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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267화 (267/275)

#267화

사람들은 아프리카를 죽음의 땅으로 알고 있었다.

인류가 아프리카를 버린 지도 어언 10년이 넘은 상황.

그동안 아프리카를 지배한 것은 악신들이었다.

악신이 괜히 악신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악 그 자체이기에 악신이라 불렀던 것.

그리고 그런 절대 악들이 10년 넘게 아프리카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생존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지옥과도 다를 게 없는 아프리카에서도 ‘인간’은 존재하였다.

“결국, 하림이 제물로 바쳐졌다더군.”

“…그래? 그럼 다음 차례는 내가 될 수도 있겠어.”

“글쎄. 신의 뜻을 누가 알겠는가.”

우습게도 아프리카에서 살아 숨 쉬는 ‘인간’들은 정작 자신들을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삶은 가축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언제까지 이런 삶을 살아야 하나.”

“싫으면 도망치게.”

“어디로?”

“…저승으로.”

“제기랄.”

이곳은 자비테흐난 마을이었다.

한때는 꿈과 희망이 넘치던 그런 마을.

하지만 지네 형태의 기괴한 무언가가 자비테흐난 마을 인근에 똬리를 튼 이후, 마을에 절망이 찾아왔다.

대왕 지네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하지는 않았다.

배가 고플 때만 갑자기 나타나서 한두 명씩 잡아먹을 뿐이었다.

당연히 자비테흐난 마을의 사람들은 저항도 해보고 도망도 쳐보았다.

물론 8성급 보스보다 강한 무력을 가졌을 대왕 지네를 죽이는 것은 자비테흐난 마을 사람들에겐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때 건장한 청년 백여 명이 단숨에 죽고 말았다.

도주를 선택한 자들의 결말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괴물, 정확히는 악신이라 불릴 존재들이 대왕 지네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비테흐난 마을에서 벗어나 사방 어디를 가도 다른 악신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악신들은 대왕 지네보다 더 잔인하게 인간을 살해하였다.

그 뒤로 사람들은 도망치는 걸 포기하였다.

그저 자신의 차례만 오지 않기를 기도하며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하였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삶.

그래서 자비테흐난 마을에는 늘 절망만이 가득하였다.

“사람이 왔어! 사람이! 사람이 자비테흐난에 왔다고!”

웬 주정뱅이가 옥상에 올라가서는 떠들썩하게 외쳤다.

사람이 왔다고 말이다.

물론 자비테흐난 마을 사람들은 사내의 말을 믿지 않았다.

지금껏 자비테흐난 마을 근처에 사람이 나타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외지인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이 나타났다니.

미쳐서 헛것을 봤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비테흐난 마을 사람들의 눈으로도 외지인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놀랍게도 외지인은 한 명이 아니었다.

단체, 그것도 족히 수백 명은 되어 보이는 숫자였다.

심지어 그 수백 명은 가지각색의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어, 어떻게 이곳에 온 거지?”

“우리를 구하러 온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이 지옥에서 누가 우리를 구할 수 있어! 애초에 저들이 사람이 맞는지부터 의심해야 해!”

악신의 형태는 다양하였다.

인간 형태를 하고 있다 해도 이상할 게 없으리라.

그렇기에 자비테흐난 마을 사람들은 수백 명의 외지인을 봤으면서도 희망이나 구원이란 단어를 입에 담지 않았다.

슈슈슉!

대왕 지네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이내 탄식하였다.

“시, 신이다!”

“저들은 다 죽게 되겠군.”

“신께서 한 명이라도 살려줬으면 좋겠다. 바깥소식을 조금이라도 듣고 싶어.”

자비테흐난 마을 사람들에게 대왕 지네는 신이었다.

만약 수백 명의 외지인이 전차나 전투기 등의 현대 병기를 끌고 왔어도 대왕 지네를 쓰러뜨릴 수 없었을 터.

그런데 외지인들은 현대 병기 대신 중세시대로 회귀한 듯, 검과 창 같은 무기를 들고 있었다.

아예 무기를 차지 않은 이들도 꽤 보였고 말이다.

그러니 자비테흐난 마을 사람들로선 수백 명의 외지인이 전부 죽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뭐, 뭐지?”

“신의 창을 막았는데?”

“어떻게 인간이 신의 창을…!”

자신들의 신에 의해 수백 명의 외지인이 곧 죽을 것으로 생각하던 자비테흐난 마을 사람들은 이내 큰 충격에 빠졌다.

대왕 지네는 그들이 생각한 대로 움직였다.

수백 명의 외지인을 징벌하기 위해 신의 창이라 불리는 몸속 가시를 쏘아 날린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외지인들은 너무도 쉽게 신의 창을 막았다.

아니, 막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심지어 반격까지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신은 외지인의 반격에 속수무책처럼 보였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저 사람들, 진짜 사람이 맞는 건가?”

그들의 신이 죽고 있었다.

놀랍게도 신을 죽이는 존재는 악마도, 같은 신도 아니었다.

바로 인간.

그들과 같은 인간에게 신이 죽고 있었다.

이 충격적인 광경을 지켜본 자비테흐난 마을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기적을 경험한 얼굴들이군요.”

“기적일 겁니다. 저들에게 이 몬스터는 신적인 존재였을 테니까. 물론 실제로 악신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지구에 강림한 성좌라고 막 엄청난 무위를 뽐내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여섯 명의 악신 중 가장 강한 악신도 내가 회귀 전에 경험한 9성급 던전 보스와 비교하면 형편없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감상은 나니까 할 수 있는 것이다.

헌터라는 게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았을 이 마을의 사람들에게 지네 형태의 악신은 그야말로 절대적인 존재로 여겨졌을 터.

그런 악신을 살해한 우리는 신을 살해한 신살자로 여겨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나저나 설마 이런 곳에도 생존자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프리카는 죽음으로 가득 찬 땅인 줄 알았는데….”

“사람들을 한 명, 한 명씩 아껴 먹으려고 살려놓은 듯합니다.”

“하. 진짜 빌어먹을 놈이군요.”

최익현이 씩씩거리며 화를 냈지만, 나는 그저 어깨만 으쓱하고 말았다.

이번에 만난 악신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었다.

사람을 마구잡이로 학살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지금껏 만난 생존자가 이들, 자비테흐난 마을 사람들뿐이란 걸 생각하면 다른 악신들이 어떤 패악을 부렸는지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분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대원 몇 명을 남겨서 지켜야지요.”

내가 당연한 걸 묻는다는 식으로 대꾸하자, 그가 살짝 우려하는 표정을 지었다.

“멸마대의 대원이 이제 30명밖에 안 남았습니다.”

100명으로 출발했던 멸마대다.

그런데 어느덧 30명으로 줄어들었다.

물론 70명이 전사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원정대의 모든 대원을 통틀어 지금껏 전사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숫자가 준 이유는 다름 아닌, 후방을 안정화하기 위해 던전 관리를 맡겼기 때문이었다.

던전 브레이크라도 일어나면 골치 아팠으니 말이다.

“괜찮습니다. 저희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아프리카를 수복하기 위한 병력이 저희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성은이 이끄는 유럽 IHA 요원들의 남진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가 남아프리카로부터 북쪽으로 진격할 때, 북아프리카에서 또 다른 IHA의 부대가 남진하는 것이었다.

누구도 아프리카 원정대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원정대에는 박한새가 참여하지 않았던가.

박한새가 있는 한, 실패는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게 빨리 성공할 줄은 몰랐군요.”

성공은 예측했어도 시기는 예측하지 못하였다.

원정대의 잠재력을 높게 본 이들도 최소 1년 정도를 예상했다.

그런데 설마 반년이 채 안 돼서 상황을 종결시킬 줄이야.

“놀랍습니다. 전 세계가 포기했던 땅을 이렇게 빨리 수복하다니.”

백악관 참모들 역시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직 아프리카의 영토 문제에 대해 이해관계 조정이 끝나지 않은 상황.

빨라도 너무 빨랐다.

“IHA의 힘은 너무 위험합니다.”

백악관 참모 중 한 명이 갑자기 그 같은 말을 꺼냈다.

그러자 다른 참모들도 그에 동의하듯 한마디씩 하였다.

“맞습니다. 악신들마저 무력하게 만드는 힘이라니. 일개 단체가 가지기에 너무 강대한 힘입니다.”

“만약 IHA가 아프리카까지 장악하면 박한새 협회장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아프리카를 수복한 것.

모두가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특히 초강대국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백악관 참모들은 오히려 경계심을 느꼈다.

그들이 보기에 IHA의 힘은 강해도 너무 강했다.

언젠가는 미국조차 압도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이미 IHA의 힘이 미국을 능가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군.’

미국 대통령은 그런 참모들의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세계에서 가장 IHA에 대해 잘 아는 것이 미국 백악관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들도 IHA의 진정한 힘이 어느 수준인지는 모르는 거 같았다.

아니, 인정하기 싫은 것일 거다.

IHA가 미국보다 막강한 힘을 가졌다는 사실을.

“전에 말했을 겁니다. IHA를 견제하자는 이야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거라고.”

“하, 하지만.”

“잊으신 거 같으니 다시 말하겠습니다. 저희 미국은 IHA의 가장 든든한 동맹입니다. 설령 IHA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그리 되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미국이 겉으로나마 초강대국으로 군림할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IHA의 일에 전폭적으로 협조하는 것.

“아프리카를 관리하는 일로 IHA에서 인력 부족에 시달린다고 하는데, 그들을 어떻게 도울지 고민해봅시다.”

지금 세상에서 유일하게 IHA를 견제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었다.

하지만 그런 미국도 IHA의 일에 전폭적으로 협조하는 결정을 내렸다.

미국이 이런 결정을 내렸는데 다른 나라라고 다를 리 없었다.

전 세계의 모든 국가가 아프리카를 수복한 IHA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였다.

IHA가 아프리카의 땅을 어떻게 분배하든 전 세계의 어떤 국가도 불만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리라.

설령 IHA가 아프리카의 모든 영토를 다 독차지한다고 해도 말이다.

“이야, 결국 우리가 해냈네.”

“솔직히 쉬웠다. 악신이라고 별거 없더라.”

“지랄. 협회장님이 다 했지. 이류 따리가 뭐 했다고.”

“내가 잡은 몬스터가 몇 마리인데? 협회장님이 전방에서 활약한 것도 다 나 같은 무인들이 뒤에서 몬스터를 잘 막아줘서야.”

두 명의 젊은 무인들이 투닥거리며 아프리카를 수복한 소감을 이야기하였다.

벌써 영웅이 된 거 같다는 둥, 돌아가면 더 열심히 무공을 익혀야 할 거 같다는 둥.

그러다 이야기가 아프리카의 영토 분배에 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돈 받고 팔지 않을까? 아니면 던전을 받는다든가.”

“아니, 협회장님이 뭐가 아쉽다고 돈을 받아? 그리고 아프리카에 널린 게 던전인데 던전 받으려고 땅을 파는 게 말이 돼?”

“그럼 너는 아프리카 땅을 어떻게 분배할 거 같은데?”

“내가 협회장님이었으면 아프리카 땅 전부를 독점하려 할 거야.”

“독점? 다른 나라가 그걸 허락할까?”

“우리 IHA가 다른 나라의 눈치를 볼 단체는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근데 땅을 독점해서 뭐 하려고?”

“뭘 뭐 해. 땅이 곧 권력인데. 아프리카 땅 전체를 얻으면 협회장님은 아프리카의 황제가 되는 거지. 절대적인 무력을 손에 쥔 21세기 황제 말이야.”

“인구라고는 100만 명도 안 될 텐데, 그런 곳의 황제가 돼서 뭐 하려고?”

“인구야 앞으로 모으면 되지. 앞으로 무공을 아프리카에서만 가르친다고 선언하면 개나 소나 아프리카로 오려고 할걸?”

“오, 들으니까 꽤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데?”

두 무인이 이 같은 대화를 나눌 때, IHA의 지도부에서도 아프리카 영토 분배 문제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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