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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110화 (110/300)

110화혁명인가 반역인가(1)

방콕의 화물 철도 중심 터미널.

격자무늬 철조망 너머로 벌겋게 녹이 슨 선로. 그 위에는 평소와는 달리, 대형 열차 다섯 대 분이 올라가 있었다.

“조금 이상한데…?”

현장 책임자인 역무원. 그는 안쪽이 보이지 않게 유독 꼼꼼히 싸맨 열차를 바라보며, 부하 직원에게 말을 건넸다.

“넌 지금 뭐 좀 이상하지 않냐?”

“제 월급이 너무 적은 것 말입니까?”

“니미럴. 네 월급은 지금도 능력 대비 턱없이 많이 받는 거고. 저기 저거.”

손가락으로 문제의 열차들을 가리킨 담당자.

“뭐가 든 것인지 아예 몰러. 서류에도 공개 불가라 되어 있고.”

“어디 운송장 좀 봐요. 발신자가… 크라 운하 관리공사. 에이, 이거 국영기업 관련 건이네.”

“얌마, 국영기업이 무슨 마술봉이냐? 기본적인 검사도 못 하게?”

“마술봉 맞지. 권력 마술봉.”

늘 있는 일인 양, 허술하기 짝이 없는 운송장을 덮어버리는 부하 직원.

그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선임 담당자는 괜히 한번 핀잔을 주고는 곧바로 의문의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거기다 화물열차에 승객도 뭐가 이리 많아? 다 합치거든 거진 1,000명은 너끈하게 넘어 보이는데.”

“아이고, 과장님요. 괜히 높으신 분들 심기 건들지 말고, 빨리빨리 보냅시다. 안 그래도 할 거 많아.”

뒤쪽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화물 열차들을 가리킨 부하 직원.

기관사들은 한쪽 눈으로는 정지를 뜻하는 빨간 불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물론 나머지 반쪽 눈은 담당자 자신을 향해 원망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고.

“…더 연착시킬 수는 없긴 하지. 일단 미심쩍지만 보내긴 해야겠네.”

“얼렁 끝내고 술이나 먹으러 갑시다. 쫌.”

레버를 당기자마자 들어온 푸른 불. 곧바로 마치 경주라도 하는 양, 의문의 다섯 화물열차는 순식간에 최대한으로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점점 멀어져가는 화물열차. 오늘따라 유독 불길하게 덜컹거리는 진동을 느끼며, 담당자는 홀로 무어라 중얼거렸다.

“저 게을러터진 인간들이 오늘은 또 웬일이래…? 꼭 제 목숨이라도 걸린 것처럼 저렇게 유난을 다 떨고.”

* * * *

“늦지 않게 전속력으로! 총리 놈이 운하 착공식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무조건 도착해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열차 아래 나무 침목이 부서질 만큼, 강한 진동을 만들어내며 달리는 화물열차. 아니, 반역 열차.

화물칸 한쪽을 아무렇게나 개조한 듯, 변변찮은 의자조차 없는 객실. 그곳에서는 험상궂은 사내들이 단체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후줄근하던 인부 복장에서, 초록색 얼룩무늬 군복으로.

“일동 주목!”

금속제 호루라기 소리가 열차 내에 선 이들의 고막을 강타했다. 어느덧 군인의 모습으로 변한 병사와 부사관 앞에 선 군부 강경파 우두머리.

정글 산악 지대를 빠르게 가로지르느라 덜컹거리는 열차 안에서, 권총을 뽑아 든 그가 소리쳤다.

“잠시 후, 우리 혁명군은 남부 접경지대에 도착한다. 이번 작전의 목적은!”

딸깍, 둔탁한 쇳소리와 함께 총알 한 발이 장전된 권총. 가늠자의 열십자 정중앙에 놓인 것은, 열차 맨 끝 벽에 걸린 잉탁 총리의 초상화였다.

“태국의 미래를 팔아 제 잇속을 챙기려 드는 부패 총리 잉탁! 제군들은 이제 그 수괴 놈을 처단할 것이다.”

술렁이는 장내의 분위기.

그저 기밀 작전을 수행하러 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 병사들의 동공에 곧바로 흔들림이 비쳤다.

-탕!

그 순간,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을 뿜은 총구에서 날아간 납탄.

툭, 바닥에 떨어진 잉탁 총리의 초상화 한가운데에는 살벌한 구멍 하나가 뚫려 있었다.

매캐한 화약 냄새가 병사들의 코를 찌르자마자, 곧바로 사라져버린 흔들림.

다른 마음을 가진 이는 가차 없이 처분할 것이라는 의중을 보여준 강경파 우두머리. 그는 곧바로 병사들을 향해 거세게 목청을 드높였다.

“두려워할 필요도, 망설일 필요도 없다. 태국을 위한 혁명군은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 그리고!”

그저 협박만으로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 명백한 병사들.

그렇기에 우두머리는 그들을 향해 당근을 내밀었다. 하층민 출신이 대다수인 그들에게 있어, 거절할 수 없는 신분 상승의 당근을.

“이 모든 거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그때! 그대들 혁명군 일동은 이제껏 누리지 못한 충분한 보상을 손에 쥘 것이다!”

“군사 혁명 만세! 새로운 태국 만세!”

미리 심어둔 몇몇 바람잡이들의 목소리. 순식간에 열차 안의 사람들은 그 달아오른 분위기에 자의 반 타의 반 동조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어긋나게 될지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채로.

“후우, 이제 준비는 전부 끝났군. 다행히 이제껏 모든 일이 물 흐르듯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아니 그러한가?”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열차 칸의 앞뒤 연결부에 발을 디딘 우두머리.

익숙한 듯. 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어 대신 담뱃불을 붙인 부관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흐흐흐. 혁명이 끝나고 난 다음 철도국 놈들부터 표창을 주어야겠습니다. 너무 무능해서 오히려 유능한 이들이니.”

“그만큼 일이 쉽게 쉽게 해결되고 있다. 보니까 이쪽 전산 처리도 아주 엉망진창이야.”

엄지손가락으로 뒤편에 줄지은 화물칸을 가리키는 강경파 우두머리. 회색빛 연기를 내뿜으며 웃음 지은 그가 하던 말을 연이어나갔다.

“그 한국에 탄약그룹인가 하는 곳에서 새로운 IT 기술로 전산관리를 한다고 설치더니, 결국 모든 일은 다 사람이 하는 것인데 말이지.”

“머저리 같은 놈들이지요. 괜히 썩은 줄이나 다름없는 잉탁 그놈에게 붙어서 투자금을 싹 날리게 생겼으니 말입니다.”

“하늘이 돕는 것이지. 우리의… 군사 혁명을.”

덜컹거림이 조금 줄어든 열차. 빠르게 달리던 속도는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멀리 눈에 보이는 엉성한 시골 간이역.

여름 바다에서 불어온 습한 공기를 손아귀에 꽉 쥔 강경파 우두머리. 가늘게 뜬 눈가에 성공의 확신을 담은 그가 부관을 향해 물음을 던졌다.

“도착까지 얼마나 남았지?”

“약 2분 후 정차 예정입니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군.”

곧바로 전자식 손목시계에 타이머를 맞춘 강경파의 우두머리.

[00:02:00]부터 시작된 카운트 다운. 1초에 하나씩 줄어들어 가는 숫자를 보며, 그가 명령을 내렸다.

“도착하자마자 전 병력 무장부터 시키도록. 하차하는 그 즉시 착공식 장소를 향해 돌격한다!”

* * * *

출장을 가는 데에 있어서 그 용건만큼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가느냐이다.

일단 한국에 남아, 나 대신 모든 일을 도맡을 김원철 아저씨는 제외. 정부 지원 건으로 수출입은행 문턱을 하루가 멀다 하고 드나드는 성원식 본부장 또한 제외다.

백발이 성성한 양택수 부회장을 40℃를 넘나드는 정글 한복판에 데려가는 것은 노인 학대이므로 역시 제외.

“하… 회장님. 아무리 생각해도 이 계획, 너무 위험이 큰 것 같습니다.”

“네? 뭐가 말입니까?”

애써 공들여 그린 화장이 지워질 정도로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유세나 보좌관.

정장 치마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훔치며, 그녀가 내게 대답했다.

“뭐가… 라니요. 쿠데타 세력을 역으로 함정에 빠트린다는 것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하필, 어째서.”

나와 함께 다니는 곳마다 갖은 고생을 옵션처럼 달고 다녔기에, 요사이 무언가 쓴소리가 늘어만 가는 유세나 보좌관.

지난 광저우 카지노에서 토끼 가면을 쓰고서 도박사 흉내를 낸 것이 도화선이 된 모양이었다. 허리에 손을 올린 채로 내게 한 발자국 다가와 언성을 높이는 그녀.

“그 자리에, 지금 이곳에 회장님이 반드시 계실 필요는 없지 않나요? 그것도… 영문도 모르고 따라온 저도 같이?”

“그렇지 않습니다. 이곳에는 반드시 제가 있어야 합니다. 저기 보이는.”

무언가 많이 억울해 보이는 유세나 보좌관.

나는 그녀의 말을 그저 한 귀로 흘리고는 행사장 뒤편을 향해 턱짓했다.

중무장한 경호원들 사이, 빼꼼히 까치발을 들어야 보이는 잉탁 총리의 모습.

“저 유약하신 총리님에게 확신을 주어야 하거든요. 나는 당신과 같은 편이다. 그저 말뿐인, 돈뿐인 동반자가 아니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눈웃음을 짓고는 오른쪽 손날로 내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이제 곧 안개처럼 서서히 이리로 다가올 쿠데타 세력. 우악스럽기 짝이 없는 그들을 생각하면서.

“당신과 함께 이 자리에서 생을 마감할 각오까지도 되어 있다. 그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해야 합니다.”

군부 강경파가 쿠데타를 벌일 만큼 국내 기반이 취약한 잉탁 총리.

분명… 이번 반란이 진압된 후, 그에게 필요한 것은 믿을 수 있는 파트너일 것이다.

비록 크라 운하라는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일지언정, 생사를 함께 넘나들었을 만큼 마음 놓고 대화할 수 있는 파트너를.

“못 말려, 정말… 일단 알겠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꼭 안전한 곳에 계셔야 합니다. 약속해 주세요, 회장님.”

더위 때문인지 머리가 살짝 아픈 모양이었다.

관자놀이 한쪽을 매만지고는, 이내 내게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유세나 보좌관.

이래저래 걱정이 많아 보이는 그녀. 아랫사람을 안심시키는 것도 회장의 책무다.

마주 본 채로 손가락을 건 나는 차분한 어투로 그녀에게 대답했다.

“이 더운 날 괜히 방탄조끼를 입은 게 아닙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여름용 양복 마의 안주머니에서 꺼낸 평평한 전자기기 하나. 아직 하드웨어 제작 기술이 조금 부족한지라, 태블릿은 제법 두껍고 묵직했다.

바로 누른 전원. 10여 초간의 부팅 시간이 지나자, 기기는 곧바로 하얀 시작 화면을 띄웠다.

쿠데타 진압의 설계부터 실행까지, 이 모든 것의 전제조건이 되는 시스템 화면을.

-Hawk`s eye system

“어디에 있어야 안전할지는 이미 손바닥 안에 훤히 꿰고 있습니다.”

민간 부분에 완벽하게 적용된 호크아이 시스템. 크라 운하 관리공사의 모든 인적·물적 움직임은 전부 실시간으로 눈앞에 그려지고 있었다.

지도 위에서 움직이는 빨간 점. 이제 곧… 착공식 행사장 근처 간이역에 도착할 쿠데타 세력.

“마침 총리 쪽도 슬슬 움직이나 봅니다.”

“그런 것 같네요.”

총리 측과 함께 공유되는 호크아이 시스템. 어수선한 분위기 속, 총리실 직속 무장 경호원들이 무전기를 들고는 어딘가에 연락을 넣고 있었다.

어제, 남부지방에서 훈련을 갓 마친 중앙군. 군부 온건파 세력이 주를 이루는 이들은, 장비와 연료를 아껴둔 채로 근방에서 대기 중인 상황.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난 나.

선글라스를 낀 채, 방탄조끼 끈을 세게 조이며, 나는 유세나 보좌관에게 말을 건넸다.

“그럼… 우리도 가보도록 합시다. 아마 유세나 보좌관은 역사에 길이 남을 장면에 저와 함께 있을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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