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장님의 핵몽둥이-141화 (141/300)

141화음지에서 올라오는 이들(6)

분당에서 동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경기 남부 외곽지역의 대규모 오피스텔 공사 현장.

한 동에 350세대, 총 A동부터 D동까지 도합 1,400세대라는 거대 규모의 공사.

거대한 정사각형 콘크리트 네 덩어리는 곧이어 부착될 유리 타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흉측한 속내를 가려줄 겉껍데기를.

“허어, 그놈들 참. 삐까번쩍하게도 짓는다. 요새는 뭐 빨간 벽돌 같은 건 안 쓴다던?”

어울리지 않는 하얀색 안전모를 쓰고는 공사 현장 여기저기를 시찰 중인 주괘율. 그는 손가락으로 건물 외관을 가리키며 낙구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늘어놓았다.

“이제는 오피스텔도 아파트처럼 그럴싸한 브랜드 이름까지 있다지?”

“예, 큰형님. 일단 저희도 탄약 인프라 겉껍데기를 써야 하니 말입니다. 거기 오피스텔 브랜드 이름이 그러니까….”

잠시 기억을 더듬던 낙구는 곧바로 포장지의 이름을 생각해냈다.

조금은 웃음이 새어 나올 법한, 다소 어처구니없는 이름을.

“에… 불꽃. 불꽃 스위트홈입니다, 큰형님.”

“불꽃? 집 이름이 불꽃이라? 허허허, 이거야 원. 내가 탄약그룹 회장이었다면, 그 이름 쓰자고 한 놈부터 산채로 태워 죽였을 것이다.”

살벌한 대사에 이어 호탕하게 웃음 짓는 주괘율.

주변에서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는 기술자들 따위야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제 주인의 기분이 나쁘지 않음을 확인한 낙구. 그는 곧바로 추임새를 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만큼 탄약 인프라가 국내 사업 부문은 대충 신경 쓴다는 방증 아니겠습니까.”

“하기야, 괜히 SA 그룹이나 T 그룹처럼 꼼꼼한 놈들 걸리면 이 짓도 못할 것이지. 그리고.”

어느새 공사 현장 바깥으로 나간 주괘율.

멀리서도 들려오는 소음에 귀가 아픈 듯 눈을 찡그린 그는, 조금은 지겹다는 어투로 입을 열었다.

“언젠간, 이 흙먼지 풀풀 풍기는 짓거리 말고, 다른 세탁기를 하나 장만해야 할 테고.”

한 걸음, 한 걸음.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점점 멀어져가는 공사장의 소음.

그리고 이제는 잦아들다 못해 없어져 버린 흙먼지 구름처럼, 침묵 속에서 일어날 생각을 않는 낙구의 두 입술.

“…….”

낙구, 조폭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건설업이라는 양태로 입증하는 자.

다른 세탁기를 장만해야 한다는 주괘율의 말에, 그는 며칠 전 훈이와 있었던 대화를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 * * *

‘행님, 낙구 행님. 이 좀 보이소.’

‘뭔데 밥 먹다 말고 난리냐?’

딸깍, 딸깍, 솥뚜껑 같은 손으로 마우스를 클릭하며 오만상을 쓰던 훈이.

짜장면을 먹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난 낙구는 곧바로 옆으로 가 모니터를 확인했다. 붉은색 자물쇠와 함께 카운트 다운을 알리는 시계가 표시된 화면을.

-oops, your files have been encrypted!

‘뭐여, 이 시뻘건 화면은?’

‘하아… 또, 또 랜섬웨어 걸렸다 아입니꺼. 이 해킹 한다꼬 손가락 타닥타닥 두들기는 놈들, 죄 팔다리를 도끼로다가 콱 잘라버려야겠심더.’

최근, 기업들을 상대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랜섬웨어.

얼마 전 해커에게 500만 원에 달하는 가상화폐 금액을 송금했건만, 또 같은 일이 반복된 모양이었다.

‘하이고마, 또 쌩돈 몇백 나가게 생깄네. 근데, 그… 낙구 행님.’

‘아아, 그거 얼마나 한다고 내 눈치를 보고 그래? 대충 공금에서 꺼내 써. 다음부터는 조심 좀 하고.’

심드렁한 모습으로 손을 털어대는 낙구. 비록 훈이가 실수했다지만, 큰 손실도 아니고 굳이 사기를 꺾을 필요는 없다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뒤이은 훈이의 말 한마디.

‘그게 아이고예. 이래, 이래 비트코인인가 하는 이거 말입니더. 해커 놈아가 달라카는.’

건설업을 이용한 돈세탁. 주괘율에게 있어 낙구의 존재 의의.

훈이가 무심코 내뱉은 그 말은 자칫 주괘율에게 있어 낙구의 쓸모를 재검토하게끔 하기에 충분했다.

‘딱 보이, 저희 조직에서 세탁기로 쓰기 딱 좋지 않심니꺼? 흔적 안 남지, 복잡하지도 않지, 관청에 뽀찌 줄 필요도 없지.’

‘……!’

쾅, 잠깐 찾아온 적막을 깨트린, 탁자 위를 내리치는 낙구의 주먹.

불안감이라는 감정은 오해를 증폭시키는 촉매로 사용되기 적절했다. 그가 훈이를 향한 불필요한 격노를 연기하기 딱 좋을 정도로.

‘새끼… 쓸데없는 소리는! 해커 놈들 코 묻은 돈이나 빠는 거지, 이게 얼마나 된다고!’

‘아아… 그렇심니꺼?’

‘잡스러운 생각 하지 말고! 지금 하는 일에나 집중해라. 안 그래도 할 게 많은데 무슨 그딴 것까지 생각하고 있어!’

비트코인.

낙구의 입지를 위협할 그 가상화폐라는 존재는 결코 알려져서는 아니 될 것이었다.

바로 지금, 발걸음을 옮기며 하얀색 안전모 턱끈을 풀고 있는 주괘율에게는. 절대로.

* * * *

“허어, 낙구 이 녀석. 도대체 무슨 생각을 그리 하고 있나? 왜 불러도 대답이 없어?”

“아, 아닙니다, 큰형님. 잠시 원가 계산을 하느라 그만….”

주괘율의 부름에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는 낙구.

아무렇게나 늘어놓은 변명이었지만, 낙구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는 미묘한 감정의 어긋남을 알아채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허어, 그까짓 건설 원가에서 손실 좀 봐도 괜찮대도. 돈세탁할 때는 그런 것쯤은 다 감수하고 하는 게야. 정말 중요한 것은.”

다시 추켜올린 손가락.

까끌까끌한 회백색 수염을 쓰다듬으며, 뒤를 돌아 공사 현장을 바라본 주괘율이 입을 열었다.

“저기 저, 콘크리트 물량에 이름 걸어 둘 총알받이들. 고놈들 머릿수부터 채우는 것이지.”

“이미 전과 기록 깨끗한 어린 놈년들로 1,000명 넘게 준비해두었습니다, 큰형님.”

영남권 대학의 학생회장 자리에 있는, 훈이의 고향 후배 조폭들.

그들은 착실하게 돈세탁을 위한 고기 방패들을 모았다. 자신의 신용등급이 수직 낙하하리라는 것 따위는 상상도 못 할 어리석은 고기 방패들을.

“좋다. 그럼… 탄약 인프라 쪽에서는, 문제가 없을 것이고?”

이번 돈세탁의 마지막 변수, 탄약 인프라 건설 부문.

청약을 신청한 총알받이들이 돈을 내지 못하면 주괘율의 <흑룡건설> 측이 그 분양권을 인수하는 식의 돈세탁.

“놈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 부분에서 문제 생길 일 따위는 일절 없습니다.”

물론, 이는 탄약 인프라에서 부실 분양권을 떠안지 않는다는 전제 조건에서의 일이었다.

일반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전제 조건.

“애초에 탄약 인프라 건설 부문의 국내 사업본부는… 전부 마인드가 월급쟁이 관료 비슷한 놈들입니다, 큰형님.”

노을빛에 길어지는 그림자.

조금은 스산한 그날의 저녁. 콘크리트로 포장된 거친 바닥을 걸으며 주괘율은 낙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저 칠흑 같은 그림자 속에 들어 있었던, 이제는 양지바른 곳으로 끌어 올릴 자신의 피 같은 돈에 입맛을 다시면서.

“알겠다. 낙구 네가 어련히 잘해 두었겠지. 오늘은 날이 유독 짧군. 슬슬 가자꾸나.”

* * * *

-딱콩!

“아야! 왜 때려요!”

“김범호, 이 새끼… 누나 많이 보고 싶었구나?”

여의도 K 호텔 맨 꼭대기 층, 김범호의 라운지 바.

충청남도 공주 특산물인 알밤, 그 정도 사이즈의 혹을 부여잡으며 울부짖는 김범호.

그 옆에는 다짜고짜 사람부터 때리고 보는 여자 한 명이 자리에 앉았다.

끈 목걸이 끝에 매달린 네모난 플라스틱 케이스. 그 안에는 검찰청 문양이 선명하게 찍힌 명찰 하나가 들어가 있었다.

‘검사 박은지’라는 직함도 함께.

“아, 진짜. 자꾸 때리면 변호사 부르겠다고 저번에도 그렇게 말했는데….”

“시껌마! 이건 매가 아니라… 그 뭐냐, 일종의 치료 장비야. 물리적으로 범죄자들을 치료해서 교화하는.”

예전 서윤지 건으로 수사 당시, 뭔가 막힐 때마다 김범호의 머리통을 서류철로 내려찍던 박은지 검사.

앞뒤 재지 않고 일단 물어뜯고 보는 그녀에게 있어, 재벌 집 망나니 도련님 따위야 그저 계도의 대상에 불과했다.

“됐고요. 오늘은 나 잘못한 거 없으니까, 일단 차려 놓은 술이나 좀 마시고 있어요. 담배 피울 거면 누나 꺼 피우고. 어어… 잠깐만!”

“어, 좋다야. 기가 맥히네.”

주전부리를 준비하던 김범호. 뭔가 싸한 느낌이 들어서 뒤를 돌아보자, 치마 차림으로 의자에 발을 올린 박은지 검사의 입에는 담배 한 개비가 물어져 있었다.

그녀가 피던 싸구려 궐련이 아닌, 김범호가 애지중지하던 쿠바산 시가가.

“아! 내 시가! 그거 돗대인데! 외국에서 사 온 거라 지금 국내에 없는 거라고요!”

“좀 나눠 쓰자, 이 자슥아. 넌 아나바다 운동도 모르냐?”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아나바다 운동의 정의를 바꿔버린 박은지 검사.

일말의 양심은 있던 것일까?

그녀는 뒤이은 김범호의 툴툴거리는 목소리에는 딱히 귀를 열지는 않아 주었다.

“옘병… 이건 검사가 아니라 순 깡패여, 깡패.”

“시끄럽고. 그래서, T 그룹 비리 자료가 있다고?”

“아, 그게요. 사실은 그게 아니라….”

찌릿, 박은지 검사의 눈에서 튀어나오는 레이저 빔.

“설마 지금 구라를 치셨다? 그것도 나한테?”

전화로 그녀를 이리로 불렀을 때와는 전혀 다른 김범호의 모습.

T 그룹 비리 자료라는 미끼에 낚인 박은지 검사의 등 뒤에는 큼직한 악귀나찰 하나가 서 있었다.

“범호야, 이 새끼, 이거… 구라치면 손모가지 날아가는 거, 영화에서 안 봤냐?”

“아, 잠깐만, 잠깐만. 박 검사님. 아니, 은지 누나. 내 말 좀 끝까지 들어 봐요. 다 이유가 있다니까?”

그간 꾸준히 절에 다녀서 불공을 쌓은 보람이 있던 걸까?

양 손바닥을 쫙 편, 김범호의 코앞에서 그대로 멈춘 박은지 검사. 적어도 마지막 변명 하나는 들어줄 심산인 모양이었다.

“그게… 어떤 미친놈. 아니, 어떤 남정네가 꼭 누나를 봐야겠다고. 막 누나 같은 여자랑 데이트하고 싶다고 그러잖아. 걔 꽤 잘생겼다니까?”

“크흠, 거, 진작 그렇게 말을 하지 그랬어. 이리 와, 우리 이쁜 범호.”

갑자기 김범호의 머리칼을 쓰다듬기 시작하는 박은지 검사.

그 괴팍한 성질 탓에 주변 남자는 죄 도망치느라 바빴기에, 김범호의 말도 안 되는 변명은 그녀를 기쁘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게… 통한다고? 진짜?’

김범호의 속마음이야 알 바 아니라는 듯, 이제는 아예 거칠게 머리칼을 헝클어뜨리는 박은지 검사.

그렇게 격한 애정을 충분히 퍼부었다고 느꼈는지, 그녀는 앞에 앉힌 김범호에게 질문을 난사했다.

“그래서, 그 잘생긴 남자는 몇 살? 뭐 하는 사람? 언제 오는데?”

“가만히 좀 있어 봐. 시간 딱 맞춰서 온다고 했는데… 아아, 저기.”

라운지 바 전용 엘리베이터를 가리킨 김범호.

붉은색 불이 들어온 엘리베이터 표시등의 숫자는 1부터 시작해 점점 커가고 있었다.

“하여간, 양반은 못 되나 봐. 바로 올라오나 보네.”

-딩동! 문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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