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장님의 핵몽둥이-136화 (136/300)

136화음지에서 올라오는 이들(1)

가을 서리가 풀잎에 내려앉은 이른 새벽. 안양교도소의 녹슨 철문 앞에는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서 있었다.

곧바로 차에서 내린 한 남성. 마치 곰을 연상케 하는 외모의 그는 입술에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스산한 가을바람에 잿빛 담배 연기가 몇 차례 날렸을 때쯤, 쇠로 된 경첩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열린 철문.

남자는 문 앞으로 다가가, 담장 안쪽에서 빠져나온 이에게 흰 두부 한 모를 내밀며 반겼다.

“출소 축하한다, 훈아.”

“이제껏 옥바라지해 주신 것 감사합니더. 낙구 행님.”

“같은 식구끼리는 의리로 사는 거다. 훈이 네가 우리 일정파 타이틀 싹 다 뒤집어쓰고 갔다 온 것처럼.”

탁, 탁, 손가락 끄트머리로 거칠게 담뱃재를 털어내는 낙구라는 사내.

그는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큼지막한 삼각별 문양이 조각된 핸들을 바라본 채.

“타라.”

“예, 행님.”

외제 차, 손목에 찬 고급 시계. 분명 이전과는 비교조차 하기 힘들 만큼 훨씬 커진 씀씀이.

여실히 체감되는 변화. 분명 훈이 자신이 모시던 형님이지만, 낙구는 몇 년 사이 변해 있었다. 그것도 큰 폭으로.

이 모든 변화에 훈이가 말없이 감탄하고 있을 때, 그걸 지켜보던 낙구가 먼저 입을 열었다.

“6년짜리면 오래도 살았지. 고생했다.”

“알아주셔서 고맙심더, 행님.”

“새끼, 나와서 뭐 할지 생각해 둔 건 있고?”

“싸나이가 건달이 되가, 달건이 짓 말고 또 뭐 할 게 있겠십니꺼?”

칼자국 난 얼굴을 아래로 떨구고는 한숨 쉬듯 말하는 훈이.

그 모습을 본 낙구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는 곧바로 핀잔을 주듯 대답했다.

“지랄하네. 박 형사 그 또라이가 너 달건이 짓 하는 거 잘도 보고 앉아 있겠다.”

뿌연 안개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사거리의 빨간불 신호.

아무도 없는 새벽녘, 한참을 잘 나가던 차량은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섰다.

틱톡, 틱톡, 오로지 방향지시등 소리만이 가득 찬 공간 속에서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낙구였다.

“박 형사, 그 새끼. 건달 딱지 단 놈이 길가에 오줌만 싸도 손에 은팔찌 채우는 놈인 거 모르냐?”

“…….”

“사건 큰 거 하나 뒤집어쓰고서, 너처럼 빵 오래 갔다 온 놈은 더 하고. 그냥 이쪽 경기 남부 바닥에서 예전처럼 몸빵은 못 한다 이거야.”

상납금을 내지 않고 버티던 술집 주인. 그의 발목 힘줄을 회칼로 잘라버린 훈이.

경기 남부의 일정파, 자신이 몸담은 조직의 위상을 세우고, 상인들의 기강을 단단히 잡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

물론 모든 책임은 오로지 훈이 혼자 덮어쓴 채로 꼬리를 잘랐지만.

“후우, 그카믄 앞으로 예전처럼 술장사하는 놈년들 삥은 못 뜯겠네예.”

“그래. 그리고, 어차피 그딴 잡스러운 거 식구들 손 뗀 지 오래다. 이제는 철 지난 비즈니스다 이거지.”

조직이 상납금 장사를 그만두었다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훈이.

낙구는 고속도로에 진입해 자동차의 속력을 끝까지 올리고 잔뜩 거들먹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이 큰 그림을 그리는 사업가라도 되는 양.

“비즈니스… 말입니까, 행님?”

“시대가 바뀌었거든. 훈이 네가 빵에 처박혀 있는 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창밖으로 담배꽁초를 툭, 하고 버리는 낙구.

그는 잉어 한 마리가 그려진 그 팔을 다시 차 안으로 가져오지 않았다.

그저 바깥으로 쭉 뻗은 손가락을 어딘가를 향해 가리키며 자신감 넘치게 말 한마디를 내뱉었을 뿐.

“태국 가셨던 큰형님이 지난주에 다시 한국 들어오셨다. 그것도 크게 성공하셔서.”

“큰형님이예? 그기 참말입니꺼?”

“그래 이 새끼야. 지금 이게 다 큰형님 덕택에 누리고 사는 것이고.”

그제야 쌓여 있던 의문이 풀리기라도 한 듯, 돌산 같은 떡대에 어울리지 않게 동공이 흔들리는 훈이.

낙구는 그런 훈이가 귀엽다는 듯,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이 바닥에서 성공했음 말이다, 세탁기 한번은 빡시게 돌려야 하거든. 그리고, 그 세탁기는 우리 일정파 식구들이 돌리는 법이다.”

“세탁기… 말입니꺼?”

“그래. 그러니까, 훈아.”

코를 찌르는 듯한 수상하기 짝이 없는 검은돈의 냄새.

불법으로 벌어들인 돈은, 비록 그것이 벼랑 끝에 걸친 존재일지언정 합법의 영역에 다가가기 위해 모든 수를 전부 동원하고 있었다.

낙구와 훈이, 두 깡패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정도로.

“너도 나랑 큰 건 하나 같이 하자.”

차량 백미러에 비친 낙구의 웃음.

칼자국이 진하게 난 눈으로, 훈이는 그 묘한 웃음에 담긴 내용을 찬찬히 분석했다.

늘 습관처럼, 거짓말을 할 때면 바깥에 노출되어 반짝이는 낙구의 아래쪽 금니.

그러나 이번에는 그 금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낙구 자신이 속고 있을지언정, 훈이에게 거짓으로 꼬드기고 있지는 않다는 뜻.

결심을 마친 훈이는 곧바로 그에게 굴종의 자세를 취했다.

“끌어주시는 것도 못 받아 묵으믄, 지가 뭐 할 게 따로 있겠심니꺼. 낙구 행님이 확실하게 봐주신다, 그카믄 지는 무조건으로 따르겠심더.”

“새끼… 눈깔이 아직 살아있네. 방금 빵에 있다 나온 놈치고는 아직 날이 안 죽었어.”

“감사함다, 행님!”

박박 민 훈이의 머리통을 거칠게 쓰다듬는 낙구.

훈이는 그런 낙구에게 조심스럽게 물음 하나를 던졌다. 앞으로 펼쳐질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알지도 못한 채.

“그란데 행님. 그 사업, 종목이 어예 되는 깁니꺼?”

“종목? 달건이 가오 죽는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라. 오히려 예전 것보다 뽀다구는 더 날 테니까.”

“행님?”

낙구는 이제껏 자신이 했던 잡스러운 일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상납금 갈취, 성매매, 유흥주점, 불법 사채에 보이스피싱까지.

하지만, 이제 그런 잔잔한 것들은 그의 인생에서 없어진 지 오래였다.

큰 건. 자신의 건달 인생을 한방에 바꾸어준 그것을 떠올리며 호기 넘치게 입을 여는 낙구.

“부동산! 그것도 기획부터 시행까지 전부. 어때, 좀 어깨 뽕이 막 올라오냐?”

“부, 부동산이예? 그 어려븐 걸 빡대가리 달건이가 우예 한다꼬 말입니꺼?”

“다 큰형님만 믿고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 일단 바로 사무실로 가자. 훈이 너도 명함 하나 바로 파줄 테니까.”

그리고 훈이에게 건네준 낙구 자신의 명함 한 장. 팀장이라는 그럴듯한 직위가 적힌 그 명함에는 시커먼 용 한 마리가 한쪽 구석에 그려져 있었다.

<흑룡건설>이라는 처음 듣는 회사 이름과 함께.

* * * *

‘조폭. 태국에 진출한 한국의 조직폭력배. 그들이 가진 검은돈의 흐름이… 탄약 건설 쪽으로 가고 있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잉탁 총리와의 통화를 마친 후, 한동안 머릿속에서 메아리처럼 꾸준히 맴돌던 그의 마지막 말 한마디.

조폭, 탄약그룹 정도 되는 재벌 회장에게 있어 작금의 그들은 정말이지 입에 올리기도 민망할 만큼 잡스럽기 짝이 없는 자들이다.

그러나….

“분명, 이 잡스러운 놈들이 10년쯤 후에는 중앙의 거물급으로 성장한단 말이지.”

불법 사설 토토로 돈을 쓸어 담을 예정인. 아니, 어쩌면 이미 지금도 쓸어 담고 있을지도 모르는 조폭.

사실 이들을 적극적으로 잡는다 한들, 내게 직접적인 이익이 되거나 하진 않는다. 물론 이들이 잡히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게 큰 손해가 오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놈들의 돈세탁 방식에 탄약 건설이 연관된다면, 차후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충분하다.”

아무리 합법화된 양지로 올라오려 발악을 한들, 조폭은 조폭. 그들과 맺은 티끌만큼의 연이 언젠가 그룹을 위기에 빠트리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문제다.

그렇기에… 최소한 탄약 건설에 알게 모르게 스며든 그놈들의 꼬리 정도는 잘라야 함이 옳은 처사일 터.

꾸욱, 나는 호출 버튼을 눌러 비서실의 직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성원식 본부장… 아니, 성원식 탄약 인프라 사장 올라오라 하세요.”

* * * *

탄약 인프라.

건설, 중공업, 조선 해양 3사가 통합된 이 공룡 회사의 수장을 맡은 이는 성원식 사장이었다.

태국에서의 성과를 충분히 입증했기에, 원하던 대로 초대 탄약 인프라 사장의 자리를 거머쥔 그.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국내 건설 현황. 아파트부터 상가, 오피스텔, 기타 잡스러운 것까지 싹 정리해서 보고서 올리세요.”

“예…?”

갑작스러운 내 지시에 당황해하는 성원식 사장.

그도 그럴 것이, 최근 탄약 인프라의 중점 사업은 국내보다 해외에 있었다. 굵직한 먹거리가 있는 바깥에 비해, 아직 안쪽은 경기 침체의 영향에서 쉬이 벗어나고 있지 못했으니까.

“특히 애매한 신생 하청업체 리스트. 실소유주부터 지분 관계, 최근 동향까지 쫙 뽑아주시면 됩니다.”

머리 위에 큼지막한 물음표 하나를 띄워 놓은 성원식 사장. 그는 내가 이토록 격하게 반응하는 것이 의아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아직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들 조폭이 어디까지 성장해서 얼마나 큰 세력이 될 것인지.

그리고… 나는 그들의 영향력을 감방 안에서 여실히 보고 듣고 느꼈었다.

불법 사설 토토. 거기서 번 검은돈으로 만들어 세운 양지바른 반석이 얼마나 탄탄한지를.

‘흐미, 니미럴. 아주 주접을 떤다, 주접을 떨어. 아주 일정파 딱지 달고 오면 빵에서도 즈그들이 무슨 상전이여잉.’

회귀 전, 한 수감 8년 차쯤 되었을 때였나?

바깥 노역을 나갔다가 들어온 방장. 그는 뺨 한쪽이 퉁퉁 부어오른 채로 성질을 부렸다.

‘방장 형님. 무슨 일인가?’

‘어야, 옹박아. 너도 일정파 저 썩을 놈의 새끼들 괜히 눈에 띄지 말고 가만히 있어잉. 아주 도라이도 쌍 도라이가 없응께.’

감옥 내에서도 교도관의 눈치 따위 일절 보지 않는 일정파 조폭.

새로 들어온 그들은 감방 안의 기강을 잡는답시고, 한동안 방장들을 불러 뺨을 때리고 면박을 주는 행위를 해나갔다.

물론, 그들의 거대한 뒷배에 저항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고.

‘그 호랑말코같은 새끼덜. 금마들 대가리의 대가리의 대가리가 무신 회장님 명함을 파고 다닌다는디. 세상 참말로다가 좋아졌어부러.’

어떻게 돈세탁을 한 건지, 깨끗하게 빨래가 끝난 불법 사설 토토 자금.

그 결과로, 경기 남부의 토착 조폭이던 일정파는 종로 한복판에 제법 그럴싸한 사옥을 가진 중견기업의 껍질을 손에 넣게 되었다.

심지어 중앙 정치권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껍질을.

“알겠습니다. 일단… 지시하신 대로 올리긴 하겠습니다만, 무슨 이유이신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그 연유를 모르기에, 우선을 의아함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내 지시에 반문으로 답하는 성원식 사장.

나는 그의 물음에 곧바로 답을 주었다.

초장에 싹을 뽑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담긴 답을.

“탄약 인프라. 특히, 국내 건설 부문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검은돈의 세탁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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