께하고 있었다.
하얀 악마가 아니라, 악신 여럿이 와도 이들이 있는 한, 화력조를 공격할 수는 없으리라.
콰콰콰콰쾅!
마침내 화력조의 스킬 투하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핵미사일 수십 발이 동시에 투하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만큼 멸마대 소속 헌터들이 내뿜은 스킬의 위력은 엄청났다.
시야에 보이는 모든 것이 폭발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 정도면 11사도도 무사하긴 힘들겠지?’
내가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할 때, 누군가가 불길한 말을 내뱉었다.
“해치웠나?”
‘해치웠나?’라는 소리를 듣고 기분이 상해서 혀를 찬 것은 아니었다.
각종 스킬을 투하한 후폭풍으로 악마의 숲이 어떻게 됐는지 눈으로는 알 수 없었다.
연기가 앞을 가렸기 때문이었다.
다만, 언뜻 보이는 형상을 보면 악마의 숲은 잔해밖에 안 남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초절정 고수에 오른 내 감각으로는 아직 적의 생명이 꺼지지 않았다는 게 느껴졌다.
‘마무리는 내가 지어야겠군.’
나는 망설이지 않고 보법을 펼쳤다.
원래라면 미친 듯이 달려들어야 할 하얀 악마들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악마의 숲이 타격을 받은 게 그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던 모양이다.
하얀 악마들이 방해를 하지 않으면 일은 더 수월해지는 법.
단숨에 악마의 숲 중심부까지 달려온 나는 가장 거대한 나무에 강기를 가득 실은 검강을 휘둘렀다.
-끄에에에에엑!
나무가 베어지자, 무언가 기괴한 비명이 들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제자리에서 멍청히 서 있던 하얀 악마들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놈을 죽인 모양이군.’
하얀 악마들의 주인, 11사도.
아무래도 그가 죽은 듯싶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전해진 소식을 듣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설마 11사도까지 당할 줄이야.”
11사도.
비록 그는 대화 한번 한 적이 없는 상대지만, 11사도가 얼마나 엄청난 존재인지는 익히 들었다.
그의 스승, 매디슨도 종종 말하지 않았던가.
만약 악마의 숲이 있는 곳이 아메리카 지역이었다면 박한새가 이렇게 활약할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아니, 멕시코에서 활개 칠 때 악마의 숲이 근처에 있었다면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까지 말하였었다.
그 정도로 11사도는 엄청난 힘을 가진 존재였다.
하지만 그런 11사도도 박한새의 공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 나무 괴물이 당한 게 뭐 대수라고.”
앤디 올드먼은 헛웃음을 흘렸다.
11사도의 죽음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할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뿐이었다.
바로 여명회의 12사도, 아딜 칸이었다.
“11사도를 처리했으니 박한새의 다음 타깃은 아딜 칸일 겁니다.”
박한새의 다음 타깃이 되었음에도 아딜 칸은 전혀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놈이 나를 죽일 수 있을 거 같아?”
앤디 올드먼은 그의 자신감이 이해되지 않았다.
“박한새의 무력이 어느 수준인지를 알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내가 인도에 처박혀 있다고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고 사는 줄 알아?”
“놈이 8성급 던전 보스들까지도 손쉽게 죽일 수 있는 실력자란 사실은 나도 알고 있다.”
아딜 칸에게도 8성급 던전 보스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상성에 따라 ‘목숨’까지 걸어야 할 수도 있는 상대가 바로 8성급 던전 보스였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그리 방심하시는 겁니까?”
“그럴 수밖에. 놈이 뭐, 나를 죽일 수는 있겠지.”
그는 담담하게 자신이 죽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그게 뭐? 나를 ‘완전히’ 죽이려면 인도의 모든 인간을 죽여야만 할 건데? 후후후.”
아딜 칸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가진 자신감의 원천은 다른 게 아니었다.
박한새를 죽일 순 없지만, 반대로 자신도 절대 죽지 않으리라는 확신.
그에게는 바로 그런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과연 아딜 칸에게 온 선택이 잘한 것일까.’
그런 아딜 칸의 모습을 보며 앤디 올드먼은 미간을 좁혔다.
여명회에서 박한새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 아딜 칸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막상 아딜 칸의 모습을 보니 회의감이 들었다.
‘후우. 일단 이곳에서 내 세력을 꾸준히 늘리는 수밖에.’
마법 학교를 세웠을 때, 급하게 받아들인 미국 헌터들과는 달리, 절대 배신하지 않을 그만의 세력.
앤디 올드먼이 인도에 온 이유는 바로 자신의 친위 세력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11사도가 죽은 순간, 악마의 숲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악마의 숲이 있던 자리는 푸른 초원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악마의 숲을 없앴다고 멸마대의 임무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제 우리는 북상할 겁니다.”
나는 대원들에게 선언하였다.
우리의 임무는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우리는 북으로 갈 것이라고 말이다.
“올해 안에 우리는 아프리카를 인류의 것으로 되찾아 와야 합니다.”
잃어버린 인류의 땅, 아프리카.
지옥과 다를 게 없이 바뀐 아프리카를 반드시 되찾고 말리라.
이런 나의 선언에 멸마대 대원들은 큰 함성으로 호응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