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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92화 (92/300)

92화곳간을 노리는 쥐새끼들(3)

퍽, 벽에 걸린 판에 연달아 꽂힌 다트. 뾰족한 철심은 판에 덧댄 코르크를 뚫고 지나가 날개 뿌리까지 들어갔다.

“너무 힘을 많이 줬나? 아니지… 오히려 더 세게 던져야 확실하게 죽어버리겠지?”

다트판으로 천천히 다가가 깊게 박힌 다트를 뽑는 서윤지.

판 위에 붙어 있는 사진 한 장에는 여기저기 구멍 뚫린 자국이 가득했다.

사진 속 두 사람, 서윤아와 서윤미. 눈과 코, 심장과 손바닥까지 난장판이 된 모습을 본 서윤지의 입가에는 어느새 미소가 걸려 있었다.

“멍청한 년들. 왕관에 눈이 멀어서 옆을 똑바로 안 보면, 등 뒤에 칼을 맞는 법인 걸 잊었나 봐.”

손아귀에 다트를 꽉 쥔 채, 제 언니들의 사진을 향해 난도질하듯 다트를 내리찍는 서윤지.

날숨 섞인 거친 신음이 끝난 후에야, 그녀는 침대 위에 몸을 묻었다.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내며.

“윤학길은 셈 하나는 확실한 사람이니, 분명 청구서가 더 들어오겠지? 그것도… 내가 감당하기 힘든.”

국방부 신무기 개발 사업에 대한 압력, 그리고 이복 언니들에 대한 법적 조치.

그녀가 내어주기로 했던 금액과 인사 청탁에 대한 반대급부치고는 확실히 무언가 과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런 묘한 경계심에, 경쾌함으로 달아올랐던 서윤지의 몸은 조금씩 얼음처럼 차가운 냉정함으로 식기 시작했다.

“철화그룹 전체를 넘겨줄 수는 없지, 절대로! 그건… 내 거니까.”

천장 위로 손을 뻗은 서윤지.

움켜쥔 작은 주먹은 무언가를 당장이라도 부숴버리려는 의도를 가진 듯, 조금씩 조금씩 한계치까지 우그러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토사구팽이 예견된 미래라면, 자신 쪽에서 먼저 솥뚜껑을 열어 상대를 끓는 물 속에 던져버릴 것을 다짐하면서.

“한서준 그놈을 끝낸 후, 뒤이을 행보에도 공을 들여야겠어. 그러려면… 이젠 윤학길이보다 이쪽에 더 공을 들이는 게 맞겠지.”

자리에서 일어난 서윤지. 그녀는 곧장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적어 넣은 익숙한 열한 자리 번호. 함풍덕 국방부 장관의 연락처였다.

이전과 달리 몇 번의 끊김이 있는 후에야 연결된 통화.

“어머! 장관님. 공무로 많이 바쁘셨나 봐요. 제가 괜히 이 시간에 전화 드렸나 봐.”

“아닐세, 서 대표. 바쁜 건 맞긴 한데… 공무는 아니고, 그냥 집안일이야.”

한동안 이어진 통화.

윤학길 국가안보실장을 소개해 주어서 고맙다는 겉치레는, 곧 그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지 않냐는 논리로 순식간에 발전되었다.

“어차피, 윤학길 그 사람 너무 위험한 건 맞으니까요. 이번 일이 끝나는 대로 적당히 거리를 두는 편이 낫지 않나 싶더라구요.”

“하기야, 내 입장도 그렇긴 함세. 공천받고서도 계속 국방부 쪽에 윤학길이가 숟가락 들이밀면, 밑에 후배들한테도 면이 안 서.”

의도된 대로 이야기가 흘러가자 웃음 짓는 서윤지.

적당히 좋은 말로 통화를 끝내려는 그녀는 큰 고민 없이 마지막 말 한마디를 던졌다.

그녀의 물음에 대한 함풍덕 장관의 대답이… 스스로에게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알지 못한 채로.

“다행이다. 역시 장관님도 저랑 같은 생각이셨어. 그런데 제가 너무 시간을 뺏은 것 같아요. 아까 집안일 때문에 바쁘시다 하셨는데….”

“크흠.”

잠시 말을 아끼는 함풍덕 국방부 장관. 치부를 쉬이 드러내지 않으려던 그의 망설임은, 가슴 속 한껏 쌓인 괴로움을 이기지 못한 모양이었다.

“후우… 뭐, 내 집안일이라면 딱 하나뿐인 딸년 일이지 않겠나.”

“아아, 그 개구쟁이 아가씨요? 어머, 또 장관님 속상하셨겠다. 마음 아프셔서 어떻게 해.”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탄식.

잠깐의 망설임이 있고 난 후, 함풍덕 장관의 골치가 아픈 듯한 대답이 이어졌다.

“개구쟁이는 무슨… 그냥 미친년이지. 며칠 전에 갑자기 집 나가서 이젠 들어오지도 않는다네. 지갑 안에 현찰 다발까지 싹 털어가서.”

* * * *

“오케이. 이 정도면 다음 달까지는 펑펑 써도 되겠고. 하여간, 영감탱이 은근 뒷구멍으로 돈 엄청 밝힌단 말이지.”

기세도 당당하게, 아버지인 함풍덕 장관의 지갑까지 털어간 그녀.

여의도 K 호텔 라운지 바. 칵테일 위에 꽂힌 빨대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함채은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김범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 국민 불륜남.”

“야… 씨. 너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집행유예 받았으면 무죄랑 똑같은 거야. 감옥은 안 갔으니까.”

“국민 마약남 아닌 게 어디야. 이만하면 오빠한테 과분한 호칭이지.”

낄낄거리는 경박한 웃음소리.

상류층 사이에서 워낙 막장으로 통하던 두 사람이었기에, 함채은은 김범호와 제법 친한 관계에 있었다.

그리고는 아무런 스스럼도 없이 곧바로 김범호의 다리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그녀의 손가락.

“그래서, 우리 범호 오빠야 다리몽뎅이는 멀쩡한가? 난 피떡이 되었다에 내 돈 모두와 손모가지를 걸 수 있는데.”

“하아, 걸 필요 없어. 이미 함채은 네가 이긴 판이니까.”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어 사진 한 장을 보여주는 김범호.

거기에는 보랏빛 피멍이 든 그의 다리 사진이 들어가 있었다.

법적 처벌이 뒤따른 서윤지와의 간통, 그리고 그에게 있어 다행스럽게도 의혹으로 마무리된 마약 투여 사건.

해당 사실이 매스컴에 오르내리자, 그의 아버지인 T그룹 회장의 몽둥이가 불을 뿜은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던 일이었으니까.

“와… 사고 친 거에 비하면 심한데? 우리 꼰대는 나한테 손찌검은 죽어도 못 하드만.”

“넌 제발 장군 전용 지휘봉으로 좀 두들겨 맞아야 하는데. 아주 외동딸이라 그러질 못하네.”

“부럽지? 히히히.”

“아무튼, 소개팅남 조금 있으면 온다니까, 제발 오늘 사고나 치지 마라.”

“아! 그러니까 누구냐고. 그 재벌집 훈남이.”

언짢은 생각이라도 든 듯, 손가락으로 뒤통수를 벅벅 긁는 김범호.

며칠 전, 갑작스레 걸려 왔던 전화 한 통.

다시는 얼굴도 보기 싫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목소리조차 듣기 싫었던 그 사람.

자신의 다리몽둥이에 피멍을 선사해준 탄약그룹의 수장은 뜬금없이 여자 소개를 원했다. 그것도…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인물의 소개를.

‘부탁 하나 하지. 함채은 알지? 국방부 장관 딸. 그 여자, 소개팅 잡아 줘. 최대한 빨리, 그것도 은밀하게.’

‘제가 왜요… 아니지, 이제 반말해도 되는구나. 야! 내가 왜! 한서준이 네가 뭐 이쁘다고 내가 소개를 해주냐!’

그간 쌓인 울분을 터트리던 김범호.

그의 유쾌한 반란이 진압되는 데에는 불과 1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집에서 주는 자금줄이 끊겼다고 들었는데? 신용카드도 끊겼을 정도로. 사례는 두둑하게 할 테니까 그냥 하지 그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한 회장님. T그룹의 사랑꾼, 저 김범호만 믿고 딱 일주일만 기다려 주십시오! 충성!’

거절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돈.

김범호의 자존심은 이전에 쓰고 다니던 6개월 치 용돈 정도의 금액에 눈 깜짝할 새 팔려 버렸다.

고객의 요구는 소중하고 돈은 더 소중한 법. 그렇기에 김범호는 눈앞에 앉아 있는 함채은의 땡깡을 가볍게 무시했다.

“비밀이라 했지. 그쪽에서 괜히 소문나고 그러는 거 싫다잖냐.”

“아, 진짜… 거 되게 비싸게 구네. 헤이, 김범호 씨. 있잖아.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쨍그랑!

갑자기 바닥으로 던져져 산산조각 난 칵테일 잔. 그리고 깨진 유리 파편 따위에 눈길 따위는 주지 않는 함채은.

그녀의 광기 어린 눈동자가 정신 나간 미소와 함께 김범호를 응시했다. 허공에 쭉 펴진 손가락 두 개를 올리며.

“이제부터 나올 남자가 재벌집 아들내미가 아니거나, 세숫대야가 곱상하지 않거나. 하여튼 둘 중 하나라도 충족이 안 된다?”

“하, 미친년이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어. 미친년. 김범호 너는, 오늘 이 자리에서 그 미친년이 미쳐 날뛰는 게 뭔지 제대로 느끼는 거야. 오케이?”

“하아….”

답답함에 주먹으로 제 가슴팍을 두들기는 김범호.

벌써 살짝 취했는지 살짝 맛이 간 함채은을 바라보며, 그는 속으로 한탄했다.

‘아니, 한서준이 이 미친놈은 왜 이딴 미친년을 소개해달란 거지? 미친놈이라 미친년이 천생연분이다. 뭐 그런 건가?’

그리고 멈추지 않는 그녀의 기행.

깨진 컵을 정리하러 온 삼촌뻘 웨이터에게 그녀가 명령했다.

“우웅, 그래. 거기 딱 가만히 있고. 열중쉬어! 그렇지!”

대뜸 열중쉬어 자세를 요구한 함채은. 지갑에서 현찰 다발을 꺼낸 그녀는 지폐로 웨이터의 뺨을 좌우로 연달아 때리기 시작했다.

마치 공관에서 운전병에게 대하듯이.

“히히히. 원래 돈 벌기가 이렇게 힘든 거야. 오늘 너 인생 수업 큰 거 하나 배워 간다. 넌 나한테 감사해야 해.”

“야, 함채은. 너 쫌…!”

모욕감으로 붉게 물든 웨이터의 뺨. 도를 넘은 행위에 김범호가 제지하려는 그 순간, 갑자기 그가 들고 있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어? 벌써… 다 왔다고?”

오늘의 각본을 만들어 낸 작가이자 주인공.

탄약그룹의 회장이었다.

“네! 아이고, 금방 오셨네요. 어떻게 행차하시는 데에 불편하신 점이라도…?”

허리를 수그린 채, 투철한 서비스 정신을 보이는 김범호의 모습.

“네? 아아, 반말… 해도 된다고? 그, 그래. 여기 꼭대기 층 라운지 바. 전용 엘리베이터 타고 바로 올라오면 돼.”

곧바로 끊긴 전화.

그 모습이 여간 재미있기는 했던 모양이다. 폭소를 터트리며 발을 동동 구르는 함채은.

웃음으로 맺힌 눈물방울을 손가락으로 아무렇게나 닦아내며, 그녀가 소리쳤다.

“푸하! 김범호 완전 굽신거리는 것 좀 봐! 우리 범호 오빠, 언제부터 이렇게 착한 어린이였어?”

“시끄럽고. 아무튼, 이제 나는 빠질 테니까 둘이 잘 해봐. 슬슬 아버지 오실 시간이라 난 집 가야 해.”

“등신. 나이 서른에 통금이란다. 아무튼, 잘 놀다 갈게. 오빠도 조심히 가.”

그날 서윤지와의 사건·사고 이후 집안에서 사람 취급을 못 받는 김범호. 떠나가는 그를 배웅한 함채은은 다시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며 생각했다.

“흐응. 어떤 남자가 나올라나?”

발등에 살짝 걸친 채, 딸깍거리는 하이힐. 구불구불한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빙빙 꼬며 이런저런 멋진 남자의 모습을 상상하는 그녀.

-딩동! 문이 열립니다.

뚜벅거리는 구둣발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안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한 남성.

안 그래도 동그랗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진 함채은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 하나가 새어 나왔다.

“오, 대박…! 김범호가 웬일로 쓸모도 다 있네.”

드르륵, 손으로 나무 의자를 빼 그녀 앞에 마주 앉은 남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가 낮은 톤의 목소리로 말을 건네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탄약그룹의 한서준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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