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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22화 (22/300)

22화왕자의 난(2)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로 진입하는 고속도로.

뿌연 흙먼지와 함께 모래바람이 흩날리고 있다.

당장이라도 도시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듯한 모래바람.

그 혼탁한 시야 한가운데 보이는 것은, 빠른 속도로 줄지어 이동하고 있는 차륜형 장갑차 수십여 대였다.

“총원 전투 준비! 수도 진입과 동시에 신속하게 산개한다! 끝까지 긴장 풀지 말고 작전대로 하도록!”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푸른 눈의 서양인 남성.

PMC(민간군사기업)의 지휘관 자리에 있는 그가 무전으로 각 팀장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A팀은 곧바로 왕궁으로 진격한다! B팀이 통신 집중국을 마비시키는 동안, C팀은 내각 청사를 장악한다!”

곧바로 지지직거리는 무전기 소음 사이로 각 팀장의 복명복창이 이어졌다.

“라져.”

“오케이, 캡틴.”

“확인 완료.”

차량 앞, 방탄유리 너머로 보이는 수도 리야드의 황량한 풍경.

모래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고층 빌딩 숲에서 하나둘씩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휘관의 앙다문 아랫입술 사이에서 짤막한 탄식이 새어 나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작전이 실제로 진행된다는 게 믿기지 않는군….”

무전기에서 입을 떨어트린 지휘관. 그의 표정은 석상처럼 굳은 상태였다.

쿠데타. 왕자의 난.

그것도 어디 아프리카의 소규모 정부 정도가 아닌,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의 권력 구조를 물갈이하는 작업.

명백히 불가능해 보이는 이 작전은 베테랑 군인인 그에게도 기이할 만큼 쉽게 진행되고 있었다.

“캡틴, 빈 살만 왕자가 사우디군 시설관리관으로 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지휘관의 옆자리에 앉은, 방탄조끼 차림의 곱슬머리 사내.

작전과장 포지션의 그가 주베일 항구에서 보급받은 한국제 소총에 탄알집을 끼웠다.

철컥, 둔탁한 금속음과 함께 그가 입을 열었다.

“물자 하역부터 연료 급유, 검문소 통과, 사우디군 상급 부대에의 보고 누락까지.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습니다.”

주베일 항구에서부터 이곳 수도의 초입까지.

모든 군 시설을 거치는 동안 사우디군은 의도치 않게 이들 PMC의 진격을 도운 꼴이 되었다.

빈 살만 왕자. 군 시설관리관 직위에 있는 그가 발급한 통행증의 힘이었다.

“자기네들이 우리 반란군… 아니, 혁명군을 도왔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겠지.”

“무능한 적만큼 훌륭한 아군은 없으니 말입니다. 그나저나 캡틴, 이런 작전은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신 겁니까?”

“…….”

작전과장의 물음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지휘관.

그는 머릿속으로 이 쿠데타의 골자를 기획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의 조카뻘이나 될 것처럼 보이던 젊은 동양인 청년.

마치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예견이라도 한 것만 같은, 그 자신감에 찬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항구에서 하역된 장갑차에 사우디군 용병부대 마크를 붙이면 됩니다. 수도 도착 전까지는 그 누구도 저지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생생한 그 목소리.

과감했다. 아니, 무모했다. 불가능한 것처럼 들렸었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입금한 착수금도, 작전 성공 시에 뒤따를 거액의 사례금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D-day 당일, 왕궁 연회장에 왕실 행사가 있습니다. 사우디 국왕을 포함한 그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을수록 점점 구체화 되는 작전 계획.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걸까?

마치 군용 지도 위에 펜으로 진격로를 그려가듯 전개되는 그의 설명에 의구심은 확신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빈 살만 왕자에게 받아왔다며 직접 자신에게 쥐여준 통행증.

그 전가의 보도를 손에 넣는 순간, 지도 위에 그려진 이 불가능해 보이는 작전은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

“캡틴?”

“아아, 그래. 이 작전 계획 말인가? 그러니까….”

부하의 물음에 지휘관은 자신의 목에 걸린 통행증을 꼭 쥐었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바깥.

옆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꼭 전장에 나가기 전 묵주를 쥐고 기도하는 중세의 병사 같았다.

다시 앞을 바라본 지휘관. 숨을 깊게 토해낸 그가 작전과장에게 물음을 던졌다.

“자네 혹시 독일의 프리드리히 대왕이 했던 말 알고 있나? 전략가에 대한 명언.”

“아무리 전쟁을 많이 치른들 노새는 노새에 불과하다. 전략의 중요성을 논할 때 자주 쓰는 격언 아닙니까.”

“그렇지. 노새…. 나는 내가 나름 전략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노새에 불과하더군. 진짜 전략가는 따로 있는 법인가 보더군.”

“캡틴?”

어둠 너머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도시의 불빛.

수도 진입로에 마련된 검문소에는 보초를 선 헌병이 랜턴을 들고 검문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 불빛의 이름은 무엇이 될까?

곧 다가올 새로운 세상을 환영하는 등대의 신호등일까?

아니면 숱한 날벌레가 죽음을 알고서도 부딪혀대는 가로등일까?

“뭐, 그 젊은 동양인 전략가는 가로등을 신호등으로 만들 자이기도 하겠군.”

줄지어 달려가는 차륜형 장갑차 서른 대. 마치 레이싱 경기에 나서기라도 한 것처럼 장갑차의 속도가 줄어드는 일은 없었다.

점점 가까워져 가는 검문소.

맨눈으로도 보이는 헌병 병사의 얼굴에 짙은 당혹감이 서려 있다.

-정지! 정지하라!

“최고 속도 유지하고 그대로 밀어붙여! 일체의 교전 없이 각 팀별 작전구역으로 진입한다!”

철판을 두른 육중한 장갑차의 돌진에 사색이 된 채 옆으로 몸을 내빼는 헌병 병사.

땅을 뒤흔들 정도의 강한 파열음.

검은색과 노란색으로 연달아 칠한 목재 바리케이드가 산산조각 난 채 허공에 흩뿌려졌다.

-쾅!

“캡틴! 전 부대원 수도 진입 완료했습니다! 현재 시각 18시 45분. 전력 손실 일절 없음!”

“계속 이동해! 전속력으로! 나는 왕궁으로 가는 A팀과 행동을 함께하겠다! 모두 건투를 빈다. 이상!”

저 멀리 눈에 보이는 웅장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왕궁.

흰색의 석재를 쌓아 올려 만든 이 나라의 중심부 바로 옆에는 현대식 호텔이 한 채 있었다.

덜컹거리는 장갑차의 진동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지휘관의 맥박이 마구 내달렸다.

저 호텔 창가 어딘가에서 이 난리통을 지켜보고 있을 그 동양인 전략가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 * * *

그 시각.

장갑차가 돌진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평창동 저택에서는 그에 못지않게 큰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왕방울만 하게 튀어나온 김성혜의 두 눈. 하나뿐인 아들에게 일어난 비보를 접한 그녀는 자리에 주저앉은 채로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청주댁, 그게 무슨 소리야? 사우디에서 쿠데타라니! 그럼 우리 서준이는!”

“사모님 진정하고 일어나셔유….”

“지금 내가 어떻게 진정을 해? 우리 서준이… 서준이가 어떻게 되기라도 하면!”

사실 그 쿠데타는 김성혜 그녀의 하나뿐인 아들이 일으킨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전후 사정을 알 리가 없는 상황.

마침 자산 투자 운용 상담차 평창동 저택에 있던 유세나 과장이 김성혜를 부축하며 입을 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 한서준 전략실장님… 어쩌면 다 알고 가셨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 그건 무슨 소리야? 우리 서준이가 어째서….”

유세나 과장은 그룹 조간 회의 당시, 발표를 마친 직후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라크군 군수품 조달권 건으로 맹공을 받던 그녀의 나이 어린 상사.

자칫하면 기껏 우세를 점하던 판세가 뒤집힐 상황인데도 한서준은 초연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그저 확신에 찬 말 한마디를 던질 뿐이었다. 마치 이 상황에 대처할 정답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큰 문제는 아니네요. 그냥 출장 한 번 갔다 오면 해결될 일입니다.’

어떤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사우디행 비행기 표를 끊은 그였다.

그렇기에 유세나 과장, 그녀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분명… 예의 그 출장과 이번 쿠데타가 상관관계가 있음을. 아니, 인과관계가 있음이 분명하다는 것을.

“괜찮아요, 사모님. 일단 조금 진정을 취하고 계시면 제가 되는 대로 상황 파악해서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꼭 좀 부탁해…. 난 우리 자기만 믿을게.”

김성혜를 꼭 안아준 후, 평창동 자택을 떠나는 유세나 과장.

가로등 불빛을 따라 자동차를 운전하던 그녀가 때마침 걸린 신호에 잠시 멈춰 섰다.

깜빡거리는 보행자 신호등에 눈을 고정하며 잠시 생각에 잠긴 유세나 과장.

문득, 인천국제공항에서 한서준 전략실장을 배웅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출입국 게이트를 나가기 전, 그녀의 나이 어린 상사는 분명 스쳐 지나가듯 이런 말을 던졌었다.

‘아마 이번 일이 잘되면… 유세나 과장 아버님께서도 좋으실 일이 생길 것 같네요.’

‘실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코코아 뱅크>. 아무래도 초기 자금이 부족하니까… 뭐, 일단 가 봐야 아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일 보고 있어요.’

빨간 불로 바뀐 보행자 신호등. 그와 동시에 차량 신호등에 녹색 불이 들어왔다.

광화문 광장을 지나, 그녀의 눈에 들어온 청계천 한복판의 탄약그룹 본사 건물.

액셀에 올린 오른발에 힘을 꽉 준 유세나 과장의 머릿속에 희미한 퍼즐 조각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마치 놀리기라도 하듯. 명확한 실루엣은 보여주지 않은 채, 변죽만 잔뜩 울리는 조각들이.

* * * *

탄약그룹 본사 건물을 향해 내달린 사람은 유세나 과장뿐만이 아니었다.

강남 한복판에 있는 호텔 플로렌스. 문중회 일 때문에 그곳에 갔던 서명희 이사장 또한, 사우디에서 일어난 소식을 듣고 급히 본사로 향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같은 강남이지만 룸살롱에서 단란한 시간을 보내던 중공업, 건설, 조선 해양 3사의 사장들 역시 본사 건물에 도착했다.

비록 술 냄새가 나긴 했지만.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 게야!”

급하게 소집된 임원들 앞에서 사자후를 토해내는 서태후.

간신히 싹을 틔운 후계자였다.

비록 아직 작은아들인 한화기에 비해 불안한 감이 있었으나, 역량의 잠재력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기에 그룹의 재목이 될 수 있었거늘.

“현지 법인은? 탄약그룹 계열사 중에 사우디 법인 있을 것 아닌가! 누구야? 거기 총괄이!”

“그… 중공업, 저희 중공업이 사우디 법인도 총괄하고 있습니다. 끄윽!”

술 냄새를 잔뜩 풍기며 대답한 중공업의 박한이 사장.

방금까지 국방부 차관과 함께 나눈 술자리 탓에, 그는 벌게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네놈은 지금 상황이 이런데 술이나 퍼마시고 있었던 게냐! 꼴에 총책임자라는 놈이!”

“송구합니다. 무어라 드릴 말씀이… 끄윽!”

고관대작 나으리의 술상무 노릇을 하느라 주량의 한계치까지 마신 박한이 사장.

그는 속으로 국방부 차관을 욕함과 동시에 머리를 굴렸다.

‘그 썩어 터질 꼰대 놈은 아주 그냥 퇴직만 했다 하면 막바로 잡종견 취급을 할 것이여. 그나저나… 한서준이가 사우디 난리통에 있다라.’

서태후가 쏟아내는 힐난의 목소리를 잠시 자체적으로 음소거 한 박한이 사장. 투명 귀마개를 했다고 생각하니 훨씬 나은 느낌이었다.

잠시 찾아온 내적 평형. 그의 머릿속 계산기가 빠르게 숫자를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그렇지! 지금 사우디 법인 총괄이 중공업이잖아! 차라리… 시간을 끌고 비협조적으로 나가면 오히려 유리하다.’

박한이 사장의 입장에서는, 그 요망한 서자 도련님이 곤경에 처하면 처할수록 좋은 일이었다.

아예 사우디에서 거하게 사고를 친다면 후계 구도는 그의 주인, 한화기에게로 기울 것일 터.

‘거기에… 아싸리 반란군이 쏜 눈먼 총알에 맞으면 깔끔하게 끝이고. 엥? 이거 완전 요샛말로 개이득인가 하는 거 아닌가?’

머릿속으로 희망찬 행복회로를 그리는 박한이 사장. 그는 자신 앞에서 근엄하게 무게를 잡는 한화기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근미래의 탄약그룹을 차지할, 차기 회장인 한화기의 모습과 그 옆에서 부회장 직함을 달고 있는 자신.

하늘로 승천한 입꼬리를 더는 감추지 못하게 될 쯤, 헛기침을 내뱉은 박한이 사장이 입을 열었다.

“크흠, 그러면 일단 제가 사우디 법인을 통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

“이봐! 박한이! 지금 무슨 개떡 같은 소리나 지껄이고 있는 게야!”

갑자기 서태후에게 호되게 욕을 얻어먹은 박한이 사장. 하라는 대로 했는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싶었다.

그리고 옆에서 팔꿈치로 그를 쿡쿡 찔러대는 조선 해양의 성원식 사장.

“하, 진짜. 박 사장님. 제발 술 좀 깨라니까.”

“뭐여? 무슨 일이여?”

“정신 좀 차리라고. 거, 앞에 테레비에서 뉴스 나오는 거나 봐요.”

붉은색의 큼지막한 활자로 쓰인 <긴급 속보>.

TV 화면 속에는 이번 정변을 일으킨 빈 살만 왕자의 연설 장면이 송출되고 있었다.

그리고 왕자의 오른쪽 옆자리. 누가 보더라도 핵심 측근만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는… 박한이 사장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인물이 승리의 미소를 입에 걸고 있었다.

“으헉! 이… 이게 머선 일이고! 한서준이 점마가 왜 저기 있는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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