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장님의 핵몽둥이-65화 (64/300)

65화신무기 개발 사업(3)

전국경제인연합.

재계 인사들의 친목 단체인 이 전경련 모임에 참석한 것은 회귀 이전과 이후를 통틀어 처음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예전에는 회장 딱지를 달고 있다고 한들, 그 누구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했던 반증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때와는 정반대 상황이지만.

“아이고! 우리 한 회장 왔는가? 어쩌면 이렇게 선친 분하고 똑같이 생기셨어. 허허허.”

“에이, 이 사람. 허우대로 보나 관상으로 보나 아버지보다 아들이 더 낫지. 어떻게, 한 회장, 혼담은 좀 들어오고 그러시나?”

재벌 그룹의 형태만을 간신히 갖추고 있는, 재계 중하위권 서열의 회장들.

혼맥을 통해서라도 어떻게든 나와, 그리고 탄약그룹과 맺어지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아직도 이들은 나를 애송이에 불과하다 보고 있을 수도 있고.

“우리 조카딸 중에 혼기가 꽉 찬 아이가 있거든. 큰 사업 하는 사내라면 응당 가정부터 일찍 꾸리는 게 우선이라 하지 않던가?”

“그 부분은 차후에 생각하겠습니다. 일단 그룹 내부 정리가 좀 바빠서 말입니다.”

“크흠, 일단 긍정적인 대답으로 알고 내 서명희 이사장님께 긴히 기별을 드려 봄세. 허허허.”

안 그래도 탄약 전자의 이택규 사장이 거하게 사고 쳐 놓은 것 때문에 골치가 아픈데 결혼이라니.

점점 솟구쳐 올라오는 혈압. 나는 오른손으로 목뒤를 마사지하듯 꾹꾹 누르며, 사람들과 조금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잠시 바람이나 쐬려고 야외 테라스로 나간 나.

나 말고도 같은 피곤함을 느낀 사람이 있어서일까?

그늘진 눈가, 굽은 등허리, 목에 난 물혹과 한쪽 손에 쥔 지팡이.

거기에는 눈에 익은 노인 한 명이 난간에 몸을 기댄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음? 가만있자. 자네는…?”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서국철 회장님. 저 탄약그룹 한서준입니다.”

탄약그룹과 함께 대한민국 방산 업체의 쌍벽을 이루는 철화그룹. 그리고 그 수장인 서국철 회장.

언뜻 보기에 노인은 병색이 짙어 보였다. 당장 이 자리에서 쓰러진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그러나… 맨주먹만으로 재벌 그룹을 일궈낸 사람이라서일까?

그의 눈 속 깊은 검은자에는 욕망으로 가득 찬 생명의 불씨가, 마지막 남은 짧은 심지를 뜨겁게 태우고 있었다.

“허어, 그래. 내 소식은 들었다네. 그간 이래저래 노고가 많았겠구먼.”

“하하… 노고라니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뭐든지 순리대로 되어가는 것이니까요.”

“이거 참… 딸년들 둘이. 아니 셋이 다 시집을 가버리는 바람에 퍽 아쉽게 되었어. 자네가 회장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니 말일세.”

‘서출 딸년을 앞세웠다면 살아생전에 탄약그룹까지도 먹어 치울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 되었다.’라는 속마음이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은 그의 마지막 말 한마디.

이내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쾌감.

내 쪽으로 불어오는 바람 탓에 독한 담배 연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탐욕이 섞인 냄새였다.

그러나 굳이 이를 알아챈 티를 낼 필요는 없을 터.

나는 찡그려지려 하는 표정을 억누르고는, 애써 모르는 척 가면 위에 해맑게 웃음을 색칠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윤아, 윤미, 그리고… 윤지 누나까지 셋 다 결혼했으니 말이죠.”

“허어, 윤아, 윤미. 고 두 년은 죄 쭉정이 같은 사내놈들만 물어왔으니, 내 성이 찰 리가 있겠는가.”

아무런 집안 배경도 없는, 그 쭉정이 같은 사내놈들은 서국철 회장 당신이 물어왔겠지.

딸자식밖에 없는 집. 때문에, 금고지기 노릇을 할 데릴사위가 필요했으니까.

그룹 내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그저 얼굴마담이나 할 두 데릴사위. 그리고 남편 머리 위에서 경영에 대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아내들.

물론… 그것도 적통 출생의 두 딸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윤지 누나만큼은 혼사를 좋은 곳을 구하셨더군요. SA 그룹이라니, 저도 듣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첩의 딸.

서출인 서윤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시선을 돌린 채 헛기침을 하는 서국철 회장.

“크흠, 그 막둥이 년이 이제사 늦게라도 제 할 일을 한 게지. 임재호 부회장이. 아니, 우리 막내 사위가 워낙 사람이 좋으니 말일세.”

“그러게… 말입니다. 여하튼, 제가 그간 격조했습니다. 축하 인사를 진작에 드렸어야 했는데요.”

“신경 쓰지 마. 사내가 뭘 자잘한 것을 다 챙기겠나? 원래 큰일 하는 사람들은 바쁜 법인 게고.”

나 역시 서출이었기에 조금 대화가 불편해진 모양이었다.

중간쯤 남은 장초를 아무렇게나 비벼 끈 후, 자리를 떠나려는 서국철 회장.

-철컥

그리고, 둔탁한 금속제 경첩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그 순간 테라스 문을 열고 들어온 한 사람.

“아버지? 여기 계셨어요? 지금 그이가 SA-철화 테크원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다고….”

정장 차림에 검은색 단발머리를 한 여자.

고개를 돌려 묘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는 그녀는 바로.

SA-철화 테크원의 대표이사, 서윤지였다.

“한서준? 네가 여기에 왜…?”

* * * *

“허면, 오래간만에 두 사람 이야기 나누게. 난 사위에게 볼일이 있으니.”

임재호 부회장과 이야기하기 위해 문밖으로 나간 서국철 철화그룹 회장.

그와 함께 찾아온 묘한 긴장감.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테라스에는 어색한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결혼 축하한다는 말도 못 했네.”

“똑같은 거 아니겠어? 나야말로 회장 취임 축하 못 했잖아.”

서윤지.

이 여자에게 좋은 기억은 없다.

회귀 이전, 산산조각이 난 채로 공중 분해된 탄약그룹의 방산 쪽 분야를 가져간 것이 바로 SA-철화 테크원이었으니까.

도회적이고 영민한, 그러나 제 아버지와 같이 언제라도 앞발을 들어 나를, 그리고 탄약그룹을 넘보려 들 수 있는 자.

그게 바로 서윤지다.

“그나저나 조금 의외더라? 한서준 네가 그런 영악한 모습도 있나 싶었단 말이지.”

“영악하다라….”

“뭐, 그것조차 온전히 너 자신에게서 나온 것은 아닐 테고.”

메마른 갈대밭 사이로 먹잇감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탐색하듯 눈을 흘기는 서윤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마치 전에 없던 신기한 물체를 관찰하기라도 하듯, 뒷말을 잇지 않은 채로 나를 위아래로 훑는 모습.

은제 로고가 박힌 가죽 클러치를 까딱거리던 그녀는 이내 무언가를 떠보고 싶은 듯, 느릿한 목소리로 내게 입을 열었다.

“방위사업청. 탄약그룹도 신무기 개발 사업 입찰 준비 시작했다며?”

“우리 탄약그룹 내에 쥐새끼가 있었나 보네. 외부에 정보를 물어 나르는.”

“하, 쥐새끼라니. 제 주인 망신 덜 당하라고 나름 신경 쓴 머슴인데 상으로 고봉밥이라도 먹여야 할걸?”

고압적인 태도.

그녀는 나름 스스로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SA-철화 테크원. 합작회사 이름 보면 알겠지만, 뒷배가 둘이거든. 탄약그룹 단독으로 못 이겨. 그것도.”

시가와 친정. 그 연결고리 역할을 맡은 자신과 SA-철화 테크원.

당장 부족한 능력은 분명 뒷받침될 것이다. 양쪽 회사에서 파견되어 온 최고 역량의 실무진들로 인해.

그런 판단을 기초로 했기에 손쉽게 내려진, 잘못된 결론.

이렇게, 나를 대놓고 적대하는 태도를 보여도 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막 내전 끝나서 팔다리 한두 개 날아간 탄약그룹은 더더욱 그렇고. 어떻게 생각해?”

“개떡 같은 소리라고 생각해. 들을 가치도 없는.”

얼굴에 웃음기를 감추지 않은 나는 새끼손가락을 들어 귀를 후비는 시늉을 했다.

귓가에 내려앉은 쓸데없는 말을 떼어내기라도 하듯, 대놓고 서윤지를 무시하는 태도.

생각했던 반응과는 영 딴판이어서일까?

웃음 조각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 그녀는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개… 떡? 이보세요. 한서준 회장님. 말에 품위를 좀 담을 수는 없나?”

“하루종일 이상한 고명대신 아저씨하고 같이 지내서 말이지. 네가 이해해라.”

대놓고 적의감을 표하는 상대에게는 진지하게 대할 필요조차 없다.

그저 심드렁한 태도와 무시하는 듯한 표정.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기에 더더욱.

그런 내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한숨을 토해내는 서윤지.

왜곡된 자존심과 열등감이 넝쿨처럼 휘감긴 그녀가 내게 나름의 최후통첩을 날렸다.

“됐고. 경고 하나 할게. 신무기 개발 사업에서 미리 발을 빼. 나도 이래저래 힘쓰면서 피곤해지는 건 질색이니까.”

제법 감정이 상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제 할 말만을 멋대로 늘어놓고는 곧바로 자리를 떠나는 그녀.

미숙함과 조급함으로 가득 찬 새로운 합작회사의 주인.

멀어져가는 서윤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조금… 깊게 알아봐야겠는걸? SA 그룹 임재호 부회장과 철화그룹 서국철 회장과의 관계를.”

* * * *

탄약그룹 본사 32층.

탄약 전자가 입주해 있는 이곳. 본래 군대 문화가 진한 탄약그룹 가운데에도, 이곳은 유독 우렁찬 경례 구호가 대성박력으로 울려 퍼지기로 유명했다.

“필! 승!”

“어어, 필승. 그래, 송 상무. 수고 많았고. 3팀 설악산 등반은 좀 어땠나? 1팀 애들은 영 비리비리한 게 마음에 안 들드만.”

해병대 ROTC 후배인 송 상무의 경례를 받은 탄약 전자의 이택규 사장.

소위 ‘이택규 라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사장 집무실에 들어올 때면, 늘 이런 식이었다.

“꼴에 젊은것들이 영 나약해서 말입니다. 가슴속에 곤조가 없으니, 또 채워 넣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탄약 사나이가 심장 속에 곤조를 품지 못하면 안 될 말이지.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서울 가려는 버스 기사한테 차 돌리라고 했습니다. 아예 고성 앞바다로 가서 유격훈련 몇 바퀴 돌리니까, 그제야 악을 쓰더군요.”

“잘했어. 큰일을 하기 전엔 무조건 기합부터 불어넣는 거야. 그래야 일치단결해서 한 몸처럼 움직이는 거니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두 사람.

두 사람의 막장 대화를 들으며 커피를 내온 여비서는 탕비실에 도착하자마자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저 미친 아재들 또 시작이네….’

아랫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행복해하는 두 고위직 임원.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이 녹기도 전에 단숨에 들이켠 이택규 사장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고민이야. 회장님 의중을 모르겠어.”

“무슨 의중 말입니까?”

“어제 김원철이가 오더니 이런 말을 하데? 불필요한 일은 그쯤하고 생산관리에나 집중하라고.”

자신들이 믿는 우악스러운 신념이 틀렸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두 사람.

누구나 당연하게 인식할 단순 계산 문제는, 어느새 그들의 머릿속에서 복잡한 고차방정식이 되어 정치적 수 싸움이 되어 버렸다.

아무런 실체도 없는.

“밑에 실무자들을 더 족칠까요?”

“아니야, 아니야. 내가 보았을 때, 이건… ‘생산관리’에 포인트를 주어야 해.”

“그렇다면 그 뜻은 분명….”

무언가 맞는 포인트를 짚어낸 이택규 사장.

이윽고 근육으로 가득 찬 팔로 의자 팔걸이를 내려친 그의 입에서 참신하기 짝이 없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생산관리의 관리! 그 말은 곧 임원진들도 모범을 보이라는 말!”

“오오! 역시! 저도 그리 생각했습니다!”

“일단, 그 미래사업부에 특별 대우받는 외국임 임원들부터 시작하지. 아무래도 코쟁이 물을 싹 빼고 정신 무장을 새로 시켜야겠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