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한-아세안 캠프(1)
“김 비서실장님. 방위사업청 최종심의 결과 떴습니까?”
대통령은 말라빠진 생김새와는 달리, 일 처리 하나만은 시원시원했다.
그리고 김원철 아저씨 역시 내가 던진 질문에 시원시원하게 대답하기는 매한가지였고.
“떴지. 방위사업청 그놈아들은 대통령이 띄우라 하면 땅바닥에 착 붙은 껌딱지도 띄우는 놈들인데. 무조건 패스여.”
국방부 신무기 개발 사업.
아니, 이제는 ‘호크아이 시스템’으로 이름 불리는 것.
복잡한 행정 절차 따위는 언제 있었냐는 듯, 곧바로 방위사업청을 비롯한 실무 부처에서는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일 처리를 끝냈다.
“그거야 이제 실무진으로 넘어갔으니, 우리 회장님은 신경 안 쓰셔도 되고. 진짜 고민거리는 따로 있잖어?”
“그러게 말입니다. 대통령이 별 희한한 거래조건을 건 탓에 머리가 지끈거리네요.”
희한한 거래조건.
철화그룹이라는 고깃덩어리를 분배받는. 아니, 더 나아가 심기가 불편한 대통령과 척을 지지 않아야 한다는 지상과제.
“이건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싶고 말이여.”
“단순히 호크아이 시스템을 동남아 국가에 팔라는 것만은 아닐 겁니다.”
“그치. 그걸로는 자기 위상 띄울 만큼의 약빨이 안 서걸랑. 대중들이 우와! 할 정도로 큰 거 하나 터트리란 거지.”
난해하기 짝이 없는 문제.
하필이면 답안지는 불친절하게도 한국어로 적혀 있지 않았다.
동남아시아라는 모범답안. 그것은 열 개가 넘는 언어로 적힌 답안지 어딘가에 고개를 숙인 채 숨어 있었으니까.
“하이고, 잠자는 대통령의 코털을 뭉탱이로다가 뽑아버렸으니 별수 있나. 곧 죽어도 고(Go) 해야지.”
“죽을 일은 없습니다. 수익금인 줄 알았는데 노잣돈이었다. 뭐, 그런 엔딩은 저도 사양이니까요. 일단은….”
톡톡톡, 잠시 생각에 잠긴 채 만년필로 책상 끄트머리를 두들기는 나.
며칠 전 보았던 대통령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화끈한 사람이었다.
정부 지원 이자 감면, 행정 규제 대폭 완화, 세제 혜택까지.
철화그룹을 인수한 후, 탄약그룹이 대한민국 최고의 방산업체로 거듭날 수 있는 모든 것을 약속했던 대통령.
물론 그 약속은… 곧 내 목줄이기도 했다. 그가 원하는 것을 내놓지 않으면, 곧바로 특혜라는 고삐를 거세게 당길 수 있는 목줄.
‘팔 수 있는 것은 뭐든 팔아 봐. 돈은 자네가 갖고, 국민들은 자부심을 얻고, 그리고 나는.’
환청처럼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대통령이 내뱉었던 말 한마디.
그가 뒤잇지 못했던 말을 내 입으로 마저 내뱉으며, 나는 손에 쥔 만년필 뚜껑을 열어 젖혔다.
“지지율을 얻으시겠다라. 아주 제일 비싼 것만 얻으시려고 작정을 하셨군.”
핑그르르 돌아가는 만년필.
그 끄트머리의 펜촉처럼 뭔가 뾰족한 수가 생각나면 좋으련만, 자꾸 겉에서 맴돌기만 하는 아이디어.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창의력 주머니다.
지금 내 눈앞에 반짝반짝 전등 빛을 받아 빛나는, 혹부리 영감님. 아니, 김원철 아저씨의 이마 속 창의력 주머니.
“음? 내 머리에 뭐 묻은 겨?”
“뭔가 생각이 있으신 것 같은데, 혼자만 가지고 있지 마시고 좀 풀어보시죠.”
“흐흐흐. 저번에 함채은 그 여자 만난 다음부터 나한테 뭐 안 묻더니만. 거봐, 역시 중요한 순간에는 날 찾게 되는 법이여.”
푸흡,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 했더니 뒤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려 버린 유세나 보좌관.
오래 끌어 봐야 내 손해다. 손에 백기를 든 나는 김원철 아저씨에게 빠른 대답을 재촉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답변.
“어디 보자. 우리 회장님 나이가 이제 스물여섯. 세숫대야 액면가로 봐서는 대학생 코스프레하기에 무방하단 말이지.”
“…칭찬입니까, 그건?”
“하, 젊다는 게 얼마나 좋은 것인디. 아무튼, 정보를 얻는 데에 남바 완인 것은 발로 뛰는 것이여.”
“발로 뛴다라.”
“멀리 갈 것도 없어야. 저번에 그 유세나 보좌관 했던 것처럼 하면 되겄지.”
흠칫, 발로 뛰어야 한다는 말에 산처럼 솟은 유세나 보좌관의 양어깨.
생각해 보니 그녀가 최근 고생을 많이 하긴 했다.
김범호·서윤지의 환락 공간에 청소부로 잠입한다던가, 중국 카지노까지 가서 도박사 흉내를 낸다던가 하는 식의.
-스윽
곧바로 내 책상 위에 놓인 종이 한 장.
유세나 보좌관의 반응을 보고 한참을 낄낄거리던 김원철 아저씨는, 무언가 서랍에서 포스터 하나를 꺼내었다.
다양한 인종의 캐릭터들이 서로 하하 호호 웃으며 어깨동무를 하는, 전형적인 정부 기관에서 만든 티가 풀풀 나는 포스터를.
“한-아세안… 대학생 캠프? 지금 저보고 여기 참가하라고요? 이미 다 졸업한 마당에?”
“엉. 우리 회장님은 대충 대학원생이라고 뻥 치고 참가하는 거지. 신분 숨기면 외국인 애들이 재벌 회장인지 뭔지 알 게 뭐여.”
“그건 또 그렇긴 합니다만.”
외교통상부 산하 기관에서 주최하는 이 행사는, 겉보기에는 특별할 것이 그다지 없었다.
-본 행사는 한국과 아세안 국가 간의 교류 촉진을 위하여 개최되는 행사입니다.
-각국 대학생들의 문화 교류를 통해 미래 세대의 우호를 쌓아나가는 취지를 확실히 하고자 참가자를 모집하오니, 많은 지원 바랍니다.
어느 종교의 경전이라도 되는 양, 참 좋은 말씀으로 가득 찬 문구.
포스터에 적힌 내용은 전형적인 해외 영업 쪽 취업을 노리는 대학생들을 위한 대외활동처럼 보였다.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그런데 갑자기 웬 팔자에도 없는 대외활동 추천입니까?”
“흐흐흐. 뭐든지 사람이 중요한 법이여. 여기 참석하는 동남아 애들이 어떤 양반들인가 하면 말이지.”
싱긋, 건강한 잇몸이 활짝 만개하도록 웃음을 지은 김원철 아저씨.
얼마 전, 치과에서 새로 금니를 했다던 아래쪽 앞니.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반짝임이 내 눈을 강타했다.
“골드 스푼. 그러니까 그쪽 나라 금수저 자제분들. 고관대작 아들딸들이 참가한다 이 말이여.”
“아세안 국가 귀족 계층 자제분들이라….”
“그쪽 대학생은 상류층이 대다수고, 한국 올 재력 되는 쪽은 무조건 지체 높으신 집안 자제들이걸랑. 대충 싸이즈 나오지?”
행사 일정이 코앞이었지만, 어찌어찌 공석을 만들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은 상황.
정 아니다 싶으면, 정원 외로 들어가면 된다. 후원 기업에 탄약그룹을 넣는 식으로.
무언가 점점 설득되어가는 내 모습. 그 반응을 본 김원철 아저씨는 재미있다는 듯 금니가 더 환하게 보일 정도로 입가에 미소를 걸어 젖혔다.
“혹시 몰라? 함채은 때처럼 뭐 하나 굵직한 거라도 건질지. 흐흐흐. 원래 부모랑 제일 가까운 것은 자식이라니까.”
* * * *
황금빛이 눈을 사로잡는 것은 비단 탄약그룹 본사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었다.
태국의 수도 방콕.
황금 사원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는 도로. 그 북쪽으로 조금만 걸어 나아가면 보이는 태국 정부 청사.
비잔틴 양식으로 지은 석조 건물은 비록 웅장하지는 않을지언정, 아름다움만으로도 그 위용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마치 새장 안의 비둘기 꼴이군.”
3층 유리창 안쪽, 커튼 뒤편에 몸을 숨긴 한 중년 남성.
굳은 표정의 그는 멍하니 창밖의 경비병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깨에 멘 저 총검으로 자신의 목숨을 지키고 있지만, 언제고 자신의 심장을 찌를 수 있는 군부의 수족을.
“총리님, 총리님?”
“아아, 그래. 미안하게 되었네. 내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어디까지 논의했더라?”
철컥, 줄을 당겨 희미하게나마 보이던 커튼 틈까지 전부 봉쇄해버린 태국의 잉탁 총리.
그는 군사 쿠데타가 빈번한 태국에서, 간만에 선거로 뽑힌 민간인 출신 총리였다.
압도적인 지지율. 시민들의 기대감. 그 모든 것이 가리키는 바는 잉탁 총리를 향해 있었다.
“후우….”
그러나… 막대한 정통성에도 불구하고 늘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듯한 잉탁 총리의 모습.
실시간으로 그의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의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독한 담뱃잎을 여러 겹으로 감싸 만든 시가에 불이 붙고 나서야, 비로소 떨림이 잦아들기 시작한 잉탁 총리.
“군부 내부 세력 통제 계획. 그에 관한 세부 보고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총리님.”
행여나 낮의 새나 밤의 쥐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춘 비서관.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세상이 오리라 굳게 믿는 젊은이의 눈은, 황금 사원처럼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그가 모시고 있는 총리의 입에서 기운 빠진 소리가 새어 나오기 전까지는.
“…그만. 그 이야기는 지금 논하지 않도록 하지.”
“총리님?”
“나중에, 나중에 따로 다루지. 차후 정국이 안정된 후에 말이야.”
단호하게, 그리고 괴롭게도 거부 의사를 밝히는 잉탁 총리.
비서관은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은 총리가 여간 답답한 모양이었다.
그토록 조심해 마지않던 그가 언성을 높였을 정도였으니까.
“총리님! 정국은 안정적입니다. 지지율이 높은 정권 초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나도 알고 있네.”
“알고 계신다니요! 이 사안을 계속 다루지 않고 피하신다면 언젠가는 다시 쿠데타가…!”
-쿵!
탁자를 내리치는 잉탁 총리의 두 주먹.
“그래, 저 이리 떼 같은 군부 놈들이 삽시간에 들고일어나겠지! 일 년 후! 한 달 후! 아니, 어쩌면 지금 당장이라도!”
무기력함, 허탈함, 그리고… 자괴감까지.
아래를 향해 고개를 떨군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의 그림자 위에 올라탄 부정적인 감정들.
한번 그렇게 모든 것을 토해내고 나니, 그 자리에 남은 것은 그저 한 중년인의 초라한 모습뿐이었다.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져 버린.
“…나도 알고 있네. 언젠가 저 도사견 같은 놈들의 모가지에 쇠줄을 달아놔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현실과 이상이라는 양쪽 무게추가 달린 짐보따리를 어깨에 진 잉탁 총리.
그는 외줄 위에서 곡예를 하듯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주어 바위에 조각하듯 말을 내뱉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야. 그 어떤 보호구도 없이 송곳니에 심장을 꿰뚫리게 된다면, 아무 의미도 없다네. 지금 자네 머릿속의 계획까지, 전부.”
“총리님…!”
“잠시 물러가 있게. 잠시만….”
손짓으로 비서관을 물린 잉탁 총리. 시곗바늘이 째깍거리는 소리가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야 그는 창문을 열었다.
삽시간에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뿌연 회색빛 연기.
그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수북하게 쌓인 재떨이 위 시가 끄트머리들뿐이었다.
“군부의 문민통제… 언젠가는 이룰 날이 올 것이다. 반드시.”
이루고 싶은, 그러나 이룰 수 없는 꿈.
정신을 맑게 만들기 위해 고개를 가로저은 잉탁 총리. 그는 괴로움을 씻어내기 위해 습관처럼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명의 장난처럼, 곧바로 눈동자에 들어온 문서 하나.
“아세안 정상 회의… 그래, 개최지가 한국이었지.”
자신의 안타까운 조국처럼, 건국 이래 수십 년을 군홧발에 눌려 있던 나라.
그리고… 지금은 그 상흔일랑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더는 눈을 씻고도 상처를 찾아볼 수도 없는 나라.
바다 건너 북쪽의 툭 튀어나온 반도 끄트머리를 바라보며, 잉탁 총리가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딸아이가 그저께 한국으로 갔었지. 무슨… 대학생 캠프라고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