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왕자의 난(3)
-펑! 펑! 펑!
하늘 위에 피어오른 형형색색의 불꽃놀이를 배경 삼아 연회가 시작되었다.
왕궁 연회장에 모인 사우디 왕가의 핏줄들.
사우디아라비아 마호메트 국왕의 예순아홉 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축하연을 즐기는 모습이다.
황금으로 된 식기에 쌓인 산해진미. 참가자들에게 선물로 하사할 형형색색의 보석류.
순백의 다이아몬드로 수놓은 샹들리에 아래에서, 그 어느 것 하나 반짝거리지 않는 것은 없었다.
“자, 마음껏 들거라. 위대한 왕가의 피를 이어받은 고귀한 자들이여!”
외부 빈객의 초청 전, 왕실 식구들끼리의 자리를 갖기 위해 별도로 마련한 연회여서일까?
눈이 부실 정도의 화려함과 사치스러움. 마치 신에게 그들의 부유함을 과시하듯 내보이는 것만 같았다.
국부(國富)의 근원인 검은 황금, 석유. 그리고 그것과 맞바꾼 향락의 밤.
점점 무르익어가는 연회 분위기 속, 참석자 모두는 너나 할 것 없이 술과 분위기에 취하기 시작했다.
오직 단 한 사람, 빈 살만 왕자만을 제외하고.
“빈 살만 왕자여. 그대는 이 자리가 즐겁지 아니한가?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니 어찌 된 일인가?”
빈 살만 왕자의 눈가에 비친, 평소와는 다른 안광이 신경 쓰인 사우디의 국왕 마호메트. 그의 팔에 난 잔털들이 쭈뼛 솟아올랐다.
노회한 정치가인 그는 오늘 이 자리에서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눈앞의 젊은 야심가로부터 느껴지는 섬찟한 차가움이, 송곳이 되어 자신의 목에 겨누어질 것인지를.
“제겐 이 자리가 편치 않나이다. 국왕 폐하.”
“…편치가 않다? 이토록 기쁜 날에 그 무슨 황망한 소리인가. 혹여 그대의 마음을 해하는 것이 있기라도 한 것인가?”
겉으로는 자애로운 백부의 가면을 쓴 채, 속으로는 조카의 심연을 파헤쳐 보려는 마호메트 국왕.
분명… 저 새끼 사자의 목덜미에는 굵직한 목줄이 단단히 동여 매여 있을 터였다.
병력의 운용에 관한 권한을 제거한, 그저 허울뿐인 군 시설관리관 직위.
제아무리 그르렁거리는 울음소리를 내며 날 선 송곳니를 보인들, 충분히 마당 한구석에 묶어둘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오늘따라 유달리 팽팽히 당겨진,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은 줄.
빈 살만 왕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헐거워진 매듭과 허공에 날리는 보푸라기를 보며.
“누군가 제게 건네주었던 말 한마디. 그것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돌고 있나이다, 폐하.”
애써 감추려고 하지만, 어둠 사이로 드러나는 새끼 사자의 날 선 이빨과 발톱.
저 야망이라는 시퍼런 날붙이는 언제라도 백부인 국왕 자신을, 그리고 제 사촌 형제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이다.
입가에 스멀스멀 올라온 비릿한 피를 삼키는 국왕.
시끄럽게 울려대는 그의 머릿속 경보음이, 최대한 빨리 병권과 관련된 빈 살만 왕자의 권한을 회수하라 외치고 있었다.
“허어, 무슨 말이기에 왕자의 심경을 이리 해치고 있단 말인가? 대체 무어라 하였기에?”
느낌이… 좋지 않았다.
마치 그림 두 장을 포개듯, 그가 가진 군 시설관리관 직위를 외국의 세력과 함께 겹쳐 본 마호메트 국왕.
그저 평범한 별개의 풍경화였던 두 장의 그림에서 억센 두 손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단숨에 자신의 목을 조를, 불길하기 짝이 없는 손이.
“…….”
“왕자는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겐가? 어찌하여 입을 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인가? 국왕의 명이다. 당장 고하라.”
마음을 굳힌 마호메트 국왕.
엄중한 표정으로 가면을 바꿔 낀 그가 빈 살만 왕자의 대답을 재촉했다.
이제 어떤 대답이 나오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단어 하나, 어구 하나에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해 공격의 대상으로 삼을 것이었으니까.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고요해진 연회장 안. 손목시계에서 들려오는 째깍거리는 기계음만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마침내, 새끼 사자가 입을 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대로라면 이 유사 신정 국가는 망할 나라다. 라고 하였나이다.”
“허어… 어찌 그런 황망한 발언을! 어느 쳐죽일 놈이 그런 말을 지껄였단 말인가!”
위압감을 가득 담은 국왕의 눈빛.
그러나 빈 살만 왕자가 그 시선을 피하는 일은 없었다.
마치 이미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 알고 있었다는 듯, 으르렁거리는 울음소리를 내는 새끼 사자.
어느새 심지만 남아버린, 왕자의 목에 메인 엉성하기 짝이 없는 줄은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평행을 유지하고 있었다.
-쿵! 쿵!
어느 누구도 입을 떼지 못하는 상황, 정원의 불꽃놀이 소리만이 유독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그에 응당 뒤따라야 할, 하늘 위에 그려질 색색의 그림이 없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왕궁의 연회장 안.
연이은 폭약 터지는 소리와 함께, 빈 살만 왕자의 목에 걸린 거추장스러운 목줄이 끊어졌다.
“참으로 참람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이 아니겠사옵니까? 헌데, 이 저주스런 말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그게 무슨….”
희미하게 들려오던 묘한 폭발음이 궁전 가장 깊숙이 위치한 연회장까지 뚜렷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총성. 바깥의 사람들이 지르는 비명. 그리고… 육중한 기계음까지.
“으아악! 반란! 반란이다!”
“이게,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근위병은 뭘 하고 있는가!”
-쿠구구궁!
급박함이 해일처럼 밀려오는 그 순간.
벽 한쪽이 무너짐과 동시에 나타난, 전면에 철갑을 두른 장갑차 부대.
뿌연 먼지가 날리는 잔해 위, 장갑차 뒤쪽의 해치가 열리고 무장한 병력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A팀! 왕족들 신병 확보 시작하도록! 핵심 인물 외의 방계들은 반항 시 사살해도 좋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연회장.
바닥에 엎어진 채 PMC 대원들에게 결박당한 국왕.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황금으로 도금된 권총의 총구였다.
“지휘관. 통신 집중국과 내각은?”
“계획대로 전부 수중에 들어왔습니다. 왕자님.”
“수고 많았네. 그러면, 서준 한. 지금 그 친구는?”
“방금 팀원을 보냈습니다. 이리로 오는 중입니다.”
방아쇠에 걸친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빈 살만 왕자.
조금만 힘을 주어 당기는 순간, 국왕의 머리에서 뿜어져 나온 핏물이 강처럼 흐를 것이었다.
“빈 살만… 네놈이 역심을 품은 것이었어. 내 최대한 빨리 조치를 취했어야 했거늘….”
“폐하. 저는 이 나라가 망해가는 꼴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나이다.”
야심에 찬 젊은 수컷 사자.
새끼 특유의 솜털은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억세고 거친 황금빛 갈기가 어느새 왕자의 목에서 빛나고 있었다.
마침내 국왕 앞에 발톱을 길게 내민 빈 살만 왕자.
그의 입에서 낮게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제는… 그저 신의 곁에서 편안히 쉬십시오. 모든 짐과 죄악은 부덕한 제가 지고 나아가겠사옵니다.”
* * * *
-사우디에서 일어난 ‘왕자의 난’이 마무리되는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계승 서열 1위로 올라선 빈 살만 왕세자는 자신의 부친인 압둘라 사우드를 국왕으로 옹립하였습니다.
-빈 살만 왕세자는 또한 한국과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사우디 신정부 국방개혁의 총괄을 맡은 탄약그룹. 한화 90조 원에 육박하는 규모의 수출액에 정부 당국은 환영의 뜻을….
호텔 스위트룸.
나는 리모컨을 들어 TV의 음소거 버튼을 눌렀다.
소리 없는 화면에 비친, 정변의 흔적들.
불과 이틀 전 있었던 일이었지만, 현장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후우, 꿈은 아니라 다행이네.”
일단은 만족스러웠다. 그것도 상당히.
사우디의 ‘평화적인’ 정권 교체라는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고, 탄약그룹 차원에서도, 나 개인 차원에서도 충분한 결실을 거두었으니까.
그러나 예상치 못한 문제는 늘 어디에나 있는 법이니, 그것은 바로….
“이야, 진짜 우리 실장님. 사진 나온 게 아주 반란군 수괴가 따로 없네. 요 황금 권총은 또 왜 들고 있었던 거야?”
TV 화면에 비친 빈 살만 왕자. 아니, 이제는 왕세자가 된 그의 모습.
옆자리에는 마치 오른팔이라도 된 듯, 그에게서 황금 권총을 선물로 건네받은 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웃지 않으면 안 될 법한 상황이라 그랬던 거지만.
“하… 모릅니다. 저도. 빈 살만 왕자가 막무가내로 쥐여주는 걸 어쩌겠습니까?”
사우디판 왕자의 난의 마무리는 리야드 중심의 방송국에서 끌고 온 중계 차량 앞에서 이루어졌다.
열변을 토해가며 자신이 사우디의 새로운 주인임을 천명하던 빈 살만 왕세자.
‘부패한 이들이 국왕의 눈을 가리어 국부를 훔치는 기생충이 되었다! 이에, 보다 못한 본 왕자는 피눈물을 머금고 난을 평정하였도다!’
이틀 전, 가만히 호텔 스위트룸에 있던 나 역시 그 연설 현장에 반강제로 붙들려갔어야만 했다.
내빈석에 앉아 구색 맞춤용으로 적당히 자리만 빛내고 있던 나.
사실 나는 전면에 나설 생각일랑 꿈에도 없었다.
쿠데타가 자랑도 아니고, 전 세계의 사람들이 보고 있는 방송에 괜히 나와 바야 좋을 게 없었으니까.
그러나… 빈 살만 왕세자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오늘 이 역사적인 날이 있도록 공을 세운 이들을 몸소 치하하고자 한다! 사우디의 은인들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그리고 대뜸 현장에서 내 손에 반강제로 쥐여준 황금 권총.
훈장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니, 일단은 이것부터 먼저 받고 있으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반란수괴 한서준 전략실장님? 출발하실 시간입니다만?”
“아, 그만 놀리세요, 제발.”
“흐흐흐… 더 놀렸다간 그걸로 쏠 기세네. 근데 진짜 갈 시간 다 되기는 했어. 벌써 아홉 시 반이거든.”
짐을 챙겨 호텔 체크아웃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니, 줄지어 서 있는 군용 차량.
수행원의 신호에 맞춰 가운데 차량에 탑승하니, 옆자리에는 빈 살만 왕세자가 미리 앉아 있었다.
“많이 바쁘신가 봅니다. 이렇게까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셔야 한다니.”
“권력은 쥐는 것보다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법이라 하더군. 그러니 시간을 쪼개 쓸 수밖에.”
공항으로 가는 길.
조수석에 앉은 비서관으로부터 무언가를 전해 받은 빈 살만 왕세자가 다시 그것을 내게 건넸다.
“일단 이것부터 받지.”
금박을 입힌 티크 목재로 만들어진 상자 하나.
그 안에 든 것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도장이 찍힌 서류뭉치였다.
단순히 구속력 없는 MOU(양해각서) 따위가 아닌, 정식 계약서 정본.
사우디군 국방개혁 총괄업무를 탄약그룹에 맡기겠다는 공식 문서였다.
“서준 한, 자네에게는 큰 빚을 졌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저도 나름 목숨을 걸었던 것이니까요.”
“솔직해서 좋군. 해서, 무언가 내게 원하는 것이 더 있는가?”
나는 눈짓으로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수행원들을 가리켰다.
고개를 끄덕이고 곧바로 버튼 하나를 누른 빈 살만 왕세자.
육중한 기계음과 함께 앞좌석과 뒷좌석 사이를 차단하는 벽이 아래쪽에서 올라왔다.
“이제 편히 말할 수 있겠군.”
“감사합니다. 왕세자 저하.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 그리고 동시에 차후 왕세자 저하께도 이득이 될 그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