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화
“한새 씨. 인도 무인들이 본국에서 연락을 받고 곧 일제히 귀국한다고 해요.”
“여명회가 움직였나 보군요.”
내가 행동에 나서기 전, 여명회에서도 움직임을 보였다.
무공을 익힌 인도 헌터들에게 귀환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들도 현재 자신의 상황을 알고 있습니까?”
“자신의 가족이 인질로 잡힌 거 말씀하시는 거죠? 그거라면, 이미 불만이 가득한 상태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렇다면 설득은 어렵지 않겠습니다.”
인도 무인들은 인질로 잡힌 가족들 때문에라도 여명회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설령 죽으라는 명령을 해도 따라야겠지. 따르기 싫은 이들도 물론 죽게 될 테고.’
내 생각에 여명회는 인도 무인들을 전부 죽일 것이 분명하였다.
자신들에게 충성하지 않는 이들이 무공이라는 막강한 힘을 지녔으니 여명회 입장에선 절대 살려둘 순 없으리라.
물론 그냥 죽이기만 한다면 그들을 아프리카까지 보낸 의미가 없었다.
아마 아딜 칸이 직접 무공을 익힌 인도 무인들을 자신의 권속으로 만들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막지 않으면 그의 손에 절정 고수의 영혼이 들어갈 수도 있지.’
그야말로 최악의 결과였다.
죽지도 않는 불사의 절정 고수라니.
심지어 그 영혼의 재능에 따라 절정을 넘어 초절정까지 갈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무공을 다른 영혼에게 퍼뜨릴 수도 있었고.
그렇기에 나는 인도 무인들이 아딜 칸의 권속이 되는 걸 막아야만 했다.
“가족을 구출할 거라는 확신만 준다면 설득은 어렵지 않을 거예요.”
“확신이라. 제가 직접 간다면 그들도 확신하지 않겠습니까?”
“한새 씨가 간다면야 그보다 확실한 건 없죠.”
어차피 여명회의 마무리는 내가 지을 생각이었다.
인도로 가는 김에 인도 무인들의 가족을 같이 구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인도 출신의 무인, 쿠마르.
그는 그야말로 금의환향하였다.
길드 마스터에 의해 강제로 떠나게 되었던 아프리카였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그는 공을 세워 무인이 되었다.
그리고 비무회에 나가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결과적으로 쿠마르는 인도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길드 마스터. 지금 어디를 가는 겁니까?”
인도의 인기 스타, 아니 세계적인 인기 스타가 된 쿠마르지만 정작 길드 내에서 받는 대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절정 고수에 근접한 강자였다.
하지만 길드에서는 여전히 그를 B랭크 헌터로 대우하였다.
물론 그 이유는 너무도 뻔했다.
그의 약점을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의 길드 마스터, 아누팜은 그의 약점 하나만 믿고서 쿠마르를 어디론가 끌고 가고 있었다.
“잠자코 따라와. 죽고 싶지 않으면.”
“길드 마스터. 겨우 S랭크 헌터 실력으로 저를 압박하시는 겁니까?”
“강해졌다고 기고만장해졌군.”
아누팜이 코웃음 쳤다.
초일류 무인인 쿠마르의 반항이 그에게는 별로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강자가 강자의 권리를 행사하겠다는데, 무슨 문제 있습니까?”
“문제 있지. 네놈이 아무리 강해졌어도 너는 내 부하다. 너는 내 말을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해.”
“싫습니다. 더는 당신 같은 사람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겁니다.”
쿠마르는 발걸음을 멈추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아누팜이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이 자식이, 감히 내게 반항하겠다고? 샤하나가 죽는 꼴을 보고 싶은가 보지?”
“S랭크 헌터씩이나 돼서 일반인 목숨 가지고 협박이나 하는 꼴이라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내 지시에 따라! 그러면 네 동생 목숨만큼은 살려줄 테니!”
갑자기 검을 뽑는 쿠마르를 보며 아누팜은 눈을 부릅떴다.
“지금 뭐 하는 짓이냐?”
“나를 죽이려는 속셈이 뻔히 보이는데, 당신 말을 들어줄 필요가 있나?”
“그걸 어떻게 알았지?”
“축하연을 한다면서 이런 인적 드문 장소로 안내하는 것만 봐도 당신의 의도는 뻔히 보여.”
쿠마르의 추측은 정확하였다.
아누팜은 쿠마르를 함정으로 유인한 뒤, 목숨을 없애고 영혼만 강탈할 계획이었다.
물론 의도가 들킨 이상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그래서? 내가 그런 계획을 가졌다고 설마 동생의 목숨을 포기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쿠마르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의도가 들킨 순간까지도 뻔뻔하게 나올 줄은 그 역시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역시 당신은 죽어야만 해.”
“내가 죽으면 네 동생은….”
끝까지 샤하나라는 인질을 거론하며 협박하던 아누팜.
하지만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격을 맞고 목이 잘렸다.
쿠마르가 검기를 가득 실은 검으로 아누팜의 목을 베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누팜은 목이 잘렸으면서도 죽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인포시스 길드 마스터 아누팜은 죽었다.
단, 그의 영혼만은 죽은 육체에서 빠져나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감히 나를 공격하다니! 용서하지 않겠다!’
부하가 배신하다니.
아누팜의 상식으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보복해야 했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지?’
영체 상태의 아누팜은 상대의 육체를 빼앗을 수 있었다.
그가 원래 차지하고 있던 육체 역시 강제로 빼앗은 육체였었다.
그렇기에 그는 쿠마르의 손에 죽을 때도 놀라지 않았다.
육체야 다시 강탈하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쿠마르의 육체를 강탈하려는 그 순간, 무언가에 막히더니 육체 강탈 시도가 무산되었다.
‘이놈에게 특수 스킬이 있었었나?’
이때까지만 해도 아누팜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어차피 그가 빼앗을 수 있는 육체는 쿠마르 말고도 많이 있었으니까.
팅!
하지만 쿠마르 말고 다른 무인을 노려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무인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기라도 한 것인지, 그의 공격이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놈들이 안 되면 더 약한 육체라도 노려야 한다.’
최선이 쿠마르였고 차선이 다른 무인이었다.
두 가지 모두 실패했으니, 무공을 배우지 못한 일반 헌터를 노리는 최악의 수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황당하게도 최악의 수조차 실패하고 말았다.
겨우 C랭크 헌터에게 그의 능력이 막힌 것이다.
‘말도 안 돼! 이놈이 무슨 스킬이 있다고 나의 능력을 막는단 말인가!’
갑자기 스킬이 생기지는 않았을 터.
어쩌면 IHA에서 무슨 수작을 부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시간이… 남은 시간이 없어!’
그가 가진 영체화라는 권능은 실로 무적기나 다름없었다.
육체가 죽어도 영체화를 한다면 그는 죽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육체를 빼앗아 생존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영체화의 유일한 단점은 지속 시간이었다.
영체화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시간 정도뿐.
‘빠, 빨리 찾아야 해! 빨리…!’
점점 기억이 마모되는 것이 느껴졌다.
아딜 칸 덕에 인간과 유사한 사고력을 가졌던 아누팜이 이제는 평범한 망령처럼 바뀌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어떤 육체도 빼앗지 못한 상태로 1시간이 지나자 그는 완전히 기억을 잃었다.
-여긴 어디지? 나는 누구?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린 아누팜은 그렇게 정처 없이 주변을 배회하였다.
지금 아딜 칸이 그를 다시 회수해도 이전의 경지는 복구할 수 없으리라.
무공을 익힌 인도 헌터들이 인도로 다시 귀국하자, 아딜 칸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 이제 무공도 나의 것이 되겠군.”
이미 앤디 올드먼의 합류로 마법이 그의 것이 된 상태.
여기에 무공까지 그의 것이 된다?
IHA도 더는 두렵지 않았다.
그가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 한, 절대 죽지 않는 불사의 군대가 무공과 마법을 동시에 익힐 테니까.
‘음? 뭐야. 왜 갑자기 아누팜이 죽었지?’
음흉한 미소를 짓던 아딜 칸은 갑자기 자신의 권속 하나가 영체화한 것을 느끼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영체화를 했다는 건 둘 중 하나였다.
더 나은 육체를 찾아서 그 육체를 빼앗기 위함이거나, 적에 의해 죽임을 당했거나.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후자일 수밖에 없었다.
‘아누팜이 죽었다고? 쿠마르를 데려오고 있어야 할 아누팜이 왜 죽었지? 설마 쿠마르 그놈이 배신을?’
만약 그렇다면 쿠마르의 가족들을 바로 응징해야 했다.
일벌백계하지 않으면 다른 인도 무인들도 반란을 일으키려 할 테니까.
하지만 그는 눈을 부릅뜬 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누팜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권속들이 속속 죽어가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예상외의 사태로 권속 하나가 죽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큰 피해가 아니기도 했다.
그가 다시 가서 영혼을 회수해 오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권속 수십이 동시에 당할 때는 아무리 그라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연히’ 이런 일이 벌어질 일은 절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12사도란 놈을 잡으면 공적 점수를 1,000점이나 준대!”
“아딜 칸인지 뭔지, 그놈은 무조건 내가 잡고 만다!”
“무슨 소리! 놈은 내가 잡아서 갈가리 찢어버릴 거야!”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아딜 칸은 흠칫 놀랐다.
일단의 무리가 그의 은신처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일단의 무리는 그의 목숨을 노리는 것처럼 보였다.
‘설마 IHA가 이런 식으로 나를 공격할 줄이야.’
아딜 칸은 헛웃음을 지었다.
설마 인도 한복판에서 그를 노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인도에서만큼은 절대신과 같은 그였는데 말이다.
아딜 칸은 바로 행동에 나섰다.
권속들처럼 그 역시 영체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딜 칸은 그 영체화 능력을 사용할 때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아딜 칸이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육체에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지!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선두에 선 무인 하나를 영체화 상태로 공격하였다.
즉사할 것을 예상하였지만 아쉽게도 부상만 입히고 끝났다.
‘단단한 놈이로군.’
아딜 칸이 혀를 차며 다른 무인을 노리려던 찰나, 무언가가 그를 향해 날아왔다.
엄청난 파괴력을 보인 그 무언가는 다름 아닌, 검강이었다.
“공간 자체를 부수면 제아무리 유령이라도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거다. 으하하하!”
아딜 칸은 식겁하였다.
검강이 보인 위력은 실로 엄청났다.
제아무리 영체화 상태라도 검강에 맞는다면 소멸을 피하기 어려우리라.
‘맞지만 않으면 될 일이다.’
그는 우선 신경철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구태여 초절정 고수와 맞싸울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하였다.
수 km를 달리는데 난데없이 벽이 나타난 것이었다.
‘뭐, 뭐야! 이건?’
영혼 상태인 그를 막아 세운 벽은 다름 아닌 결계였다.
박한새가 자신의 권속을 총동원하여 아딜 칸 은신처의 사방팔방에다 결계를 설치한 것이다.
물론 이 사실을 모르는 아딜 칸은 계속해서 발버둥 쳤다.
동쪽으로도 가보고 서쪽으로도 가보고 남쪽으로도 가봤다.
하지만 마치 독 안에 든 쥐처럼 어디를 가도 결계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심지어 그 결계는 그와의 거리를 점점 좁혀왔다.
-말도 안 돼! 내가 이런 곳에서 죽는다고?
영혼술사인 그도 영체화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발버둥 치는 동안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모두 지나버렸다.
‘이건 말도 안 돼…!’
여명회의 마지막 남은 사도, 아딜 칸은 그렇게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