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The greatest show(1)
국방부 장관 집무실.
“아이고, 아이고. 장관님! 참으로다가 감사, 그리고 또 감사합니다요!”
직각을 넘어 고개를 땅바닥에 푹 처박을 듯, 과한 예를 표하는 침대 제작 업자.
바닥을 향한 그의 얼굴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환희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
무려 6조 원대 규모의 사업.
위아래 관련자들에게 이것저것 다 떼어주고 위험성을 감안하더라도, 이미 업자 자신만 500억 원 이상의 이익을 가져갈 터였으니까.
“바깥에 말 안 새어나가게 조심들 시켜. 당신이 업체들 총괄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아무렴요! 전부 스무스하게 처리할 터이니 아무 걱정 마십시오. 헤헤헤.”
이쯤 되면 거의 절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숙인 허리.
함풍덕 장관은 그런 침대 제작 업자를 바라보며,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무어라 중얼거렸다.
“여기서 나도 크게 한 몫 가져가면… 정치 시작하는 데에 자금은 충분하다. 문제는 보안인데.”
이번 방산비리와 연루된 몇몇 관계자들의 얼굴을 떠올리는 함풍덕 장관.
몇몇 군 장성과 국방부 내의 국장급 고위 공무원, 그리고 방위사업청장까지.
시작부터 가능한 한 최소 인원으로 꾸린 프로젝트였기에, 그는 나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그래. 애초에 이 주제로 이야기 나올 때는 무조건 공관 내에서 했었지. 관계자들 외에는 아무도 들은 적이 없다. 그… 채은이 고 계집애 빼고.”
딸에 대해 생각하자니 다시 지끈거리기 시작한 관자놀이.
분명… 그때도 그랬다.
늦은 밤 술에 거나하게 취한 채, 집안 사용인들이 뜯어말리는 것도 뿌리치고 2층 응접실로 올라왔던 함채은.
‘하이고, 아가씨. 장관님께선 지금 손님들 보고 계셔유. 올라가시믄 안 돼야.’
‘아, 아줌마! 쫌 놓으라고! 나 지금 아빠한테 할 말 있다 했지!’
문밖에서 들려오던 실랑이 소리.
그 순간, 벌컥 열린 문.
예산 금액과 사업 구조, 유통과 회계의 구멍이 어디 났는지, 관계자는 누구인지가 모조리 적혀 있던 화이트보드 앞.
그걸 본 그녀는 두 눈이 동그랗게 변하고는 다음과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그날 먹었던 저녁 메뉴와 함께.
‘우웨에에에엑! 아빠 나 너무 마셨나 봐.’
‘이런… 정신 나간 년이! 아줌마! 빨리 와서 이거 치우고, 얘는 화장실 보내서 싹 씻겨!’
‘켁! 켁! 어우, 죽겠네… 이건 뭐야? 침대…? 하! 아빠 또 거하게 해 드실라고?’
‘이년이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아줌마! 뭐 하고 있어! 빨리 처리해!’
카펫 위에 쏟아진 내용물만큼이나 찝찝한 기억.
거칠게 고개를 가로젓는 함풍덕 장관은 애써 그 기억을 머릿속에서 지우고자 애썼다.
술에 취한 딸년이 손님들 앞에서 부렸던 꼴사나운 술주정. 분명 그 일은 해프닝에 불과할 것이었다. 아마도.
“철딱서니 없는 망아지 년… 아주 그냥 집에 돌아오기만 해봐라.”
“예? 장관님?”
“아무것도 아니다! 보고 다 끝났으면 이만 들어가 봐.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입단속… 철저하게 하고.”
“예, 알겠습니다요!”
축객령이 내려진 후, 곧바로 집어 든 장초 한 개비.
늘 그러하듯, 가지고 있던 상념마저 함께 태워 연기로 만들면서, 함풍덕 장관은 앞에 놓인 서류를 손바닥으로 매만졌다.
어느새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서윤지와 약속했던 그것.
국방부 신무기 개발 사업 공개 입찰. 회색 구름을 내뿜은 그의 입가에 작은 웃음이 물감처럼 번졌다.
“우선은… 당장 이것부터 처리해야겠지. 딱딱 아귀가 맞아떨어지는군. 하늘이 나를 돕는다.”
* * * *
같은 시각, 청와대 지하 벙커.
엄중하게 닫혀 있던 내부 철문이 열림과 동시에 들리는 헌병의 우렁찬 경례 소리.
터벅터벅, 곧이어 팔자걸음의 빼빼 마른 남자 하나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안쪽을 향해 걸어 들어왔다.
내딛는 발걸음 사이로, 무언가 기분이 좋은 티가 묻어나는 윤학길 국가안보실장.
“실장님, 오셨습니까?”
“오냐.”
“흐음….”
제 상관의 눈치를 슬슬 살피는 인간 비데. 처세술 하나로 여기까지 올라온 자답게, 그는 순식간에 윤학길의 감정을 잡아챘다.
짝! 손뼉 소리와 함께 곧바로 울리는 호들갑스러운 아부의 말.
“역시 실장님! 크흐, 존경하옵나이다. 하아, 난 도대체 어떻게 해야 실장님 발끝이라도 따라갈 수 있는 거지?”
“하, 이 새끼. 아직 말도 안 꺼냈다. 네가 무슨 점쟁이야? 아니면 독심술사?”
“흐흐흐. 말하지 않아도 아는 법입니다요. 대통령께서도 그냥 넘어가셨지요? 그 국방부 신무기 개발 건.”
넉살 좋은 인간 비데의 찬양. 윤학길은 그런 그가 영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길게 찢어진 눈으로 조금은 매서운 듯한 웃음을 보이는 윤학길 국가안보실장.
“사고 터지지 않는 선에서, 대통령 당신은 모르시게 나더러 알아서 하라신다. 꼬리 잘 자르도록 마무리 처치까지 싹 다.”
“히야… 사실상 우리 실장님은 소통령. 아니, 중통령이라고 봐도 무방한 거 아닙니까? 어지간한 건 이렇게 대통령님께서 다 허락해주시고.”
인간 비데의 소통령, 중통령 어쩌고 하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윤학길.
조금 불편한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는 주먹 쥔 손으로 가슴팍을 팡팡 두들겼다.
“새끼… 나 윤학길이야! 대통령 딸내미 목숨 구해준 윤학길.”
“그렇습죠. 그 사건 생각하면, 상남자도 이런 상남자가 따로 없었다니까요.”
과거 보좌관 시절,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현 대통령. 그리고 횡단보도에서 그의 딸을 구하고 대신 트럭에 치인 윤학길.
발목 두 개가 옆으로 틀어지고 걸음걸이마저 이상해져 버렸지만, 그런 것 따위야 전혀 중요치 않았다.
대통령의 무한한 신임.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달콤한 권력.
권력이란 칼끝에서 떨어지는 꿀방울은 그의 틀어진 발목 두 개를 대체하고서도 충분히 남았으니까.
“여하튼, 다음 주에 있을 거 준비나 잘하라고. 겉으로는 공정하게는 보여야 하니까, 일단 공개 입찰 형식은 그대로 유지하고.”
오래 서 있어서일까, 두 발목에 들어갔던 힘이 빠진 모양이었다.
털썩 주저앉듯, 의자에 몸을 묻은 윤학길.
앞으로 손을 쭉 뻗은 그는 흑색 상아로 만들어진 명패를 손바닥으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윤학길.
권력이 주는 그 달콤함을, 촉감으로 느끼며.
“최고다. 내 인생은.”
* * * *
같은 시각. 탄약그룹 본사 집무실.
새해가 밝아오고 겨울이 지나, 어느덧 화창한 봄이 찾아왔으나, 이곳 집무실만큼은 아직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굴러다니는 캔 커피, 반쯤 감긴 눈. 아래로부터 올라온 모든 정보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작업을 마친 나는, 그제야 소파에 누워 단말마를 내뱉었다.
“후우, 무슨 침대 제작 업체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네요. 거기에 공장이 죄 중국 쪽에 있어서 더 힘들었고요.”
“그르게 말이여. 대기업 빼놓고 죄 고만고만한 업자들이라 고생 좀 했다야.”
늦은 밤이 되어서야 끝이 난 검토. 갯벌에서 진주를 찾는 고단한 작업은 그만큼 고되었다.
물론… 그 대가는, 눈부시게 영롱한 진주알을 손바닥에 쥐는 것이었지만.
대규모 방산비리의 발견이라는, 새하얀 순백의 진주알.
나와 함께 진주를 캐낸 김원철 아저씨는 손에 든 음료수를 내게 건네며 말했다.
“이게 다 사랑의 힘이여. 그것도 아주 열정적이고 찐한.”
“무슨 소립니까, 그건.”
“우리 한서준 회장님과 함채은 양… 두 사람의 사랑의 도피가 불러낸 결과물이다, 이거지. 역시 젊었을 때가 최고인 것이여.”
“하아, 직접 만나보면 절대 그런 말 못 하실 겁니다.”
능청스러운 얼굴로 속을 박박 긁는 김원철 아저씨.
왜 할머니가 소금 항아리를 굳이 서재에 두었는지 이제야 비로소 실감이 된다.
하지만, 이미 기진맥진한 터라 소금이고 뭐고 손아귀에 잡을 힘도 없는 상황.
소파 위에 빨래처럼 널브러진 나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함채은 이야기는 당분간 금지입니다. 거기서 한 달 치 기가 다 빨렸으니까요.”
“흐흐흐, 어차피 핵심 관계자라 일하다 보면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걸랑.”
“됐고. 그 음료수나 좀 주세요. 두 개 다.”
“잉? 나 먹을 것도?”
“회장 명령입니다.”
벌컥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캔 음료 두 개를 모조리 비우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 충전된 당.
울상을 지은 김원철 아저씨의 얼굴은 잠시 못 본 척해야겠다.
빈 캔을 쓰레기통에 던져놓고, 나는 다시 일어나 널브러져 있던 서류를 잡았다.
“일이나 다시 합시다.”
“크흐, 우리 회장님 열정 하나는 알아줘야 해. 일단 그러면 계획대로 가자고.”
나와 김원철 아저씨가 몇 날 며칠 밤을 새워가며 만든 계획.
현재 진행 중인 두 개의 방산비리.
국방부 신무기 개발 사업. 그리고… 장병 생활관 현대화 사업.
전자를 바로 폭로하긴 어렵다. 분명 윤학길 국가안보실장이라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까지 얽혀 있기에, 함부로 손을 댈 수는 없는 상황.
“국방부 신무기 개발 사업을 위해서는 먼저 여론을 달궈 놓아야 합니다. 방산비리라는 군불을 뜨겁게 때워 놓고 나서야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 군불로 쓸 게 그 생활관 침대 사업이지?”
대답 없이 부처님 같은 미소만 지은 나.
딸깍, 버튼 누르는 소리와 함께 특수하게 제작된 컴퓨터의 냉각팬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간의 기다림 끝에 켜진, 시스템 하나.
“미셸 사장이 워낙 결과물을 잘 만들어 놓아서요.”
“흐흐흐. 이제 이해했다야.”
국방부 신무기 개발 사업.
첨단 IT 기술을 활용해 무기체계부터 보급 시스템까지 전부 전산화하는 것까지 포함된 대규모 프로젝트.
미셸 사장이 만들어 낸 이 시스템은 회계처리 즉, 방산비리 적발에도 탁월한 성능을 보였다.
그깟 침대 사업 비리 따위야… 클릭 한 번이면 순식간에 잡아낼 수 있을 정도로.
“공개 입찰. 기자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이 시스템의 시연을 할 겁니다. 시연 대상은.”
기계식 키보드 위에 올려진 내 손가락.
딸깍, 복잡하게 얽힌 수식들 가운데 엔터 한 번을 누르자, 마치 열병식에서 군대가 사열하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함수들.
어느새 새하얀 화면 맨 끝을 향해 내려간 스크롤이 멈추고, 여러 개의 붉은색 숫자가 나타났다.
“장병 생활관 현대화 사업. 이젠 어지간한 비리는 감출 수도 덮을 수도 없습니다. 지금 보시는 것처럼요.”
“캬, 역시 미셸 사장이야. 성능 하나는 확실하다니까.”
붉은색 숫자 앞에 붙은, 마이너스 부호.
마우스로 그 숫자를 누르자, 순식간에 눈앞에 펼쳐진 도식도 하나.
그것은… 어디서 예산이 새어 나오고, 새어 나온 예산이 어디를 향해 흘러갔는지를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반박할 수 없을 만큼, 간결하고 정확한 데이터로.
“다음 주. 공개 입찰장에서 방산비리 적발 쇼가 벌어질 겁니다. 방송을 통해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보는 앞에서.”
자신만만한 웃음을 입에 걸고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윤학길, 함풍덕, 서윤지.
세 사람 모두 나를 상대로 어디 한번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과연… 불타오르는 여론 앞에서 선거를 앞둔 대통령이 당신들을 감싸 줄 것인지.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제법… 화려한 쇼가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