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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112화 (112/300)

112화혁명인가 반역인가(3)

처음 본 군부 강경파 우두머리의 인상은 전형적인 군인의 모습이었다.

호리호리하지만 탄탄한 체형. 움푹 들어간 눈두덩이에서 올라오는 장렬한 눈빛.

포승줄에 묶여 강제로 무릎 꿇린 모습임에도,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한 채 씩씩거리는 그의 얼굴까지.

“어째서…? 계획은 분명 완벽했는데! 진행까지 일절 흠잡을 곳 없었건만…!”

자신의 실패에 절규하듯 외치는 군부 강경파의 우두머리.

그런 그를 내려다본 잉탁 총리는 그저 바지춤에서 네모난 태블릿 하나를 꺼내며 입을 열었다.

“전부 보고 있었다면 믿겠는가?”

“무엇을…? 설마!”

뒤통수라도 맞은 듯, 멍하니 태블릿 화면만을 바라보는 강경파의 우두머리.

회백색의 매 한 마리가 맹금류 특유의 눈을 번득거리는 듯한 로고가 지나가자, 곧바로 떠오른 문구 하나.

.

그들이 그토록 별것 아니라 여기던… 크라 운하 관리공사의 전산 시스템. 고작 손바닥만 한 크기의 화면 속에 그것은, 강경파 일동의 앞에서 마치 비웃듯이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다.

“물자와 병력. 그리고 그것들의 이동 경로까지 전부. 애초에… 자네들이 시작하기 이전부터 말이지.”

“그럴 수가…!”

초점을 잃어버린 그의 눈동자.

입술이 찢어지기라도 한 건지, 핏물이 흐르는 입가.

망연자실해 있는 그를 뒤로한 채, 잉탁 총리는 마지막 말 한마디를 남기고 이내 돌아섰다.

“혹여나 자네들에 대한 처분이 바뀌리라 여기지는 말게나. 이미 사전에 파이 사령관과 합의된 문제이니”

“……!”

파이 사령관이라는 마지막 희망의 촛불까지도 꺼져버린 군부 강경파 세력. 최후의 수단마저 잃어버린 그들은 마지막 이성의 끈이 툭하고 끊어진 것처럼 보였다.

이제 앞에 놓일 것은 달콤한 권력의 과실즙이 아닌, 시퍼렇게 날 선 형장의 사형대이기에.

“그럼, 슬슬 이동하시지요. 한 회장님께는 따로 드릴 말씀이 있으니.”

“네, 뭐. 그렇게 하시지요.”

나는 잉탁 총리의 권유를 받고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떼었다.

이래저래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회귀 전 옹박이와 비슷해 보이는 용모를 가진 병사는 없는 상황.

‘하기야, 이미 바뀌어 버린 역사. 어쩌면 옹박이 그 친구는 지금 군인조차 아닐 수도 있겠네.’

아쉬움을 그 자리에 두고 총리와 함께 반대편으로 걸어가는 나.

총리는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는지, 일부러 주위에 경비병을 물렸다.

“아무래도 크라 운하 말입니다. 한 회장님께서는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제 생각에는….”

그리고 그 순간… 내 품에서 요란하게 울려대는 벨 소리. 탄약그룹 본사로부터 걸려 온 영상 통화였다.

“아, 총리님. 말씀 중간에 끊어서 죄송하지만 잠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아아, 급한 전화 같네요. 통화부터 끝내고 이야기 나누시죠.”

자꾸만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는 흑백 화면. 정글 한복판이라 그런지 위성 신호조차 잘 안 잡히는 모양이었다.

약간의 버퍼링이 있는 후에야, 비로소 태블릿을 가득 채운 성원식 본부장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네. 성 본부장님. 마침 전화 잘 주셨습니다. 지금 여기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냐 하면….”

미뤄두었던 숙제가 끝나서인지 쾌활한 목소리로 일이 잘 풀렸다는 것을 자랑하는 나.

그런데… 화면 속 구석, 내 얼굴이 비치는 작은 창에 무언가 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포획된 군부 강경파를 배경으로 한 그 작은 창 속에 비친, 내가 아닌 다른 이의 격한 움직임.

어떻게 포박을 푼 것인지, 나와 잉탁 총리가 있는 쪽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 군부 강경파 우두머리의 모습.

뒤를 돌아보니, 그의 손아귀에는 작은 폭발물 비슷한 것이 들려 있었다. 분명 지금 같은 상황을 대비해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두었을 만한 무언가가.

“죽어라! 이 쓰레기 같은 놈들!”

언제 풀어버린 걸까?

느슨해진 마무리 분위기에 경비병들이 경계를 허술하게 한 모양이었다.

헝클어진 채로 바닥에 떨어진 밧줄을 남기고는, 눈이 뒤집혀 이쪽을 향해 경주마처럼 돌진하는 강경파의 우두머리.

손목에 찬 수갑 때문인지, 폭발물을 던지지는 못하는 그는, 상단에 꽂힌 핀을 뽑고는 그대로 잉탁 총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으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질주하는 강경파의 우두머리. 그리고 그의 손안에 든,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 하나.

판단해야 한다.

지금 당장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어떻게 해야지 나와 잉탁 총리 두 사람이 이 상황에서 살아날 수 있을지를.

“이, 이런! 경비병! 경비병은 어디 있는 것인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절규하는 잉탁 총리. 다리가 풀릴 대로 풀린 이 사람을 데리고 어디론가 도망치기란 난망한 상황.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수는 단 하나뿐이었다.

“어차피 두 번째로 사는 인생, 일단… 어떻게든 되겠지. 기왕 은혜를 입히는 것, 아예 확실하게 입혀 보자고.”

나는 폭사의 위험을 무릅쓰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나서일까?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한 상대방의 얼굴.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할지 망설이던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이런!”

내가 가로막은 오른쪽, 그리고 잉탁 총리가 있는 왼쪽. 풀숲 사이에 난, 덩굴로 가로막힌 갈림길에서 나는 그에게 선택지 아닌 선택지를 강제로 제시했다.

막고 있는 나를 처리하고 갈 건지, 본래의 목표였던 잉탁 총리에게 방향을 바꿀 것인지를.

‘분명, 이 자는… 더는 잃을 게 없는 자다.’

여기서 동반 자폭에 성공해 불타 죽으나, 사형대 위에서 목이 매달리나 어차피 남은 것은 죽음뿐인 사람.

‘그렇다면… 한 번뿐인 이 기회에 굳이 나를 거치려는 선택은 하지 않을 터.’

결심을 마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곧바로 잉탁 총리가 있는 왼쪽을 향해 몸을 날린 나.

“무슨…!”

생각지도 못했던 걸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강경파의 우두머리. 그대로 그와 함께 땅에 처박힌 나는 수갑 찬 그의 손에서 문제의 폭탄을 빼앗았다.

“쿨럭! 쿨럭! 전형적인 시한폭탄. 핀을 뽑으면 그때부터 작동하는 건가? 그럼 이제 남은 시간은…!”

-[00:00:03]

“이런 옘병….”

문자 그대로 옘병할 노릇이다.

고작 3초밖에 안 남은 판국에 더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상황.

“서준 한 회장님!”

하필이면 내 쪽을 향해 뒤늦게 달려오는 잉탁 총리.

기껏 살리려고 이 짓거리까지 했건만, 반대로 죽으러 달려오는 그의 모습에 이런 순간인데도 웃음이 나왔다.

이제 정말 일말의 망설임조차 허용되지 않는 상황. 나는 곧바로 빼앗은 폭탄을 그대로 인적이 없는 정글 한복판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투척한 곳 반대편을 향해 마치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는 나.

-쾅!

당장이라도 고막이 뚫려버릴 것만 같은 굉음. 그리고 순식간에 나를 향해 덮쳐오는 폭발.

시간이 넉넉지 않아 멀리 던지지 못했던 탓일까?

등 뒤로 느껴지는, 타는 듯한 뜨거움과 묵직한 고통.

“회장님!”

멀리서 나를 향해 뛰어오는 유세나 보좌관의 모습. 폴라로이드 카메라 조리개가 닫히는 것처럼, 점점 감겨가는 내 두 눈.

이윽고 고통스러움이 부른 몽마(夢魔)에 이기지 못했는지, 내 앞에는 칠흑 같은 어두움이 찾아왔다.

어수선한 혼란 속, 절규하는 목소리를 귀에 담으며.

* * * *

황하가 흐르는 곳에는 베이징이. 회수가 흐르는 곳에는 상하이가. 장강이 흐르는 곳에는 광저우가.

중국을 대표하는 이 세 거대 도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이 어딘가를 꼽자면, 단언컨대 망설임 없이 베이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황금색 지붕이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 자금성 근처, 중난하이.

중국 정계의 고위층들이 모여 사는 이곳에서, <상하이 캐피탈>의 제임스 왕 이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천만다행이다. 옌룽.”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꼭 죽어야 한다는 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주군.”

그들, <상하이 캐피탈>과 연결된 중국 공산당 내의 중앙정치.

복잡했던 차기 지도부 선출과 그에 따른 숙청이라는 태풍이 지나가고 나서야, 마침내 그들은 긴장이 풀린 모양이었다.

“드디어 저 자금성 안쪽에서 일어나는 일에 명줄이 오가는 것은 없어졌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다만… 이제는 이전보다 훨씬 더 높은 성과를 내야만 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터.”

시소게임 같은 권력의 교체기. 새로이 바뀐 세상에는 새로운 역학 공식이 필요한 법.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상하이 캐피탈>이 살길을 모색한 방법은 더 많은 금액의 상납뿐이었다.

‘이보게, 제임스 왕 이사. 자네가 어찌어찌 새로운 권력에 줄을 대긴 했지만, 선택이 조금 늦은 건 알고 있지 않은가.’

‘제가 불민한 탓에 그만… 혹여나 언짢으셨던 부분이 있으신지요?’

새로운 권력자의 정치 스승 역할을 맡고 있는 노인.

그는 제임스 왕 이사를 바라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둥글게 말아 쥔 엄지와 검지를 내보이며.

‘성의를 더 보이게. 더 큰 성의를.’

불쾌한 굴종으로 마무리되었던 대화.

중난하이 바깥으로 나간 제임스 왕 이사는 곧바로 차 안에 올라탔다.

아직도 냄새처럼 몸에 밴 정치 노괴의 흔적.

운전기사가 있는 앞 좌석 칸막이를 내리고 나서야, 제임스 왕 이사는 옌룽에게 물음을 던졌다.

“금융위기 이후 손실 복구는 전부 마무리되었다고?”

“그렇습니다. 평가액으로만 봐서는 이전만큼의 복구가 끝난 상황입니다.”

“평가액만이라.”

창가에 기댄 채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제임스 왕 이사.

점점 작아져 가는 자금성의 모습. 마치 이번 금융위기로 인해 훨씬 축소된 자신의 영향력을 안타까워하며, 그는 옌룽에게 한탄 섞인 말을 툭 내뱉었다.

“단순 숫자만이 문제가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주군.”

“내게 필요한 것은 영향력이다. 대륙 바깥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이전만큼의 영향력.”

한숨을 내쉬고는 제 오른팔을 만지작거리는 제임스 왕 이사.

과거 군 시절, 사고로 인해 힘줄이 잘려 나간 그의 오른팔이 오늘따라 유독 시큰거렸다.

겉보기에는 멀쩡할지언정 실상 아무런 힘을 쓸 수 없는, 마치 지금의 <상하이 캐피탈>과 똑같았기에.

“그렇기에… 내 힘줄을 끊어 놓은 놈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지.”

간신히 힘을 주어 꽉 쥔 오른쪽 주먹.

이제 막 회복된 그 팔로 그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보복이었다.

탄약 증권이라는 미끼에 파생상품 폭약을 달아, <상하이 캐피탈>의 힘줄을 끊어버린 장본인에 대한 보복을.

“한서준. 그자가 지금 태국에 있다고?”

“예. 크라 운하 착공식에 갔다고 합니다. 물론… 이제껏 그래왔듯이, 실제로 그 운하가 뚫릴지는 미지수입니다만.”

“운하야 뚫리든 뚫리지 않든 상관없는 일이다. 어차피… 한서준과 놈이 이끄는 탄약그룹이 그곳에서 얻을 이익은 없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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