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인재를 발굴하는 법(2)
탄약그룹 본사 꼭대기 층.
회장 집무실이 구내식당도 아니건만, 꼭 와서 보고를 끝내면 단 음식을 먹는 김원철 아저씨.
오늘의 간식 메뉴는 얼그레이 홍차와 함께 곁들인 솔티 캬라멜 쿠키였다.
“키햐. 이거 진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네. 달달한 게 안에 소금기도 있어서 밸런스가 아주 기가 맥힌다야.”
“일부러 좀 짭짤한 것으로 준비했는데 말이죠. 며칠 전에 할머니한테도 소금 얻어맞으셨다면서요.”
푸흡, 하는 소리와 함께 아랫입술 사이로 흘러내리는 홍차.
냅킨으로 대충 입가를 닦아낸 김원철 아저씨가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흐흐흐. 나 마귀할멈… 아니, 서 이사장님한테 소금 맞은 거 들었어? 평창동 갔다 왔나 보네.”
“간간이 효자 노릇도 좀 하고 그래야죠. 할머니께 여쭤볼 것도 있고요.”
지금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그룹 일에 대해 직접적인 관여는 일절 하지 않는 할머니.
그러나 일평생 탄약그룹 한씨 집안의 안주인으로 살아왔기에, 간간이 비공식적인 자문 역할 정도는 맡고 계신다.
특히 내 직관이나 능력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닌, 경험에 의존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더더욱.
“여쭤볼 것? 뭘 물어 봤는디?”
“예. 그건 그러니까….”
* * * *
평창동 본가.
바깥 복도에 아무도 지나다니지 못하게끔 조치한 할머니.
2층 서재에서는 작금의 탄약 전자에 대한 문제를 토로하는 내 목소리가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탄약그룹 조직문화 개혁이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외국계 기업들 허는 것을 보면 확실히 필요한 일일 게다. 선대 회장이었던 네 아비도 고심하던 것이고.’
아버지도 고심했다는 말에 조금 커진 내 눈동자.
의외였다.
상당히… 무뚝뚝하고 또 일정 부분 권위적인 사람이었던 아버지.
그렇기에 더더욱 뜯어고쳐야만 하는 조직문화.
‘허나, 문제는.’
금속제 안경테 안쪽에 비치는 눈빛. 간만에 보이는 냉철한 모습과 함께 할머니는 하던 말을 마저 이어나갔다.
‘임원급들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게야. 특히 이택규 사장이었지? 그 사무실에서 희한한 경례 비슷한 것 하는 작자. 그놈아가 있는 전자 쪽은 더더욱 그렇고.’
‘…그 부분은 저도 절실히 통감하고 있습니다.’
통감 정도가 아니다.
최근 겪는 편두통의 90%는 이택규 사장, 그 양반 때문이니까.
‘거기에 지금 같은 기술 경쟁 상황이면 동종업계 외부자 영입도 어렵지. 차라리 내부에서 올릴 만한 이를 찾는 것이 빠를 터.’
‘그 생각도 안 해본 건 아닙니다만, 상무급 임원들까지 전부 나사가 빠져 있어서 고민입니다.’
‘때로는 강 본류보다 지류에 대어가 있기도 허지.’
무언가 오염된 공업용 폐수가 흐르는 듯한 탄약 전자라는 강.
서랍에서 꺼내진 그룹 조직도.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짚은 곳.
그곳은 인재라는 산천어가 사는 깨끗한 계곡물 같은 곳이었다.
-[탄약 전자 미래사업부]
‘여기는….’
‘나이 먹어서도 머리통 물렁물렁한 놈들만 추려 따로 모은 조직이다. 쉬는 것 좋아하는 코쟁이 놈들도 여기서는 좀 버티더구나.’
* * * *
“아아, 그래서 나보고 미래사업부 관련 보고 올리라고 한 거였구만.”
“어떻게, 낚시꾼 입장에서 생각하셨을 때, 쓸만한 대어가 있어 보입니까?”
“흐음….”
바둑 기사라도 된 듯, 턱을 괸 채 장고에 들어간 김원철 아저씨.
희망차게 빛나는 대답을 기대했으나, 아저씨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애매한 세모 표시였다.
“이 양반들. 정치적 판단 그런 건 못 해. 아마 기술 개발에만 미친, 순수혈통 공돌이 그 자체일 거야.”
“정치력 없는 공돌이라….”
“그래서 지금 조직 구조 유지하는 선에서는 뭘 못 할 거고. 임원부터 중간관리자까지 싹 다 엎어야 할걸?”
탄약 전자 미래사업부.
선대 회장이었던 아버지가 만든 신기술 개발 부서.
제아무리 군대 문화가 강한 탄약그룹이었다지만, 그곳만은 예외였다.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새벽까지 이어지는 거한 폭탄주 회식도, 그룹 세미나와 워크숍을 빙자한 특수부대 수련회도 전부 면제였던 이곳.
그런 그들이니만큼, 답답한 조직 전체를 통제할 방법은 요원해 보이는 상황.
그러나….
“그러면 결론은 났네요.”
우드득, 손가락뼈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깍지 낀 손을 위로 뻗은 나.
귤 박스 안. 대부분이 곪아 있고 일부만이 신선하다면, 답은 하나다.
당장 박스가 텅텅 비더라도, 곪은 것을 전부 쳐내고 신선한 것들을 빨리 채워나가는 수밖에.
“아예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일로 탄약 전자를 때려 부수고 나서 고쳐야겠습니다.”
“흐흐흐. 내 그럴 줄 알았어.”
“화끈하게 개혁 한 번 해봅시다. 금융은 <코코아>로 한번 바꿨으니, IT는 탄약 전자 고쳐 쓰는 것으로 해야겠네요.”
켜켜이 쌓인 피라미드형 군대 조직 체계에서 벗어나, 유연한 매트릭스 조직으로의 변화.
아무 쓸모도 없는 부조리를 싹 빼고 오로지 실적 중심으로의 전환.
회귀 전, 두 눈으로 보았던 해외의 최첨단 IT 기업의 조직관리.
나는 다음 일정도 취소한 채, 김원철 아저씨와 함께 해당 내용에 대해 한참을 토의했다.
“…그래서, 아예 소속 부서 없이 유연하게 가자는 거죠.”
“아아, 프로젝트별로 뭉쳤다 흩어졌다 하는 식으로?”
간만에 갖는 열정적인 시간.
문제는 그 불꽃과도 같은 열정이 비단 이 방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무언가 살짝 불길한 예감이 등골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오려 할 때쯤, 긴박함이 묻어나오는 노크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회… 회장님! 큰일입니다!”
“유세나 보좌관?”
이마 자락에 땀방울이 맺혀 있는 그녀.
급히 뛰어오기라도 한 걸까?
그리고, 그러거나 말거나 여유롭게 농담을 건네는 김원철 아저씨.
“이야, 유세나 보좌관은 간식을 나랑 똑같이 먹는데 살이 찌는 일이 없네. 혹시 다이어트 한약 같은 거라도 먹는 거면 나한테도 좀….”
“탄약 전자 주관 교육 도중, 미래사업부 직원 중 하나가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
훅 치고 들어오는 청천벽력 같은 상황.
아무래도… 농담할 때가 아닌 모양이었다.
“어, 어, 그, 한약은 다음에 같이 먹는 걸로….”
“당장 현장 상황 파악하고 책임자에게 보고 올리라 하십시오! 아니, 아니지.”
지시를 내리던 중 중간에 멈춘 나.
이미 여러 번 징조가 있었던, 그리고 사전 경고까지 했기에 더더욱 묵과할 수 없는 사안.
이제 평소와 똑같은 해결책으로 대응해서는 안 될 터.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흐트러진 넥타이를 바로 하고는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가 직접 현장에 가겠습니다. 지금 바로!”
* * * *
경기도 고양시, 탄약 전자 미래사업부 연구소.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한 남성. 편한 복장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천천히 복도를 걷고 있는 수석연구원의 이름은 미셸이었다.
뚱뚱한 몸으로 연구소 여기저기를 자유로이 오가는 이 40대 후반의 프랑스인.
환한 미소를 띤 그는 손에 쥔 도넛만큼이나 달콤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좋은 아침. 킴 박사. 저번에 참고하라던 논문 잘 봤습니다. 반도체 쪽은 확실히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게 느껴지네요.”
“마, 그만큼 이차전지 발달이 빨리 따라와야 하지 않겠십니꺼? 아무래도 전력 소요량이 더 많아질 테니 말인데예.”
10년 전, 아내와 함께 어쩌다 오게 된 한국이라는 낯선 땅.
그러나 이제는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이라 해도 믿을 만큼, 익숙해진 한국어와 한국 문화.
사투리가 심한 동료가 말하는 것 또한 얼마든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신소재 팀에서도 조만간 성과가 있을 것이라 했으니, 기대해 볼 법도 합니다.”
“하이고, 그 양반들도 참, 천상 공돌이 아니랄까 봐, 연구 말고는 변변찮은 취미도 없으니.”
새로운 기술에 대해 열정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업무 환경. 수평적인 인간관계.
미셸은 본국인 프랑스만큼이나 이곳이 만족스러웠다.
다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것을 제외하고는.
“그런데… 본사 말입니다. 탄약 전자요. 여기 있다가 일선으로 간 사람들에게 요새 괴상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아아, 그 정신줄 팔아 처먹은 짓거리 말입니꺼? 시상에… 이택규 그 양반도 순 도라이지, 뭔 회사에서 병정놀이를 한다꼬…!”
떠도는 소문에 대해 이미 들은 모양인 김 박사.
병정놀이라는 말에, 바로 앞에 선 미셸의 표정이 잔뜩 굳어지긴 한 모양이었다.
무심코 미셸이 바닥에 떨어트린 도넛을 주워주며, 뒷말을 덧붙이는 김 박사.
“에휴, 그나마 예는 안전하다 아입니꺼. 지휘계통이 쪼매 달라가, 암만 본사가 미쳐 돌아가도 터치 몬합니더.”
“제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하이고, 그 무서웠던 선대 회장님도 미래사업부 딱지 붙은 곳은 연구만 하게 두었다 아잉교. 너무 걱정 마이소.”
그제야 얼굴에 화색이 도는 미셸.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가 말했다.
“하기야, 그렇겠지요. 아,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이따 식사 같이하면서 센서 쪽 실험 이야기를….”
-후, 후. 아아.
그 순간, 천장 스피커에서 들리는 숨소리.
군필 4수생 출신인 김 박사의 머릿속에서는 불쾌한 기억이 강제로 재생되었다.
대규모 삽질이 있을 때, 군대 행정반에서 일방적으로 전파하는 저 소리.
이미 민방위까지 끝난 상황이었으나, 그의 직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나쁜 쪽으로.
-미래사업부 소속 전 직원들께 알립니다. 긴급상황이니 현 시각 부로 곧바로 연병장… 아니, 잔디밭 앞으로 집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방송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직원들의 목소리로 웅성거리는 복도. 모두가 미래사업부에 있는 동안 처음 겪는 일이었다.
“무슨… 일이지? 어디 불이라도 난 건가?”
“화재 경보음은 안 났는데… 일단 혹시 모르니 나가보시죠. 안전 관련된 것일 수도 있으니.”
각자 하던 업무를 내려놓고 어기적어기적 본관 앞 잔디밭으로 나가는 연구원들.
딱 봐도 체력 관리와 담을 쌓은 공대 출신 아저씨들 무리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낡디낡은 얼룩무늬 군복이었다.
“아니, 이게 뭐야? 군복? 전투화도 있네? 진짜 한 10년 만에 다시 보는 것 같은….”
“아, 아. 전원 주목!”
그 순간, 지프에서 우르르 내린 교관 비슷한 사람들.
‘탄약 교육대장’이라는 정체불명의 완장을 찬 본사 쪽 우두머리는 숫제 빨간색 메가폰까지 잡은 상황.
“지금부터 본사 차원에서 교육이 있겠습니다! 전원 앞에 놓인 전투복으로 환복 후 10분 내로 다시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이게 도대체 뭡니까? 멀쩡히 연구하던 사람들 다 끌고 나와 놓고서! 지금 군대놀이나 하겠다는 거요!”
곧바로 험상궂은 모습으로 변해버린 교육대장의 얼굴. 그는 이의를 제기한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 소리쳤다.
“교육 미수료 시 징계 후 재교육! 재교육까지 실패 시 권고사직! 당신 여기 올 때 동종업계 재취업 금지 서약서 썼어, 안 썼어?”
“무슨 그런…!”
“탄약 전자 본사 사장님 특별 지시야! 알아먹었으면 빨리빨리 움직여! 10분, 환복까지 10분!”
보급품을 들고 탈의실로 뛰어가는 연구원들.
생전 처음 겪는 포악스러운 광경에 미셸은 어지간히 당황한 모양이었다.
사람들로 꽉 찬 중앙계단. 중심을 잃어가는 미셸의 뚱뚱한 몸.
크게 휘청거리던 그가 난간을 놓치고 난 다음, 그의 귓가에 마지막으로 들린 것은 곁에 있던 김 박사의 목소리였다.
점점 눈앞에서 다가오는 깜깜한 어둠과 함께.
“미셸! 미셸! 하이고, 제발 눈 좀 떠 보이소! 마, 뭐 하고 있노! 퍼뜩 119 안 부르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