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장님의 핵몽둥이-135화 (135/300)

135화서토에서 생긴 일(6)

다시 돌아온 한국.

인천국제공항 게이트를 나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광활한 이마에 흰 삼베 띠를 둘러맨 김원철 아저씨였다.

“어서 오셔유, 회장님유.”

“아니, 그건 또 무슨 괴상한 말투입니까.”

어처구니없어하는 내 얼굴을 보고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낄낄거리는 김원철 아저씨.

죽 끓듯 변하는 변덕답게 어설픈 연기는 금방 질린 모양이었다. 곧바로 벗어 던진 흰 띠는 금세 아저씨의 바지 호주머니 안으로 들어갔으니까.

“글쎄 우리 회장님 뉴욕 가 있는 동안, 마귀할멈이 거의 노비처럼 부려먹었잖어. 사극에서 마당쇠 말투 따라 해본 거지.”

꼭 하긴 해야 하지만, 당장 급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는 일.

아예 날을 단단히 잡은 할머니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김원철 아저씨와 함께 몇 날 며칠을 서류를 짊어진 강행군을 이어나갔다.

“아주 염전 노예가 따로 없었어야. 이름을 김대식이나 김춘식 뭐 그런 걸로다가 개명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개명까지는 아니고, 호(號) 정도로는 써도 될 것 같네요. 춘식 김원철 선생께서 하실 일이 앞으로도 많으니까요.”

“오우, 노우.”

양손을 앞으로 뻗고는 흔들어대며 괜한 호들갑을 떠는 김원철 아저씨의 모습.

공항을 빠져나와 차에 올라탄 나는, 훌륭한 에이스 노예 춘식 김원철 선생에게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었다.

“소식은 들어서 아시겠지만, 일단 UN에서 있었던 일은 잘 풀렸습니다.”

“그냥 잘 풀린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전 세계를 뒤집어 놨드만. 국내 신문이야 원래부터 하도 가끔씩 뒤집어놔서 이젠 그러려니 하는데.”

툭, 앞쪽 자동차 의자에 달린 그물망에서 영어로 쓰인 외신 한 부를 꺼내어 내게 보여주는 김원철 아저씨.

. ‘위구르족 소녀, 나는 거기에 있었다!’라는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적힌 외신.

UN 총회 연단 특유의 초록색 석재 벽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소녀의 모습은 자극적인 기삿거리가 되기에 딱 알맞았다. 특히나… 이슬람권 국가들에게는 더더욱.

“예상대로 우리 모래두지 친구들은 화가 많이 난 모양이드만.”

팔락, 소리를 내며 넘겨진 외신 2면. 분노에 찬 채로 중국 대사관 앞에서 규탄의 목소리를 드높이는 각국의 이슬람권 사람들의 모습.

모든 후속 반응은 예상했던 그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심지어 크라 운하를 둘러싸고 <상하이 캐피탈> 측과 손잡았던 말레이시아 정보부까지 전부.

“말레이 애들이 지원하는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도 같이 일 못 해 먹겠다고 대자로 뻗었다나.”

“신앙심 이전에 명분도 안 서고 말이죠. 다 잘 되었네요. 그나저나.”

부웅, 신호등의 불이 초록 불로 바뀜과 동시에 들려오는 엔진 소리.

사실 원래대로라면 한국에 오고 나서 하루 이틀은 푹 쉬려고 했으나, 누군가의 급작스러운 부름으로 꿀 같은 휴가는 물 건너간 상황.

저 멀리, 고풍스러운 경복궁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청기와집.

그곳 안방에 들어앉은 집주인은 유독 요사이 나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모양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위성 전화를 사용하면서까지.

‘한 회장은 꼭 요술 방망이라도 가지고 다니는 것 같구먼.’

걸려 온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오던 대통령의 밝은 목소리.

그는 VIP 좌석에 앉은 관객으로서 이번 연극의 각본과 연출이 제법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과찬이십니다. 대통령님.’

‘과찬은, 한 회장이 판을 깔아 놔서 우리 쪽 외교 채널도 움직이기 수월해졌어. 벌써부터 재미있는 보고도 종종 올라오더군.’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끙끙거리는 소리. 아마 복실이라는 이름의 골든레트리버가 대통령의 발치에 엎드려 있는 모양이었다.

팔락, 개를 쓰다듬던 그의 손이 서류로 향한 건지 곧바로 대통령은 내게 보고받은 내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뉴욕에서 던진 작은 돌팔매 하나가… 베이징에서 어떤 태풍을 불러일으켰는지를.

‘난리가 났더군. 지금 한 회장 자네가 불게 한 피바람이 중국 정계에서 거세게도 불어닥친다나?’

* * * *

베이징 중난하이.

습관처럼 장 대인의 저택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제임스 왕 이사. 그러나 문득 느낀 어지러움에 그는 다시금 자신이 향해야 할 목적지를 머릿속에서 상기시켰다.

“…그랬지. 이미 저 저택은 귀신 들린 집이나 다름없어졌지.”

하룻밤 새 흉가라고 불려도 아무런 이상함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쑥대밭이 되어 버린 장 대인의 집.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은 경첩이 어긋난 채로 반쯤 열려 있었고, 공안이 친 노란색 진입금지선은 베이징의 노괴라 불리던 그의 말로가 어찌 되었는지를 가늠케 했다.

“몰락. 그야말로 몰락이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부를 말도 없군.”

바닥에 떨어진, 깨진 검은색 기와 조각을 주워 들고는 거기에 음각으로 박힌 문양을 바라보는 제임스 왕 이사.

다섯 개 발톱이 뾰족하게 드러난 오조룡(五爪龍). 오로지 황제만이 상징으로 쓸 수 있다는 오조룡 문양은 자신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힘은, 권력자의 정치적 스승 따위가 아닌, 권력자 스스로가 가지고 있다고.

“그렇기에 내가 자네를 살려 둔 것이다. 제임스 왕 이사, 그대는 미처 알지 못했겠지만.”

베이징 중난하이에서 조금 떨어진 곳.

돌바닥 위에 부복하는 제임스 왕 이사. 그리고 그를 내려다보는 중국 공산당 총서기. 마치 전근대 시대의 무장처럼 그 풍채가 우람한 권력자는 특유의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꺼내었다.

“그 너구리 같은 노괴의 그림자를 중앙 정계에서 영원히 지워버릴 기회였기에.”

“……!”

“욕심이 과했지, 그 늙은이는. 자신이 언제까지고 장막 뒤편에서 모든 것을 조종할 수 있으리라는 욕심이.”

끝난 줄로만 알았던, 중앙 정계에서 나는 피비린내. 그러나 진짜배기는 후속편에 있었다.

자신의 편에 섰던 정치적 스승까지 목을 친 총서기. 그는 떨고 있는 제임스 왕 이사에게 천천히 말을 건넸다.

“일대일로 계획은 계속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당분간 대외적으로 맡을 얼굴마담 역시 <상하이 캐피탈>이 계속해 나가야 할 것이고.”

“총서기님…?”

“아무래도 앞으로 남조선 놈들이 걸림돌이 될 터이니, 비록 패배자일지언정 상대는 해본 자네가 자리를 지키는 것이 합당할 터.”

총서기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제임스 왕 이사를 계속 쓸 생각을 가진 모양이었다.

복잡한 정치적 실타래가 엉망진창으로 얽힌 베이징의 중심부. 감히 수 계산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제임스 왕 이사에게, 총서기는 나지막이 마지막 명령을 내리고는 그 자리를 떠나갔다.

“크라 운하 건은 우선 그대로 두겠다. 차후 지침이 있을 때까지, 당분간 자숙의 시간을 가지고 기다리도록.”

* * * *

“정말, 정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서준 한 회장님.”

숫제 반쯤 울먹이는 듯한, 전화기 너머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이렇게까지 해주신 것에 대해, 정말이지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태국식 영어 발음 특유의 억양으로, 잉탁 총리는 내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거기에 더해 약간의… 트라우마 비슷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발언과 함께.

“크흠, 그래서 말입니다만, 혹시 저희 딸아이와 계속 연락하고 계신지요?”

“민니 말씀이십니까? 그 친구는 왜…?”

“하하, 한 회장님만 좋으시다면 저는 둘 사이의 관계, 적극 지지합니다. 그, 남녀 간의 진지한 부분에 있어서.”

“…….”

순간적으로 섬뜩하게 떠오르는 사우디에서의 기억.

옆을 바라보니, 벌써 김원철 아저씨는 평소보다 한층 더 진한 농도의 스마일을 얼굴에 띄우고 있었다.

“캬, 우리 회장님. 어린 여자들한테 아주 인기가 그냥….”

벌써부터 작은 목소리로 시작된 낄낄거림. 나는 손을 휘휘 저어 지방방송을 끈 후, 잉탁 총리와 하던 논의를 계속 이어나갔다.

크라 운하. 거기에 남부의 골칫거리였던 말레이시아 쪽 입김까지 내가 날려버렸기에, 잉탁 총리는 내게 그에 대한 충분한 반대급부를 주려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몇 가지 태국 정부에서 주관할 기간 사업과 관련하여, 탄약그룹에 운영권을 맡기고자 합니다.”

“기간 사업이라고 하신다면…?”

운하가 완공될 시, 거기에 함께 건설될 항만의 운영권을 비롯한 인프라 조성 사업.

잉탁 총리는 딱 보더라도 외화벌이에 최적화된 선물 보따리를 내게 안기지 못해 몸이 달아 있었다.

“이번 크라 운하 공사에서도 탄약그룹의 건설 능력은 충분히 입증된 상태니까요.”

“이거 참, 제 쪽에서도 여러모로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회장님이 해주신 것에 비하면야 이 정도쯤은….”

서로의 공치사에 슬슬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려 할 때쯤, 슬슬 마무리되어 가는 전화 통화.

이쯤에서 작별 인사와 함께 통화를 끝내는 편이 좋다. 내가 적당한 맺음말과 함께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그런데, 그…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어서 말입니다.”

“네?”

혹시나 하는 우려와 불안감이 섞인 잉탁 총리의 떨려오는 목소리.

설마 또 앞을 가로막는 문제가 생긴 것일까 싶어 가슴이 마구잡이로 두근대는 찰나, 그의 사람 좋은 어투가 내 귀에 들려왔다.

“아아, 크라 운하 관련된 것은 아닙니다.”

“휴, 다행이네요.”

“조금 다른 문제인데… 걱정이 앞서서 말입니다. 꼭 좀 말씀을 안 드릴 수가 없겠네요.”

충분히 뜸을 들여 설익었던 밥이 익을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마침내 내게 이야기의 본론을 꺼내 드는 잉탁 총리.

그의 입에서 나온 말 한마디는… 태국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었지만, 향후 탄약그룹이 나아감에 있어 매우 중대한, 국내에서의 이슈에 관한 것이었다.

“조폭. 태국에 진출한 한국의 조직폭력배. 그들이 가진 검은돈의 흐름이… 탄약 건설 쪽으로 가고 있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 * * *

“흐미… 아주 그냥 라면 물이 한강이여, 한강. 으잉? 야, 이 썩을 놈의 새끼야, 너는 막내란 놈이 라면 하나도 똑 부러지게 못 끓이냐잉?”

-깡!

단단한 금속제 국자와 단단한 멍청한 머리통이 만나 울려 퍼지는 하모니.

노랗게 염색한 머리의 사내는 온몸을 용으로 문신한 막내에게 연신 면박을 주었다.

“아야! 행님, 안 그라도 머리통이 빠가사리인데, 자꾸 때리시믄 더 띨띨해집니더.”

“자랑이다, 이 띨띨한 새끼.”

“근데, 행님. 저기 점마 저거, 콤퓨타 아저씨한테도 밥 갖다줘야 하는 거 아입니꺼?”

“되었다. 도망허다 잡힌 싸가지 없는 놈이 뭣이 이쁘다고.”

태국 방콕 외곽지역의 허름한 콘도. 조직폭력배로 보이는 사내 둘은 물을 너무 많이 넣어 밍밍해진 라면을 먹으며 구석의 방문을 바라보았다.

전자동식 잠금장치 하나, 아날로그식 자물쇠 하나가 달린 방문을.

“어차피 서버 개발도 끝났고, 돈세탁 루트도 얼추 마무리된 거 몰러? 점마 저거는.”

방문 너머 온몸이 피떡이 된 채로 신음하는 IT 개발자 박 모씨.

그는 문틈 사이로 들려오는 조폭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마구잡이로 떨고 있었다.

“인자, 끽! 조만간 저 양반은 세계 일주를 하러 갈 것이여잉. 그것도 온몸의 장기가 각자 따로따로다가.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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