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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63화 (62/300)

63화신무기 개발 사업(1)

아침.

사람마다 제각기 하루의 시작을 여는 방법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모닝커피 한 잔을, 다른 누군가는 젖혀진 커튼 사이로 쏟아진 햇살을.

“다 마무리되었군.”

그리고 나에게는, 회색빛 신문지에 스며든 묘한 잉크 냄새가 매일 아침 나를 반겨 주는 것이었다.

-[내일경제신문] 탄약그룹 왕좌의 전쟁 끝, 한화기 재무 본부장 구속수감. 검찰, 징역 9년 구형.

-[고려일보] 탄약그룹, 이라크 해수 담수화 사업 완전 철수. 내부자 횡령 엄단하여 고소 조치 하기로.

팔락, 손끝에 닿는 신문지의 촉감이 오늘따라 색다르다.

어제 자로 필요한 모든 정리가 다 끝난 상황. 온전히 내 손에 들어온 탄약그룹.

책상 위, 기업 자산 규모 보고서에는 수십 개의 계열사를 필두로 50조 원에 달하는 자산이 계상되어 있었다.

서울의 상업용 부동산, 울산의 공단 지역, 막대한 규모의 금융자산과 2만여 명에 달하는 임직원 수까지.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웃음. 그러나 벅차오르는 듯한 감정은 거기까지였다. 회귀 전에 있었던 경제 상황이 머릿속에 떠올려졌기에.

“아직… 부족해. 이대로라면 다가올 미래의 변혁기에 그대로 고꾸라지고 만다.”

조만간 맞이할 미래.

4차 산업 혁명과 급변하는 산업 구조 변화로, 재벌 그룹이라고 큰소리치고 떵떵거리던 이들 가운데 태반은 예전의 명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그저 그런 중견 내수 기업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빚더미에 앉아 파산하는 꼴로.

반면… 아주 극소수의 시대의 흐름 위에 올라타 먼바다로 나아간 사람까지.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알고 있음에도 큰물에서 놀 생각이 없다면, 탄약그룹 회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자격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어떻게 되찾은 자리인데, 다시 망할 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탄약그룹을 세계 최고로 만든다.”

혼잣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내뱉는 다짐.

나는 신문을 곱게 접어 책상 한편에 밀어 넣었다.

한껏 켜진 기지개.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곧바로 유세나 보좌관을 호출했다.

“그룹 조간 회의 준비는 끝났습니까?”

“예, 회장님. 임원진 전원 기다리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출발합시다.”

* * * *

또각또각,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대리석 바닥을 울리는 하이힐 소리를 따라 올라간 시선.

화려한 무늬가 눈길을 끄는 하이엔드 급 명품을 온몸에 휘감은 서윤지는 여의도 K 호텔 라운지 바 복도를 걷고 있었다.

두꺼운 커튼을 쳐서인지, 대낮인데도 어두운 실내. 직원들조차 모두 물린 그곳에는 벌써 술에 취한 김범호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 서윤지! 오래 걸린다더니 벌써 왔네. 공항에서 바로 온 거야?”

“미친… 대낮부터 얼굴 벌건 거 봐라. 대놓고 재벌집 내놓은 자식 티 내는 것도 아니고.”

“흐흐흐. 그냥 가시는 그 순간까지 이렇게 살다가 갈 거라니까. 얼른 앉아. 빨리.”

느물거리는 얼굴로 손짓하는 T 그룹 막내아들 김범호. 그런 그의 모습에 서윤지는 못 이기는 척 옆자리에 앉았다.

긴 소파에 앉은 두 남녀. 아무 말 없이 점점 가까워지는 입술은, 이내 포개질 대로 포개져 떨어질 줄을 모르는 것만 같았다.

한참 동안 진한 입맞춤을 끝낸 그들. 먼저 눈을 뜬 김범호가 서윤지의 콧잔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어떻게 된 게, 결혼하고서 더 이뻐지셨을까. 무슨 열다섯 살 차이라더니, 그래도 임재호 부회장 아직 팽팽한가 봐?”

“개소리하고 있네. 팽팽은 무슨, 흐물흐물이면 또 몰라.”

그녀의 매몰찬 대답에 킬킬거리는 김범호.

오른손으로 서윤지의 허리를 거칠게 감싸 안은 그가 위스키 잔을 비우고는 입을 열었다.

“하기야, 그러니까 자존심 센 네가 불장난하러 여기까지 행차하신 거고.”

“시끄럽고. 빨리 이리 오기나 해. 나 불쌍한 여자로 만들 생각 아니면.”

탁자 위에 놓인 물담배 파이프를 입에 물고 깊게 숨을 들이쉬는 김범호. 숨을 내뱉기 전, 한껏 끌어안은 채로 다시 시작된 서윤지와의 입맞춤.

과일 향이 입혀진 뿌연 연기가 그들의 코와 입 틈 사이에서 새어 나오고, 밀회의 분위기는 점점 달아올랐다.

그제야 기분이 나아지기라도 한 듯, 만족스러운 모습의 서윤지. 김범호의 가슴팍을 가볍게 밀친 그녀가 토라진 표정을 연기하며 대답했다.

“신혼여행도 지루했다니까. 임재호 부회장, 그 사람은 남편이라기보다 그냥 비즈니스 파트너야. 같이 있어도 재미 볼 일 하나 없어.”

“흐흐흐. 재미 볼 일이라….”

개구쟁이처럼 짓궂은 웃음을 얼굴에 띄운 김범호. 무언가 재미있는 생각이라도 한 듯, 그는 새로운 주제를 꺼내 들었다.

“요새 재밌는 건 탄약그룹이지. 한화기 그 양반, 결국 큰아들하고 두 손 꼭 잡고서 구속되었잖냐.”

“구속? 아예 맥없이 당했다고?”

“아아, 너 신혼여행 중이라 몰랐나 보네.”

순식간에 차가워진 서윤지의 머릿속.

내연남을 앞에 두고 불타오르던 성냥 같던 열망이 탄약그룹 이야기를 듣고서 순식간에 사그라들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옆에서 계속 치근덕거리는 김범호를 잠시 떨어트려 놓은 그녀가 턱에 손을 대고는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렇게까지… 독한 놈이었던가? 한서준이가?”

“에이, 한서준 걔가 무슨 독기가 있다고. 분명히 김원철 같은 고명대신이나 서태후가 뒤에서 다 해놨겠지. 한서준이는 도장만 찍는 거고.”

망치 주먹을 쥔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숫제 도장 찍는 기계 흉내를 내는 김범호.

아예 몸을 뉘어 서윤지의 허벅다리를 베개 삼은 그가, 구렁이 담 드나들듯 양손을 위로 올리며 말했다.

“헤헤. 그러니까 우리도 얼른 침대로 도장 찍으러 가야지. 꾸욱 하고.”

“네가 쓸데없이 일 얘기 꺼내서 그럴 분위기 아니거든? 가뜩이나 SA-철화 테크원 때문에 머리도 아픈데.”

“에헤이, 이제 막 만든 기업인데 당장 뭘 그렇게 급해.”

“당장 급한 건 김범호 너겠지. 아무튼….”

SA-철화 테크원.

재계 서열 1위인, 임재호 부회장의 SA 그룹. 그리고 애매한 방산 재벌 철화 그룹의 합작 회사.

결혼 동맹의 부산물인 그 회사의 대표이사로 오른 서윤지는 그녀 나름의 압박감을 가지고 있었다.

간신히 호적에 오른 첩의 딸. 그리고 열다섯 살 차이 결혼이라는 밧줄을 통해 간신히 붙잡은 끄트머리 경영권.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고 무시했던 정처 소생의 두 언니를 생각하니, 그녀의 미간에 불쾌하리만치 깊은 주름이 잡혔다.

“하여간, 이따 오후에는 다시 들어가 봐야 해. 법인 출범 시작부터 바로 시작해야 할 일이 있거든.”

“벌써? 뭐 대형 건수라도 있는 거야? 말 좀 해봐. 얼른,”

김범호의 보챔에 입꼬리가 올라가는 서윤지. 자기가 맡은 일에서 무언가 다른 흥분이 찾아오기라도 한 듯, 그녀의 양 볼이 유달리 붉게 물들었다.

“방위사업청.”

“방위사업청? 뭐 또 입찰하는구만! 규모도 제법 쏠쏠할 거고. 흐흐흐. 미리 관련 주식 좀 사 놓으면 짭짤할 것 같아?”

“아직 몰라, 바보야. 일단… 신무기 개발 사업인데, 요건이 제법 까다롭거든.”

말끝을 흐리는 서윤지.

방위사업청에서 구상하는 신무기 개발 사업은, 미래의 디지털 전장에 대비한 플랫폼을 만드는 일이었다.

최전선에 배치된 말단 병사부터 합동참모본부 최중심에 들어앉은 사령관까지. 소총의 총알 하나부터 거대한 탄도미사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전산화하여 한 번에 통제할 수 있는 고도의 IT 기술이 필요한 상황.

“그래도 할 수 있을 거야. 분명히.”

상기된 모습을 감추지 않는 서윤지가 물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그런데도 묘한 감정으로 떨려오는 그녀의 새하얀 두 허벅지. 아직도 머리를 대고 있던 김범호가 장난스러운 어투로 그녀에게 말했다.

“으흥. 우리 대범한 서윤지 양도 뭐 겁나는 게 있나 보네? 요 다리 떠는 것 좀 보게.”

“하, 겁난다고? 내가? 이것 보세요. 김범호 씨. 내 말 잘 들어.”

코웃음을 치며 위에서 김범호의 양쪽 뺨을 빵 반죽 주무르듯 가볍게 꼬집는 서윤지.

그리고 입 바깥으로 나온 자신감 넘치는. 아니, 어쩌면 도도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

“겁? 일하는 데 있어 그딴 건 존재해서도 안 되는 거야. 택도 없는 소리지.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아닌, 스스로를 향해 그녀가 확신에 찬 말을 던졌다.

“한서준. 그 머저리한테는 무조건 이길 자신 있거든. 압도적으로.”

* * * *

탄약그룹의 고위 임원들에게 있어 가장 긴장되는 시간인 그룹 조간 회의.

회장 집무실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그 순간부터, 복도에는 임원진들의 비서들이 양쪽으로 붙어 허리를 숙이며 큰 목소리로 외치듯이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아아. 편히 있어요, 편히.”

무슨 검은 양복 입은 조직 폭력단도 아니고, 군기가 바싹 든 직원들.

선대 회장이었던 아버지, 그리고 중간에 수렴청정을 맡았던 할머니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 풍경을 보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기업 문화가 계속 이런 식이면 한계가 있는데….’

미국의 IT 기업처럼은 아닐지라도, 이런 심각하게 수직적인 문화는 분명 바꿀 필요가 있다.

머릿속에서 하나둘씩 쌓이는 개혁안. 대회의실에 들어가서도 제공되는 과잉 의전을 받으며 나는 자리에 앉았다.

“아침 일찍부터 고생하십니다.”

“아닙니다. 회장님!”

모두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시작된 회의. 큼직큼직한 조직 개편과 재무 상태 점검에 대한 논의가 얼추 마무리된 후, 새로운 안건 하나가 올라왔다.

굵은 글씨로 쓰인, 중요 표시가 된 보고서. 향후 최소 10여 년 이상의 먹거리가 됨과 동시에, 자체 기술 개발까지 용이한 그 안건은 바로.

“방위사업청… 신무기 개발 프로젝트?”

“아, 예. 회장님. 그건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해당 사업과는 영 관련이 없어 보이는 탄약 전자의 이택규 사장. 그가 갑자기 나선 탓에 호기심보다 의아함이 먼저 앞섰으나, 설명을 듣고 난 후부터 이내 납득이 되었다.

고도의 IT 기술이 필요한, 국방 플랫폼 사업. 이를 총괄하기 위해서는 탄약 전자를 주축으로 삼아야만 하는 상황.

대학 시절 배구 선수 출신에 해병대 ROTC 장교였다는 그는, 떡 벌어진 근육질 어깨를 쫙 편 채로 자신감을 피력했다.

“제가 해당 부분을 총괄해 봤으면 합니다, 회장님!”

“확실히… 전자 쪽이 컨트롤 타워를 맡는 게 맞긴 하네요. 군용 스마트 기기에 필요한 디스플레이, 반도체, 기타 센서까지.”

“예, 그렇습니다! 어떻게든 일정에 맞춰서 끝내주는 청사진을 뽑아내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자신감에 비례해, 내 등 뒤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묘한 불안감.

먼저 위에서 가이드라인을 정해 줄지, 아래에서 올라오는 것을 먼저 볼지 고민하던 나는, 일단은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로 결심했다.

“그러면… 일단 이달 말까지 대략적인 안을 몇 가지 구상해서 올려보세요. 더 논할 것이 없다면 회의는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미처 피부로 느끼지 못했었다.

작금의 탄약그룹의 조직 문화라는 것이… 상상 이상으로 군대스러웠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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