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장님의 핵몽둥이-139화 (139/300)

139화음지에서 올라오는 이들(4)

“무신 일로 서울까지 기어 올라오라 그라시는 기고? 민수 니는 뭣 좀 아나?”

“알긴… 훈이 행님 큰집 댕겨오시고서 처음 얼굴 보러 가는 긴데. 내도 모린다.”

부산·경남 지역의 부실 대학. 그 학생회라는 알량한 조직에 검버섯처럼 침투한 30대 조폭 대학생들.

이레즈미 문신을 온몸에 휘감은 그들은, 연식이 10년도 훌쩍 넘은 중고 외제 차를 타고서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험상궂은 얼굴로 고속도로 톨게이트 직원에게 인상을 쓰는 그들. 고작 거스름돈 몇 푼으로 시비를 거는, 보잘것없고 남루한 인생이었다.

“하, 고 싸가지 없는 가스나. 누가 스울 년 아니랄까 봐 깐깐시러운 거 봐라. 좀 깎아주면 배때지에 순대가 뒤틀리나?”

우격다짐이 끝나고 톨게이트를 지나 서울로 진입한 차량. 운전대를 잡은 조폭은 곧바로 입에 문 연초를 태웠다. 창문도 열지 않고.

“원래 깐깐한 년일수록 이쁘장한 기다. 보면, 요 스울이라는 동네도… 똑같이 깐깐하이 이쁘장하고. 그니까네 인자부터.”

침 묻은 혓바닥으로 입가를 다시는 다른 조폭.

그의 나이 이제 서른하나, 아직까지 변변찮은 직업도, 조직에서 내어 주는 사업장도 없다.

오죽하면 이름 없는 체육대학의 학생회라는, 일종의 놀이터 비슷한 곳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을까 정도로.

엠블럼 외에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좁아터진 중고 외제 차 안에서, 그는 바깥의 강남 고층 빌딩을 바라보며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스울. 거, 스울 계집년이든 스울 돈다발이든… 가슴팍 한번 찐하게 움켜쥐어봐야 안 하겠노? 이래, 이래.”

“어어, 요 더러븐 손 퍼뜩 안 치우노? 병식이! 니 뒤에 트렁크에서 해머 좀 꺼내 본나! 콱 찍어뿌게! 낄낄낄.”

뒤이어 옆자리에 앉은 뚱뚱한 조폭의 가슴을 양손으로 움켜쥐는 유치한 모습.

-딩동! 전방에 100미터 앞 매봉터널 입구입니다.

어느덧 저 멀리 눈에 들어온 목적지. 그때부터였을까?

자기들끼리 음탕하고 걸쭉한 농담을 수차례 주고받던 이들은 점점 말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

터널 안,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은은한 오렌지색 조명과 함께, 유리창에 비친 자신들의 비루한 모습.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도 부끄러웠던 모양이었다. 누가 먼저랄 새도 없이 고개를 떨구는 조폭들.

차 안 가득 불어닥친 적막감의 홍수에서 뭍으로 기어 올라온 것은, 평소보다 유독 긴 터널을 모두 빠져나간 이후였다.

“요 스울에서는… 꼭 성공해야지. 그래야 내도 어디 분칠한 냄비 앞에서라도 계속 통 노릇하는 기라.”

“후우, 건달이 건달 짓으로 성공 못하믄 그 무신 건달이겠노? 병식이 느 말이 맞다.”

한층 진지해진 모습.

훈이가 전화로 던져준 새로운 희망, 비록 신기루에 가까운 그 희망이었으나, 그들은 불빛에 홀린 나방처럼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곧 올라갈, 서울 강남의 모 빌딩을 향해서. 그리고 그들의 뒤틀린 욕망을 향해서.

“가자, 훈이 행님 마이 기다리시겄다.”

* * * *

강남, 훈이의 사무실.

일부러 후배들에게 그럴듯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얻은, 고층 건물의 제법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한 사무실.

“기회 주신 점 정말 감사함다, 훈이 행님!”

“말씀하신 것 전부, 한 달 내로 성과를 갖고 다시 여 올라올 낍니다!”

“무조건 최선을 다하겠… 아니, 무조건 되게 만들겠심니더!”

그 신기루 같은 사무실 풍경이 마법처럼 먹혀들어 가기는 한 모양이었다.

훈이의 사탕발림 몇 마디에 금방 충성 맹세 비슷한 서약을 해대는 조직폭력배들.

주괘율의 검은돈을 세탁할 총알받이들은, 자신이 한낱 불나방에 불과하다는 것도 모르는 채로 기름 묻은 등짐을 기꺼이 지기 시작했다.

“그래. 이제 느들도 다 바쁜 놈들이니, 내 오래 안 붙든데이. 퍼뜩 가 본나. 멀리 안 나간다.”

“예, 행님! 편히 쉬십시오!”

쿵, 그들이 나간 후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열린 안쪽 방의 문.

잠시 눈을 붙였던 모양인지, 눈을 비비고는 이내 기지개를 켜며 등장하는 낙구의 모습.

그는 훈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건들건들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훈이, 아직 살아있네. 밑에 애들 기강 잡는 것 봐라. 하마터면 나까지 오줌 쌀 뻔했다.”

“낙구 행님, 안에 계셨심니꺼?”

“오전에 와서 눈 좀 붙였다. 중간에 말소리에 깼고. 읏차.”

의자에 걸터앉은 채로 나무 책상 위에 구둣발을 올려놓는 낙구.

싸구려 플라스틱 라이터에서 불꽃이 일어난 후 사무실을 가득 메운 매캐한 담배 연기.

가느다란 눈으로, 낙구는 훈이를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후우, 고기 방패로 명의 몸빵시킬 애들. 얼마나 구할 것 같냐?”

“인생 막살아 재끼는 놈들이 어데 한둘입니꺼? 걱정 마이소.”

어느덧 창문 너머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30대 조폭대학생들.

자기들끼리 무언가 결의 비슷한 감정으로 뭉친 그들을 바라보며, 훈이가 하던 말을 연이어나갔다.

“점마들이 아래 새끼 치고, 또 그 밑에 새끼 치고 하믄, 1,000명 2,000명도 후딱입니더.”

“두당 1억 짜리라 치면, 세탁기 큰 거 한 번은 돌릴 사이즈는 나오겠군. 잘했다. 큰형님이 좋아하시겠다.”

“하모예. 그란데 낙구 행님, 행님 맡으신 일은 우째 잘 되아가는 겁니꺼?”

피식,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음 짓는 낙구. 주괘율이 실소유주인 흑룡건설에서 어두운 쪽 업무를 총괄하는 그였다.

그렇기에, 자신감의 발로였을까?

금속제 재떨이에 꽁초를 비벼 끄고는,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팡팡 치며 낙구가 자신감 있게 호통을 쳤다.

“새끼… 다 끝내 놓은 지 오래다. 총알받이들만 모아다 처넣으면 끝!”

분당 외곽지역 일대에 대규모 오피스텔 단지를 분양하는 흑룡건설.

빌린 명의로 청약된 오피스텔은 중도에 잔금 지급이 중단될 예정이었고, 그 분양권을 낙구의 시행사에서 인수하는 식의 돈세탁이었다.

거기에… 추가로 보험을 든 낙구.

“실제는 흑룡건설이 다 하는 거지만, 겉껍데기는 탄약그룹 딱지 달고 하는 거니까 책잡힐 일도 없고 말이지.”

“탄약그룹예? 그 재벌 기업말입니꺼?”

시공은 흑룡건설이, 오피스텔 브랜드는 탄약 인프라 건설 부문이.

혹시 모를 공권력의 개입이 있을세라, 덮어씌울 그럴싸한 포장지까지 마련된 상황.

낙구의 설명을 곱씹은 훈이는 감탄의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히야… 대기업 브랜드도 가져다 쓰고, 별 희한한 방법도 다 보네예.”

“탄약그룹 그놈들이 중간 떼기는 좀 많긴 하다만, 뭐 어떠냐. 어차피 이 짓으로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닌데.”

깍지 낀 양손을 뒤통수에 댄 채, 구두코로 재떨이를 탁자 구석에 밀어 넣는 낙구.

곧바로 그의 입에서 자신감 넘치는 말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세상을 다 가질 것만 같은, 야심만만한 말이.

“우리는 세탁기만 돌리면 돼. 세탁기만. 나머지 자투리 고기는… 탄약그룹인지 뭔지 그놈들 아가리에 적당히 쑤셔 넣기만 하면 된다. 포장지값으로.”

* * * *

유태촌이 내게 건네준 누런색 서류 봉투. 그 안에 적힌 내용은… 소위 전국구 칼잡이 조폭들의 계보가 상세히 적혀 있었다. 특히, 주괘율의 일정파에 대해서.

칼밥을 먹어가며 여기까지 올라와서일까?

명동 사채 시장의 터줏대감이라는 타이틀은 역시 그냥 얻은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흐미, 살벌해라. 나 무서운 거 잘 못 보는디.”

딱 봐도 어디 경찰서 정문 앞 지명수배 포스터에서나 나올 법한 험상궂은 야인(野人)의 상.

나이 오십 평생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본 김원철 아저씨는 괜히 너스레와 함께 엄살을 떨었다.

“이야… 진짜 다시 봐도 예술이여. 어떻게 인상들이 다 이렇게 성인 극화에나 나오게 생겼다냐. 아주 험악해, 험악.”

“이거 건네주신 양반도 한 험악 하시지 않습니까.”

“유태촌 그 양반은 손 씻은 지 한참 됐고. 그리고 사채꾼 하느라 칼 잡은 거지, 애초에 조폭은 아니었으니까.”

문서 맨 상단을 향한 김원철 아저씨의 손가락.

검지가 가리킨 사진에는 다른 이들에 비해 훨씬 중압감 있는 남자의 모습이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요 주괘율이라는 양반. 이 건달 아저씨가 문제다?”

“차라리 대놓고 건달이면 좀 나은데… 공식적으로는 건달이 아니라 더 문제입니다.”

“잉? 그건 또 뭔 말이여?”

주괘율, 일정파의 수괴. 그는 어느 조직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오히려 그는 검·경의 수사망을 비웃듯 사람 좋은 지역 유지 흉내를 내며 봉사활동에 참가할 정도였으니까.

“히야, 그러니까 반달이네? 건달하고 민간인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짬짜면 같은 양반이다, 이거잖어?”

“그것도 뒤에서 모든 것을 다 통제하는 반달이죠. 그러니 문제입니다. 드러나질 않으니 수를 쓰기 어려워요. 결국.”

주괘율의 사진 아래쪽으로 뻗어 내려가는 잔가지.

그 아래쪽, 훈이라는 빡빡머리와 낙구라는 파마머리를 가리키며 나는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밑에서부터 하나하나 말려 죽여가는 방법 말고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예 끝을 보게? 단순히 탄약그룹이랑 있는 거래만 끊어도 되지 않나?”

“좀 복잡합니다, 이게.”

어쩌다 보니 대통령 라인을 타게 된 탄약그룹. 그만큼 얻는 것도 확실했으나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언제라도 반대 계파의 트집이 잡히는 순간, 잔향처럼 남은 조폭과의 연결고리 기록은 반드시 그룹의 목을 죌 것이다.

그렇기에.

“일종의 암세포 치료 작업에 가깝다고 보시면 됩니다. 재발하지 않게끔, 잔뿌리도 남기지 않게 철저히 없애는 방식으로.”

“뭐, 그렇다면야. 일단 급한 것이… 요거, 요거 돈세탁 부분이지? 이게 참, 암만 그래도.”

조금 난처한 듯, 반짝이는 이마에 주름이 잡힌 김원철 아저씨.

“공권력의 힘 없이 그룹 차원에서 물리력을 쓰는 게 좀… 해외라면 또 모를까, 국내에서는 힘들 텐데.”

“생각해 둔 방법이 있긴 합니다.”

내 아이디어에 그 쭈글쭈글하던 이마는 금세 유리 전등같이 매끄럽게 펴졌다.

“공권력의 껍질을 뒤집어쓰되, 아예 위쪽이 아니라 아래쪽 안 보이는 곳의 껍질을 써야겠지요.”

“아래쪽… 안 보이는 곳의 껍질?”

“예. 가령 예를 들자면.”

심혈을 기울여 생각해 낸 조폭 잡는 항암제. 암세포를 죽이는 데에 딱 좋은 항암제는 검찰총장이나 부장검사급이 아니다.

정치권에 발을 들이지도, 검찰 조직 내의 복잡한 관계망 따위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그 항암제는 바로.

“아직 조직 돌아가는 것에 신경 쓰기보다… 뭔가 검사 뽕 하나 거하게 들이켠 평검사라던지.”

“또라이를 쓰자고? 또라이는 환부만 조지는 게 아니여, 주변에 멀쩡한 장기까지 숭덩숭덩 칼질하지.”

“그거야 제가 중간에서 커트할 일 아닙니까. 정확히는 우리 김 비서실장님이 하시겠지만.”

“와, 이게 이렇게 엮이네.”

개 목걸이가 걸린 양, 열 손가락을 자신의 목에 가져다 대는 김원철 아저씨.

“일 폭탄이야 또 걸렸다 치고. 그래서, 지금 표정 보니까 적당한 인물 생각해 둔 사람이 있구만?”

“인물은 검증된 사람을 쓰는 편이 좋은 법이지요.”

곧바로 집어 든 휴대전화.

몇 번의 클릭에 이어, 화면에는 금방 누군가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나타났다.

-김범호 010-XXXX-XXXX

“제가 참 아끼고 사랑하는… T 그룹 사고뭉치의 종아리에 회초리를 내려친 검사가 있더군요. 이름이 아마.”

내 말에 기억을 더듬는 김원철 아저씨. 역시 괜히 IQ 144에 영재 딱지가 붙은 게 아닌가 보다.

따르릉, 통화 대기음이 끝나기 전, 김원철 아저씨는 곧바로 그 검사 이름을 기억해 냈다.

약간의, 뭐랄까… 10년 후라면 말만 꺼내도 난리가 났을 법한 아저씨 개그와 함께.

“그래, 박은지! 거, 이름 참 인상 깊네. 딱 술자리에서 놀리기 좋게… 아, 취소. 취소. 요샌 이런 농담 하면 노동청에 신고 먹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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