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서토에서 생긴 일(5)
마치 깊은 밤, 어두운 하늘 위에서 홀로 빛나는 달을 가리키듯, 거대한 전광판 화면을 가리키는 내 손가락.
곁에서 별처럼 수놓인 만국기의 흔들림이 향한 그곳. 그 끝에 걸린 것은 일종의 달무리 같은 것이었다.
이제 곧 추적추적 땅 위를 향해 쏟아 내릴 비.
한밤의 비가 올 것을 알리는 달무리가.
-저는… 위구르에서 온 이름 없는 한 소녀입니다.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모두의 눈동자에 보이는 어설픈 영상 한 조각.
3분여가 채 되지 않은 그 짧은 영상 속에는 신장 위구르 자치주, 우루무치의 풍경이 담겨 있었다.
평소대로의 여유롭고 목가적인 풍경이 아닌, 도시 전체가 이웃들의 피로 잠긴 광경이.
-길 위를 걷던 학생, 공원 벤치에 앉아 배 속의 아기와 대화하던 임산부, 평범한 과일 가게의 주인아저씨.
화면 속, 희뿌연 달무리에서 조금씩 쏟아져 내리는 비극이라는 빗방울.
눈물진 빗방울은 땅 위로 떨어져 핏빛 웅덩이를 고이게 했다.
철심이 든 몽둥이에 머리를 맞아 흘린 피. 황급히 몸을 피하던 도중 무장경찰의 권총에 다리를 관통당해 흘린 피.
웅덩이진 핏물이 영상 속에서 클로즈업되는 순간, 쓰고 있던 히잡을 벗어 던진 소녀.
연갈색의 머리칼을 나부끼며, 그녀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제 가족들. 아버지와 오빠까지 모두.
방금 그녀가 벗어 던진 히잡처럼, 한 꺼풀 한 꺼풀 드러나기 시작하는 그날의 사건.
소녀의 옆에 선 사우디 대사의 표정과 눈짓만으로도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곳, UN 총회에 모인 아랍 쪽 국가의 대사들이 이번 사건을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새롭게 짜인 판. 이제 승리는 내 손안에 있습니다.”
“이런 얄팍하기 짝이 없는 수를 쓰다니…!”
갑작스럽게 바뀐 분위기에 맥이 턱 풀리기라도 한 것일까?
난간에 한쪽 손을 짚고는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는 제임스 왕 이사.
쇠로 된 각진 난간을 상당히 강하게 잡았던 모양이다. 그의 벌게진 손아귀에서는 나를 향한 분노를 그대로 자아내고 있었으니까.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목을 옥죈 것은 당신들 스스로가 아니겠습니까.”
“헛소리! 고작 이딴 것으로 순순히 물러날 것이라 착각하지 마시오. 저 정도쯤이야 아직 얼마든지 수습할 방안이….”
“고작 저 정도쯤으로 끝날 것이라 생각하셨던 겁니까?”
순간, 풀려버린 그의 손.
내 눈동자에는 그의 등골을 타고 흐르는 찌릿한 긴장감과 불안감이 보이기 시작했다.
툭, 하고 건드는 순간 곧바로 전류가 터질 듯이 새어나갈 먹구름 같은 그의 모습.
“그게 무슨….”
말끝을 흐리는 제임스 왕 이사. 나는 그에게 이번 판에서 승자로서 내릴 수 있는 선언을 입 밖으로 꺼내 들었다.
그 자신의, 그리고 그와 관계된 핵심적인 인사들에 대한, 일종의 치명상에 가까운 선고를.
“수용소. 위구르 지역에 새로 생긴, 북한식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
“……!”
마침내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맞물린 크고 작은 톱니바퀴.
모든 인과관계가 한순간에 같은 장소에 모여 굴러가기 시작한 움직임은, 분명 제임스 왕 이사 그에게 불리한 것이었다.
이제는 알면서도 어찌 손을 쓸 수도 없을 정도로, 움직임은 거대했기에 더더욱.
“단순 꼭두각시나 단역 배우 따위로 생각했나 봅니다, 저 소녀를.”
나는 한 발짝 다가가 그의 앞에 섰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는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있는 제임스 왕 이사.
망연자실에 가까운 그 태도에, 나는 그의 힘 빠진 어깨를 툭 건드리고는 말 한마디를 남기며 발걸음을 옮겼다.
더는 대항할 힘조차 나지 않을 만큼, 완전히 쐐기를 박는 말 한마디를.
“이제 이슬람 세력 가운데 일대일로를 지지할 세력은 그 누구도 없습니다.”
“…….”
“크라 운하를 노리는… 말레이시아 정보부와 그 산하의 세력까지 전부.”
땅거미가 짙은 저녁노을. 그리고 그 노을빛을 받아 점점 길어져 가는 내 그림자.
어느새 검은색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버린 그림자는, 긴 다리를 한발 한발 움직이며 패자(敗者)가 선 자리를 떠나갔다.
강바람에 휘날리는 만국기가 승자를 환호하는 뉴욕 맨해튼의 UN 본부 앞.
그곳의 대형 전광판 화면에서는 한 소녀가 비극 섞인 자서전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처한 이야기를 씨실과 날실로 엮어 가며.
-정치범 수용소에 들어간… 제 아버지와 오빠. 더 많은 이들이 같은 비극을 겪지 않도록, 전 세계의 도움을 간곡히 바라고, 또 바랍니다!
* * * *
신장, 위구르 자치주.
아직 흉흉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쉬이 가시지 않은 우루무치에서 조금 떨어진 인민해방군의 폐 부대 시설.
<신장 재교육 캠프>라는 임시용 간판이 걸린 그곳에서는, 만여 명의 정치범들이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움직임을 행하고 있었다.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좌로 굴러. 우로 굴러!”
푸른색 복장이 뿌연 흙먼지로 황토색을 띨 만큼 고강도로 부여되는 얼차려.
강제로 머리를 박박 깎은 수용자들은, 이 허름한 폐 부대 시설에서 공안 직원의 지시에 맞추어 고통스러운 동작을 연신 반복했다.
손발에 연결된 쇠사슬에 진물이 일기 시작한 피부. 그러나 그들은 그 아픔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자신들을 향해 겨누는 총구가 너무나도 서늘했기에.
“앉아. 일어나. 앉아. 일어나! 이봐! 거기 늙은이, 똑바로 안 하나! 당장 앞으로 튀어나와!”
허리춤에서 전류가 흐르는 쇠몽둥이를 꺼내 노인의 뱃가죽에 가져다 대는 공안 직원.
곧바로, 맨살이 타는 불쾌한 냄새가 근방에 선 사람들의 코를 마구잡이로 찌르기 시작했다.
“이 새끼, 여기까지 기어들어 온 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려?”
“크헉…! 그만, 제발 그만하시오!”
이루 형용하기 힘든 고통에 몸부림치던 위구르인 노인.
흰자를 뒤집고 경련하던 그는 이내 버틸 힘을 모두 잃었는지, 바닥에 털썩 쓰러져 모든 움직임을 멈추었다.
미약하게 뛰던 심장 박동까지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버러지 놈! 이래서 위구르 놈들은 쇠막대로 두들겨 패는 것이 답이다. 어이! 거기 너!”
군홧발로 노인의 시체를 공 차듯 차던 공안 직원. 그는 앳된 얼굴의 신참에게 손가락질하며 입을 열었다.
“이거 갖다 버려! 소각로에 처넣고 태워 버려라!”
“그… 아직 쓰레기 소각장 공사가 마무리가 안 되어서 말입니다.”
“하! 네놈은 일머리도 없나? 그럼 개 먹이로 주면 될 것 아니야!”
한낱 개 먹이로 전락한 노인의 마지막.
그 이루 말하기 힘든 잔혹함에 수용자들의 눈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흔들렸다.
그제야 통제가 되어간다 느끼기라도 한 걸까?
만족한 듯, 뒷짐을 지고는 목청을 드높이는 공안 직원.
“경비견 놈들만 포식하겠군. 주목! 이제 작업장으로 이동한다. 아직도 머리통에 도망치거나 반항할 생각이 안 빠진 놈들은.”
텅, 텅, 아직 끄트머리에 탄내가 가시지 않은 쇠몽둥이를 철창에 대고 두드리며 그가 말했다.
“저기 저놈처럼 개밥 신세가 된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두려움 탓에 반 박자 늦은 대답.
반쯤 얼이 나간 위구르인 수용자들의 발걸음은 공포라는 이름으로 점점 맞추어지기 시작했다.
“좋다. 이동! 노역장으로 간다!”
수용소 근방의 야외 채석장을 향해 이동하는 사람들.
이들을 앞에서 인솔하는 공안 직원은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이곳은 중앙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지 중의 외지. 느슨한 감독에 이어 괜한 시비를 걸 외국인 따위도 없을 것이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위구르 노예 중에 제법 예쁘장한 년이 있었지. 흐흐흐….”
자신의 욕망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채울 생각인 공안 직원.
자신을 휘감은 과한 탐욕 때문일까?
그는 자신의 셔츠 앞주머니에서 울려대는 호출기 소리조차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작업장에 거의 도착하고 나서야 확인된 호출기의 빨간 불빛.
“어…? 소장님 직통 호출이잖아? 무슨 일이지?”
갑자기 해일처럼 그를 덮친 묘한 불안감. 고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다시 그를 찾는 붉은 불빛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울려대기 시작했으니까.
-삐빅! 삐빅! 삐빅!
“예, 소장님. 통신보안.”
“통신보안은, 이 새끼야! 당장 수용자 놈들 뒤로 물려! 최대한 바깥에 안 보이게 건물 안에 처넣으란 말이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어리둥절한 표정의 공안 직원.
이 황량한 허허벌판에, 그것도 야외 채석장에 이 많은 인원이 들어갈 건물 따위는 없다는 것은 분명 소장도 알 터였다.
그런데도 이토록 급한 목소리로 말도 안 되는 지시를 한다는 것은….
“UN에서 우리 재교육 캠프의 존재를 알았다! 곧 외부에서 서양인 코쟁이 기자 놈들이 들이닥친다고!”
“그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두 사람. 그러나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반짝, 공안 직원의 눈을 부시게 만든 인공적인 빛줄기 하나.
채석장 반대편, 야트막한 언덕 위에 희미한 점처럼 보이는 누군가. 그 의문스러운 자는 연신 빛줄기를 방출해내며 이쪽을 향해 큰 물체 하나를 겨누고 있었다.
대구경 카메라라는, 어쩌면 공안 간부가 허리에 찬 권총보다 훨씬 강할지도 모르는 그만의 무기를.
* * * *
“Holy shit…! 특종이다. 정말 여기에 강제 수용소가 있었어.”
“UN 연설이 끝나기도 전에 바로 달리길 잘했지 뭔가. 그런데, 저 사람들 몰골이 영… 참 잔인하네, 공산당 정부 쪽 지침은.”
언덕 위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터트리기 바쁜 서양인 기자들.
우루무치 인근에서 취재 기회만 노리던 그들에게 있어, 이번 UN 연설 건은 최적의 판이 깔린 셈이나 다름없었다.
“그 위구르족 소녀가 말했던 것이 사실로 드러나는 거지. 그나저나.”
얼추 사진은 다 건졌는지, 철수 준비를 하는 기자.
나름 이슬람권 소식통을 자부하는 그는, 얼마 전 사우디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동료 기자에게 이야기를 해나갔다.
“이번 일 말이야. 단순히 사우디 대사 측이 기획하고 터트린 게 아니라는 썰이 있어.”
“빈 살만 왕세자 머리에서 나온 작품이 아니다? 그럼… 누구 아이디어지? 미국? 일본?”
여느 정보기관 베테랑 기획관의 작품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걸출한 기승전결을 가진 작전.
그러나… 뒤이어 나온 대답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것이었다.
“아니, 아니. 국가 단위가 아니라. 한 사람의 개인이 만들어낸 플레이.”
“개인이라고? 이 대형 사고를 벌여놓은 주체가?”
동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서양인 기자.
그리고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공안 직원. 촬영 장비를 전부 가방 안에 집어넣은 그들은, 떠날 채비를 마치고는 언덕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위구르의 광야, 돌산에서 내려가는 길. 기자는 조금 전 동료가 던진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그 자신도 영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목소리로.
“한국의 탄약그룹, 한서준 회장. 그 젊은 친구가… 각본부터 연출까지 완벽하게 짠 것이지. 흥행 성적은 보는 것처럼 대박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