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음지에서 올라오는 이들(3)
“에라이, 꼴통 년아! 오늘 너 나랑 같이 죽자. 딱 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6층.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검은색 서류철 모서리로 누군가의 머리통을 내려치는 소리.
흑색의 단발머리를 한 여성은 늘 익숙한 일인 듯,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서류철을 양 손바닥으로 방어했다.
“아, 선배. 쫌.”
“쫌? 야, 이 화상아. 내가… 내가 사고 치지 말라 했지!”
딱 봐도 억울한 인상의 남자 검사. 그는 후배 여검사를 향해 검지를 뻗으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왜 저 대학교 후배라는 년은. 그것도 같은 과, 같은 고향이기도 한 저 꼴통 여자는, 도대체가 자신의 말을 들어먹는 척도 하지 않는 걸까?
그는 손에 든 검은색 서류철을 열어젖혀 그녀의 눈앞에 펼쳐 보였다.
“A그룹 아들내미 대마초 건, 위에서 스톱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눈치 좀 보다가 적당히 기소유예로 돌리자. 이 간단한 논리 구조가 그렇게 어렵니? 어려워?”
“아, 검사 가오가 있지. 논리 구조 그런 거 다 씹어먹는… 뭐랄까, 감성적인? 낭만 비슷한 무언가?”
“나는요, 위에서 높으신 분들에게 아주 감성적으로다가 피박살 나고 왔거든요? 낭만 넘치게!”
답답하다는 듯, 주먹으로 망치를 만들어 제 가슴팍을 두드리는 선배 검사.
그는 눈앞에서 미쳐 날뛰는 망아지 같은 여자를 레이저 절삭기 같은 눈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저번에 T그룹 김범호 건, SA-철화 테크윈 서윤지 건이랑은 다르다고. 엉?”
“그 케이스가 정상적인 정의 사회 구현 아니겠냐 이 말이지, 선배.”
“그 정의 사회 구현이 비정상적으로 정상적인 거라고, 이 빡대가리 후배님아!”
최대한 호랑이 같은 윗분들을 흉내 내어 내지른 함성.
그러나 기껏해야 애완 고양이 수준에 지나지 않는 포효 탓일까?
검찰 창설 이래 최대 꼴통 검사는 양쪽 눈과 귀를 모두 틀어막고는, 면벽 수행의 길을 향해 묵묵히 걷는 수도자 흉내를 내고 있었다.
“저거, 저거. 시작부터 길이 잘못 들었어. 안 그래도 또라이 새싹인데….”
“흐흐흐, 나 검찰 오라고 꼬신 건 선배인 거 알지?”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었어.”
저 뻔뻔함에 다시금 가슴팍을 두들기는 선배 검사. 그는 여검사의 목에 달린 명찰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하여간, 박은지 너. 이번엔 제발 쥐 죽은 듯이 찍소리도 하지 말고 찌그러져 있어. 요 시계탑 건물 앞에서 나 목매다는 꼬라지 보기 싫으면.”
“알겠수다. 슬슬 밥이나 먹으러 가슈. 육개장 어때?”
“육개장은 무슨, 누구 장례식도 아니고. 너 혼자 퍼먹던가 말던가!”
툴툴거리며 방문 밖으로 나가는 선배 검사.
점점 멀어져가는 축 처진 어깨를 바라보며, 박은지 검사는 심드렁한 얼굴로 턱을 괴고는 무어라 중얼거렸다.
“뭐 말만 했다 하면 맨날 죽는대, 맨날. 오래 살고 싶어서 실비보험은 다섯 개씩 드는 인간이.”
그리고는 느릿느릿 책상 위 서류 더미로 향하는 그녀의 오른손.
맥이 빠진 듯 보이는 그녀의 눈동자는 공소 서류에 적힌 내용을 향했다.
음주운전, 기물 파손, 단순 쌍방 폭행에 노상 방뇨까지.
“쯧, 개 잡범들 꼬라지 하고는.”
어느 것 하나 그녀의 가슴팍에 정의 사회 구현이라는 불꽃을 지피기는 어려운 것들뿐.
박은지 검사는 작년 이맘때쯤 맡았던 사건 하나를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T 그룹 자제분인 김범호, 그리고 SA-철화 테크윈 대표였던 서윤지. 두 사람의 불륜 건에 대해.
“손이 영 근질근질하단 말이지….”
비록 법원 단계에서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흐지부지되었지만, 칼춤을 추던 감각 하나만큼은 손에 잔향처럼 남은 상황.
양팔을 하늘 위로 쭉 뻗은 그녀. 이내 책상 위로 엎드린 박은지 검사는 탄식하듯 혼잣말 한마디를 내뱉었다. 일종의 자기실현적 예언에 가까운 혼잣말을.
“시벌, 그냥 큰 건 하나 거하게 하고 싶다. 무슨 전국구 칼잡이 조폭 소탕 같은 거.”
* * * *
아직 교도소에서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빡빡머리를 한 험상궂은 조직폭력배 훈이.
비록 행동거지는 느린 그였지만,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돌아가는 꼴이 어떤지에 대해 판단하는 능력만큼은 탁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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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남부 외곽지역, 새로 얻은 허름한 사무실에 앉아 회칼을 만지작거리는 훈이.
“…큰형님 말씀대로 되어가고 있다.”
방금 그의 눈에 들어온 광고 탓일까?
훈이는 얼마 전, 자신의 큰형님이라 할 수 있는 주괘율과 있었던 일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자, 한 잔씩 들자고.’
유리잔 속, 영롱한 황금빛 위스키를 따라주던 주괘율. 그는 훈이의 칼자국 난 눈을 바라보며 말을 건네었다.
‘그래, 낙구가 대강은 말했다지?’
‘예, 행님. 무슨 부동산… 쪽 비즈니스를 크게 하실 끼라 들었심니더. 그 세탁기 돌리시믄서 겸사겸사로예.’
즉답 없이 유리잔을 가볍게 추켜올리던 주괘율. 식도를 넘어가는 오크 나무 향과 타는 듯한 촉감이 뱃속으로 넘어가고 나서야, 훈이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경쟁자 재끼고, 훼방 놓는 놈 담그고, 혹시나 말 새어 나갈까 못 믿을 놈들은 태평양 큰 솥에 삶아 버리고.’
‘…….’
유리잔에 비친 광기.
쩍, 쩍, 당장이라도 부스러질 듯, 주괘율의 손에 잡힌 술잔에는 조금씩 실금이 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은 손에 쥐었다. 우리 일정파 홀로 독식하는 인터넷 사설 도박판. 그러나!’
쨍그랑, 파공음과 함께 결국 깨져 버린 유리잔.
황금빛 술과 함께 시뻘건 피가 주룩주룩 흐르는 손바닥. 그런 것 따위야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 주괘율은 그저 흑갈색 시가 한 개비를 입에 물 뿐이었다.
‘응달에 있는 돈은 볕 드는 곳으로 올려야 진짜 돈인 게다. 그렇지 않으면, 이 못 먹을 술처럼 바닥으로 흘러버릴 뿐.’
섬뜩하게 웃음 지은 그의 두 입술 사이로 빠져나오는 매캐한 잿빛 담배 연기.
손가락에 시가를 쥔 채로, 주괘율은 훈이에게 물음 하나를 던졌다. 그 쓸모를 가늠하기 위한 물음을.
‘아직도 경남 쪽 체대 학생회, 훈이 네가 관리한다지?’
‘…지가 그 동네 통 아이겠십니꺼. 아래 깔고 있는 동생 놈들, 전화 한 바퀴 돌리면 싹 다 금방 튀아 나옵니더.’
부산·경남 지역에서 건달로 유명했던 훈이.
비록 수도권으로 상경한 데다가 심지어는 교도소까지 다녀왔음에도, 그에게 굴종하는 토착 조직은 여전히 건재했다.
특히나… 비교적 젊은 조폭들의 새로운 사업 영역인 지방 대학교 학생회 쪽을 중심으로.
‘허허허, 그래, 그래. 그렇다면 말이다, 훈아.’
피 묻은 손으로 훈이의 어깨를 꽉 움켜쥐던 주괘율. 맹금류의 그것처럼 부리부리한 두 눈에서 광기의 빛이 발했다.
‘아래에 새로 조직을 만들어라. 맨 앞에 세울 창끝 부대처럼 몸뚱이 하나로 돈세탁에 협조할 조직을.’
돈세탁을 위한 오피스텔 분양.
그 껍데기 같은 사업에 명의만 빌려줄 총알받이들.
섬뜩하기 짝이 없는 주괘율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나온 훈이. 그는 탁자 끝을 구두코로 툭툭 치며, 잠시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어차피 이거 아니믄, 달건이 짓으로 크게는 못 해 묵는다.”
결심을 마친 듯, 깊게 한숨을 내쉬는 훈이. 그는 품속에서 구형 휴대전화를 꺼내어 자신의 고향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이가 서른이 넘었건만 아직 대학에 이름만 걸어둔, 그래서 학생회라는 조직의 공금을 빨아먹는 건달 후배에게.
“어, 내다. 주말에 훈철이랑 병식이랑 민수까지 해가 스울 함 올라온나. 싹 다 데리고.”
* * * *
간만에 찾은 명동. 유태촌의 집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복수의 이자는 복리로 붙는다>라고 적힌 대청마루의 현판도, 그의 노회한 늑대 같은 눈빛도 모두.
“허어, 내 딸년이 조만간 찾아온다고는 했건만. 우리 한 회장님도 같이 오실 줄은 몰랐구려.”
까끌까끌한 회백색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유태촌.
이제는 한배를 탔다고는 하지만, 그 역시 보통 인물은 아니다. 괜히 어쭙잖게 떠보려는 시도라도 하면, 본전도 못 찾을 것이 분명할 터.
따라서… 지금 이 순간, 내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직구, 직구, 직구뿐이다.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온 경험이 있는 분만이 답을 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의외의 대답을 들어서일까?
묘한 표정을 짓는 유태촌.
언제 그친 것인지, 더는 귓가에 울리지 않는 까마귀 소리를 속으로 곱씹으며,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칼밥 먹다 그대로 늙은 이에게 재미있는 말씀을 허시는군. 음지에서 양지로라.”
“이제는 나름 모범 시민이라 하셔도 좋을 정도지요. 원하신다면 표창장 하나 정도는 드릴 수 있습니다. 옆에 노란색 스마일 스티커도 같이요.”
피식, 택도 없는 내 농담에 유태촌은 그대로 작게 웃음 지었다.
그리고는 입안에 작게 머금은 찻물 한 모금.
그가 머금은 것은 단순히 씁쓸한 녹차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머금었던 약간의 망설임, 그 향을 충분히 곱씹은 그는 내게 운을 하나 띄웠다.
“흑룡건설 때문에 오셨나 보군.”
“……!”
“음지에서 양지로. 요사이 양지바른 곳으로 기어오르려는 티를 내는 치는, 그쪽 하나 말고는 없으니 말이오.”
확실히 어두운 곳에서 오래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단박에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챈 유태촌.
“아마도 지금은 제도권의 큰 힘을 쓰기는 어려운 모양이실 것이고?”
“…귀신이시네요.”
“음습한 곳에 있는 치들과 엮이면 뒤처리도 이리 불편한 법이니.”
나는 유태촌에게 현재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길게 이어지는 이야기. 하늘 위 종이를 가득 메웠던 주홍색 물감이 검게 변했을 무렵이 되어서야, 장황설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무언가 뾰족한 해결 방안이 없겠습니까?”
“흐음….”
쉬이 답을 주지 않는 늙은 늑대.
그는 내게 시선을 돌려 자신의 하나뿐인 딸을 유세나 보좌관을 지긋이 바라보기만 했다.
“아가, 한 회장님 보필은 잘 허구 있고?”
“아버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유세나 보좌관.
그런 그녀가 영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고개를 가로젓고는 혀를 끌끌 차는 유태촌.
“쯧쯧, 저 모자란 팔푼이 년. 별을 봐도 따지를 못 허니.”
“…….”
“되었다. 넌 그냥 가만히나 앉아 있거라.”
부녀간에 이어진, 의미 모를 선문답. 유태촌은 다시 내게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일정파의 수괴 주괘율. 그놈 작품일 것이요.”
“주괘율… 주괘율이라.”
“도박쟁이들 호주머니나 털어먹던 놈이 시대를 잘 맞은 셈이지.”
흑룡건설 쪽 이사진 명부에는 없던 주괘율이라는 이름. 아마 자신의 정체를 최대한 숨기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무언가 귓가에 들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 찬장에서 상자 하나를 꺼낸 유태촌은 안에 든 누런 서류봉투를 내게 내밀며 말 한마디를 건네었다.
앞으로 어찌 행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나침반 같은 서류봉투를.
“지하 조직 수괴의 목을 치려거든, 사지 말단의 피가 어디로 뻗어 나가는지만 보면 되는 법. 그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