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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143화 (143/300)

143화세탁기의 전원을 끊는다면(1)

-탁!

사무실 안쪽, 나무판 위에 스티로폼을 덧댄 옹벽에는 어린아이 팔목 길이의 칼 수십여 개가 꽂혀 있었다.

의자 옆 오른쪽 탁자 위에 똑같은 칼 열댓 개를 놓아둔 훈이. 그는 무언가 고민되는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자리에 앉은 채로 옹벽에 칼을 던져대곤 했다. 마치 지금처럼.

“낙구 행님이… 아니제, 낙구 금마가 벌써부터 내를 견제하는 기가?”

-탁!

독백과 함께 미간에 잡힌 주름을 신호로, 다시 던져진 칼 한 자루.

빙글빙글 원을 그리듯 회전하며 날아간 칼은 마치 낙구의 이마 정중앙을 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는, 차분히 이전에 있었던 일을 복기하는 훈이.

‘딱 보이, 저희 조직에서 세탁기로 쓰기 딱 좋지 않심니꺼? 흔적 안 남지, 복잡하지도 않지, 관청에 뽀찌 줄 필요도 없지.’

비트코인이 돈세탁 용도로 괜찮지 않냐는, 별생각 없이 던졌던 질문. 그러나, 돌아온 낙구의 반응은 마치 가시에 찔린 양 과할 정도로 신경질적이었다.

‘새끼… 쓸데없는 소리는! 해커 놈들 코 묻은 돈이나 빠는 거지, 이게 얼마나 된다고!’

생생하게 귓가에 들려오는 그때 그 목소리. 그리고 눈앞에 환각처럼 떠오른… 당혹스러움과 불안감이 담긴, 마치 제거해야 할 적을 바라보는 듯한 낙구의 표정.

이마 위쪽에 핏줄이 왈칵 솟아오름과 동시에 훈이의 손아귀에 평소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이 들어갔다. 그날의 모든 정황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낙구, 이 새끼가… 제깟 놈 밥그릇 좀 위태로워진다꼬, 그딴 식으로 눈깔을 치아올리 싸나. 정작 총알받이들 끌어다 온 건, 전부 내가 한 것 아이가!”

딸그락, 입 밖으로 터져 나온 분노와 함께 방 안을 가득 메운 쇳소리.

너무 과한 힘이 들어가서였을까?

칼은 나무 옹벽이 아닌, 콘크리트 기둥을 맞고 그대로 단단한 바닥에 떨어졌다.

“후우, 후우….”

날붙이를 주우러 자리에서 일어난 훈이. 맨들맨들한 칼날 면에 비친 험악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 그는 스스로 다짐했다.

어차피 선후배 간 의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음지의 세계. 만약 낙구가 계속해서 자신을 믿지 못하고 견제한다면… 훈이 스스로가 기회가 닿는 대로 먼저 행동을 취할 것임을.

“어, 내다. 수고 많았다.”

거친 숨을 고르자마자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누군가와 통화를 시작하는 훈이.

“많긴. 느이들 용돈 하라꼬 꼴랑 몇 푼 찔러준 거 아이가. 부담 갖지 말고 쓰라.”

전화 통화 상대방은 부산·경남 지역의 30대 조폭 대학생들이었다.

고기 방패로 쓸 명의 대여자들을 모집하느라 실무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그들.

훈이는 사비를 쓰면서까지 이들의 마음을 사고자 했다. 언젠가… 낙구와 대립할 그날, 자신의 편에 설 이들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러나.

“뭐라꼬? 그기 머선 소리고!”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뒤통수를 향해 날아 들어온 급커브.

이제껏 훈이가 생각했던 모든 계산식이 외부에서 들이닥친 변수 하나에 산산이 조각나고 있었다.

어디로 그 파편이 튈 것인지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그 청약 엎은 걸 와 흑룡건설이 아이고 탄약 인프라가 인수한다는 긴데!”

* * * *

탄약그룹 본사 꼭대기 층, 회장실.

외부에서 식사 일정을 마치고 집무실로 들어오니, 거기에는 골프채를 든 김원철 아저씨가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퍼팅 연습을 하고 있었다.

“공 굴러가유.”

“본인 방에서 좀 하시죠. 기껏 퍼팅 연습기 좋은 걸로 사놓고 꼭 여기 와서 이러십니까.”

“흐흐흐. 여기가 채광이 끝내주잖어. 진짜 그린 온 기분이라니까?”

딱콩! 설렁설렁 힘을 주어 톡 밀어버리자 하얀색 페인트로 그은 선을 따라 움직이는 골프공.

헤실헤실 웃음 짓는 김원철 아저씨의 모습을 보니 공 움직임이 꽤나 보기 좋았던 모양이다.

막상 각 잡고 필드 한번 돌자고 할 때면, 남의 잔디밭에서 뭐 하러 쇠파이프나 흔들고 있냐며 나가지도 않으면서.

“어흐, 나이스 샷.”

“됐고요. 일단 앉으시죠. 법무팀 관련해서 최종 보고 올리러 오신 거 아닙니까?”

“우리 회장님, 눈썰미 하나는 귀신이여.”

나름 법조계의 잔뿌리까지 네트워크가 닿아 있는 탄약그룹 법무팀.

박은지 검사와의 만남 이후, 나는 법무팀을 적극 활용해 검찰 최말단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레이더망을 가동했다.

“하여간, 꼬이는 여자마다 참 독특해. 진짜 답도 없는 꼴통이여, 그 박은지 검사.”

“꼴통인 건 그때 직접 두 눈으로 보았긴 했죠. 구체적으로 뭐랍니까?”

“윗선에 보고도 안 하고, 독고다이로 진행 중이시란다. 또 결재 올리고 뭐 하고 그러면 평생 가도 일 못 한다고.”

나는 소파에 앉아 건네받은 보고서를 펼쳐 보였다.

정보의 출처는 박은지 검사와 일하는 검찰 보좌관. 거기에는 애가 넷인 가장의 불안한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배당받은 사건 재끼고, 혼자 어디 외근 나가고. 박은지 검사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 불안해할 만도 하네요.”

“한번 꽂히면 눈 돌아가는 스타일인 거지. 그래서.”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김원철 아저씨의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동시에, 오래간만에 하얀색 안전모를 쓴 내 얼굴 또한 그 네모난 상(相) 안에 비쳤고.

“진짜 직접 나가려고?”

“일단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박은지 검사 자기도 발로 뛰겠다, 그러니까 탄약그룹 회장 역시 발로 뛰면서 진심을 보여라.”

곧바로 현장 지도가 있을 때마다 착용하는 푸른색 탄약 인프라 잠바를 입은 나.

나는 비슷한 사이즈의 잠바 하나를 김원철 아저씨에게 건네며 회상하듯 말했다.

“그게 박은지 검사의 요구였잖습니까.”

딸깍, 나는 안전모 아래에 달린 턱끈을 플라스틱 고정쇠로 조정했다.

그리고 그 딸깍거리는 소리를 듣자니… 습관처럼 금속제 지포 라이터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희미한 불꽃을 지피던, 그날의 박은지 검사의 모습 또한 떠올랐다.

‘탄약그룹이 엮인 건은 빼라? 하! 이 양반이 수사가 무슨 뷔페인 줄 아나? 자기 먹고 싶은 것만 쏙 골라서 먹게.’

처음, 탄약 인프라 건설 부문에 엮인 혐의는 공표하지 말아달라 제안을 던졌던 나.

박은지 검사는 제반 사정에 대해 이해한다는 눈치이면서도, 나오는 말만은 부정의 뜻을 표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검사 곤조. 그것을 건들지 말라는 강한 의사 표시.

그렇기에… 내가 던질 수 있는, 던져야만 했던 가벼운 수 하나.

‘적극적으로 입증하면 될 문제 아니겠습니까. 저희 쪽이 연루되지 않았다는, 그리고 엮이는 것을 최대한 몸부림쳤다는.’

강골 검사의 정체성을 잃게 하지 않으면서도, 탄약그룹의 이름은 수면 아래로 넣어두는 해법.

그것은, 내가 이전에도 그러했듯, 직접 전선에 나서 일을 풀어 헤치는 것이었다.

탄약그룹의 브랜드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오피스텔 공사 현장에서.

‘직접 현장에서 보여드리죠. 적어도… 이번 큰 그림의 첫 신호탄 정도는 제 쪽에서 쏠 테니까요.’

지익, 푸른색 탄약 인프라 잠바의 지퍼를 목 끝까지 걸어 올린 나.

소가죽 구두를 벗고 단단한 안전화로 갈아신은 나는 옆에 선 김원철 아저씨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출발하시죠.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조폭이란 놈들 얼굴 한번 보러.”

* * * *

-[탄약 인프라 건설 부문] 불꽃 스위트홈 오피스텔 신축 공사.

깡! 깡!

공사 현장 특유의 소음이 주변 공기를 울리고 있는, 분당 외곽의 오피스텔 신축 현장.

널브러진 각목과 쇠파이프, 기준치보다 더 시뻘겋게 녹이 슬어버린 철근, 발자국이 난 채로 굳다가 만 콘크리트까지.

좀처럼 관리가 잘되고 있지 않은 현장인 만큼, 공사 인부들의 태도 또한 건물만큼이나 날림이었다.

“어이, 김 씨. 참 먹고 하자고.”

“예, 반장님.”

A동의 내부에서 용접 일을 하던 김 씨. 손목에 찬 전자시계를 보니, 때마침 오후 참을 먹을 때가 된 모양이었다.

적당히 빵에 딸기우유 정도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종이박스로 만든 간이 식탁에 놓인 것을 본 김 씨는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열었다.

“아이고, 참에 웬 소주가 다 있고. 괜찮아요, 반장님?”

“마셔, 마셔. 괜찮아.”

“허허… 이런 큰 현장에서 중간에 마셔보는 게 몇 년 만인 줄 몰라.”

“어차피 감독이 개판인 거, 좀 설렁설렁해도 상관없어.”

고된 육체노동을 잠시 멈추고 마시는 것인지라, 목구멍을 타고 쭉쭉 들어가는 소주.

김 씨는 토시로 입가를 대강 훔친 후, 반장에게 속에 담긴 말을 꺼내었다.

“크흐, 그러게 말입니다. 대기업 딱지 달고 이만큼 개판인 곳도 또 없어요.”

“탄약 딱지만 달았지, 실제는 흑룡건설인가 하는 곳이 다 하고 있잖나. 아까 보니까… 여기 청약 넣은 사람들도 죄 나자빠졌다고 하드만.”

“나자빠져요?”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는 소주병 뚜껑을 여는 반장.

종이컵 따위야 장식이라도 되는 양, 절반쯤을 병째로 마신 그는 긴 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어흐, 좋다. 그게, 분양받기로 한 인간들 1,000명 정도가 떼거지로 퍼졌다네. 중도금 낼 돈도 없다고.”

“별일이네… 아무리 경기가 안 좋아도 그렇지. 이러면 시행사도 파산 아닙니까?”

“그래서 흑룡건설 측이 그 분양권 싹 다 인수한다는 말이 있어. 하여간 이 현장… 희한해. 뭔가 께름칙한 것이 영 마음에 안 들어.”

현장소장과 형·동생이라 부르며 막역한 관계인 반장이기에, 돌아가는 사정을 대강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너무나도 젊은. 아니, 어린 연령대의 청약자들. 그리고 험악한 인상의 검은 양복을 입은 흑룡건설 관계자들.

모든 상황은 반장의 직감에게 알리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이 현장에서 일을 마치고 떠나라고.

“아무튼, 나는 B동 공사 쪽은 안 하기로 했으니, 김 씨도 어지간하면 다른 현장 찾는 편이 낫지 않나 싶은….”

“아이고! 겨우 찾았네! 자네들 지금 여기서 소주나 퍼마시고 이럴 때가 아니여!”

“형님?”

헉헉거리는 소리와 함께, 거친 숨을 토해내며 계단을 오르는 현장소장의 모습.

그는 황급히 검은색 비닐봉지에 소주병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마치 뒤에서 저승사자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니, 형님. 엊그제는 공사 설렁설렁해도 된다더니… 왜 또 그러는 거요?”

“그건 엊그제 이야기고! 감찰, 지금 본사 감찰이 왔다니까!”

“본사 감찰? 에이, 흑룡건설 그 친구들 저번에 와서 하는 거 보니까 숫제 요식행위드만.”

며칠 전에도 왔다 간 흑룡건설 관계자들. 오른팔에 완장을 찬, 조폭처럼 보이는 이들은 한눈에 보아도 건설에 문외한이었다.

그렇기에 별것 아니라는 듯 심드렁한 표정의 반장.

그러나.

“아니, 흑룡건설이 아니고…! 탄약, 탄약그룹 본사! 그것도 누가 대빵으로 온 줄 알어?”

“뭐, 뭐요? 탄약그룹? 코빼기도 안 보이던 놈들이 왜! 그리고 누가 온 거길래 그러는데?”

전혀 예상치도 못한 변수의 등장.

아직 창틀이 부착되지 않은 창문 너머를 바라본 현장소장은, 벽 뒤에 숨어서 손가락으로 아래쪽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회장! 한서준 회장인가 하는 놈아가 직접 하이바 쓰고 이리로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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