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킬방원(3)
사막의 새벽녘은 제법 쌀쌀했다. 허공에 불덩이를 띄운 듯 무더운 낮과는 정반대로, 서늘함이 내려앉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찬 공기를 타고 은은하게 불어오는 모래바람. 정처 없이 떠돌던 바람은 인적 드문 언덕을 넘어 빈 살만 왕자의 저택 유리창을 두드렸다.
청금석과 금으로 칠해진 타일이 오밀조밀하게 깔린 긴 회랑. 그 양옆으로는 고풍스러운 미술품이 병정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그래서, 비서관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가? 그냥 가만히 있으라?”
회랑 사이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빈 살만 왕자.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그는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자신의 충복, 비서관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저 너무 일찍 발톱을 드러내신 것이 아닌지 염려될 따름이옵니다.”
“고작 해봐야 일개 시설관리관 자리에 불과하거늘. 군 병력과 관련된 부분은 내 일부러 피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답답함에 조금 언성이 올라간 빈 살만 왕자.
그리고 비록 새벽녘일지언정 행여나 듣는 이가 있을까 주위를 살피는 비서관.
한층 조심스러워진 그가 목소리를 작게 낮추어 입을 열었다.
“사촌 왕자님들 중 일부가 벌써 움직이고 있사옵니다. 감찰관 파견도 불사한다는 이야기가….”
“하! 지옥에나 떨어질 놈들! 하는 짓이 꼭 독사의 자식과도 같다. 조만간 알라신의 저주를 받겠군.”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비서관.
화들짝 놀란 그가 애타는 마음을 내보이며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왕자에게 다시금 주의를 주었다.
“왕자님, 부디 말씀 하나하나를 조심하셔야 하옵니다. 궁중에는 벽과 천장에도 귀가 달린 법이오니.”
“놈들이 점점 내 목을 조여오고 있는 건 사실이지 않은가? 종국에는 내 눈앞에 시퍼런 독니를 들이밀며 이렇게 묻겠지.”
빈 살만 왕자는 복도를 지나 정원으로 연결된 유리문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서산 너머로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일출.
새벽녘의 짙은 어둠이 물에 갠 듯 옅어져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정원 가로등 아래 수북이 쌓인 날벌레 사체들.
지난 밤사이, 제 죽을 것도 모르고 환한 불빛에 매혹되어 몸을 던진 미물들의 모습.
자신의 미래가 될지도 모르는 그 잔해를 본 빈 살만 왕자가 분노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권력. 그 일렁이는 불빛에 홀린 어리석은 자의 최후를 정녕 몰랐느냐고.”
“…….”
“독사 놈들의 더러운 이빨에 숨구멍이 막히기 전, 차라리 저렇게 몸뚱이라도 던져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대형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아침 기도 소리와 함께 어느덧 붉게 타오르기 시작한 사막의 대지.
복도 안쪽, 저택의 가정부 거주구역에서 점점 인기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점점 커져 오는 발걸음 소리만큼이나 조급해진 비서관의 속마음.
혹시나 가정부들 가운데 사촌 왕자들의 첩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기에, 비서관은 황급히 주제를 돌렸다.
“오전부터 외부 일정이 꽉 차 있으시옵나이다. 부디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리소서.”
“…알겠다. 자중토록 하겠다. 해서, 오늘의 첫 번째 일정은 무엇이지?”
안도의 한숨을 내쉰 비서관.
제 주인이 끓어 넘치는 혈기를 마냥 분출하지만은 않으니 그제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덥수룩한 흰 수염을 쓰다듬은 비서관이 품속에서 일정이 적힌 수첩을 꺼내었다.
“한국의 탄약그룹이라는 기업에서 왕자님을 뵙고자 청했사옵니다.”
“탄약그룹? 아아, 그 방산업체 말이로군. 우리 쪽에도 잡다한 것을 팔려는 셈인가.”
탄약그룹.
분명 일전에 들어본 회사였다.
최근 이라크 쪽 군수품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려 한다는 회사.
비서관으로부터 이번 방문객의 프로필을 건네받은 빈 살만 왕자.
내세울 것 없이 휑한 동갑내기 전략실장의 이력을 본 그의 미간이 좁혀졌다.
“탄약그룹. 전략실장 서준 한이라. 그쪽 오너 가문의 사람인가?”
“그러하옵니다. 선대 회장의 아들이자 현 이사장의 맏손주라 하옵니다.”
“보아하니 핏줄만 있고 실력은 없는 자 같은데, 굳이 이자를 만나야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머릿속이 복잡한 탓에 오전 일정을 전부 취소하려 하는 빈 살만 왕자.
조금 바람을 쐬고 싶었기에 그는 유리문 바깥으로 나아갔다.
때마침 정원 화로 옆에는 나무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후우….”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빈 살만 왕자. 그는 비서관으로부터 편지 하나를 건네받았다.
“뭐지? 이 편지는?”
“앞서 말씀드린 탄약그룹의 서준 한 전략실장이 동봉한 것이옵니다. 꼭 비밀리에 전해달라 하였나이다.”
“흠….”
무심한 얼굴로 받은 편지를 읽는 빈 살만 왕자.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화로 안 장작불이 잠시간의 침묵을 메꾸었다.
그때, 뜨거운 태양이 대지를 충분히 덥히자, 물통을 든 가정부 한 사람이 장작불을 끄려고 다가왔다.
“이봐, 잠깐!”
편지를 모두 읽은 빈 살만 왕자가 황급히 가정부를 가로막았다.
그리고 아직 남은 불씨 위로 던져진, 저 멀리 동양에서 온 편지지.
상기된 얼굴의 빈 살만 왕자. 그가 고개를 돌려 비서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당장 만나도록 하겠다. 탄약그룹의 서준 한 전략실장.”
“왕자님?”
검은 그을음을 내며 타오르는 편지지. 아직 잿더미로 변하지 않은 한 구절에 시뻘건 불씨가 점점 다가가고 있었다.
-제가 왕자의 난에 필요한 칼이 되어드리겠습니다.
* * * *
흰색의 아랍 전통의상을 입은 빈 살만 왕자.
그는 간단한 인사말을 나눈 후, 곧장 본론을 꺼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호위 병력을 물려라. 이자들과 따로 나눌 이야기가 있다.”
“왕자님. 그건 왕실 규정상….”
“어서!”
떡대 좋은 경호실장에게 축객령을 내린 빈 살만 왕자.
행여나 자신의 정적들에게 여기서 나눌 이야기가 흘러나가지 않게 조심하는 모양새다.
방문이 닫히고 나서도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는 것까지 확인하는 모습을 보일 정도였다.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던 그가 마침내 굳게 닫힌 입을 열었다.
“감히 네놈이 내게 반역을 종용하고 왕가를 욕보이려 하였는가?”
당장이라도 내 목을 칠 것만 같은 분노를 연기한 얼굴.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빈 살만 왕자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그리고 그가 그려가고자 하는 이 나라의 미래가 어떤 것인지를.
“해볼 만한 반역이고, 욕보일 만한 왕가라 생각해서 그리 적었습니다만.”
“뭐라?”
“석유 시대가 끝나면 망할 왕가 아닙니까? 제대로 된 주인이 나타나 제때 기생충을 박멸하지 못한다면.”
분명 회귀 전, 빈 살만 왕자는 개혁에 방아쇠를 당겼다.
석유 산업에 의존하는 것을 최대한 벗어나려 몸부림치던 모습.
구태를 혁파하고 세속화의 단초를 마련하려던 모습으로 미루어 볼 때… 분명, 이 사람에게는 권력욕 그 이상의 것이 있을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이 유사 신정 국가에 희망이 있긴 합니까?”
옆에서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다가 졸지에 눈이 휘둥그레진 김원철 아저씨.
도발과 모욕에 가까운 내 발언에 먹고 있던 말린 대추야자가 목에 걸리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끄윽… 켁켁켁!”
아직 반역죄로 교수대에 목이 메달린 것도 아닌데, 거한 기침 소리를 내는 김원철 아저씨.
나는 식탁 위에 놓인 물병을 친절하게 건넸다. 그리고는 빙그레 웃음 지으며 다시금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편지에 대한 답은, 오늘 들을 수 있는 것인지요? 보시다시피 일행의 몸과 마음의 상태가 영 좋지 못해서.”
“하! 어처구니가 없는 자로다.”
입 밖으로 내뱉은 말과는 달리, 머릿속 사정은 복잡한 모양인지 생각에 잠긴 빈 살만 왕자.
방 안에는 오로지 사자 조각을 새긴 벽시계의 추가 양옆을 오가는 소리만이 있을 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태양이 하늘 높이 떠 모래사막 위를 충분히 달굴 때쯤, 바깥에서 기도를 알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알라신은 가장 위대하시나니, 증언컨대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도다!
분명 기도 시간임에도 빈 살만 왕자는 카펫 위에 엎드리지 않았다. 가만히 앉은 채로 깍지 낀 손을 풀지 않은 그.
그리고 바뀐 왕자의 표정. 아까와는 달리 불필요한 연기 따위는 걷어치우겠다는 의지가 눈에 담겨 있다.
마치 지금 이 기도 시간이 자신의 결심한 바를 이야기하기 적당한 때라도 된다는 듯이.
“그대는 내게 칼이 되어 주겠노라 적었다. 왕자의 난에 필요한 칼이.”
고개를 끄덕인 나.
빈 살만 왕자가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원치 않는다. 무엇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지를 고하라.”
“저희가 이라크군에 제공하기 위해 선적해 둔 군수 물자가 있습니다.”
나는 김원철 아저씨에게 손짓으로 서류가방 안쪽 서류를 꺼낼 것을 지시했다.
누런 봉투 안의 서류에는 탄약 중공업의 선적증권 사본 한 장이 들어있었다.
-소총 450정, 경기관총 80정, 차륜형 장갑차 서른 대와 대전차 미사일, 운용에 필요한 탄약 수천여 발.
본래 이라크군에 보내야 할 무기 목록.
하지만 조만간 있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ISIL이 창궐한다면, 이 무기에 대한 대금을 제대로 받게 될 날은 앞으로 오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감옥에서 회귀했던 그 날까지는.
“참 우연히도 말입니다. 이라크 가야 할 이 선박이… 갑자기 엔진 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아니, 생길 겁니다. 그것도 사우디아라비아 영해 내에서요.”
이미 해당 선박 내에서 엔진을 다루는 기관사는 매수해 둔 상황.
나는 빈 살만 왕자를 향해 오른손을 쭉 뻗었다.
온전히 핀 다섯 개의 손가락. 그것은 내가 이 야망 넘치는 아랍 왕자님에게 줄 수 있는 기한이었다.
“닷새. 딱 닷새 후 사우디 주베일 항구에 이 선박이 입항합니다.”
왕자의 난을 위한 모든 준비는 나로 인해 온전히 갖추어진 상황.
심지어 주베일 항구 근처 바레인에는 미리 선금을 지급한 PMC(민간군사기업) 일원들까지 준비가 되어 있다.
“하… 하하.”
헛웃음을 내뱉는 빈 살만 왕자.
당혹스럽겠지. 하지만 기쁘기도 하잖아?
어서 내가 내민 손을 잡아.
당신에게도 갑작스레 찾아온 이 기회가 그럴듯해 보이잖아.
원래대로라면… 앞으로 10년 가까운 시간을 왕가의 정적들에게 견제받으며 발톱을 숨겨야 할 테니까.
“후우… 미쳤군. 완전히 미쳤어. 자네 본국에서 치를 뒷감당이 만만치 않을 텐데?”
“저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세력에게 물자를 탈취당한 것 아니겠습니까? 일종의 피해자입니다. 공식적으로는.”
“그런 식으로 진행하겠다라….”
금을 조각해 만든 탁자에 손가락을 올려 톡톡 소리를 내는 빈 살만 왕자.
바깥에서 울려 퍼지는 기도 소리는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묵직한 쇳소리와 함께 잦아 들어가는 신을 향한 찬미의 낭송.
왕자가 입을 열었다.
“이 또한 신의 뜻인가 보군.”
“그러리라 믿어야지요.”
“신을 믿지도 않는 자가 말은 잘하는구나.”
결심을 마친 빈 살만 왕자.
그가 내게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이 오른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그저 예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 온전히 한배를 탄 동지를 대하듯이.
“반대급부는 무엇이지? 탄약그룹, 그리고 그대가 원하는 것을 말하라.”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