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장님의 핵몽둥이-21화 (21/300)

21화왕자의 난(1)

깍지 낀 양손이 천장의 샹들리에를 향한 채 시원하게 우두둑 소리를 냈다.

그리고 내 귀에 들려오는, 장난치듯 과장되게 앓는 소리.

“으아! 어우, 오늘 진짜 간만에 일 빡세게 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숨 좀 돌리시지요.”

김원철 아저씨는 능력이 좋다.

분명 실무를 손에서 놓은 지 제법 되었을 텐데도, 내가 요구한 자료를 일일이 분석하고 정리하는 데 며칠 걸리지 않았으니까.

이곳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 왕궁 바로 옆에 자리한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

냉각팬 소리가 돌아가는 노트북 두 대 옆에는 룸서비스로 시킨 수많은 간식의 잔해가 널브러져 있었다.

“뭣 좀 더 드실 겁니까?”

“당 떨어졌으면 또 먹어서 채워야지. 디저트 추천 좀.”

금으로 장식된 도자기 그릇.

달그락 소리를 내며 뚜껑을 연 나는 김원철 아저씨에게 안에 든 내용물을 내밀었다.

“대추야자 말린 건 이제 안 드십니까? 저는 그거 맛있던데.”

“하! 나 저번에 그거 먹고 나서 체했잖아. 목숨 여러 개 가지고 다니는 우리 실장님 때문에.”

괜히 투덜거리는 소리를 내며 초코 마카롱을 집어 입 안 가득 욱여넣는 김원철 아저씨.

말린 대추야자에 정말 단단히 학을 뗀 건지, 그쪽으로는 눈길조차 일절 주지 않고 있다.

며칠 전, 빈 살만 왕자와 첫 만남에서 나누었던 화기애애한 대담이 영 부담스럽긴 했던 모양이다.

“난 그때 체를 두 번 했다니까? 한번은 사우디는 망할 왕가다, 무슨 유사 신정 국가다, 어쩌고 했을 때고.”

돌이켜 보니 그때 좀 많이 놀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목이 메여 캑캑거리며 물을 찾는 리액션도 워낙 인상 깊었고.

“다른 한번은…. 하, 남의 나라에서 쿠데타를. 아니, 왕자의 난을 벌이려고 한 거. 정말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야?”

“확신이 있었으니까요. 빈 살만 왕자라는 사람에 대한 확신이. 그리고 권력의 속성에 대한 확신까지도.”

일부러 미륵불처럼 인자한 미소를 입가에 띄운 나.

빈 살만.

이 양반이 끝끝내 권력을 잡은 모습을 미래에서 보고 왔다고는 말할 수는 없으니, 일단은 얼버무리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기에 그런 내 웃음을 본 김원철 아저씨가 할 수 있는 것은 고개를 양옆으로 가로젓는 것뿐이었다.

“잘나셨수다. 아무튼…. 우리 실장님이 말한 그거, 분석 다 끝냈어. 지금 바로 볼 텨?”

“아아, 드디어 나왔습니까? 그럼 어디….”

요 며칠 동안 단 한 번도 전원이 꺼진 적이 없던 노트북 화면.

나와 김원철 아저씨 두 사람의 땀방울이 맺은 결실이 눈에 들어왔다.

엑셀 시트 안쪽 가득 들어찬, 겉으로 보기엔 복잡하지만 내역 하나하나를 따지고 보면 더없이 깔끔한 계산식들.

회계 장부 위에서 여봐란 듯이 존재를 드러내는 그 모든 숫자는, 며칠 전 빈 살만 왕자로부터 약조 받은 바를 명백히 가리키고 있었다.

-향후 예상되는 매출액의 현재가치 환산 금액: 미화 750억 달러(약 90조 원)

“허어…. 이건 정말 믿기지가 않을 정도네요.”

“흐흐흐…. 난 처음에 내 계산이 틀린 줄 알았었다니까? 뒤에 0 하나가 더 붙어 있더라고.”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지 않을 수 없는 거액.

정말이지 기름국 만세, 오일머니 만세다.

“앞으로 방산 부문은 최소 20년 동안 끄떡없겠어요.”

“막가파식으로 계산해도 연 매출이 최소 4조 5,000억 원. 이 정도면 한국 국방부 고관대작들도 네 앞에서 절대 함부로 못 할 거다.”

“그렇겠죠. 심지어 이거 다 외화로 받는 건데.”

“그러면…. 읏차, 이제 나는 노동의 대가를 받아야겠다.”

호텔 냉장고에서 비싼 와인을 골라잡아 뚜껑을 여는 김원철 아저씨.

그래, 인정.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리 비싼 술도 마음껏 마실 자격이 충분하다.

나 역시 자연스럽게 유리잔 두 개를 집어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크하! 어우, 좋다야.”

목덜미에 떡갈나무 향이 진하게 밴 붉은 포도주가 지나가고 난 후, 포도주만큼이나 붉은 이마의 대머리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하여간, 빈 살만 그 양반 통도 진짜 커. 거기다 사우디군 내부 사정도 우리 쪽에 유리했고.”

“뭐, 그렇죠. 설마 그렇게 개판이었을 줄은 몰랐지만요.”

유리잔이 서로 부딪치며 들려오는 경쾌한 소리.

기쁨의 건배를 만끽한 나는 며칠 전, 빈 살만 왕자의 저택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 * * *

사우디는 유사 신정 국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와 돌이켜 되짚어 보자면, 그 문장은 순도 100% 사실에 기반한 것이었다.

‘정말 사우디 국방개혁 전반을 탄약그룹이 총괄해도 되겠습니까? 저희는 사우디에게 있어 어디까지나 외국계 기업에 불과합니다만?’

‘애초에 요구한 것은 그대가 아니던가? 이제 와 점잔을 떨어 봤자다.’

‘뭐,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리고 나는 사우디 국방부 관료들의 처참한 수준을 알고 있다.’

사우디군.

심각한 부패와 전문성의 부재로 똘똘 뭉친, 중동판 당나라 군대.

단순히 무능이라는 두 글자만으로 이들의 작태를 설명하기에는 단어가 가진 표현력이 부족할 정도였다.

‘후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쉰 빈 살만 왕자.

내가 어떤 발작 버튼을 누르기라도 한 걸까?

자신이 몸담은 나라를 진심으로 아끼는 듯한 이 젊은 개혁가의 말문이 봇물 터지듯 열렸다.

‘아니지. 관료 이전에 왕족부터가 글러 먹었군. 내 백부님 되시는 정보부장께서는 예전에 미군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거든.’

사우디 정보부장. 한국으로 치자면 국가정보원장에 해당하는 자리.

마치 성대모사를 하듯, 빈 살만 왕자는 늙고 바람 빠진 백부의 목소리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우린 작전 같은 건 안 해. 어떻게 하는지도 몰라. 우리가 아는 건 그저 수표를 써 주는 정도지.’

‘…….’

상식을 뛰어넘는 기가 막힌 발언에 잠시 할 말을 잃은 나.

이러니…. 세계에서 세 번째로 국방비 지출액이 많으면서도 사우디군 상태가 엉망이었구나 싶었다.

답답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빈 살만 왕자가 재차 하던 말을 연이어나갔다.

‘아쉽게도 나 역시 군사 분야에 전문성이 없다. 할 줄 아는 것 또한 수표를 쓰는 것뿐이고.’

말을 마침과 동시에 오른손을 앞으로 뻗은 빈 살만 왕자.

자신의 언행에 무한한 확신을 담은 그의 검지가 내 쪽을 향했다.

‘하지만 그 수표를 제대로 쓰는 방법만은 알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개혁의 절반은 이룬 셈이지요.’

믿을 수 없는 정부 관료.

이들에게 또다시 예산이라는 생선을 던져줘 봐야 결과물은 또다시 당나라 군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차라리 제대로 된 고양이를 불러와 생선을 맡기는 편이 낫다는 판단.

그것이 설령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국가의 외국계 민간 방산업체일지언정.

‘현실이 이러하니 내 탄약그룹에 수표를 줘야 할 수밖에. 가진 건 달러와 석유뿐인, 어찌 보면 가여운 나라라 할 수 있다.’

‘…믿고 맡겨주신다면, 지급하실 금액 이상의 성과로 되돌려드리겠습니다.’

가진 게 달러와 석유라면, 이미 다 가진 것 아닌가 싶지만, 그때는 영업 중이고 하니 딴죽을 걸지는 않았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도 상상을 뛰어넘는 대화. 손에 든 와인잔을 내려놓은 내가 김원철 아저씨에게 말을 건넸다.

“후우, 이쯤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할 일이 다가오고 있으니까요.”

“뭐, 슬슬 우리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겠지. 어우, 살 떨려.”

빈 살만 왕자와 있었던 회상을 마친 나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김원철 아저씨 역시 언제 포도주를 마셨냐는 것처럼 다시 긴장의 끈을 부여잡기 시작했다.

금요일 저녁.

그날 저택에서의 만남이 있고 난 후, 닷새의 시간이 지난 상황.

호텔 스위트룸 한쪽에 놓인 괘종시계가 가리키는 숫자는 점점 약속의 시간에 가까워져 갔다.

“마지막 저녁 기도 10분 전이라고 했지요? PMC(민간군사기업)의 수도 진입 시각이?”

“그랬지. 이제 슬슬 입질이 올 때가 된 것 같은…. 으앗! 깜짝이야!”

-탕! 탕탕!

유리창 너머 바깥에서 들려오는 총소리.

수류탄과 기관총 같은 대형 화기까지 전부 동원한 모양인지, 중간중간 터지는 폭발음이 마치 지진처럼 방안을 울렸다.

미리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내용으로 벌어진 일이지만, 실전이 주는 긴장감은 그 무게가 달랐다.

“으허… 심장 떨어질라.”

“좀 괜찮으십니까? 군대도 빡센 곳 갔다 오신 분이….”

“내가 화약 터지는 소리 들은 게… 아마 30년 전이었던가? 오래도 됐네. 놀랄 만도 하지.”

“그나마 저는 두어 달 전에 예비군 가서 듣고 왔습니다. 오늘 마음껏 들으십시오.”

-실제 상황! 실제 상황! 전 병력은 당장 부대로 복귀할 것! 실제 상황! 실제 상황!

경보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한 시가전.

커튼을 들춰 아래를 내다보니, 벌써 장갑차를 탄 PMC 인원들이 굉음을 내며 왕궁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었다. 탄약그룹의 무기로 중무장한 채로.

“드디어… 방아쇠가 당겨졌다.”

유리창에 담긴, 사막을 배경으로 왕자의 난을 그린 한 폭의 그림.

어두운 밤이 내려준 그 그림에 내 굳은 얼굴이 비쳤다.

가만히 손을 뻗은 나는 창문에 서린 김과 함께, 불안한 감정까지도 함께 지워버렸다.

긴장할 필요 따위 없다. 모든 것은 전부… 내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지금 방송하고 인터넷 터집니까? 바로 확인해보세요!”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통신망.

이 난리통에 빈 살만 왕자의 세력이 확실하게 주도권을 잡고 있다면… 분명 국내 통신망부터 틀어쥐었을 것이다.

“잠깐만!”

황급히 TV를 켜고 노트북에 잭을 연결하는 김원철 아저씨.

왕자의 난, 그 성공 여부를 가르는 리트머스 시험지의 색깔이 불그스름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방송은 아예 안 나오고, 인터넷은… 와이파이, 유선 인터넷 둘 다 안 터져. 한국 통신사 로밍도 안 돼.”

분명 통신 기간시설에 무언가 타격이 있기는 한 모양이었으나, 장악했다고 확언할 수 없는 상황.

호텔 방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왕궁 입구에는 거센 불길이 올라와 전황이 돌아가는 것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아직인가… 이제 곧 시작할 때가 되었는데.”

거세게 뜀박질하는 심장.

괘종시계 시계추가 똑딱거리는 소리에 숨이 터질 듯이 막혀온다.

바깥 풍경만큼이나 혼돈으로 가득 찬 머릿속은 한계치까지 팽팽하게 긴장의 고삐를 쥐었다.

그 순간 풍선처럼 부푼 이 긴장감을 터트린 작은 바늘 하나.

병정 인형처럼 철커덕 소리를 내며 한 발 앞으로 나아간 시침이 정확히 숫자 7을 가리켰다.

-뎅! 뎅! 뎅!

투박한 금속음을 내며 울리는 괘종. 그와 동시에 바깥의 대형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저녁 기도 소리.

-알라신은 가장 위대하시나니, 증언컨대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도다!

그날 사우디아라비아 옥좌의 주인을 바꾼 것은, 신의 뜻을 기리는 찬미곡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총성과 함께 10분여간 계속된 기도의 의식.

그 짧은 시간 동안, 마치 거짓말처럼 염원하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신의 뜻에서 사람의 뜻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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