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자폭 버튼(1)
“네놈은 뭐 하는 놈이야! 돈 받고 한다는 일이 늘 이딴 식인가!”
“히익!”
날아온 감사패 하나를 위빙으로 간신히 피하는 유지원 감찰팀장.
소싯적 복싱을 하지 않았다면 저 뾰족한 독수리 부리 조각상에 이마가 파였을 것이리라.
물론 제 주인 한화기의 얼굴에 카운터 펀치를 날릴 용기는 추호도 없겠지만.
“장부 하나 똑바로 못 들여다보는 것들이 무슨 감사팀이야! 그리고 네놈은 어째서 아랫것들 하나 똑바로 관리도 못 하고!”
“그… 본부장님. 일단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뭔가… 자료가 영 이상해서 말입니다.”
마치 접이식 의자처럼, 허리를 직각으로 굽신거리는 유지원 감찰팀장.
그는 억울했다.
눈가에 닭똥 같은 눈물이 핑 돌아 간신히 흐르지 않을 정도로.
감사팀이 일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회계자료가 있어야 한다. 문제는 그 장부 자체가 모호했다.
분명 숫자가 맞기는 맞는데, 막상 다가가는 순간 사막 위 신기루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묘한 기록의 발자국.
그렇기에 답답하기 짝이 없는 유지원 감찰팀장. 간신히 용기를 낸 그가 제 주인에게 항변의 말을 올렸다.
“프로그램에 장부 숫자를 기입하면 알고리즘이 잡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맞지만, 숫자는 비는 희한한 현상이 나와서….”
“이봐, 유지원이. 그걸 잡는 게 네놈 일이라는 걸 지금 몰라서 지껄이는 건가?”
“맞는 소리긴 합니다. 아, 제 말이 맞다는 게 아니라, 본부장님 말씀이… 히익!”
다시 날아온 금속제 감사패.
이번엔 피하지 못한 유지원 감찰팀장은 시큰한 정강이를 부여잡았다.
‘진짜 돌아버리겠네. 잘만 굴러가던 프로그램이 왜 또 안 되고 지랄인 건데….’
분명 오늘 낮 시간대에 모든 계열사 사장들로부터 받은 따끈따끈한 장부였다. 기본적으로 오류가 없는 게 정상일 터.
유지원 감찰팀장이 이토록 고통받는 데에는 단 하나의 함정이 숨어 있어서였다.
8888계좌.
알고리즘에 알 수 없는 오류를 띄우는 이 해외 계좌 하나 때문에 감사가 늘어지게 된 상황.
눈을 질끈 감은 부하직원에게 한화기가 그르렁거리는 목소리로 협박하듯 말을 꺼냈다.
“2주. 2주 주겠다. 그 안에 무조건 선대의 비자금이 어떻게 형성됐고 어디로 흘러갔는지 찾아오도록.”
“아… 알겠습니다, 본부장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리나케 방문을 나서는 유지원 감찰팀장. 나가자마자 그는 피멍이 든 정강이를 붙잡고 인상을 썼다.
“하이고, 유 팀장아. 지금 요 본부장 심기 영 안 좋은가 뵈네? 방 안에 먹구름 잔뜩 끼았나?”
하필이면 그 순간, 문 바깥에 대기 중이던 재무 본부의 입사 동기 정철식 전무. 절대 보이고 싶지 않은 장면을 보이고 말았다.
“하… 정 전무. 너는 인마 하필 타이밍도 진짜 꼭….”
대략적인 자초지종을 들은 정철식 전무.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트린 그는, 이내 문 안쪽을 손가락질하며 유지원 감찰팀장에게 핀잔을 주었다.
“흐흐흐… 내 한번 말하지 않았드나? 저기 문 안쪽에 있는 저 양반, 승질 맞추기 영 빡세다꼬. 줄 조심해서 타라니까.”
“속 긁는 소리 그만하고. 넌 뭣 때문에 온 거냐? 지금 주인님 앞에서 잘못 짖어대면 내 꼴 나기 딱 좋다.”
“짖긴! 내 무신 아마츄어도 아이고. 딱 사냥감 하나 물어가 왔다. 함 봐래이.”
푸른색 벨벳으로 장식된 서류철 커버.
품을 단단히 들인 것으로 봐서, 일반적인 문서 상신은 아닌 모양이었다.
의기양양한 표정의 재무 본부의 정철식 전무.
마치 새로 산 장난감을 자랑하는 어린아이처럼, 그는 유지원 감찰팀장의 눈앞에 서류를 펼쳤다.
“마, 이라크 해수 담수화 플랜트 건. 은행 PF 추가 대출 승인 떴다 아이가. 이게 능력 아이겠노?”
“대출액이 1조 350억 원? 미친… 아주 이라크에 돈을 뿌리려 작정했나. 잠깐만, 이게 대출이 90%면 회사가 깔고 가야 할 돈이….”
“1,150억 원. 그건 무조건 갖고 있어야 한데이.”
가뜩이나 내부 감사 때문에 머리가 아픈 와중에 또다시 회계 처리 변수가 생긴 유지원 감찰실장.
천장을 올려다본 그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이 돈은 또 어떻게 마련하라고 그럴라나?”
“마, 그건 걱정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
입가에 묘한 미소를 건 정철식 전무. 그는 줄을 잘못 선, 자신의 동기에게 이 미소의 뜻을 말하고 다니지 못한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믿을 만한 대학 선배인 탄약 증권의 구석수 사장. 그리고 그로부터 우연찮게 얻게 된 한서준이라는 새로운 동아줄.
서류철을 든 정철식 전무의 손에 힘이 한껏 들어갔다.
‘하이고, 내 꼭 무신 폭탄 배달부로 직업을 바꾸기라도 한 것 같네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얼굴의 유지원 감찰팀장.
정철식 전무는 그런 그의 어깨 위에 팔을 올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차피 저기 안쪽에 있는 양반이 짊어지고 갈 십자가인 기다.”
“십자가?”
“하모. 과정부터 시작해가… 끝에 책임까지 싸그리 포함된.”
* * * *
형형색색의 색유리를 이어 붙여 만든, 벽면 한쪽의 거대한 십자가.
저녁 빛의 노을은 색유리를 타고 안쪽으로 들어가, 묵상 기도를 위한 긴 나무 의자에 닿았다. 마치 무지개처럼.
혹여나 있을 수 있는, 남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찾아온 본사 건물 근처의 성당.
옆자리에서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성원식 사장.
회랑을 가득 메운 미사곡이 흐르는 가운데, 그는 내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전략실장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입니다. 정말이지… 은행 컨소시엄이 이렇게 마구잡이 식으로 대출을 해 주다니.”
“호황의 시대니까요. 고수익 안전자산이라는 노랫소리 앞에, 재정 건전성 따위는 그저 잔소리로 들리겠지요.”
은행의 안일한 자금 투입의 원인은 비단 경기 상황 때문만이 아니긴 했다.
탄약그룹이 사우디에서 벌어올 90조 원의 막대한 매출. 그 막대한 규모 앞에 1조가 조금 넘는 대출 따위야 얼마든지 상환할 수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성 사장님. 그러면 자금 수혈 날짜는 언제로 정해졌습니까?”
“보름. 보름 후부터입니다. 한화기 본부장 말로는 내부 감사와 맞물려 가게끔 조치하겠다 하더군요.”
“보름이라….”
명확한 시기에 이어 숙부의 의도까지 알아 온 성원식 사장. 확실히 이 사람을 같은 편으로 포섭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아마 숙부는 보름이 지나기 전까지 내부 감사를 마무리하려고 할 터.
“자금이 들어오는 대로 안전 계좌에 따로 넣어두십시오. 그 돈, 이제 이라크에서 쓸 일은 없을 겁니다.”
“이라크 사업을 아예 정리하실 생각이십니까?”
“네. 철수 과정에서 손해를 좀 봐도 상관없습니다. 기존 부실이야 감내하면 그만이고, 무엇보다… 거긴 터가 나빠요, 터가.”
“무슨 말씀이신지….”
안타까운 미래가 예견된 이라크.
몇 년 후, ISIL(이슬람국가)이라는 테러 단체가 해수 담수화 플랜트 시설까지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다.
물론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기에, 나는 성원식 사장의 질문에 적당히 얼버무리는 것으로 답했다.
“더 큰 그림이 있어서요. 여하튼,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중공업과 건설. 두 사장은 요새 좀 어떻습니까?”
“축제 분위기입니다. 안 그래도 오늘 밤늦게 술 약속이 있습니다. 박한이 사장이 산다더군요. 다가올 미래도 모르는 사람이….”
사나운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모른 채, 그저 이 PF 대출 소식에 신나 하는 박한이 사장.
이번 위기를 넘기면, 왕관을 쓴 숙부의 뒤를 공신의 자리에서 호종하겠다는 상상을 하고 있을 터.
“바깥에서의 마지막 파티를 마음껏 즐기라 하십시오. 결국, 책임은 박한이 사장이 질 겁니다.”
국방부 차관에게 내 형사 처분을 청탁했던 그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은 없다. 오로지 단죄뿐이다.
-Kyrie eleison, Christe eleison, Kyrie eleison.
어느새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저녁 미사.
앞쪽에는 흰옷을 입은 성가대원들이 소리 높여 자비송(慈悲誦)을 부르고 있었다.
노래가 끝난 후에야, 고개를 든 성원식 사장.
가톨릭 신자였던 걸까? 그의 눈에는 우수가 맺혀 있었다.
“아… 이거 추한 꼴을 보여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아아, 방금 미사곡 가사 말입니다. 어제저녁 제가 홀로 고민하며 중얼거렸던 말이거든요.”
극단적으로 치솟은 불안감과 압박감 탓에, 집 베란다 난간을 붙잡고 한참을 고뇌에 잠겼다던 성원식 사장.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형량, 감당하지 못할 추징금까지.
이제껏 쌓아왔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공포에 내렸던, 전향이라는 결론.
“방금 라틴어 가사 말입니까? 제가 종교가 없어서 뜻을 모르는데…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내 질문을 들은 성원식 사장의 얼굴에 씁쓸함과 편안함이 혼재된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마치 이름 모를 수도자가 그려진 그림처럼, 긴장으로 딱딱하기만 했던 그의 인상이 조금 펴지기 시작했다.
“부디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
* * * *
그 시각.
고속버스에서 내린 김원철.
바닷가 쪽에서 직사광선으로 내리쬐는 저녁노을을 맞아가며, 그는 성원식 사장과는 다른 의미의 기도문을 외고 있었다.
“아흐… 제발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과 부처님, 알라신까지 포함한 기타 모든 신이시여.”
전날 과하게 마셨던 술과 예정에 없던 철야 근무.
휴가를 내고 집에서 요양을 취하던 그는 갑자기 생긴 업무 탓에 지방으로 내려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숙취 때문에 자가용을 운전할 몸 상태조차 아니어서.
“연차를 내면 뭘 하나. 어차피 일이 계속 생기는데. 요샌 낚시도 못 하고… 아주 평생 일할 팔자인가 보다야.”
시골 버스 터미널에 내리고서도 한참을 더 가야 하는 목적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택시도 잘 잡히지 않는 상황.
구슬땀을 흘리며 언덕길을 걸어가던 김원철.
그렇게 한 시간이나 걸었을까? 마침내 그의 눈앞에 목적지인 큰 한옥집 대문이 보였다.
“후, 오래간만이구만. 이 고래 등 같은 기와집도.”
솟을대문을 앞에 두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고 나니 무더위도 조금 가신 느낌이었다.
명패 옆에 붙은 벨을 누른 김원철. 그는 큰 목소리로 오늘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만든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거, 계십니까? 김복희 여사님! 나 김원철이에요! 한율산 영감탱이… 아니, 영감님 뵈러 왔습니다!”
보통 한율산 전 간사는 이 시간대에 산책 겸 운동을 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김원철.
그러나, 오늘은 뭔가 타이밍이 영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딱콩!
갑자기 얼얼해진 뒤통수를 부여잡은 김원철. 그의 뒤에는 잔뜩 성이 난 노인 하나가 지팡이를 들고 콧김을 씩씩거리고 있었다.
“이놈이…! 나이 오십이 넘었건만! 김원철이 네놈 혓바닥은 아직도 제멋대로 촐싹거리는 게냐! 감히 나더러 영감탱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