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조금 일찍 시작된 일대일로(3)
이슬람 사원 안쪽, 가장 깊은 공간 속에서도 따로 구분된 내실.
무슬림 독립 투쟁단의 단장인 핫산은 마주 앉은 이슬람 사제를 바라보며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었다.
“저자는… 서준 한 회장이 아닙니까? 그 잉탁 총리 목숨을 구했다던.”
“그렇지. 바로 보았네.”
“저희는 중국 쪽과 손을 잡기로 거의 결정 난 상황인데, 어째서 저자를 이 자리에 오게 하셨는지…?”
떨떠름한 모습으로 사제에게 물음을 던지는 핫산.
무슬림 독립 투쟁단의 대외 관계 분야는 전부 사제가 맡고 있기에, 핫산은 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즉각 답변을 받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조급함이야 남의 일이라도 된다는 듯, 물담배 파이프를 입에 물고 차분한 모습을 한 사제.
나무껍질을 얼기설기 이어 만든 천장 위에 몽롱한 연기가 닿고 나서야, 비로소 그가 입을 열었다.
“세상 그 어디에 대가 없는 조건이 있던가?”
내실 아래쪽 벽, 남쪽을 향해 아주 작게 난 창 하나.
비록 모니터 하나 정도의 작은 창이었으나, 사제가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들면 온 마을의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풍족해진 민간 물자, 입항을 기다리는 선박, 그리고… 오합지졸인 반군을 무장시킬 수 있는 무기와 폭약까지.
“특히나 이렇게 초장에 선입금을 거하게 받는다면 더더욱 그러할 걸세. 중국 놈들에게 절대 공짜는 없을 터.”
“사제님,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겁니까?”
“대가. 차후 과중한 이자에 시달릴 바에야, 미리 남의 것으로 대가를 치르자는 것일세. 저기 저 문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의 목숨으로.”
“설마…?”
마을 사람들에게 그토록 온화했던 사제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눈빛만으로도 핫산에게 큰 결단을 내리라는 듯한 위압감.
입에 잔뜩 머금은 연기가 방안을 가득 메우자, 이내 사제는 하던 말을 연이어나갔다.
“탄약그룹 측에서 먼저 연락을 해 왔더군. 이곳이… 제 놈에게 호랑이굴인지도 모르는 사람처럼 말일세.”
“…….”
“저자의 신변 말일세. <상하이 캐피탈> 측에 인도한다 한들, 그 누가 어찌할 수 있겠나 싶으이. 아니 그러한가?”
말라비틀어진 노송처럼 거칠지만 단단한 사제의 손등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젊었을 시절, 매일 도축용 칼을 쥐고는 소와 양의 멱에 칼날을 쑤셔 넣어 바닥에 피를 흩뿌리던 사제.
그리고 지금, 수십 년 만에 느껴지는 그때 그 긴장감이 늙은 심장을 마구잡이로 뛰게 하고 있었다.
짐승 대신 사람을, 도축용 칼 대신 통제권을 쥐고 피비린내 나는 도살의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다시없을 기회일세. 내 무장 인원을 부를 터이니, 자네는 안에서 잠시 시간만 끌어 주면 되는 게야.”
* * * *
느낄 수 있었다.
이곳, 시골 마을을 빙자한 반군 소굴에 갈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 문가 너머로 흐르는 묘한 긴장감까지.
“아예 팔아넘기려고 작정을 하셨나 보네. <상하이 캐피탈>에.”
바깥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발소리. 무언가 짤그락거리는 듯한 쇳소리.
직감적으로 등허리에 소름이 돋는 걸 보아, 장정 수십여 명이 이곳을 둘러싼 채 지시만 기다리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조금… 심하게 늦는군.”
오른팔을 뻗어 손목시계를 본 나.
사제와 이야기를 나누겠다며, 핫산이 내실로 들어간 지 벌써 20여 분.
실처럼 가느다란 초침이 째깍거리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이곳에 오기 전 방콕에서 잉탁 총리가 내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지나치게…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총리로서는 부끄러운 말입니다만, 그곳은 태국 중앙 정부의 통제가 먹히지 않는 곳입니다.’
혈혈단신 반군 소굴로 직접 들어가겠다는 내 계획을 들은 잉탁 총리.
화들짝 놀랐던 그는 잠시 고민의 시간을 갖더니, 조심스레 내게 제안 하나를 던졌다.
‘부득이하게 가셔야 한다면, 중앙군의 호위를 받으시지요.’
‘호위라. 그게 필요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위압감을 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무언가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을 때, 안전을 담보할 수 있게끔은 해야 하니까요.’
머리가 아픈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던 잉탁 총리.
나는 그런 그에게 안심이 되는 말 한마디보다, 오히려 생각할 거리 하나를 더 던져 주었다.
‘중앙군을 옆구리에 낀 저를 저들이 어떻게 인식하겠습니까. 대화 상대일지, 토벌을 위한 전령일지.’
‘하지만….’
‘거기에 호위가 있든 없든, 의지만 있다면 저들은 얼마든지 저를 사로잡아 제물로 쓸 겁니다.’
중국 정부를 등에 업은 <상하이 캐피탈>. 그들의 압도적인 물량 투하는 필시 남부 군벌의 눈을 멀게 하고 귀를 닫게 했을 것이다.
마치 평소에는 절대 겪어보지 못한, 달콤한 도깨비불에 홀린 소년처럼.
그러나….
‘염려하실 것은 없습니다. 그저 총리님께서 앞으로 하셔야 할 것은 한 가지뿐이니까요.’
그 일대일로라는 푸른빛의 도깨비불에 홀린 이의 눈을 뜨게 한다면. 그리고 내 손에 든 호롱 심지에 작은 불씨 하나를 붙인다면.
분명… 그들은 내 손을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내 뒤를 따를 것이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야밤의 산자락에서 길을 잃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기에.
‘제가 해야 할 일… 그게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오직 저만 믿어주시면 되는, 아주 쉬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어찌 보면 과할 수도 있는 자신감을 갖고, 그대로 잉탁 총리를 바라보는 내 시선.
나는 손가락을 들어 그의 앞에 놓인 지도 한 장을 가리켰다.
동남아시아. 그 아래, 태평양과 인도양을 가로지르는 길게 뻗은 반도.
조만간 세상을 뒤엎을… 크라 운하를 바라보며.
‘제가 만들어낼 새로운 태국 지도 위에. 아니, 완전히 뒤바뀐 전 세계의 물류 지도 위에 추인의 도장을 찍어주시기만 하면 되니까요.’
* * * *
점점 다가오는 압박감.
철컥, 눈을 감고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묵직한 방아쇠 당기는 소리.
벌써 사원 내의 일부 인원들이 권총이라도 뽑아 든 모양이었다. 나무 문짝 하나로 가로막혀 있음에도, 그 존재감과 위압감은 가려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니까.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서준 한 회장님.”
아까까지의 다소 당황했던 기색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무언가 단단히 결심을 한 듯한 핫산.
“잠시 사제님과 대화를 나누고 왔습니다. 탄약그룹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으며, 상당히 타의 귀감이 되는….”
장황하지만 알맹이 없는 무의미한 내용뿐인 말. 어색하기 짝이 없는 시선 처리. 내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과한 손짓, 발짓까지.
이미 마음을 굳힌 모양인지, 나와 진지한 대화를 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핫산.
‘아예 나를 제물로 삼기로 정하고 여기 온 모양이군.’
정해진 결론. 정해진 수순.
그렇다면… 내가 이자에게 말이라도 건넬 수 있는 타이밍은 오직 지금뿐일 터.
“…이래저래 저희 태국에 여러 투자를 하시러 오신 데에 저희 또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장황하게 시간을 끄는 핫산. 점점 크게 들리기 시작한, 수십 명의 사내들이 발을 구르는 소리.
모든 판단을 마친 나는, 곧바로 한쪽 손을 들어 핫산의 말을 끊었다.
“그만. 그쯤 해도 괜찮습니다. 부족하신 언변에 최대한 오래 시간을 끄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하하… 한 회장님,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대략 스무 명쯤 될까요? 고작 저 하나만을 손에 넣기 위해 죽어라 언덕길을 오르고 있는 병력 말입니다. 그것도.”
어림짐작한 머릿수까지도 들어맞은 모양이었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핫산.
이미 그의 손바닥은 허리춤에 찬 권총 주머니의 가죽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상황.
“이번에 새로 들여온 중국제 소총으로 무장한.”
“……!”
두 눈을 터질 정도로 동그랗게 뜬 핫산. 내가 내뱉은 말 한마디에, 그 가죽 주머니에서 뽑혀 나온 묵직한 권총이 내 미간 사이를 정조준했다.
“이미… 늦었소. 한 회장.”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인데, 내가 늦었을 리가 있겠습니까.”
“시작? 그럴 리가. 이미 우리는 중국 쪽과 손을 잡는 것으로….”
“내가 <상하이 캐피탈>의 속내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초연한 듯, 총구만을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이 당황스러워서일까?
갑작스러운 감정의 떨림으로, 조준점이 흔들리는 핫산의 권총.
“후우, 후우….”
분명, 그 또한 알지는 못하더라도 느끼고는 있었을 터.
<상하이 캐피탈>이 제시한, 그리고 선입금으로 베풀고 있는 것 속에 무언가 불길한 독침 하나가 담겨 있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 독침은 분명,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혹독한 이자의 형태로 돌아올 것을.
-쾅! 쾅! 쾅!
그 순간, 굳게 잠긴 나무문을 두들기는 사내들.
당장이라도 들이닥칠 것만 같은 그들은, 문 너머에서 목청을 높여 핫산에게 물었다.
“단장님! 지금 바로 진입해도 되겠습니까?”
권총을 든 채,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핫산. 방아쇠에 걸린 그의 손가락에는 찝찝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혹시 모를, <상하이 캐피탈>에 대한 자신이 놓친 무언가.
결국, 그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게 이어졌다.
“잠깐! 아직 아니다! 바깥에서 그대로 대기하고 있도록!”
축 내려진 그의 오른팔과 함께 바닥을 향한 총구.
맥 빠진 목소리로, 핫산이 내게 말했다.
“이야기를… 들어 보겠소.”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아직 본론조차 꺼내지 않았으나, 넘어가 버린 기세.
설마 했던 의심은 어느새 확신이 되어, 대답만을 기다리는 핫산.
곧바로, 내가 입을 열었다.
“일대일로. 중국 측에서 단장님께 일대일로라는 도깨비불을 보여 주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그리고 그 도깨비불이 그저 허황된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직감적으로 알고 계실 테고요.”
고개를 떨군 채, 간신히 위아래로 끄덕거리는 핫산.
툭, 탁자 위에 보고서 한 장.
나는 천천히 그에게 그 보고서를 읽어 보라며 턱짓했다.
“이건…?”
“도깨비불의 실체입니다. 직감적으로 느끼기만 하는 것이 아닌, 명백한 근거를 갖추어 설명이 되는.”
회귀 전, 내 기억의 조각과 한국의 국가정보원이 조사한 내용이 함께 담긴 그 보고서.
향후 10여 년간, 앞으로 중국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예측한 그 보고서의 첫머리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이 적혀 있었다.
-일대일로, 21세기의 식민지 경영과 예속화.
“일대일로. 무슬림 독립 투쟁단이 그 진주 목걸이의 일원이 된 후, 곧바로 치를 대가는… 토사구팽입니다.”
“…….”
확신으로 변한 의심.
시선은 보고서를 향해 고정한 채, 고개를 떨군 핫산. 떨려오는 어깨를 주체하지 못한 그가 흐느끼듯 내게 말했다.
“나도, 나도 알고는 있습니다. 이들의 모든 지원에는 살인적인 이자가 붙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붉게 달아오른 눈가.
천장 위로 깊은 탄식이 담긴 한숨이 쏘아짐과 함께 토해낸 그의 심경.
“언젠간 태국 중앙 정부가 우리 형제들을 토벌할 것이라는 사실까지, 전부!”
점점 좁혀오는 중앙군의 포위망. 열세가 된 상태로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반군.
핫산, 반군을 이끄는 우두머리.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중 어느 하나 정답이 없더라도 반드시 답을 기재해야만 했고.
“이것이… 내가 독이 든 성배를 마시는 이유입니다. 대답이 되었습니까?”
힘줄이 솟아오른 손등. 그 두 손으로 보고서를 쥐어 잡은 핫산은 당장이라도 보고서를 찢어발기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런 핫산의 손목을 잡아챈 나.
“속단하긴 아직 이릅니다.”
“뭐요…?”
고작 한 뼘 거리에서 가까이 마주친 시선.
분위기가 뒤바뀐 것을 감지한 것인지, 바깥의 무장한 사내들이 문을 거칠게 두들기는 소리가 내 귓가에 닿았다.
솟아오르는 긴장감.
딸깍, 허술하게 만들어진 문고리가 열림과 동시에 방 안으로 거칠게 들이닥치는 병력.
해일처럼 밀려오는 그들을 배경 삼아, 나는 핫산의 눈을 바라보며 최후의 물음을 던졌다.
그가 거부할 수 없는, 유일한 선택지 하나를.
“살아날 방법이 있다면, 그리고 제가 그 제안을 한다면, 받아들일 의향이 있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