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누구를 위한 신인가(2)
중국, 베이징. 중난하이.
일상복에서 양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장 대인은 평소와 달리 종종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황급히 걸어 나가고 있었다.
비록 공식적인 당이나 정부의 직함은 없을지언정, 지도부 전체의 정치적 스승 노릇을 하기에 붙여진 ‘베이징의 노괴’라는 별칭.
“자네는 지금 일 처리를 어찌 하는 겐가!”
어찌 보면 과할 정도의 그 칭호의 무게가 전혀 이상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그의 모습.
호통을 치는 장 대인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을 관장하는 내무부장이었다.
“작년 티벳에서 있었던 폭동도 모자라서 이번에는 위구르라니! 소수민족 놈들 통제 하나 똑바로 못하는 주제에 왜 그 자리에 앉아 있나!”
“송… 송구합니다. 장 대인. 최대한 빨리 조치를 취하겠으니,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주도, 우루무치에서 일어난 대규모 유혈사태.
중국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한족과 이슬람교도인 위구르족 간의 인종 갈등.
외부에 발표할 자료에는 고작 수백여 명의 사망자만이 있다고 적혀 있었으나, 실제로는 수천 명에 달하는 이들이 명을 달리했다.
“우선 한족이 먼저 도화선에 불을 붙였으니, 지방정부에 명하여 위구르족 측에 보상과 위로의 뜻을….”
“무슨 헛소리인가! 이 사람이 지금 생각이 있는 게야 없는 게야!”
“어르신…?”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조금 당황한 듯한 내무부장.
천천히 고개를 든 그의 눈앞에는 완고한 고집으로 똘똘 뭉친 노인의 얼굴이 보일 뿐이었다.
“죽여. 확실하게.”
“죽이라고 하심은… 혹여 수괴와 그 일당만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쾅! 탁자 위를 강타한 노인의 주먹. 비록 늙고 주름진 손일지언정, 그의 거침없는 기백에 내무부장은 자라처럼 양쪽 어깨 사이로 머리를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이! 수괴고 민간인이고 기어오르는 놈들은 눈에 띄는 족족 밟아 죽이란 말이다! 기관총을 쏴 갈겨서 온몸을 벌집으로 만들어 버려!”
아예 총기 사용을 넘어 전차 투입까지 지시하는 베이징의 노괴.
한참을 그렇게 씩씩대던 장 대인. 그는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진정이 되었는지, 금박 부채로 머리의 열을 식히며 하던 말을 마저 이어나갔다.
“다시는 꿈틀거릴 생각조차 못 하게, 공안과 무장 경찰을 투입해 철저히 진압하도록. 필요시 특수부대까지도. 무슨 말인지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어르신.”
너무나도 잔인하고, 또 과할 정도로 폭력적인 후속 처리.
분명, 위구르 현지에서 어떤 반발이 발생할지 내무부장은 뻔히 알고 있었으나, 그는 거대한 힘을 지닌 노괴의 압박에 다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머리를 조아리고 받은 명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뿐.
“그럼,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인사를 마치자마자 황급히 방을 떠나려는 내무부장.
불쾌함과 두려움이 섞인 이 공간에 오래 있고 싶지 않은 그였으나, 장 대인은 다시금 그를 불러 세웠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예?”
탁자 아래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낸 베이징의 노괴.
툭, 탁자 위로 가볍게 내던진 그것은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이었다. 세상에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지옥 같은 풍경이 담겨 있는 사진이.
“내 혹여나 이럴 일이 있을까 고안해본 걸세. 밑에 실무진들에게 검토해서 초안 올리라 해 봐.”
“이건…?”
사진 속,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모습의 사람들. 헤지고 낡은 솜옷으로 간신히 칼바람 부는 추위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허술한 지게 위에 석탄을 지고는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 바로 앞, 총기를 들고 그들을 감시하는 군인들. 손에 쥔 채찍이 가리키는 방향에 놓인 팻말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요덕 정치범수용소
“북조선 놈들이 잘 써먹더군. 우리도 위구르에 비슷한 것 하나 만들면, 지방에 소수민족 반동분자들 격리하는 데에 좋지 않겠나.”
“어르신….”
“통제는 좀 더 강하게 하되, 북조선 놈들처럼 너무 우악스럽게는 허지 말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건네받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쥔 채, 조금씩 떨리고 있는 내무부장의 손.
이미 자신의 의지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노괴의 의중. 그러나 그것을 거절할 수 없는 그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오직 권력을 향한 굴종, 그것뿐이었다.
“후우… 명 받들겠습니다, 대인.”
* * * *
타닥타닥, 화로 안에서 타고 있는 숯불은 어느새 붉은색을 잃고 하얗게 재만 남게 되었다.
터번 아래의 턱수염을 쓸어내린 빈 살만 왕세자. 향후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과 크라 운하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그는, 한참의 생각 끝에 내게 말을 건네었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중국 쪽에서 움직일 카드는 단 하나뿐이니.”
이 세상 모든 이슬람 딱지가 붙은 세력에 대해서는 손바닥 보듯 훤히 꿰고 있는 빈 살만 왕세자.
쇠꼬챙이로 타고 남은 재를 이리저리 휘적거린 그는, 묘하게 동남아시아 지도를 닮은 잿더미 아래쪽을 찌르며 말했다.
“필시 말레이시아 정보부 놈들을 움직이려 하겠지. 그 밑에서 키우는 극단주의 조직이 있다.”
“말레이시아 정보부라.”
“한 회장. 그대에게는 다소 피곤할 일이 될 것이다. 말레이시아 놈들 또한 이번 일로 얻고자 하는 바가 크니.”
지독할 만큼 태국과 대립을 이어나가는 말레이시아.
이번 건을 기회로 어떻게든 태국의 발목을 물어뜯을 것이 내 눈에도 보일 정도였다.
서늘한 사막의 밤, 토기 항아리에서 꺼낸 새로운 숯에서 다시금 불꽃이 타오를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끝나지 않을 논의에 피곤을 느낀 나는 조금 난해한 목소리로 빈 살만 왕세자에게 물었다.
“그러면… 지금 상황에서 달리 해결방안은 없겠습니까?”
“어렵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음….”
단호한 확신. 그리고 그에 뒤따른 내 깊은 고뇌.
다소 안타까운 눈빛을 한 빈 살만 왕세자가 내게 대답했다.
“유감스럽게도 이슬람의 번영이라는 기치 아래 그 광신도 놈들을 말릴 방법 따위는 없다. 행여라도.”
그답지 않게 말끝을 흐리는 빈 살만 왕세자.
마치 현실에서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가정하기라도 하듯, 그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젓고는 이내 말 한마디를 내뱉었다.
“중국 놈들이 그들 극단주의자 앞에서 알라신을 모독하는 미친 짓을 하지 않는 이상.”
“알라신에 대한 모독이라… 잠깐, 잠깐.”
그리고 그 순간, 내 뇌리를 강타하는 기억의 편린.
분명…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핵심 세력, 그들이 척박한 서쪽을 향해 펼칠 과격한 행보의 시작이.
작년의 티베트에서 있었던 유혈사태에 이어, 올해 위구르에서 발생할 그 사건. 그들은 반드시… 평화적이거나 유화적인 방법으로 일을 끝맺음하려 들지 않을 테니까. 절대로.
“조언 감사합니다, 왕세자 저하.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일이 수월하게 풀릴 것 같습니다.”
“음? 한 회장, 그건 무슨 말이지?”
알쏭달쏭한 표정의 빈 살만 왕세자. 한참을 고민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내가 갑작스레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하자, 다소 당황한 모양이었다.
휘잉, 거센 소리와 함께 사막으로부터 불어오는 모래바람.
이슬람의 근원에서 다가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빈 살만 왕세자에게 말했다.
“저들, <상하이 캐피탈>과 중국 공산당 측은… 스스로의 손으로 스스로의 발목을 잡을 거니까요. 분명히.”
* * * *
-위이이이잉!
사이렌 소리가 귀를 찢을 것만 같은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 도심 한복판.
한 조각의 공백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매캐한 연기가 자욱한 그곳에서는, 비명과 절규라는 붉은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살…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다시는 안 그러겠으니, 제발! 끄악!”
거칠게 휘둘러진 곤봉에 그대로 짓이겨진 한 가장의 생명.
“저는 아니에요! 저는 안 그랬어요! 군인 아저씨, 제발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제발!”
근처를 지나가다 바닥에 눕혀진 한 소녀. 그녀의 시야를 가득 메운 것은 위에서부터 내려찍는 둔탁한 군홧발이었다.
“후우, 이봐! 조금 있으면 해도 질 테니, 이제 슬슬 마무리들 하지!”
철모 아래 튄 위구르인의 핏방울을 아무렇지 않게 닦아내는 무장 경찰.
그는 누군가의 죽음이 묻은 곤봉을 휘둘러 자신의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길바닥에 뒹구는 저 반동분자들 잡아다 처넣고, 죽은 놈들은 대충 구석에 모아서 치워두도록! 증거가 남지 않게 한꺼번에 불태운다!”
“예, 알겠습니다!”
“행여나 외국인 놈들 보이는 족족 소지품 검사 철저히 하는 것 잊지 말고. 사진이나 동영상은 싹 다 지우게 해라!”
길거리에 즐비한 시체.
진압이 끝났음에도 간간이 불을 뿜는 총구와 서서히 퍼지는 화약 냄새까지.
이 모든 광기에 찬 광경을, 멀찍이 떨어진 호텔 꼭대기에서 바라보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이런… 미친놈들. 도대체 사람을 얼마나 죽이려 드는 거지?”
프랑스의 모 자원개발 회사에서 근무 중인 그 남자는 자신의 몸이 보이지 않게 커튼 사이로 몸을 감추었다.
떨리는 그의 손에 들린 비디오카메라 하나. 아마 저기서 사람들에게 총부리를 들이밀고 있는 공안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필시 그 또한 길바닥의 시체가 될 수도 있는 상황.
다리가 풀린 그는 촬영 중지 버튼을 누르고는 이내 창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당장, 당장 이 비극을 온 세상에 알려야 한다.”
정의감에 불타는 마음과는 달리 선뜻 움직이지 못하는 몸뚱이.
자원개발 탐사를 위해 위구르에서 장기 체류해야 하는 신분. 그렇기에 행여나 인터넷으로 자료를 보냈다가 중국 정부에 걸리기라도 하면 매우 곤란한 일이 생길 터였다.
“하지만, 도대체가 이걸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꽉 깨문 아랫입술.
특히나 중국 국영 방송에서 나오고 있는, 조작된 내용과는 전혀 다른 현실에 그는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말마따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
괴로움에 찬장에서 꺼낸 독한 술을 병째로 마시며, 그가 혼잣말을 내뱉었다.
“적어도… 이 영상만은 바깥으로 내보내야 하는데.”
검열 중인 인터넷을 통하지 않고는 직접 USB 같은 물리적인 장치에 담아 밖으로 반출해야 했다.
문제는 3년 남짓 남은 출국 시점. 달리 다른 방법이 없기에 그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했다.
곧바로… 그에게 걸려 온 전화 한 통을 받기 전까지.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후우, 본사에서 벌써 소식을 들은 모양이로구먼. 네, 피에르입니다.”
“피에르? 나 미셸입니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혹시 기억하시나요?”
“미셸?”
생각지도 못한 인물의 전화.
분명 이전 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좋은 동료였지만, 몇 년을 연락하지 않고 지내던 사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의문스러움을 한 번에 녹인 것은 뒤이은 그의 말 한마디였다.
“혹시… 지금 위구르에 있지 않습니까? 중국 공안의 진압 현장이 잘 보이는 곳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