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장님의 핵몽둥이-146화 (146/300)

146화세탁기의 전원을 끊는다면(4)

강남, 훈이의 사무실.

벌써 유리 재떨이가 두 개씩이나 가득 넘치도록 피운 줄담배.

찐득하고 불쾌한 냄새가 가득 찬 사무실 안, 깍지 낀 손을 이마에 댄 훈이의 모습이 탁자 위 판유리에 비쳤다.

“…….”

평소보다 훨씬 살벌한 모습의 훈이. 핏발 선 그의 눈은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마치 환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제 눈앞에서 생생하게 자신을 질책하고 있는 낙구의 모습이 보이는 것처럼.

‘훈아, 당장 네 밑에 있는 애들 싹 불러와라. 총알받이 애새끼들 서류까지 싹 다!’

‘낙구… 행님?’

조금 전, 급하게 사무실로 들이닥친 낙구.

아무렇게나 붕대로 감은 왼쪽 손가락을 애써 감추며, 낙구는 다급한 목소리로 훈이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 정신 안 차리냐? 지금 어리바리 타고 있을 때인 줄 알아!’

‘행님, 일단 진정 좀 하이소. 분당 외곽에 탄약 껍데기 쓴 오피스텔. 거, 소식 대강은 들었다 아입니꺼.’

‘진정? 그걸 아는 놈이 지금 진정하라는 개소리를 내뱉어?’

무언가 패닉에 빠지기라도 한 듯, 하얗게 오른 낙구의 얼굴.

평소 폭력에 찌들어 살던 조폭의 습성 탓일까?

주먹 쥔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며, 차마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낙구는 곧바로 훈이의 멱살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따지고 보면 훈이 네가 밑에 애새끼들 관리를 개판으로 한 것도 있다 이 말이야!’

‘…낙구 행님?’

언제부턴가 초라하고 앙상해진 낙구의 손.

얇은 혈관이 그대로 비치는 손등에는 오로지 떨림만이 가득했다. 자신은… 반드시 이 위기를 벗어나 살아남아야만 하겠다는 떨림이.

그리고 그 떨림이 만들어 낸 한 개의 무리수.

‘후우… 그러니, 훈이 네놈 밑에 새끼 친 놈들 인적정보. 잠깐 나한테 넘겨 봐.’

‘…지금 진심으로 하시는 소리십니꺼?’

‘이 새끼야! 네 밥그릇 안 건들 테니까, 쓸데없이 잔소리하지 말고!’

그렇게 한바탕, 사무실을 뒤집어놓은 낙구.

훈이의 조직력이라 할 수 있는 모든 인적 사항을 요구한 그는, 시간이 조금 걸린다는 말에 미심쩍은 의심을 한 점 남기고는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무언가 급하게 곧바로 해야 할, 다음 일정이 있는 듯이.

“…슬슬 재낄 때가 된 거 아이가.”

그리고 지금, 의자에 앉은 채로 폭풍처럼 몰아치던 그 기억을 곱씹는 훈이.

회칼 수십 개가 박힌, 사무실 안쪽 옹벽을 바라본 훈이는 마침내 결심을 마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어딘가에 걸기 시작한 전화 통화.

“예, 큰행님. 저 훈이입니더. 드릴 말씀이 있어가 전화했십니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주괘율의 낮은 목소리.

방금까지 큰일을 겪은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그는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된 상황이라도 된 듯.

그렇기에… 마침내 자신이 결심한 바를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훈이.

“돈세탁. 이번에 빵꾸 난 건설 같은 하빠리 말고, 새로운 세탁기로 쓸만한 거이 있어가 말씀드리고자 합니더.”

그리고, 사무실 창문 아래 내려다보이는 낙구의 모습. 훈이는 초조함으로 이성을 잃은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마치 회칼에 박힌, 구멍 난 옹벽이라도 되는 것처럼.

“큰행님, 혹시… 비트코인이라고 들어보셨심니꺼?”

* * * *

“흐미, 살벌한 거.”

질책은 단순히 소주병을 들고 연단 위에서 소리나 고래고래 질러댄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자의 반 타의 반 이곳저곳 찌르고 다니더라도 회장은 회장이다.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나름의 무게감과 권위가 살아있어야 하는 법이다.

적어도… 내가 직접 현장에 공식 방문한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설마 여기 리스트에 있는 양반들 전부 배임으로 엮을 생각인 건 아니지?”

생각했던 것보다 제법 많은 인원이 거기 포함되어서일까?

팔락, 왼쪽 상단 구석을 호치키스로 집은, 얇은 종이 단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머리를 긁적이는 김원철 아저씨.

나는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대한 네 덩이 콘크리트 건조물 사이로 노을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감찰팀 조사 결과에 혐의점이 있다면요. 손속에 정을 두지는 않을 겁니다.”

게으르고 무능하고 아무런 생각이 없던 이들. 그런 이들은 어디 멀리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

어쩌면 가장 가까이에 있다고 할 수 있는, 탄약 인프라 국내 건설 부문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으니까.

마치 저 흉물처럼 남은… 오피스텔 건물처럼.

“대기업이 조폭의 돈세탁 창구가 된 꼴입니다. 철저하게 그리고 깨끗하게 처리해야죠, 아주 뿌리를 뽑는다는 식으로.”

“하긴, 이번 일은 심했지. 임원들도 경각심을 가져야 해. 국내 건설 부문이 무슨 커리어에서 잠깐 쉬었다 가는 휴게소도 아니고.”

안전모의 턱끈을 풀고는 저 멀리 서산 너머를 바라보는 김원철 아저씨.

“그래서 말인디.”

약간의 뜸을 들인 후, 아저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게 화두를 던졌다.

“슬슬 우리는 발 빼도 되지 않나 싶은디. 적당히 초벌구이는 다 했고, 불 쇼 좋아하는 박은지 검사더러 나머지 요리나 하라고 해도 되지 않나?”

주괘율이 이끄는 일정파.

음지에서 양지로 기어오르려는 조폭. 이들에 대한 박멸 작업을 굳이 끝까지 밀어붙여야 하냐는 회의 섞인 질문.

사실, 이해득실로 보자면 이쯤에서 발을 빼는 것이 타당한 일이 맞긴 하다. 탄약그룹이라는 기업집단이 딱히 정의 사회 구현을 목표로 하는 수사기관인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박은지 검사를 백 퍼센트 믿기는 어려우니까요. 그럴 바에는 끝까지 옆에 붙어서 두고 보는 편이 낫습니다.”

“뒤통수라도 맞을 수 있다…? 검찰 쪽 상황에 따라서?”

“그렇다기보다는.”

허공에 펼쳐 올린 두 손가락, 검지와 중지. 나는 가장 먼저 쭉 편 검지를 까딱거리며 입을 열었다.

“정확히는 통수를 맞는 것보다 통제에서 벗어나는 게 더 걱정인 겁니다. 물가에 내놓은 철부지처럼요.”

“하긴, 또라이 검사가 무심코 던진 돌에 연못가의 탄약그룹이 머리가 깨질 수도 있으니.”

“그리고….”

말끝을 흐림과 함께 까딱거리기 시작한 허공 위의 중지.

손가락 뒤편, 황량한 모래바람을 배경으로 둔 채, 나는 회귀 이전 감옥에서 있었던 일을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반드시 이 찝찝하게 남아있는 일을 매듭지어야만 할 근거를.

* * * *

‘응? 우리 방장님, 또 맞고 오셨네? 그 일정파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 그렇게 기세등등합니까?’

‘어따, 한 회장님.’

노역에 나갔다 들어올 때면, 가끔씩 일정파 조폭 출신 수감자들에게 얻어맞고 오기 일쑤였던 방장.

꼴에 자기도 그쪽 세계 사람이라고 내심 무게를 잡으며 부인하던 그는, 내가 내민 간식과 음료수 하나에 술술 입을 열었다.

빵가루가 묻은 입술을 옷소매로 훔쳐 가며.

‘크흐, 그 개뼉다구 같은 새끼덜… 내 언젠간 푸지게 한따까리 할 것이여잉.’

‘먹고 말해요, 먹고. 그런데… 요새 행패가 좀 심하네, 그 일정파인지 뭔지 하는 사람들. 작년엔 안 이랬잖아?’

‘으따, 올해 들어서 심해졌제. 아주 교도소 온 사방 천지가 지들 나와바리여라. 꼴에 즈그 조직이 뒷배 봐준다꼬.’

손바닥만 한 교도소 안에서 일정파 조직원들이 기세등등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조직에서 꽉꽉 채워 넣은 영치금, 부패한 교도관들의 묵인, 그로 인한 암묵적인 서열 확보.

방장의 하소연은 일정파의 무슨 회장 소리를 듣는다는 사람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상당히 많은 검은돈을 벌어서, 상당히 많은 깨끗한 돈으로 세탁까지 끝낸, 이제는 합법의 영역에 올라선 사람에 대해.

‘아니, 무슨 조폭이 그렇게 돈이 많답니까? 두목 되는 양반이 어디 중견기업 오너도 아니고.’

‘내는 모르지. 그란디… 금마들 즈그덜끼디 말하는 거 들어보니께, 사설 토토 운영하던 놈들이 무슨 비트코인? 그 지랄로 확 떴다나?’

‘비트코인… 아아, 그 신문에서 요새 많이 올랐다는?’

비트코인.

불법 사설 인터넷 도박으로 번 돈이 탄약 인프라 국내 건설 부문을 타고 흘러와, 종국에는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세탁된 종착지.

분명 언젠가는 가상화폐 쪽에도 슬슬 손을 대긴 할 생각이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연결 고리가 생겨 버렸다.

과거 기억의 편린이 머릿속에 남은 채로, 현재를 이어준 이 상황. 그렇기에… 여기서 이대로 끝매듭을 지어서는 안 될 터.

까딱거리던 손가락을 다시 바로 한 나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일정파의 수괴, 주괘율. 어둠의 세계에서 사는 이자를 어디 한번 끝까지 따라가 보겠노라고.

“그리고?”

반짝이는 머리 위에 물음표 표시 하나를 올려둔 채, 순진무구한 질문과 함께 나를 바라보고 있는 김원철 아저씨.

피식, 가볍게 웃음 지은 나는 지갑을 꺼내어 동전 하나를 아저씨의 손아귀에 쥐여 주며 말했다.

앞으로 다가올 몇 년 후의 미래에, 컴퓨터 안 실체 없는 동전의 모습을 속으로 그리며.

* * * *

경기 남부, 분당 외곽지역.

<흑룡건설> 네 글자가 적힌, 녹슨 철제 간판을 단 사무소.

종종 접선 장소로 사용되었는지, 제법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남은 이곳에서, 핏발 선 눈의 낙구는 누군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었다.

한쪽 새끼손가락이 반쯤 잘려 나간 손으로.

“잠시만, 잠시만 팀장님! 잠깐만 앉아서 터놓고 이야기하고 그러면 될 것 아니요?”

“뭘 터놓고 말합니까? 지금 우리 본사 정신없다니까 자꾸 그러네.”

푸른색의, 탄약 인프라 국내 건설 부문 로고가 붙은 잠바를 입고 자리에 선 남자.

팀장이라 불리는 그는 애원하다시피 매달린 낙구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내부가 피바람 불기 직전이에요. 회장이 살생부 들고서 임원급부터 아래 부장들까지 건설 국내 부문 모가지 날린다고 그런다니까?”

“그래서, 저희가 그걸 무마할 만한 새로운 안을 가지고 왔으니 한 번만 들어주신다면….”

“에이! 안 돼, 지금은 뭐 새로 못 한다고.”

그는 머리가 복잡한 듯, 낙구를 매몰차게 뿌리쳤다.

갑자기 코앞으로 다가온 내부 감찰. 제아무리 주머니에 묵직하게 찔러주기로 유명한 흑룡건설일지라도, 무언가 새로이 일을 벌이기 어려운 상황.

옷깃을 고쳐 세운 팀장. 문손잡이를 돌려 잡은 그가 고개를 돌려 낙구에게 말 한마디를 남겼다.

“쯧, 어차피 까고 보면 당신네들한테도 오히려 이득 아니요? 그거… 분양받기로 한 양반들 중도금 안 내고 퍼진 거.”

“그건 그러니까….”

“탄약그룹 본사에서 다 안고 간다잖아. 안 그래도 머리통 아프니까 이쯤 하고 그만합시다. 괜히 일 복잡해지면 내 목도 슈킹이야.”

“잠깐, 잠깐만! 여기에는 다 사정이…!”

쾅, 일말의 변명 따위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닫힌 문. 텅 빈, 낡은 사무소 안에는 오로지 무릎 꿇은 채 망연자실한 낙구 혼자였다.

“이대로… 가만히 날 내버려 둘 큰형님이 아닐 텐데.”

시큰하게 아려오는 왼쪽 손가락.

그리고 그 아린 만큼이나 조여오는 숨통. 그에게는 더 이상 희망은 없는 것만 같았다.

모든 조폭의 말로가 그러하듯, 토사구팽만이 예견된 상황.

-뎅그렁

사무소 구석에 놓인 괘종시계의 종이 울렸다. 규칙적이면서도, 어찌 보면 절망적인 장례식과 같은 분위기.

그리고, 그 순간, 낙구의 호주머니 안에 들어 있던 휴대전화에 불이 들어왔다.

“…누구요, 당신은?”

구석에 몰린 채, 스산하게 울리는 괘종시계의 굉음을 들어야만 하는 낙구. 그 자신을 이곳에서 탈출시켜줄 누군가의 전화를.

“한서준… 회장? 그 탄약그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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