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혁명인가 반역인가(2)
서울, 탄약그룹 본사.
“아이고, 괜히 여기 남았어야. 그냥 유세나 보좌관 박아 두고 나도 태국이나 따라갈걸.”
서류 더미 틈 사이로 반짝이는 머리를 내민 김원철 비서실장.
탈탈탈, 그는 경쾌한 손목 스냅으로 커피 믹스 스틱 하나를 흔들더니 찬물을 대충 입에 머금었다. 그리고는 마치 가루약을 먹듯, 입에 담긴 물에 커피 믹스를 통째로 털어 넣는 기행의 정점까지.
“어우야, 인자 좀 살겠네.”
“허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멍하니 입을 벌린 채로 옆에서 그 행위예술 비슷한 무언가를 지켜본 성원식 본부장.
보다 못한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생수 한 통을 들고는 김원철 비서실장의 자리로 다가가 말을 건네었다.
“그러다 위장 상합니다. 김 비서실장님. 무슨 커피를 그렇게 마시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오, 땡큐요.”
입안에 텁텁한 커피 찌꺼기가 남았던 모양이다. 500ml들이 생수병에 든 물을 벌컥벌컥 마셔버린 김원철 비서실장.
내용물이 빈 페트병을 한 손으로 구긴 그가 입을 열었다.
“크하, 그게요.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은데, 우리 회장님이 워낙 일을 다 벌여놓고 수습은 안 하잖수.”
“…이해는 갑니다.”
책상 앞에 놓인 서류를 바라보며 작게 한숨 쉬는 성원식 본부장.
그 역시, 처한 사정은 매한가지이기에 어느 정도 공감이 되는 모양이었다. 물론 저 커피 마시는 방법만큼은 절대 따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차라락, 서류 더미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김원철 비서실장이 대답했다.
“그러니 우째, 나머지 자잘한 숙제는 내가 해야죠. 이렇게 이틀째 날밤 새면서.”
등받이에 허리를 깊게 묻은 김원철 비서실장.
끼익, 의자 이음매 부분에서 나는 쇳소리 따위야 들은 체 만 체 신경조차 쓰지 않으며, 그는 무어라 홀로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회장님은 잘하고 있을라나 모르겠네. 혼자 엑셀은 풀로 밟더니만.”
“그러고 보니, 엊그저께 회장님이 태국으로 출국하셨더군요. 이번엔 무슨 일입니까? 어지간한 현지 절차는 거의 해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 그거요.”
깍지 낀 손을 목 뒤로 한 채, 심드렁한 얼굴을 한 김원철 비서실장.
무언가 장난기라도 발동한 걸까?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낄낄거리는 웃음을 지은 그는, 성원식 본부장에게 능글맞은 어투로 대답을 이어나갔다.
“우리 회장님이… 겉은 애늙은이 흉내를 내지만서도, 사실 속으로는 모험과 낭만을 사랑하는 소년만화 주인공이셔서 말이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꼭 무슨 굵직한 일이 터질라거든, 현장에서 직관을 뛰셔야 속이 시원하시다나? 흐흐흐.”
거대한 물음표 하나를 머리 위에 띄워 둔 성원식 본부장.
1초, 2초, 3초. 곧바로 왕방울만 하게 커진 눈동자. 등골에 올라오는 불안함을 느낀 그의 입에서 탄식 섞인 무언가가 새어 나왔다.
“설마, 그 쿠데타 현장에…?”
“오, 센스쟁이. 바로 알아맞히시네.”
“센스쟁이고 뭐고,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회장님께서 쿠데타 현장에 직접 가셨다는 건데!”
안절부절, 지진이 난 동공을 애써 진정시키며 어디론가 달려가는 성원식 본부장.
곧바로 본래 자리로 돌아가 컴퓨터 화면을 켠 그는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캠코더 선을 연결했다.
“뭐 하슈?”
“영상 통화요! 직접 눈으로 봐야 좀 안심이 될 것 같습니다.”
“하이고, 괜찮을 것인디, 별걱정을 또 다 하시고.”
양팔을 하늘로 올려 기지개를 켜는 김원철 비서실장.
배꼽시계가 울리는 타이밍에 맞추어 벽시계를 보니, 시간은 어느덧 오후 여섯 시.
지갑을 바지춤에 찔러 넣으며, 그는 성원식 본부장의 자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뭐, 슬슬 끝났을 시간이기도 하고. 아마 지금쯤이면 받을 겁니다. 흐흐흐. 나도 옆에 같이 서 있어야지.”
“그게 무슨…!”
“괜찮아유. 괜찮아. 어차피 우리 회장님… 분명 다 깔끔하게 끝내놨을 겁니다. 저녁 내기해도 좋다니까?”
불안감에 다리를 벌벌 떠는 성원식 본부장. 그와 대비되게 세상 태평하게 짝다리를 짚고 선 김원철 비서실장.
얼마 지나지 않아, 모니터 화면에 켜진 까만 창. 약간의 버퍼링이 지나간 후, 곧바로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신호가 잡혔다.
-네. 성 본부장님. 마침 전화 잘 주셨습니다. 지금 여기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냐 하면….
그 순간, 모니터 안쪽으로 들려오는 폭발적인 굉음.
화약이라도 터진 걸까?
쿠궁, 소리와 함께 피어오른 뿌연 먼지구름.
김원철과 성원식. 얼굴이 새하얗게 사색이 된 두 남자.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급한 목소리로 목청을 드높였다.
“회…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회장님!”
* * * *
“하차! 지금 바로 하차한다! 빨리빨리 내리도록!”
크라 운하 착공식장 근처 간이 기차역. 다섯 대의 화물열차에서는 군복 입은 사내 천여 명이 순식간에 쏟아져 내렸다.
“화물칸으로 이동해 지금 바로 무장한다! 시간이 촉박하니 서둘러라!”
관자놀이에 선 핏줄이 터지도록 목청을 드높이는 강경파의 우두머리.
철컹 소리를 내며 화물칸 문에 달린 자물쇠가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가 부관에게 말을 건넸다.
“타이밍이 좋다. 압도적으로.”
“중앙군 말씀이십니까? 어제 자로 남부지방 훈련이 끝난.”
“그래. 잘 아는군.”
고개를 끄덕이는 우두머리.
넘쳐흐르는 자신감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일까?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친 그는, 권총을 빙글빙글 돌리며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훈련이 끝났으니 물자와 연료가 전부 소모되었을 것이고, 병력도 전부 퍼져 있을 것이다.”
“장비도 분명… 이래저래 제구실을 못 할 겁니다. 여기에서 벌어지는 일에 신경을 쓰지도 못할 만큼.”
“그렇지. 모든 상황이 맞아떨어지고 있다. 하늘이 돕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치 억지로 중간에 집어넣은 톱니바퀴 이빨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희한할 정도로 유리하게 진행되는 쿠데타 과정.
강경파 우두머리의 시선은 저 멀리 도로 끝자락을 향했다.
언덕 하나만 건너면 코앞에 닿을 착공식장. 이제 곧 무장을 마친 병력을 이끌고 내달린다면, 결승선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분명 달콤한 권력일 터.
“그 약해 빠진 잉탁 놈에게 총리라는 자리는 안 맞는 옷이나 다름없다.”
점점 고양되는 기분.
습관처럼 부관을 향해 손을 내미는 우두머리. 곧바로 그의 입가에 긴 담배 한 개비가 물렸다.
“이봐, 불도 좀 붙이지 그러나.”
“아, 예!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장군. 아이고, 분명 주머니에 라이터를 넣어 놨는데….”
호들갑을 떨며 군복 주머니를 모조리 뒤지는 부관.
아무래도 아까 전 달리는 기차 위에서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그 부주의에 혀를 쯧쯧 차며 무어라 타박하는 강경파의 우두머리.
“비싼 라이터 같더니만, 좀 조심해서 다루지 그랬나. 거, 군사 혁명을 하겠다는 사람이….”
메마른 입술에 문 흰 담배.
무기 분출로 점점 분주해져 가는 분위기 속에서, 담배 끝자락에 불이 붙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워 보였다.
-탕!
그리고, 그 순간.
강경파 우두머리의 뺨을 스치고 지나간 총알 한 발.
땅에 떨어진 담배 끄트머리에는 납탄의 열기를 받아서인지, 어느샌가 회색빛 연기가 힘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곧이어 맞이할 그들 반란군의 참혹한 운명처럼.
“전원 동작 그만! 당장 무기를 버려라!”
“항복하라! 당장 항복하라! 투항하는 병사들은 죄를 묻지 않는다! 항복하라!”
간이역 인근 풀숲에서 벼락처럼 한순간에 들이닥친 수백여 명의 중앙군.
레이저 조준경으로 반란군의 이마 정중앙을 겨냥한 그들은, 하늘에 대고 실탄을 갈기며 위협사격을 시작했다.
“살고 싶은 놈은 바닥에 엎드려! 지금 바로!”
“아이고, 쏘지는 말어유! 시키는 대로 하겠으니께.”
총구가 불을 뿜고 화약이 터지자, 곧바로 상황을 파악한 병사들.
아직 총기와 탄약의 분출이 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 실질적으로 비무장 상태인 그들은 중앙군의 지시에 따라 손을 위로 올리고는 타조처럼 머리를 땅바닥에 박기 시작했다.
“이 버러지 같은 놈들! 머릿수가 네 배가 넘는데 지금 뭣들 하는 것이냐! 어서 빨리 무기를 잡고 진형을… 끄악!”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고는 독전대 역할을 하려던 강경파의 우두머리.
물론 그 최후의 발악은 왼팔에 박아 넣어진 납탄 하나에 주저앉고 말았다.
정글의 붉은 토양 위, 흥건하게 흘러내리는 핏물. 포승줄에 묶인 채 바닥에 엎드려진 그는 뜨거운 고통에 이를 앙다물고는 분한 듯 무어라 중얼거렸다.
“어째서…? 계획은 분명 완벽했는데! 진행까지 일절 흠잡을 곳 없었건만…!”
“전부 보고 있었다면 믿겠는가?”
어느새 정리된 상황.
언제 온 것인지 무릎 꿇은 강경파의 우두머리 앞에 선 잉탁 총리. 그는 바지춤에서 네모난 태블릿 형태의 하드웨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라고 적혀 있는 화면을 이제는 패배한 반란군 수괴가 된 자에게 내보이며.
“물자와 병력. 그리고 그것들의 이동 경로까지 전부. 애초에… 자네들이 시작하기 이전부터 말이지.”
* * * *
쿠데타 진압 작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태블릿 위, 마치 맵핵처럼 환하게 밝혀진 지도. 그저 희미한 빛줄기에 의지하는 적과 모든 것을 알고 움직이는 아군.
하늘과 땅만큼의 정보 차이에, 모든 것은 당초 예상대로 진행되었다.
“아, 서준 한 회장.”
내게 손을 뻗어 악수를 청하는 잉탁 총리. 고마움이라는 감정이 듬뿍 들어간 그 손을 잡자마자, 그는 대뜸 나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
“총리님…?”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한 회장이 말해준 것, 그리고 기획했던 것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지금쯤 죽은 목숨이었을 겁니다.”
작고 마른 체구에서 흐느끼듯 전해지는 떨림.
감회가… 조금 남다르긴 하다. 실제 그의 운명은 이맘때쯤 방콕에서 쿠데타로 목숨을 잃는 것이었기에 더더욱.
“중앙군 측에서 그러더군요. 호크아이 시스템, 그게 없었다면 한순간에 당했을 거라고.”
“어떤 방식이든 도움이 되어서 그것만으로 다행입니다. 일단… 반란군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전원 포박이 끝났고, 중앙군 측에서 신원 조회를 하고 있습니다. 한번 가보시겠습니까?”
사실 굳이 내가 현장에 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아련하게 떠오르는 기억 한 조각.
과거 회귀하기 전, 교도소에서 이 태국 군부의 쿠데타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던 옹박이.
불현듯, 나는 그의 얼굴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옹박이가 여기에 있으리라는 그 어떤 확신조차 없었지만.
“음….”
무언가 살짝 등골을 타고 흐르는 불안감. 하지만 여기서 이대로 돌이킬 수는 없는 상황.
배 위의 방탄조끼를 한번 쓰다듬은 나는 잉탁 총리의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러면… 일단 가보도록 하죠.”
“먼저 반란 수괴 얼굴부터 보러 가시죠. 그놈… 자기가 호크아이 시스템에 당한 걸 알고는 분해서 어쩔 줄 모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