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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131화 (131/300)

131화서토에서 생긴 일(2)

예전에 교도소에 있었을 때였다.

여섯 명에서 일곱 명 정도가 사용하는 혼거실. 그 안에는 별의별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있었고, 간혹 소위 ‘먹물’로 불리는 고학력자들 또한 근근이 존재했다.

내가 있었던 7호실의 먹물. 속칭 김 교수는 정치외교학 분야에 전문성을 지닌 먹물이었다. 특히나 중국 쪽으로.

‘그러니까, 저쪽 지도부 아들이 똥줄이 타는 기라. 최근에 위구르에서 난리 난 거 알제?’

부산의 모 대학에서 교편을 잡던 김 교수. 잡을 거면 교편만 잡을 것이지, 괜히 지자체 지원 사업 비용까지 불법으로 잡다가 죄수복까지 입은 그였다.

‘뉴스에서 나오는 그 진압 영상, 느그들도 봤제? 그게 사실 거기 프랑스 자원개발 회사 직원이 찍었다는 거 아이가.’

강연으로 먹고살던 솜씨는 어디 가지 않는 모양인지, 틈날 때마다 방 안에서 입을 털던 김 교수.

늘 그랬듯이, 그의 말로는 썩 좋지 않았다. 중학교 중퇴가 최종 학력인 조폭 출신 방장은 그런 어려운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싫어했으니까.

-딱!

하늘을 달려 김 교수의 머리통에 맞은 낡아 빠진 베개.

곧바로 비몽사몽 잠에서 막 깬 방장의 잠긴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김 교수님아. 거, 낮잠 좀 자자니께 참말로다가 끝까지 나한테 협조 안 할 것이여?’

‘쓰흡! 잠이야 죽어서 실컷 자면 되는 것 아이가? 덕팔이 느 머리통에도 제발이고 부탁인데 교양 좀 채우래이.’

먹물 특유의 곤조 때문이었을까?

조폭이고 뭐고 일단 눈에 뵈는 게 없던 김 교수. 물론 그 결과는 방장의 꿀밤 엔딩이었다.

‘아니, 그래도 이 양반이 참말로 나이대접을 못 받고 싶으셔서 환장을 해부렀나. 일로 좀 오쇼. 어어? 도망갈 채비허면 콱 조사불랑께!’

* * * *

“…그렇지. 그땐 그랬었지.”

“응? 뭐라고?”

잠시 회귀 전 일을 추억하던 나.

그러나 김원철 아저씨는 그 짧은 회상의 시간조차 주기 싫었던 모양이었다.

비행기 옆자리에서, 내가 무심코 내뱉은 혼잣말에 부담스럽게 얼굴을 코앞으로 들이대는 대머리 아저씨.

“윽, 부담스러우니 그 빛나는 세숫대야는 쫌 치우셨음 합니다.”

“히야, 무슨 노인네 소싯적 첫사랑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뭔 젊은 양반이 표정이 그런디야.”

“비슷하긴 한데 떠올리는 대상은 좀 다릅니다.”

“뭐, 사랑에 눈이 멀면 그럴 수 있지. 아무튼, 정말 어쩔 것이여. 빈 살만 그 양반이 말하길, 중국 쪽에서 절대 가만히 안 있을 거라며?”

내게 건네어진 우려의 말.

이미 빈 살만 왕세자와 나누었던 대화는 모두 김원철 아저씨와 공유된 상황. 크라 운하를 둘러싼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해둔 방법은 있습니다. 이미… 별도로 지시를 내려두기도 했고요.”

“별도로? 누구, 이택규 전 사장?”

“그 양반은 아니고요.”

이 일견 거대해 보이는 관계의 실타래 속에서도 늘 그랬듯이 해결방안은 있는 법.

나는 물끄러미 비행기 한쪽 벽에 붙은 전용 위성 전화에 눈길을 주었다.

오직 단 한 사람에게서만 걸려 올 그 전화가 울리게 된다면… 분명 난해한 그림을 이어줄 결정적인 퍼즐 조각 하나가 딱 맞게 맞물릴 테니까.

그리고, 그 순간.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기다리던 퍼즐 조각을 물고 온 프랑스 황새 한 마리.

위성 전화는 다급히 울고 있었다. 저 멀리 서쪽 땅끝에서부터 가지고 온 퍼즐 조각을 어서 손에 쥐고 거대한 판 안으로 직접 들어가라고.

“타이밍도 딱 맞게 전화가 왔네요.”

“누구… 혹시 미셸 사장이여?”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른 김원철 아저씨.

나는 그 물음에 즉답 대신 울려대는 전화기를 붙잡고 씨익 웃음 지었다. 자신감 있게 덧붙인 말 한마디와 함께.

“중국 쪽이 말레이시아든 어디든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손을 빌리지 못하게 할 겁니다. 이 전화가 곧 그 초석이 될 것이고요.”

* * * *

“예, 예. 회장님. 예,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장과 전화 통화 중인 미셸 사장의 머릿속은 여태껏 경험해본 적 없는 복잡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평생을 전자공학에만 몰두한 그였기에 이해하기 힘든, 바둑판 위에서 두는 수.

그것은 이제 회사 단위를 넘어 국가 단위, 그리고 전 세계 단위로 확장되어가고 있었다. 자신이 모시는 젊은 주군의 손가락 아래에서.

“혹시 사우디 측 연락은…? 아아, 직접 하신다고요. 네, 알겠습니다.”

촘촘한 직조물처럼 꽉 들어찬, 퍼즐 조각으로 만들어진 판.

감탄의 감정을 애써 입 밖으로 드러내지 않은, 미셸 사장은 전화기를 귀에 댄 채로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를 곁눈질했다.

오로지 자신의 입 모양만을 바라보는, 마르고 작은 한 위구르인 소녀를.

“일단… 증인 역할을 맡을 소녀는 잘 있습니다. 예, 그럼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럼, 들어가십시오.”

딸깍, 끊긴 전화.

비록 한국어로 말하는 것일지언정 대략적인 분위기로 뜻은 통한 모양이었다.

미셸 사장에게 더듬거리는 어설픈 영어로 질문하는 소녀.

“잘 풀린 건가요…?”

치켜뜬 호박색 눈동자는 오늘따라 유독 어두워 보였다. 다른 동양인들의 검은 눈동자보다 훨씬 더.

무언가 단단히 끔찍한 일을 겪은 듯, 아랫입술을 앙다문 소녀.

무덤덤한 외형 속에 괴로움을 삭여낸 그녀는 무르팍에 놓인 양손을 꽉 말아 쥐었다.

“저는 준비 됐어요. 망설임 같은 건 거기에 다 두고 왔으니까.”

“걱정하지 말거라.”

흐트러진 머리칼 위에 아무렇게나 덮인 히잡.

미셸 사장은 그 때 묻은 히잡을 직접 손으로 씌워 주며 그녀에게 말했다.

이제껏 그녀에게 건네었던 그 어떤 말보다 확신에 찬 어조로.

“우리 서준 한 회장님은… 이제까지 하려고 했던 일들 가운데 못 이룬 것이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 * * *

신장, 위구르 자치주의 우루무치 시내. 흉흉한 일이 한바탕 벌어진 도시에 뒤따라온 것은, 그 흔적만큼이나 흉흉한 소문이었다.

“세상에, 자네 혹시 그거 들었나?”

반쯤 무너진 식료품점.

그곳에서 사과 한 알을 집어 든 소녀는 주위의 어른들이 하는 말에 귀를 쫑긋 기울였다.

“그날… 시위에 나섰다가 체포된 사람들 말이야. 지금 군부대를 개조한 속칭 재교육 캠프라는 곳에 있다던데?”

행여나 누가 들을세라, 최대한으로 목소리를 낮추어 입을 연 식료품점 주인.

단골손님으로 보이는 남자 역시 손으로 입을 가리어 작게 대답했다.

“나도 들었네. 거기 갇힌 사람들의 가족까지도 집어넣을 거라는 소문이 돌더구먼. 이크!”

그 순간 문 앞 길가로 발을 맞추어 지나가는 무장경찰.

사과를 쥔 소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두려움 때문이 아닌, 형용할 수 없는 분노로.

“그게… 정말인가요?”

“인석아, 조용히 하거라. 무장경찰이 지나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일단은….”

문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주위를 살피는 식료품점 주인. 길가가 한산해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는 소녀에게 대답을 주었다.

“내 친구의 사촌 동생이 시위 도중에 붙잡혔단다. 그리고는… 직계 가족들도 전부 그 재교육 캠프인지 하는 곳에 끌려갔다네.”

“……!”

충격적인 소식에 초점을 잃고 멍하니 하늘을 향해 바라보는 소녀의 눈. 곧바로 그녀의 뺨 위로 뜨거운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아버지… 오빠….”

시위 도중 잡혀간 그녀의 오빠.

그리고 어젯밤 갑자기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린 그녀의 아버지.

용기를 내어 지역 공안에 찾아가 보았으나, 그들의 대답은 거센 발길질뿐이었다.

아랫배에 묵직하게 흉터처럼 남은 그 아픔이 다시 떠오르는 순간, 그녀의 눈물을 닦아준 식료품점 주인.

“으이구, 얘야. 아무리 슬퍼도 여기서 이러면 안 되야. 어여 집에 가거라. 어여.”

“아이고, 여기도 집안에 줄초상 났나 보구먼. 이를 어쩌나.”

뿌연 눈앞을 닦아내지도 못한 채, 익숙한 발걸음에 몸을 맡긴 곳은 텅 빈 집의 마당 앞.

휑한 모래바람만이 나부끼는 그 집 앞에서 소녀는 절망감에 털썩 주저앉았다.

“방법이… 아버지와 오빠를 구할 방법이 있었으면….”

이제는 시간이 되었음에도 더는 울리지 않는 이슬람 사원의 기도를 알리는 소리.

깔개 하나 없는 흙바닥에 무릎을 꿇은 소녀는 눈을 감고 자신의 모든 것을 쥐어짜 누군가에게 호소했다.

“한 번만, 한 번만 제게 기회를 주세요. 제가 다가온 이 지옥을 없앨 수 있는….”

그 마음이 하늘에 닿기라도 한 걸까?

순간, 그녀의 머리맡에 드리워진 두 개의 그림자.

“이 아이가… 그 강제 수용소 피해자 가족입니까?”

처음 보는 서양인이 옆에 선 백인 남자에게 물음을 던졌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백인 남자. 그는 소녀의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의 관리자였다.

몇 차례, 심부름을 가면서 얼굴 정도는 익혔던 사이. 그녀는 얼떨떨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여긴… 무슨 일로 오셨나요…?”

멍한 표정의 그녀에게 손을 내미는 백인 남자.

미셸이라 불리는 그 남자는 손수건으로 소녀의 눈물을 닦아 주며 입을 열었다.

“일어나거라. 얘야.”

그러고는 덧붙인 한 마디.

그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소녀는 생각했다. 반드시 이 남자를, 그리고 이 남자가 말하는 ‘그분’을 향해 따라가겠노라고.

이는 자신의 소망이 하늘에 닿게 한 증거였기에.

“널 도와주실, 그리고 너희 가족을 구해주실 분의 지시를 받고 왔으니까.”

* * * *

툭, 툭.

나무판자 몇 조각을 대충 이어 붙인 허술한 문짝에 던져지는 대로 박히는 칼날.

말레이시아 정보부에서 키운다는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은 거칠었다.

나름 중국 쪽에서 왔다는 큰 손님인 제임스 왕 이사 앞에서조차, 이리도 무례한 태도를 거두지 않았으니.

“해서, 우리더러 태국으로 올라가라?”

“…그렇소. 태국 남부 운하 공사 현장으로 가서 현지 세력을 무력으로 눌러버리면 됩니다.”

“흐음, 그거 잘되었구먼.”

풍성하게 난 콧수염을 손으로 쓸어내린 극단주의 세력의 대표자.

광기 어린 눈을 가진 그는 경전 위에 손바닥을 올리고는 입맛을 다셨다.

“거기 주민 놈들, 요사이 서구 물이 들었으니까. 율법으로 버릇을 고칠 때가 되었긴 했지.”

“…그 부분은 당신들 뜻대로 하시면 됩니다.”

아무리 아프간에서 탈레반 생활을 오래 했다고는 들었건만, 이제까지 제임스 왕 이사 그가 만났던 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

터번을 쓴 그가 너무나도 경건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나는 다른 것은 필요 없소. 그저 알라의 가르침. 철저하게 사람들에게 이슬람의 삶을 살게 만드는 것뿐.”

“……”

“그러니… 중국 쪽에서도 괜히 나중에 트집이나 잡는 일 따위 없길 바라는 거요.”

트집 따위 잡을 필요조차 없다.

어차피 중국 대륙 본토조차 아닌 먼 변방의 일.

광신적인 모습에 학을 뗀 제임스 왕 이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쪽이 아래 백성들을 어찌 관리하든 우리는 일절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뭐, 그럼 되었고.”

그 후, 적당히 마무리된 세부 내역의 조율.

수십 개의 칼날이 박힌 나무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간 제임스 왕 이사. 그는 징글징글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미치광이 광신도 놈들… 뭐, 상관없다.”

그의 양어깨에 살며시 내려앉은 불안감. 그 불쾌한 감각을 애써 부정하며, 제임스 왕 이사는 무어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쩌면 스스로에게 최면 비슷한 것을 걸면서.

“그저 이번 일만 넘기면 그만이다. 먼 서쪽의 날갯짓이 이곳까지 닿기란 요원한 일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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