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장님의 핵몽둥이-7화 (7/300)

7화응우옌 서 쭈운(3)

“멍멍! 멍! 멍멍!”

그야말로 개 짖는 소리다.

중공업, 건설, 조선 해양. 사장 배지를 달고 있는 세 사람 전부. 무슨 개소리 합창단원으로 어디서 위촉이라도 받은 모양이었다.

그들은 모두 내게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허허… 전략실장님, 총체적 난국이라뇨? 저희 중공업, 그렇게 허술하지 않습니다.”

응, 아니야. 너네 앞으로 딱 2년 후, 중동에 깔아뒀던 채권 회수 못 해서 부도 엔딩이야.

“동의하기 어렵군요. 뉴타운 개발로 건설업은 호황입니다. 최근 아파트 분양 시장 동향은 완판 행진으로….”

서브프라임 금융 위기 터지고 서울 강남 지역에도 미분양 속출인 걸 알 리가 없지. 탄약 건설이 결국 상장폐지 당한 것도 알 턱이 없고.

“최근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넘었습니다. 고유가 시대입니다. 해양 플랜트 진입, 늦었지만 금방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그 잘난 유가가 겨울 되면 배럴당 50달러까지 떨어질 거라는 상상은 꿈에도 못 했겠지? 해양 플랜트 추진하던 회사들 죄다 골로 갔다는 것도.

KS 산업 건으로 유탄을 맞을 것 같으니, 사력을 다해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어필하려는 그들.

나는 이 개소리의 향연을 흐르는 강물처럼 한 귀로 흘려보내고는 숙부 쪽을 바라보았다.

“…….”

입에 강철 자물쇠라도 달렸는지, 팔짱을 낀 채로 아무런 말이 없는 숙부.

‘나는 아무것도 몰라용.’같은 저 얼굴을 보고 있자니 기가 막혔다.

마음 같아서는 주머니 속에 담긴 USB 파일을 꺼내 들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KS 산업과 한화기 재무 본부장의 커넥션이 여기 있다! 이 머저리들아!’

하지만, 지금은 숙부를 공격할 시간이 아니다. 공격은 아주 결정적인 순간, 잘 벼른 칼로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오늘은 그저 오로지 탄약그룹 회장 후계자로서의 내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무대일 뿐이다.

나는 양손으로 책상 가장자리를 잡고는 허리를 조금 숙여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대었다.

느리지만 낮은 목소리로. 자신감과 확신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개 짖는 소리. 잘 들었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말할 테니, 좀 닥쳐주시길 바랍니다.”

“뭐… 뭐라구요? 개 짖는 소리라니!”

또다시 무능한 개들이 짖어대는 것을 들을 필요는 없다.

이제부터 내가 던질 말에 그들은 머릿속 계산기로 손익을 따지느라 말할 시간조차 없을 테니까.

“KS 산업 건, 횡령 또는 배임으로 보지는 않겠습니다. 굳이 외부 회계법인 감사팀을 보낼 필요도 없고요.”

“지금 그게 무슨…?”

예상치 못한 내 대답에 놀라서였을까?

시끄럽게 짖고 있던 입을 다문 사장들과는 달리, 굳게 닫혀 있던 숙부의 입이 열렸다.

동그랗게 뜨인 눈은 내 꿍꿍이가 무엇인지 어서 알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사장님.”

나는 그런 숙부의 반응이 따위야 못 본 것 취급하면서, 시선을 할머니 쪽으로 맞추었다.

서태후, 왕관을 씌워 줄 자. 이제부터 나는 그녀에게 내 통찰력을 보여줄 것이다.

탄약그룹의 미래를 충분히 책임질 만한, 재목으로서의 통찰력을.

“KS 산업 건은, 재무를 방만하게 운용해도 될 만큼 중공업, 건설, 조선 해양 3사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전략실장, 자네 말은 저기 사장 딱지 달고 있는 세 놈이 밥값을 못하고 있다는 겐가?”

신경이 쓰인다는 듯 책상 위에 만년필 끄트머리를 톡톡 두드리는 할머니.

은테 안경 사이로 비쳐 보이는 서태후 특유의 안광이 내게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어디 밥값뿐이겠습니까? 아예 통으로 그룹을 말아먹으려고 하는 게 보이지 않으십니까?”

아까 전 사장들이 적극적으로 어필했던 내용과는 정반대의 말.

중공업, 건설, 조선 해양 3사는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대들보처럼 보인다, 지금은 말이다.

하지만… 딱 올해 겨울. 월 스트리트에서 불어온 찬바람이 서울을 덮치는 순간, 그 대들보 안에 썩은 나무 조각들이 여실히 드러나게 될 터.

“시작하세요.”

나는 회의실 내의 진행을 맡은 직원에게 가볍게 손짓했다. 미리 언질을 받은 그녀는 리모컨으로 빔프로젝터 화면을 켰다.

-팟!

화면에 드러나 있는 복잡한 데이터. 그러나 이 자리에 앉은 임원급들이면 누구나 이 자료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터.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현황. 그리고 여기에 연계된 파생 상품들입니다.”

“이… 이건 도대체 무슨!”

KS 산업과 관련해서 괜히 꼬투리를 잡힐까 봐, 입에 지퍼를 채우던 탄약 증권의 구석수 사장.

증권 업계에서 30년 이상을 보낸 그답게 자리에 참석한 그 누구보다 심각성을 인지한 모양이었다.

“시한폭탄이 터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 안에는 무조건으로. 다시, 이번엔 제가 개 짖는 소리를 내신 분들께 질문하겠습니다.”

“크흠….”

침통한 모습의 중공업, 조선, 조선 해양 3사의 사장들.

목에 깁스라도 한 듯 뻣뻣이 쳐든 고개는, 이미 가을 녘 벼처럼 겸손하게 수그러든 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비수처럼 꽂히는 내 물음.

“다가오는 위기, 대비는 하고 있습니까? KS 산업 건처럼 돈이 줄줄 새는 걸 막지 않아도 될 만큼 회사가 튼튼합니까?”

“…….”

튼튼할 리가 있나. 당장 금융위기가 찾아온다면 거액의 자본이 들어가는 사업은 올스톱이다.

그룹 차원에서도 이에 대비한 어떤 위험 회피 수단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

나는 꿀 먹은 벙어리들을 뒤로 한 채, 할머니에게 눈을 맞추었다.

“현 상황은 사상누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만간 파티는 끝납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이사장님께 건의 드립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서태후. 비록 입꼬리에 미동조차 없었으나,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가장 기본적인 회장의 자질을 입증했다는 것을. 그리고 수렴청정을 하는 이 냉철한 여인이 내 가치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하였음을.

“어디 한번 말해 보게.”

“모래밭 위에 세워진 탄약그룹이라는 성채, 지반을 어떻게 다질 것인지 전략실이 초안을 잡겠습니다. 예산과 인력을 주십시오.”

* * * *

-뚜벅뚜벅

거친 구둣발 소리가 텅 빈 복도에 울렸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기 전까지 불길한 발걸음 소리가 뒤따르는 이들의 마음을 긴장시켰다.

낯빛이 새하얗게 변한 한화기 재무이사.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자마자 가장 가까이 있는 중공업 박한이 사장에게 불똥이 튀었다.

“버러지 같은 새끼… 넌 뭐 하는 놈이냐?”

“…송구합니다, 본부장님.”

“멍청한 새끼. KS 산업 건 하나 똑바로 관리를 못 해서 이 사단을 만들어 놔!”

단순히 비자금 창구 관리를 못 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조카가, 본격적으로 발톱을 세우고 탄약그룹 회장 자리에 뜻이 있음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밝힌 것이다.

“본, 본부장님. 비자금 관련해서는 절대 알아채지 못하게끔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게끔….”

“이것 봐, 박한이 사장. 자네 지금 상황 돌아가는 꼴을 아직도 모르겠나?”

“예?”

수치심에 뺨을 벌겋게 붉히며 반문하는 중공업의 박한이 사장.

한화기는 그런 그가 답답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쪽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것이야. KS 산업과 비자금 연결고리를 안 밝히는 대가가 뭐겠어?”

잠시 찾아온 침묵. 고요함이 길어질수록 한화기의 인내심이 빠르게 바닥나고 있었다.

일그러진 얼굴을 한 그가 무어라 고함을 치려고 하는데, 뒤에 서 있던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중공업, 건설, 조선 해양의 무능을 제물 삼아… 한서준 비서실장이 왕관을 쓰려고 하는군요.”

컨설팅 회사 임원 출신으로 있다가 작년에 자리를 옮긴, 조선 해양의 성원식 사장.

외부 인원 출신이라서일까?

그는 내부 출신들보다 더욱 객관적인 눈으로 사안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나마 머리가 굴러가는 놈이 하나는 있군.”

“이번에 바로 본부장님을 공격하지 않은 까닭은, 타이밍이 적절치 않아서였을 겁니다.”

“옳게 보았다. 그래서 놈이 원한 것도 전략실 조직의 본격적인 구성이었고.”

예산과 인력.

새끼 호랑이나 다름없는 그의 조카. 발목에 묶인 쇠사슬이 풀리고 어깨에는 날개가 달린 꼴이었다.

등줄기에 불안감이 올라오는 한화기. 때마침 멈춘 엘리베이터에서 알림음이 울려 주의를 환기했다.

-띵동! 11층.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의 양 문이 열림과 동시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자들이 허리를 숙였다.

기존에 그의 개인 비서에게 지시한 바대로, 금융 쪽 계열사 임원들이 따로 모여 그를 기다린 것이다.

그리고 한화기의 눈에 들어온, 그의 세 자식까지.

“오셨습니까, 아버지.”

“회사에서는 호칭을 똑바로 하라 했거늘.”

맏이인 한서호 탄약 증권 리스크 사업부 팀장.

단순 실수였는지, 임원들 사이에서 혈통을 재확인시키고 싶어서인지, 그는 평소와는 달리 공석에서의 호칭을 잘못 불렀다.

자신이 실수를 지적했음에도 싱긋 웃기만 하는 맏이. 화를 내려던 한화기는 이내 그 속에 담긴 뜻을 알아채고는 아들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탄약그룹의 주인인 한씨 집안의 혈통. 감히 지지기반 없는 서자 따위가 혈혈단신으로 왕관을 쓸 수는 없다는 것을.

“소회의실에 준비해두었습니다.”

“그래, 큰아들아. 바로 가도록 하지.”

* * * *

양평.

호숫가 근처에서 낚시하던 중년 남성이 누런 서류 봉투에 들어있던 문서를 꺼내 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원철. 선대 회장의 친우이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심복이었다.

탄약그룹과 관련한 모든 것을 던지고 고향으로 내려간 그는 일부러 회사 일에는 신경을 쓰려 하지 않았다.

바로 지금, 이 순간까지는 말이다.

“히야… 이놈 자식 보게? 생각보다 물건인데?”

마치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하기라도 한 듯한 표정.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개구쟁이 소년 시절로 돌아간 모습과 같았다.

물고기가 떡밥을 물기라도 했는지 찌가 위아래로 마구 흔들리는데도, 그는 일절 낚싯대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겉으로는 피 끓는 걸 주체를 못 해 보이는데…. 이거 속에는 구렁이를 몇 마리나 키우는 거냐?”

서류에 적힌 내용은 바로 오늘, 탄약그룹 조간 회의에 대한 기록문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의미 없는 과격한 대사들의 나열에 불과했다. 그러나 김원철 정도 되는 이에게 숨은 행간이 읽히지 않을 리가 없었다.

“흠… 이를 어쩐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서류 자락을 넘긴 그는 낚시용 의자에 앉은 채로 기억을 되짚었다.

얼마 전, 서명희 이사장이 그에게 웬 보모 역할을 맡으라는 연락을 해왔다.

물론 곧장 거절했지만 말이다.

“마귀할멈이 맏손주라고 헛소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고 이 양반이 벌써 노망이 들었을 리도 없을 테고… 엇차!”

물고기의 거센 움직임에 고정된 낚싯대가 땅바닥으로 떨어지려는 순간, 김원철이 손을 내밀었다.

재빨리 팽팽하게 당겨진 줄을 돌렸다 풀기를 반복하는 상황.

마침내 수면 위에 큼지막한 가물치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주 힘이 센, 민물고기의 왕이.

“어따, 이놈 크기도 해라. 탁본 뜨면 기가 막히겠네.”

아이스박스에 물고기를 집어넣은 김원철. 어찌나 힘이 좋은지 팔딱거릴 때마다, 물방울이 옆에 놓인 서류 자락에 그대로 튀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잠시 고민에 잠긴 김원철. 늦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드는 강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올 때쯤, 그가 조끼 안에 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예, 이사장님. 김원철입니다. 응? 허허… 왜 욕부터 하고 그러실까, 증말.”

짐을 챙기는 김원철. 오늘따라 유독 아이스박스가 묵직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다른 건 아니고… 저번에 말씀하신 그거, 한번 해볼까 합니다. 한서준 전략실장 보모 노릇 말이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