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곳간을 노리는 쥐새끼들(1)
“어머! 장관님은 어쩜 보면 볼수록 점점 젊어지시는 것 같아요. 역시 평생 운동을 놓질 않으셔서 그런가?”
“예끼. 서 대표, 이 사람 참… 괜히 늙은이 마음 설레게 허지 말고, 그 간드러지는 눈웃음일랑 좀 거두지 그러나?”
여의도 K 호텔, 라운지 바.
바 하나를 통으로 전세 낸 채, 함풍덕 국방부 장관과 함께 마주 앉은 서윤지.
그녀는 함 장관에게 담배 한 개비를 내밀고는 묘한 눈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칠흑 같은 단발에 어울리는, 암고양이 같은 웃음을.
“아이, 참. 그런 거 아닌 거 아시면서. 또 그러신다.”
“허허, 이거야 원. 내 서 대표한테만큼은 못 당한다니까.”
테이블 위에 놓인 술잔을 비운 함풍덕 장관.
자칫 잘못하다가는 그대로 그녀의 의도대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하며, 그는 눈을 부릅뜬 상태로 입을 열었다.
“서 대표와 있는 시간이야 늘 즐겁지만, 우리 둘 다 워낙 공사가 다망해서 말이지.”
“그러니까요.”
“해서, 나한테 할 말은 또 뭐고, 주려는 건 또 뭔가?”
곧바로 꺼낸 본론.
교태 섞인 눈웃음을 거둔 서윤지는 다리 한 짝을 꼬고는, 발끝에 하이힐을 까딱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장관님… 이번 재보궐 선거 때 꼭 국회 들어가게 해드리고 싶거든요. 그것도 집권 여당 텃밭에”
“…서 대표가? 아니, 도대체 무슨 수로?”
작대기만 세워 놓아도 무조건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는 곳에 동공이 흔들리는 함 장관.
어깨 위에 별을 단 후부터, 그는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군인. 그 태생적 한계.
아무리 높이 올라간다 한들, 결국 정치인의 말 한마디에 좌우로 흔들리는 신세인 것을.
그렇기에, 국방부 장관이 된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토록 바라 마지않은 국회의원 금배지.
정무적 감각이 턱없이 부족한 그에게, 그것은 늘 오르지 못할 나무와도 같았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까지는.
“딱 한 사람만 연결해 주시면,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꿀꺽, 목구멍 너머로 넘어가는 욕망의 묘약.
불이 붙은 궐련에서 피어오르는 몽롱한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그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도대체 누구를….”
“잘 아시면서.”
다시 지어진 눈웃음.
손가락으로 유리잔에 꽂힌 빨대를 빙글빙글 돌려대는 암고양이의 손짓 사이로, 묘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다가가 손을 맞잡으면 사달이 날 것을 알지만, 도저히 잡지 않을 수 없는, 유혹이 담긴 울음소리가.
“윤학길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그 사람 하나만 소개해 줘요.”
* * * *
더 멀리 보기 위해서는 더 높은 곳에서 봐야 하는 법이라고들 한다.
그런 의미에서,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가 드넓은 벌판을 바라보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똑똑!
오래간만에 찾은 평창동 본가.
밤하늘은 수놓은 저 많은 별처럼, 군복 견장 위에 올라간 철제 별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나는 2층 할머니의 서재 문 앞에 멈춰 섰다.
“아, 진짜! 이사장님! 거, 우리 인간적으로다가 얼굴에 소금은 뿌리지 마시고!”
“김원철이 네놈은 항상 잘 나가다가 말끝에 쓸데없는 소리를 덧붙인다! 나이 50이 넘었건만, 아직도 철딱서니를 찾을 수가 없고!”
“쏘리! 쏘리! 농담이었어!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사랑해용 진짜로!”
할머니에게 손가락 하트를 날리며 황급히 방을 빠져나오는 김원철 아저씨.
얼굴 가득 묻은 소금은 오늘따라 유독 입자가 굵어 보였다.
어찌나 재빨리 도망치던지, 내가 미처 잡기 전에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가 버린 상황.
나는 조심스레 그 열기로 가득 찬 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혹시 다음에는 안 데리고 오면 되는 겁니까?”
“안 데리고 오면 뭐 어쩔 방법이 있는 게냐? 일은 저놈이 다 하는 것을. 그저 이렇게 늙은이 속 긁히는 것으로 값을 치른다 여겨야 하는 게지.”
머리 위에 뿔이 난 할머니.
늘 있는 이 소소한 재미에 나는 애써 웃음을 꾹 참아가며 물었다.
“이번엔 또 무슨 망언 아닌 망언을 한 겁니까?”
“흥! 국방부 내부의 계파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설명하는 것까지는 잘 했건만, 꼭 종국에 가서 헛소리를 허니 문제인 게다.”
청주댁 아주머니를 불러 카펫 위에 남은 소금을 치우라 지시한 할머니.
내 궁금증은 빗자루질이 모두 끝나고 난 후에야 풀릴 수 있었다.
“이참에 국방장관 딸년. 그 미친 계집을 내 손주며느리로 들이면 어떻겠냐고 농을 던지더군.”
“그건… 할머니께서 잘 때리신 것 같습니다. 이참에 아예 자갈만 한 소금 조각을 책상 위에 두는 것도 좋을지도요.”
국방부 장관 함풍덕.
함 장관 그 자신의 인성 자체야 그저 흔한 권위에 취한 똥별에 불과했지만, 그의 딸은 차원이 다른 정도였다.
새싹부터 샛노란, 글러 먹은 싹.
매스컴에 보도된 그녀의 만행만 정리하더라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운전병에 대한 갑질과 폭행, 전속 부관의 얼굴에 가래침 뱉기, 만취한 상태로 부대 앞 초병의 총기 빼앗고 도망치기까지.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할머니였기에, 김원철 아저씨가 소금을 맞은 것에는 한 점 문제 될 여지가 없었다.
“물론 돌아가는 상황이야 이해는 한다만, 서준이 네 녀석의 짝을. 아니, 우리 탄약그룹 한씨 집안 며느리로 그런 년으로 맞이할 수는 없지.”
“김원철 비서실장도 그냥 농담하듯 던진 말이긴 할 겁니다. 애초에… 지금 국방부 내부 파벌 갈등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니까요.”
화산 분화구 가장자리에서 넘칠 듯 말 듯 넘실거리는 용암처럼, 당장이라도 세간을 향해 터져나갈 것만 같은 국방부 내부 파벌 갈등.
얼마 전, 용산 일식집에서 나와 함께 술자리를 가졌던 김철근 국방차관. 그는 손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내게 자신의 곤란함을 어필했었다.
‘저와 장관과의 기존 균형 관계에 굴러들어 온 돌 하나가 균형추를 부수고 있습니다. 아마… 철화그룹 쪽 입김이 닿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굴러들어 온 돌이라… 도대체 누굽니까, 그자가?’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는 목소리를 낮추는 김철근 국방차관.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단순하게만 보였던 상황이 복잡한 고차방정식으로 변하게 되는 느낌을 내게 주었다.
‘윤학길. 윤학길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입니다.’
‘그 부패의 달인이라던… 윤학길 말입니까?’
눈을 질끈 감은 채 머리를 끄덕이는 김철근 국방차관.
그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머리가 어지간히 지끈거리는 모양이었다.
돈을 너무나도 사랑하다 못해, 불법을 저지르는 것도 서슴지 않은 윤학길에 대해 생각하고 있자니 말이다.
‘속칭 왕의 남자라고도 한다지요? 워낙 대통령께서 윤학길을 감싸시는 데다가 국방부 장관과 함께 손을 잡으니 제가 방법이 없습니다.’
아직 자세한 내막은 자신도 모르겠다던 김철근 국방차관.
지금 필요한 것은… 조금 더 정확한 정보다. 그것도 방산 재벌가에서 일평생을 안주인 역할을 맡았던 할머니로부터 들을 수 있는 정보.
“윤학길. 그치는 예전부터 유명했지. 워낙 돈에 미쳐 있으니.”
“예전부터라면…?”
“그놈이 국회의원 보좌관 시절부터 우리 탄약그룹에 뜯어낸 돈만 아파트 서너 채 값은 될 게다.”
정치 입문 시기부터 어떤 의미에서는 난 놈이었던 윤학길.
마치 당장 다음 날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는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에 그 어떤 거리낌이 없었다. 무려 20년 동안을.
“만약 윤학길이가 SA-철화 테크윈 쪽에 붙었다면, 이번 국방부 신무기 도입 사업에 암초가 하나 나타났다고 봐야 한다.”
“무언가… 대단한 대가가 이미 오갔을 테니까요.”
갑자기 나타난 대형 암초.
분명 뿌연 안개를 뚫고 지나가, 도착지가 눈에 보이는 상황이었다.
순항하던 탄약그룹 호(號)에 닥친 마지막 위기.
이대로라면… 권력이라는 돌덩이는 나무로 된 배의 용골을 찢어발긴 채, 모든 것이 침몰할 것을 가만히 지켜봐야만 할 터.
“혹시 생각나시는 파훼법이 있겠습니까?”
그저 막연히 던진, 그러나 약간의 기대를 담아 물은 질문.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난 할머니.
주름진 서태후의 손은 느리게 내 정수리 위로 올라가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왕의 남자. 그건 결국, 왕의 그림자 밖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게 될 터.”
“그야 그렇겠지요. 권력에 기생하는 자이니.”
“허면, 어디 대통령 목 끝에 칼날을 들이밀어 보거라.”
“……!”
“윤학길이를 버리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대통령이라 한들, 제 목이 날아갈 상황을 만들어 버리는 게다.”
그 손바닥만큼이나 투박하게 던진 말 한마디.
역시… 오늘 이 서재에 다시 오기를 잘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가 망원경으로 본 바다. 내 눈에는 이제야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타난 암초를 피할 수 있는, 머릿속에 정교하게 그려진 해로 하나가.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감사의 표시로 머리를 숙인 내게 퉁명스러운 말을 건네는 할머니.
“어서 나가 보거라. 큰 일허는 사내가 바깥 일거리 놔두고 집에 자주 왔다 가는 것 아닌 게야.”
“감사합니다, 할머니. 다음번에 찾아뵐 때는 모든 것을 다 해결하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 * * *
청와대 지하 벙커, 국가안보실.
빼빼 마른 양복쟁이 남자 한 사람이 제복 입은 군인들의 경례를 건성으로 받으며 들어왔다.
대한민국 안보와 관련된 모든 기관을 한 손에 틀어쥔 이 사람.
두 눈 가득 탐욕이 서린 그는, 흑색 상아로 만든 자신의 명패를 한 손으로 쓸어 넘겼다.
-윤학길 국가안보실장.
“실장님, 오셨습니까요?”
“다른 문제 없지? 북쪽 돼지도 요새 조용하고?”
“예? 아, 예. 그렇습니다. 그쪽 내부 사정 때문에 아마 당분간은 별일 없을 겁니다.”
“오케이. 그럼 타이밍도 딱 맞네.”
툭, 부관 앞에 던지듯 놓인 누런색 봉투 하나.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운 부관을 향해, 윤학길 국가안보실장이 비열한 웃음을 입에 걸고 말했다.
“사이즈 큰 거다. 우리 쪽 밑에 자리 없는 정치 낭인들, 철화그룹으로 출근 준비하라 해.”
“실장님…?”
“얼추 재보궐 선거 자금도 부족한 것 채워질 것 같고. 이참에 그쪽 돈으로 지역조직 역량도 키울 법하고. 타이밍이 아주 기가 막히는군.”
커터 칼로 봉투를 열어 재낀 부관.
그의 눈앞에 보인 종이 위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 있었다.
-국방부 신무기 개발 사업 입찰 규정에 관한 건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눈치 빠른 부관은 재빨리 윤학길의 비위를 맞추기 시작했다.
“크흐… 역시 ‘왕의 남자’ 타이틀이 충분히 어울리시는 우리 실장님이십니다요.”
“이 친구, 안 어울리게 또 아부는.”
“헤헤헤, 사실인 걸 어떻게 합니까요. 아무튼, 그럼 SA-철화 테크윈 쪽으로 몰아주라고 지시하면 되는 겁니까?”
“국방부 장관하고도 이야기된 거니까 아랫것들 잡음도 안 날 거다. 바로 진행시켜.”
싱글벙글한 표정의 부관.
밑의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떡고물을 돌리는 윤학길인 만큼, 분명 그에게도 무언가 달콤한 것이 돌아올 것을 기대하던 차였다.
“아, 잠깐만.”
곧바로 작업을 위해 전화기를 들어 올리는 부관에게, 손짓하는 윤학길.
가만히 무언가를 생각한 그가 갑자기 생뚱맞은 지시를 내렸다.
“민정수석 먼저 연락해.”
“네? 민정수석님 말씀이십니까? 어째서…?”
“아아, 그건 말이지.”
가느다란 그의 눈에 서린 웃음기.
윤학길의 앙상한 손 위로 만년필 하나가 빙빙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예 철화그룹 자체를 완전히 우리 쪽 금고로 만드는 편이 나으니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