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웨에에엥.
“아까부터 계속 시끄럽네.”
“그러니까. 이게 무슨 소란이야?”
“밖에서 난리가 났다던데?”
“무슨 난리?”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다는 거 같아.”
“던전 브레이크? 요즘도 그런 게 일어나나?”
“뭐 알 게 뭐야. 어차피 우리랑은 상관없는 일인데.”
“제길. 내가 사회에 있었으면 던전 브레이크 때 재미 좀 봤을 텐데….”
미국 콜로라도주에 위치한 플로렌스 교도소.
이곳에 악명 높은 빌런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지금이 기회다. 여명회를 부활시킬 유일한 기회야!’
교도소에 갇힌 빌런 중에는 여명회에 관련된 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미국 정부나 IHA에서는 알지 못하였다.
많고 많은 여명회의 신도를 모두 파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으니 말이다.
“테일러.”
여명회 중급 신도였던 이는 자신의 직속 수하를 불렀다.
“예, 신도님.”
“준비해라.”
“나갈 준비 하라고.”
“…드디어 거사를 일으키는 겁니까!”
테일러란 사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중급 신도는 근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바로 동료들을 부르겠습니다.”
“신도들만 모아서 되겠어? 다른 빌런들도 이용해야지.”
플로렌스 교도소에 갇힌 여명회 신도의 수는 고작해야 열 명 정도에 불과하였다.
아무리 대격변으로 인해 감시 인원이 그 어느 때보다 줄어든 상태라지만 이들만으로 탈옥에 성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꼭 우리의 힘만으로 탈옥할 필요는 없지.’
악명 높은 플로렌스 교도소였다.
이곳에 갇힌 빌런의 수만 수백 명에 달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탈옥의 기회만 생긴다면 그와 힘을 합쳐 탈옥하려 할 것이다.
“거기, 지금 뭐 하는 거야? 방송 못 들었어?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그때 두 사람을 향해 교도관이 다가왔다.
당연히 평범한 교도관은 아니었다.
무려 C랭크 헌터.
3차 대격변 이전이었다면 고랭크 헌터 취급을 받았을 그런 수준의 헌터였다.
“제압해.”
테일러가 움직이자 멀찍이 떨어져 있던 그의 동료들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교도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이 자식들 지금 뭐 하는 거야!”
“죽어!”
스킬이 통제되는 상황이었으나 교도관에게 달려든 하급 신도는 무려 여섯 명이었다.
C랭크 헌터 수준의 교도관 혼자서는 여섯) 명의 하급 신도를 당해낼 수 없었다.
그렇게 가장 가까이에 있는 교도관을 제압한 여명회 잔당 세력은 빌런들을 아군으로 끌어모으고자 선동을 시작하였다.
“왜 교도소를 지키는 헌터가 몇 명 없는지 아는가? 지금 세상에 대격변이 일어났다! 무려 9성급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다는 말이다!”
웅성웅성.
누구나 두려워할 단어, ‘대격변’을 언급하자 수감자들은 당황하였다.
그들에게 있어 대격변은 수감자가 교도관을 살해한 일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 수감자들의 반응을 보고 여명회 잔당 세력은 득의만만하였다.
설득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수감자들의 반응은 그들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세상이 이 난리인데 폭동을 일으키자고?”
“미친놈! 여명회 놈들은 종말론자와 다를 게 없다더니!”
“탈옥하면 무공을 못 배우잖아? 무공을 못 배우면 밖에 나가서 무슨 의미가 있다고?”
당연히 탈옥에 찬성하리라 생각했건만, 수감자들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다.
‘이, 이게 아닌데?’
중급 신도는 당황하였다.
하지만 더 당황스러운 것은 수감자들이 그저 말로만 반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놈들 탈옥하게 놔뒀다간 괜히 우리도 피해 볼 수 있어!”
“제압하자!”
“맞아! 모범수로서 탈옥범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지!”
여명회 신도들은 뒷걸음쳤다.
물론 감옥에서 도망칠 곳이 있을 리는 없었다.
그렇게 때를 기다려 탈옥을 시도하였던 여명회 잔당 세력은 같은 수감자들에게 허무하게 막히고 말았다.
수감자가 폭동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은 IHA 요원들은 뒤늦게 플로렌스 교도소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상황은 종료된 이후였다.
‘…수감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수감자들을 제압하다니.’
IHA 요원 한 명이 헛웃음을 지었다.
빌런이 빌런을 제압한 꼴이라니.
그가 직접 현장에 오지 않았다면 절대 믿지 못했을 일이었다.
“저희도 인류를 위해 싸우고 싶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비록 범죄를 저질렀지만, 저 역시 인간입니다. 인간을 위해 싸울 겁니다!”
하지만 더 황당한 것은 따로 있었다.
폭동을 제압하였던 수감자들이 세상을 구할 기회를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군요. 제가 알기로 저 대머리 녀석은 분명히 고위험군 빌런이었을 텐데….”
“그냥 저희를 속이고 연기하는 게 아닐까요?”
“탈옥이 목적이었으면 굳이 기다리지 않고 진즉에 나갔었겠지. 방어 인원도 얼마 없었는데.”
IHA 현장 요원들은 그렇게 당황하는 반응을 보이다가 이내 결론을 내렸다.
자신들이 결정할 수 없으니 상부에 문의하자는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상부는 시원시원한 결정을 내렸다.
모범수에 한해 임시적으로 헌터 활동을 허락한 것이다.
“이거 괜찮은 건가?”
“뭐, 상부의 지시가 떨어졌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애초에 저 사람들 표정을 보십시오. 세상을 구하러 갈 수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열광하고 있습니다.”
“하긴, 저 표정이 연기일 리는 없겠지.”
의문을 표하던 현장 책임자는 이내 피식 웃었다.
‘이것도 교육의 효과인가.’
IHA에서는 빌런들의 사회화 교육에 대단히 힘을 썼다.
수감자들의 변화에는 이런 IHA의 교육이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
무려 9성급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한 4차 대격변은 원래라면 역대 그 어떤 대격변보다 피해가 커야 정상이었다.
던전의 수도 많아졌고 몬스터의 수준은 훨씬 높아졌다.
3차 대격변과 위험도를 비교하면 무려 32배 이상 차이가 날 정도였다.
그런데도 의외로 4차 대격변의 피해는 크지 않았다.
아니, 미미하다고 해도 좋을 수준이었다.
그리고 이런 결과에 가장 충격 받은 것은 다름 아닌, 4차 대격변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최상위 성좌, 파롤.
이제는 지구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파롤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가 선택한 최후의 수단이 지구에 대격변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죽음은 곧 그의 힘.
지구에서 많은 사람이 죽으면 그는 원래 힘을 되찾는 것은 물론이고, 더 강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가 기대했던 것과 정반대였다.
죽은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가 대격변을 일으키기 위해 쏟아부은 힘을 생각하면 이 정도 죽음은 아무것도 얻은 게 없는 수준이었다.
‘하등한 인간 따위가 어찌 신의 분노를 막아낸단 말인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그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파롤에게는 벌레만도 못한 것이 인간이란 종족이었다.
나약하고 오만하며 이기적인 그런 종족.
그런데 그런 인간이 실로 믿기 어려운 저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수많은 세계를 멸망시킨 9성급 던전 브레이크를 수월하게 막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대격변을 앞당긴 것은 그에게 있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투자였다.
본인이 가진 카르마의 전부를 투자하였는데, 만약 성공했다면 이 차원에서 독보적인 힘을 가진 절대 신이 될 터였다.
하지만 투자는 실패하였고 그는 힘을 잃었다.
그가 그토록 분노하던 박한새란 하등한 인간에게 복수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이런 그에게 한 명의 성좌가 찾아왔다.
본래 그와는 감히 대화도 나눌 수 없을 정도로 레벨이 낮은 성좌, 샬롯이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그가 노기를 드러냈음에도 샬롯은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실제로 샬롯은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지금의 파롤에게서는 이전과 같은 위압감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떠나세요.”
“이 차원에서 떠나라고요.”
파롤은 분노하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너무 황당한 말을 들은 나머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순간적으로 잊어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자신의 암흑 마력을 모아 샬롯의 목을 강하게 졸랐다.
“네년, 내 손에 죽고 싶어서 안달 난 모양이구나?”
“저 역시 성좌입니다.”
“성좌가 같은 성좌를 죽이려면 카르마가 필요할 텐데… 과연 그 정도의 카르마가 남아있나요?”
“…이년이!”
파롤은 더 강하게 힘을 주었다.
하지만 샬롯의 표정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마치 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듯, 당당하게 굴 뿐이었다.
결국에 파롤은 이를 갈며 힘을 풀 수밖에 없었다.
샬롯의 말처럼 파롤은 샬롯을 살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존재를 잃고 싶지 않으면 이곳을 떠나야 할 거예요.”
“존재를 잃는다고? 누가 감히 나를 공격한다는 말이냐. 아니, 설령 공격한다 한들, 누구도 나의 존재를 없앨 순 없다!”
“만약에 ‘그’가 지금보다 더 강해지면요?”
“그? 그가 누구를 말하는 거냐.”
“박한새죠. 당신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인간. 물론 지금은 인간도 아니지만….”
“겨우 인간 따위가 나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힘을 되찾으려면 최소 만 년 이상은 필요하지 않나요?”
파롤은 입을 다물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그는 이미 본신의 힘을 90% 이상 상실한 상태였다.
지금 상태로 만약 지구에 현신한다면 박한새를 이기기는커녕 그의 제자도 당해낼 수 없으리라.
“당신이 아무리 안전한 곳에 있어도 안심할 수는 없을 거예요. 지금도 경이적인 무력을 가진 그가 경지를 올린다면 그 힘은 신을 죽여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니까요.”
파롤은 샬롯의 말을 부정하고 싶었다.
이미 막강한 힘을 가진 박한새였다.
그런 박한새가 더 강한 힘을 가지게 된다니.
하지만 초절정 고수라는 경지가 끝이리란 확신은 없었다.
무공이란 힘은 늘 그의 예상에서 벗어났으니 말이다.
‘빌어먹을! 나 파롤이, 인간 따위가 두려워 도망쳐야 한단 말인가!’
치욕적이었다.
하지만 이게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는 힘을 잃었고 상대는 그 한계가 측정이 안 될 정도의 강자였다.
그리고 설령 박한새가 아니더라도 그가 도망쳐야 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이 차원에는 그를 적대하는 성좌들이 가득하였고 만약 그들이 그가 힘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면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떠났군. 그저 파멸밖에 모르는 오만하고 아둔한 악신이.”
샬롯은 사라진 파롤의 존재감을 느끼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 파롤을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이다.
그가 힘을 되찾을 때쯤, 그녀의 주군이 다시 깨어날 테니.
그리고 다시 깨어난 그녀의 주군은 절대 파롤이 되살아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파롤이 어디로 도망쳤든, 악착같이 쫓아가 멸할 여인이었으니까.
“샬롯아.”
“…카펠라 님! 드디어 깨어나신 거예요?”
마침 그녀의 주군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시간을 되돌리는 기적을 일으킨 뒤, 수년째 자고 있던 최상위 성좌, 카펠라가 말이다.
“‘그’는 어떻게 되었니?”
“카펠라 님의 뜻대로 되었어요. 세상을… 인류를 구했어요.”
깊은 잠에서 막 깨어난 카펠라는 샬롯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