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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6화 (6/300)

6화응우옌 서 쭈운(2)

매주 수요일 오전 아홉 시마다 열리는 그룹 본부 조간 회의.

한 주간의 매출 현황을 보고하는 이 회의에서 중공업, 건설, 조선 해양의 임원진들은 늘 웃는 얼굴이었다.

2008년 6월. 장치 산업의 전 세계적인 호황기였기에, 평소 부정적인 보고를 올릴 일이 없던 그들이었다.

그러나 오늘, 탄약그룹 본부 임원 회의실에는 조각난 살얼음 같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나 사장… KS 산업, 그거 어떻게 된 일이야? 자네도 보고 받았나?”

탄약 중공업의 박한이 사장이 탄약 건설 나덕술 사장에게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하… 미치겠어요, 선배. 현장에서 뭐라는 줄 압니까? 응우옌 전략실장이 암행어사처럼 나타나서 다 뒤집어엎었답니다.”

“응우옌? 우리 전략실장이 무슨 베트남 사람도 아닌데, 그게 뭔 개떡 같은 소리야?”

바로 옆자리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탄약 조선 해양의 성원식 사장. 잔뜩 피곤한 표정의 그가 듣기만 해도 짜증이 난 모양인지 대신 대답을 했다.

“거, 이사장 맏손주가 무슨 베트남 외노자로 변장하고 들어왔다잖아. 뭘 자꾸 물어.”

“하, 미치겠네…. 한씨 집안 사람들은 전생에 나랑 웬수를 졌나. 죄 이런 식이야.”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대는 중공업의 박한이 사장. 그는 꽁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는 조선 해양의 성원식 사장에게 책임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성 사장. 까놓고 말해서 그 플랜트 사업 말이지. 조선 해양 쪽이 주도한 게 맞지 않나?”

“하, 이 양반이. 그래서 뭐, KS가 내 탓이다? 나더러 뒤집어쓰고 어디 야산에 목매달고 죽어달라?”

격한 반응을 보이는 조선 해양의 성원식 사장. KS 산업이라는 회사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으나, 평소 한화기의 비자금 조성에 불만이 있던 그였다.

갑자기 책임의 화살이 자신을 향하자, 평소 쌓아둔 감정이 터지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그 격한 반응에 중공업의 박한이 사장이 한발 물러났다.

“아, 사람 참 극단적이긴. 중공업은 기껏해야 스끼다시 정도다 이거지. 그리고 철근 문제니까 건설 쪽 책임일 수도 있고.”

“아니, 선배.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KS랑 계약한 주체가 누군데 그런 소리를 해! 중공업 아니요?”

가만히 있다가 유탄을 맞은 건설의 나덕술 사장. 그는 자신의 입사 선배인 중공업의 박한이 사장을 노려보며 거칠게 화를 냈다.

“한화기 본부장 회장 만든답시고 설레발 친 게 누군데! 박 선배 아니냐고!”

“아이, 회장이고 뭐고 우리 중공업은 그냥 관리만 했다니까…. 아무튼, 태풍은 좀 피해 보자고, 쫌.”

작게 속삭이던 대화가 고성방가 수준으로 커지기 바로 직전. 회의실 입구에서 인이어를 낀 직원이 무언가 전달을 받았는지 마이크에 입을 대고 말했다.

“지금 서명희 이사장님, 한화기 재무 본부장님 올라오십니다.”

“아, 씨… 완전 쌌다. 피박 제대로 쌌어.”

귀에서 재차 무슨 소리가 들린 모양이었다. 오른손을 인이어에 가져다 댄 직원이 뒷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한서준 전략실장님도 같이 오고 계십니다.”

* * * *

-쾅!

회의실 문이 거친 파열음을 내며 열렸다.

안쪽으로 들어오자마자 탄약그룹 내에서 내로라하는 임원들의 직각 인사를 받은 서태후.

그녀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사람처럼 고개조차 까딱하지 않고는 정중앙의 자리에 앉았다.

서릿발보다 차가운 눈빛. 금속 테 안경 너머로 쏘아붙이는 듯한 그 눈빛에, 자리에 있는 누구 하나 말을 붙이지 못했다.

“쯧, 모자란 것들.”

“…….”

“다들 입술에 재봉질이라도 한 게야? 왜 시원하게 말하는 놈이 단 하나도 없어!”

겉으로는 임원들을 향해 사자후를 터트리고 있는 서명희 이사장. 하지만 실상 그 사자후가 향하는 대상은 달랐다.

썩은 우거지 같은 표정을 한 한화기에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공식적인 책임을 묻겠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중공업, 건설, 조선 해양. 당신들 셋 다 울산에서 뭔 짓거리를 하는 게야! 뭐? KS 산업?”

“죄송합니다, 이사장님. 계열사 내부에서도 지금 별도로 감사를 진행하려고….”

가장 찔리는 게 많은 탄약 중공업의 박한이 사장.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낸 그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어설픈 변명을 시작했다.

물론 제대로 이어나가기도 전에 서태후의 일갈에 바로 끊겨버렸지만.

“감사? 지금 자네 감사라고 했나?”

“예? 예! 그렇습니다!”

“그룹 본부 감찰팀도 못 잡아냈던 횡령 건을 계열사 내부에서 뭘 어쩌겠다는 게야!”

그룹 본부 감찰팀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한화기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자신의 수족인 유지원 감찰팀장을 통해 KS 산업을 이용한 비자금 조성을 감춘 그였기 때문.

연이은 서명희 이사장의 호통.

관련자들은 마치 방학 숙제를 하지 않은 꼬마처럼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고개가 다시 들린 것은, 이 살얼음판 위의 풍향계가 가리키는 방향이 바뀌고 나서였다.

“마침 잘 되었군. 이봐, 전략실장. 자네가 한번 말해 봐.”

“제가 말입니까?”

가만히 있던 한화기 재무 본부장의 눈에 불꽃이 들어왔다.

그룹 본부 회의에서 발언권을 준다는 것은, 그의 조카에게 대놓고 힘을 실어주겠다는 것과 동의어이니까.

“이번 KS 건 가지고 어사또 놀음한 게 자네 아닌가. 그룹 본부 감찰팀도 못 잡은 걸 자네가 잡았고.”

“사실 그렇긴 합니다. 사실 이번에 고생깨나 했거든요. 발로 뛰었으니까요.”

“생색은! 아무튼,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 어디 마음대로 다 털어놔 봐. 무슨 말을 할지 듣고 싶구먼.”

* * * *

서울에서는 전략실장이었지만 울산에서는 응우옌이었던 나.

굳이 베트남 출신 외국인 노동자를 연기해야 할 정도로 그룹 내부의 내 기반은 취약했다.

가지고 있는 건 한씨 집안 혈통과 허울뿐인 전략실장 명함뿐. 제대로 된 조직도, 인재도, 예산도 없었으니까.

KS 산업에 관한 모든 증거를 정리한 내게 선택지는 오로지 두 개뿐이었다.

① 그룹 본부 감찰팀을 통해 정식적인 루트로 처리한다.

② 서태후에게 직통으로 문제가 있음을 알린다.

어떤 조직이든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②번 방법보다는 ①번 방법을 택하는 것이 정석이다.

단순히 일름보 딱지가 붙어서 그런 게 아니다. 보고 체계를 어기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조직에서 마이너스 요소다.

나 또한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①번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만약 회귀 전처럼 돌아가는 꼴을 아무것도 몰랐다면 말이지.

‘…이런 방식으로 KS 산업을 통해 빼돌린 금액이 작년에만 200억여 원으로 추정됩니다.’

내 보고를 듣고 생각에 잠긴 듯한 할머니. 생각보다 격노했다거나 하는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차분하고 냉정한 모습으로 내가 가지고 온 자료를 재차 검토하는 모습만 보였다.

내가 처음으로 건드린 탄약그룹에 관한 일이다. 그저 단순한 내부고발에 지난 것이 아니다.

수렴청정이 끝나면 차기 회장을 낙점해야 하는 할머니가 바라는 것.

이번 건으로 서태후는 내게 회장의 자질이 있는지를 보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KS 산업이라. 그룹 본부 감찰팀에서 받아본 적이 없는 것인데?’

‘거기 수장이 쥐새끼입니다. 그래서 애초에 감찰팀에는 알리지도 않았고요.’

숙부의 사람인 유지원 감찰팀장을 쥐새끼로 칭한 나. 내 말을 들은 할머니는 아까까지와는 달리 사뭇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생선 가게 위치를 쥐새끼한테 말해주면, 그대로 고양이에게 일려 바칠 것이 뻔하지 않습니까.’

‘허어… 벌써 알고 있던 게냐? 유지원이가 누구의 사람인지?’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아주 당연하다는 듯 능청스러운 대답을 던졌다.

‘안 그래도 손에 든 패가 적어서요. 죽기 딱 좋은 베팅은 피하려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알 턱이 없는 일이다. 회귀 전 통수를 거하게 맞고, 감옥에서 왜 망했는지 분석하지 않았다면 말이지.

그리고 이 반문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KS가 숙부의 비자금 세탁기라는 것, 알고 계셨나 봅니다.’

‘철딱서니 없던 네 녀석에게 희망 따위 보이지 않았던 때부터 알고 있었지.’

회귀 전, 이 비자금은 숙부의 그룹 경영권 획득에 도움이 되었다.

문중회의 영향력까지 고려해야 하는 할머니 입장에서는 알고서도 눈을 감았어야 했던 상황.

대답을 마친 서태후는 나를 위아래로 스캔하듯 쳐다보았다. 마치 쓸 만한 물건에 대해 평가를 하는 듯한 모양이었다.

‘기본은 되어있군. 딱 기본 자질만 가지고 있어.’

‘평가가 박하시네요. 기왕 쓰시는 거 좀 더 쓰시지 그러십니까.’

‘택도 없는 소리. 서준이 네 녀석이 요사이 바뀌었다는 건 인정하나, 아직 턱없이 모자라다.’

팔짱을 낀 채로 콧방귀를 뀌는 할머니. 아직 불안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좀 더 큰 거 한 방을 보여줘야겠지.

‘우리 짠순이 할머님께서 팍팍 지르실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흥미가 생겼는지 눈을 치켜뜬 채로 나를 올려다보는 서태후. 할머니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 전에, 나는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수요일 그룹 본부 조간 회의. 거기에 참석하게 해 주십시오.’

‘손주 놈 간이 점점 붓고 있는 겐가? 감당이나 할 수 있긴 하고?’

감당? 그야 당연한 것 아닌가.

그룹 본부 조간 회의에 참석하는 이들은 얼굴만 딱 봐도 다 아는 사람들이다.

과거에 내가 꼭두각시였던 시절, 내 어설픈 춤사위를 보고 비웃느라 정신이 없었던.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싸구려 멍석만 깔아 주시지요. 그러면… 그 회장의 자질, 구경꾼들 앞에서 보이겠습니다.’

* * * *

회의실의 이목이 삽시간에 내 쪽으로 집중되었다. 건설의 나덕술, 중공업의 박한이, 조선 해양의 성원식.

다 아는 사람들이구먼.

그리고 이 세 사람, 회귀 전에는 몇 년 후에 사이좋게 횡령죄로 감옥에 갔다. 숙부에게서 토사구팽당한 채로.

“반갑습니다. 전략실장 한서준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KS 산업과 숙부와의 연관성을 폭로하고 싶다. 실제로 숙부를 그룹 승계 구도에서 배제하는 방법으로 시도할 법도하고.

“…….”

그러나 이건 글러 먹은 방법이다.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 이미 숙부가 KS 산업을 비자금 창구로 쓴다는 걸 알고 있는 상황.

그리고 탄약그룹의 안주인인 서태후는 이 사실이 외부로 새어나가는 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탄약그룹 재무 본부장이, 그것도 재벌가 사람이 돈 세탁기를 돌렸다라. 쓸데없이 냄새만 잘 맡는 검찰과 국세청이 난리 칠 것이 뻔했으니까.

“암행어사 놀이. 잘 하고 왔습니다. 외국인 노동자 신분으로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보이는 게 많았습니다.”

할머니가 원하는 회장의 자질.

단순히 업무 능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높은 위치에 선 사람은 아래의 이해관계자들이 움직이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넓은 시각으로.

대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인사이트(Insight), 통찰력이라고 부른다.

“총체적 난국. 아주 개판이더군요. 건설, 중공업, 조선 해양 3사 모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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