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앤디 올드먼은 누군가로부터 12사도, 아딜 칸의 허무한 최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결국, 아딜 칸이 그렇게 죽었군요.”
아딜 칸이 IHA를, 아니 박한새를 이기지 못할 거란 사실은 그도 익히 짐작하고 있었다.
영혼을 다루는 아딜 칸의 능력은 분명 엄청났다.
상대가 강하다?
그러면 상대의 육체를 강탈하면 됐다.
다수의 상대가 공격한다?
그러면 육체를 버리고 도주한 뒤, 다수의 권속을 끌고 와서 반격하면 됐다.
인도라는 거대한 나라가 아딜 칸의 손에 들어온 것도 바로 이런 그의 능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능력이 통하는 것도 일반 헌터에 한해서지.’
아딜 칸의 능력은 효과가 명확하였다.
일정 경지 이상의 강자에겐 통하지 않는 한계가 있었다.
더 큰 문제는 IHA가 가진 조직력이었다.
무공, 마법, 결계라는 특수한 힘까지.
이 모든 힘이 하나로 합쳐지자 성좌에 버금가는 능력을 가진 아딜 칸도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박한새를 상대할 사람은 역시 스승님밖에 없는 거 같습니다.”
앤디 올드먼은 마치 누군가와 대화하듯 허공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허공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앤디 올드먼의 스승, 매디슨의 목소리였다.
-나 역시도 박한새를 쓰러뜨릴 자신은 없다.
제자인 앤디 올드먼의 손에 죽은 것으로 알려진 매디슨이었다.
하지만 그는 살아있었다.
정확히는 아딜 칸이 그러했듯, 본체를 버리고 유령의 몸으로 살아있었다.
물론 육체가 없는 상태인 그를 살아있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지는 의문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놈을 굴복시킬 방법은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박한새, 그자를 굴복시킬 방법은 하나뿐이다. 바로 절대다수 인간의 목숨을 인질로 삼는 거지.
앤디 올드먼이 매디슨을 죽인 이유.
그것은 바로 매디슨이 ‘육체 없는 대마법사’가 되어야지만 박한새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매디슨은 유령이 되자 몇몇 수준 높은 마법들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마법들이라면 박한새를 굴복시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였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메테오. 이것이라면 박한새도 굴복할 수밖에 없을 거야.
메테오는 운석 마법이었다.
원래라면 대마법사의 경지에 있는 매디슨도 펼치기 어려울 정도로 수준 높은 마법이 바로 메테오였다.
하지만 매디슨은 인간의 몸에서 벗어남으로 한계를 없앴다.
우주로의 이동이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메테오 마법도 사용이 가능해졌다.
물론 마력이 충분하게 공급된다는 전제조건이 따라야 하겠지만 말이다.
‘핵보다 강한 메테오다. 세계의 각 도시를 노리고 박한새를 협박한다면 놈도 우리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을 터.’
아딜 칸이 죽은 건 아쉬웠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아딜 칸의 용도는 시간 끌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3년이란 시간을 끌어줬으니 그 정도면 충분하였다.
앤디 올드먼은 3년 동안 수십 명의 마법사 권속을 만들어냈다.
이들을 활용하면 매디슨은 하루에 한 번 메테오를 사용할 수 있었다.
즉, 인구 수백만의 도시를 하루에 하나씩 터뜨리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우주에서 불시에 날아올 것이기에 IHA나 박한새도 절대 막아낼 수 없을 터.
박한새도 결국 그의 협박에 굴복하여 인도만큼은 여명회의 세력권으로 놔둘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인도에서 세력을 기른 뒤, 대격변을 기다린다면 그때는 다시 세계를 여명회의 천하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있군.”
이 자리에서 절대 들리면 안 될 목소리가 들렸다.
-바, 박한새!
“다, 당신이 여기에 어떻게?”
뒤를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여명회의 원수, 박한새가 그곳에 서 있었다.
‘메테오라.’
꽤 위험할 뻔했다.
내가 제아무리 초절정 고수라고 해도 우주에서 날아오는 메테오를 막을 수 있을까?
물론 내가 있는 지역으로 날아온다면 막을 수 있었다.
와그너의 신발로 순간이동도 가능하니, 두 개의 지역은 커버할 수 있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 몸은 한 개였다.
전 세계가 노려진다면 내가 초절정 고수가 아니라, 화경 이상의 고수라고 해도 뾰족한 수는 없으리라.
‘역시 여명회를 상대로는 방심할 수가 없구나.’
아딜 칸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도 나는 방심하지 않았다.
아직 앤디 올드먼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판단은 절대 틀리지 않았다.
앤디 올드먼뿐만이 아니라, 매디슨까지 유령의 상태로 멀쩡히 살아있었으니 말이다.
“너희가 지금 꾸는 꿈은 절대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이 자리에서 둘 다 죽게 될 테니.”
당황하던 두 사람은 바로 내게 마법을 날렸다.
물론 큰 의미는 없었다.
그들이 펼치는 어떤 마법도 내 호신강기를 뚫을 수는 없으니까.
-제길! 메테오를 날리지 않는 한 소용없겠군!
“하지만 메테오를 그대로 맞아줄 리도 없지 않습니까.”
두 사람은 절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에게 어떤 마법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상황 판단이 빠르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들의 미래는 내 반격을 맞고 죽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내가 검에서 검강을 발현한 순간, 앤디 올드먼이 비명 같은 목소리로 매디슨을 불렀다.
우습게도 매디슨은 자신이 아끼는 제자가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고 있었다.
영혼인 상태라 순식간에 그의 존재감이 사라졌다.
나는 개의치 않은 채 앤디 올드먼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는 방어 마법을 사용하여 내 공격을 막으려 하였지만 내가 그동안 갈고닦은 검강을 실력이 정체했던 그가 막을 수 있을 리는 없었다.
모든 마법이 파괴되며 내 검강이 그의 허리를 갈랐다.
현재 시점에서 가장 악명 높은 빌런으로 이름을 떨치던 앤디 올드먼.
그는 결국 이렇게 내 손에 처단되었다.
‘매디슨만 처리하면 이제 여명회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솔직히 매디슨의 영체화는 나도 예상 못 했었다.
설마 죽음을 연기했을 줄이야.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앤디 올드먼을 죽였고 이제 곧 매디슨까지 죽일 것이니까.
그리고 매디슨까지 처리한다면 여명회란 세력도 더는 경계할 필요가 없어진다.
사도란 사도는 모두 죽은, 말 그대로 잔챙이만 남게 될 테니 말이다.
‘지금쯤 결계에 갇혀있겠지?’
유령의 몸이기에 매디슨은 그 속도가 나조차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빨랐다.
아마 뇌제라 불리는 이성은이 이곳에 있어도 매디슨을 쫓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속도로 매디슨을 잡을 생각이 없었다.
나의 무기가 보법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가진 결계란 무기는 매디슨 같은 유령에게 아주 유용하였다.
매디슨이 제아무리 마법 실력이 출중해도 결계를 단숨에 깨뜨리지는 못하리라.
-이놈! 인간 주제에 감히 내 권속들을 죽이다니!
내가 보법을 펼쳐서 결계가 펼쳐진 장소로 향하려던 찰나, 무언가가 나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실로 엄청난 존재감을 가진 그 무언가는 다름 아닌, 여명회가 추앙하는 악신인 파롤이었다.
“또 나타났군. 이럴 거면 아예 지구에 현신하는 게 낫지 않나?”
-감히!
도발에 바로 당하는 파롤을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처음 봤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어지간히 다혈질인 듯싶었다.
하긴, 그의 입장에서는 개미만도 못한 인간에게 자신의 계획이 번번이 막혔으니 분노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 분노해도 나를 죽일 방법은 없을 텐데?”
파롤의 존재감이 더욱 강해졌다.
아마 그 존재감으로 나를 찍어 누르려는 속셈인 거 같은데, 이 정도로는 내 제자들에게도 안 통했다.
내가 꼼짝도 하지 않자, 그가 으르렁거리더니 나를 협박하였다.
-나의 마지막 사도까지 죽인다면 너 역시 네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잃게 될 것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
-인간이 절반 이상 죽게 된다면 네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도 죄다 죽지 않겠어?
그 말을 듣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그가 이런 협박을 할 줄은 예상 못 했다.
‘수십억의 인구를 죽인다는 말인가? 그게 가능한 일이야?’
상대가 제아무리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악신이라 해도 선뜻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정도로 강한 힘을 가졌다면 왜 지금까지 침묵했단 말인가.
-믿지 못하겠다면 내 마지막 사도를 죽여도 된다. 물론 네놈은 후회하게 될 테지만 말이야!
제법 위협적인 경고였다.
하지만 나는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파롤이 무슨 수를 마련한 것인지는 모르나, 그의 협박에 굴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파롤은 어느덧 사라졌다.
내 발걸음이 매디슨에게 향하는 것을 보고 더는 협박이 안 통할 것임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역시 갇혀있군.’
매디슨은 결계 속에 갇혀 있었다.
결계를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치지만, 내가 직접 펼친 결계를 쉽게 부수기는 어려울 것이다.
-크윽. 설마 이 모든 곳이 함정일 줄이야.
“그게 마지막 유언인가?”
-여명회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라. 우리 여명회는 대의를 이루기 전까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더 들어줄 필요가 없는 말이었다.
검에 검강을 가득 담은 채 그에게 겨누었다.
그러자 매디슨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은 채 눈을 감았다.
아는 것이다.
더 저항해봤자 구차해지기만 할 뿐이란 사실을.
-잠시 멈춰주세요!
또다시 방해꾼이 나타났다.
‘이자는 또 누구지?’
존재감은 파롤과 비교하면 미약하게 느껴졌지만, 일단 성좌인 거 같았다.
-네년은!
매디슨은 지금 나타난 성좌가 누구인지 아는 눈치였다.
-박한새 님, 이자를 죽이면 안 돼요.
“당신은 누굽니까?”
-저는 최상위 성좌, 카펠라를 모시는 샬롯이에요.
“성좌입니까?”
-맞아요. 카펠라 성좌님의 지원을 받고 성좌가 되었어요.
카펠라라.
당연히 나도 아는 성좌 이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를 과거로 불러온 장본인이 카펠라였다.
“근데 방금 한 말씀은 뭡니까? 여명회의 사도인 매디슨을 죽이지 말라니요?”
-파롤의 말은 거짓이 아니에요. 그는 이자가 죽을 경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상을 파멸할 것이에요.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아무리 파롤이 최상위 성좌라지만….”
-파롤은 지금 9성급 던전을 이 세상에 불러오려고 하고 있어요.
“9성급 던전 말씀입니까?”
9성급 던전이 열릴 것이라고?
이건 조금 충격이었다.
아직 몇 년의 시간이 남았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벌써 9성급 던전이 열린다니.
만약 지금 시점에 9성급 던전이 열린다면 인류에 큰 타격이 올 것은 확실하였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한들 제 선택이 달라질 일은 없을 겁니다.”
-예? 9성급 던전이 열리는데도 타협하지 않을 거라고요?
“어떤 경우에도 악신과의 타협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많은 사람이 죽고 말 거예요.
“지킬 겁니다. 최대한….”
못 지키는 이도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타협해서 위기를 넘긴다면 나중에 더 큰 화로 돌아올 것이 분명하였다.
‘어차피 9성급 던전 브레이크 대비는 충분히 되어있다.’
나는 인류를 믿었다.
무공과 마법, 그리고 인류애로 무장한 지금의 인류라면 회귀 전에는 막아내지 못했던 마지막 대격변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으리라.
인류를 믿는 나는 망설임 없이 매디슨을 베었다.
매디슨은 ‘후회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