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고(1)
“큰행님, 인사 올리겠십니더.”
주괘율은 으레 조직폭력단 수괘가 그러하듯 화려한 것을 즐기지 않았다.
서울 도심지에서 조금 벗어난, 그의 사무실 안. 오래된 책상 옆 정갈한 서가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웠고, 손때 묻은 회백색 브라운관 TV는 지지직 소리를 내며 흐릿한 화면을 내보내고 있었으니까.
“그래, 그래. 바삐 왔나 보구나, 훈아. 이 시간대에 이리도 빨리 왔으니.”
그리고 그런 주괘율 앞에 두 손을 모은 채 장승처럼 기립한 훈이.
그 모습을 본 주괘율이 작게 입가에 웃음을 걸고는 손짓하며 말했다.
“뭘 또 서 있고 그래. 편히 앉지 않고.”
“예, 큰행님.”
낡은 소가죽 소파 위, 가만히 앉은 채 서로를 마주 본 두 사람.
험상궂은 인상의 빡빡머리와 회백색 턱수염이 까끌까끌한 완숙의 남자는 서로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가장 먼저, 대화의 물꼬가 트인 것은 찻잔이 몇 차례 달그락거리는 시간이 지난 후였다.
“보자. 아마, 6년이었던가? 훈이 네가 큰집에 들어가 있던 기간이.”
“예, 그렇십니더. 안양교도소에서 6년이예.”
“그래, 그래. 훈이 네가 일정파 타이틀 전부 뒤집어가면서 고생이 많았지. 네 위 선배들이 잡혀 들어가긴 곤란했던 때이니.”
유독 오늘따라 스산하게 들리는 TV 잡음. 화면에는 트랙 위에 선 채 심판의 총소리만을 기다리는 달리기 선수들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당장이라도 총알 그 자체가 되어 튀어 나갈 것처럼.
“6년, 6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긴긴 억겁의 시간이고, 또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는.”
슬쩍 눈을 흘겨 지직거리는 화면을 바라본 주괘율. 습관처럼 턱을 쓸어 만져서일까, 까끌까끌한 촉감의 짧은 수염 자국이 그의 손바닥에 닿았다.
“찰나와도 같은 시간이었지. 마치… 그래, 저기 저 달리기 경주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큰행님.”
탕! 시간이 되자 울려 퍼지는 심판의 총소리.
일제히 선수들은 트랙 위를 박차며 제 힘이 닿는 최고의 속력을 올려대기 시작했다.
집중되는 선수들의 표정 하나하나. 그 모습을 본 주괘율은 문득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어떤 이들의 이름을 입에 담기 시작했다.
6년, 훈이가 안양교도소에 있는 시간에 낙구가 앞서 나가고 때론 뒤로 자빠트리기도 한, 조직 선배들의 이름을.
“수철이, 흑구, 덕팔이까지… 재미있는 건 말이다. 그 6년 동안 그 낙구 위에 선배들이 다 어떻게 되었든?”
“은퇴…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더. 공식적으로는예.”
“은퇴는 무슨. 운 없는 놈은 팔다리 잘린 병신이 되었고, 그나마 눈치라도 있는 놈은 어디 시골 다방서 계집장사나 하고 있지.”
경기가 진행되는 그 짧은 순간, 트랙 위에 하나둘씩 뒤처지는 달리기 선수들.
그러나, 카메라는 그들을 향하지 않았다. 오직 선두, 선두에서 박차고 나아가는 주자만을 가득 담기 시작한 화면 속.
“그래서 낙구가 참 지켜보는 맛이 있었다. 저렇게, 저렇게… 한 놈, 한 놈 재껴 가며 달리는 꼴이 퍽 인상 깊었으니.”
“…….”
“그때 낙구에게서 본, 저 모습을 오늘 훈이 네게도 볼 수 있었으면 하는구나.”
언뜻 모르는 이가 보기에,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있을 만큼 환한 표정의 인두겁을 한 채로, 찻잔에 담긴 커피를 홀짝이는 주괘율.
그리고 그를 지그시 바라보며 숙인 고개를 들어 올리는 훈이.
대답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뜀박질 보는 맛이 꼭 꼬래비가 역전하는 것만 있는 법은 아입니더, 큰행님.”
“뭐라?”
“때로는… 남들 죄 재끼고 맨 앞에서 뛰아 댕기는 놈이 저 멀리 지 혼자 내달리는 것도 구경거리 아니겠십니꺼?”
화면 속, 다른 선수들과의 거리를 넓히는 선두 주자. 다소 경망스럽다 싶을 정도의 중계자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사무실 안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그 지지직거리는 TV 앞, 만족스러운 듯한 주괘율의 표정.
실타래처럼 복잡한 머릿속 계산을 마친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훈이를 바라보았다.
“허허, 이놈 참.”
“마, 뛸 준비는 다 되았심니더. 운동화나 깔깔하이 잘 빠진 놈으로 준비해 주십시오, 큰행님.”
“그래. 운동화도 운동화지만, 그 전에 내 네게 줄 것이 있다 했지.”
그제야 탁자 구석에 놓인 자그마한 나무 상자 하나를 훈이에게 건네는 주괘율.
상자 안에 들어있는 낙구의 신체 일부였던 손가락.
스멀스멀 올라오는 그 불쾌한 냄새에 심기가 거슬리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주괘율은 이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훈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내 사람 보는 눈이 아직 설지 않아 다행이야. 그래, 비트코인이라 했던가? 그 세탁기로 쓰겠다는 것이.”
* * * *
인천항.
부둣가 바로 앞, 소금기를 가득 머금은, 찝찝한 바닷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짠 내를 따라 들어간 자그마한 골목길 어귀의 한 횟집. 따로 안쪽 방을 잡은 나는, 뭉텅이로 썰어져 나온 막회를 젓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갈매기 울음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를 귓가에 담으면서.
“그래서, 그 낙구인가 낙지인가 하는 놈이 회개하러 이곳까지 오신다? 그것도 검사인 내가 아니라 기업 경영하는 회장님한테?”
“자기가 살아남으려면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홀로 모든 책임을 다 뒤집어쓸 판인데. 탄약그룹 쪽에서나 저쪽 달건이 그룹 쪽에서나.”
“달변가 납셨수.”
바닷가가 훤히 보이는 창가 바로 옆에서, 나는 스끼다시로 나온 낙지 탕탕이를 먹으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도저히 실금조차 가지 않을 것만 같은 거대한 방파제 하나.
마치 주괘율이 이끄는 일정파의 모습과도 같은 저 방파제를 무너뜨릴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저 자그마한 구멍을 뚫는 것이다.
다른 곳보다 유독 얇고 연한 곳만을 골라, 소리 소문 없이 아주 빠르게.
“약한 고리인 낙구가 협조만 잘해준다면 그에 상응하는 상도 줄 겁니다.”
“상? 쓰흡, 조폭한테 줄 상은 부고상 말고는 없는데.”
“뭐, 검찰 내에서는 그럴 것 같습니다만, 저희 쪽은 꽤나 유도리가 있어서요. 가령 예를 들자면.”
이리저리 젓가락 사이로 도망 다니는 낙지 탕탕이.
잘게 썰려 나온 데다가 참기름에 버무려지기까지 했지만, 숟가락 앞에서는 달리 재간도 없어 보이는 듯했다.
고소함과 쫄깃함이 함께 춤추는 입 안을 비운 나는 하던 말을 마저 이어나갔다.
“새로운 나라, 회개한 자에게만 뒤따르는 약속된 땅으로 향하는 배편과 정착 자금 정도?”
“흠, 잘 협조한 뻐꾸기 한 마리 정도는 새장 바깥으로 따로 빼 주자?”
“뭐, 그런 겁니다. 다른 새를 잡는데 나름의 역할을 잘 해낸다면 말이죠.”
“쩝, 일단 한 잔 마시자고.”
아직 시간이 오후 네 시가 조금 넘었건만, 벌써 소주병 뚜껑을 돌려 따기 시작한 박은지 검사.
그녀는 멀쩡한 술잔은 옆으로 치워둔 채, 스테인리스 물컵 절반가량을 소주로 채운 것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코끝을 찡그린 채, 내게 건넨 한 마디.
“크흐. 생각해보니 뭐, 적당히 참고인 진술만 받아 내고 연기처럼 사라진다면야 그 정도는 괜찮겠지.”
“그와 동시에 탄약그룹과 엮인 부분도 같이 싸 들고 사라지는 거죠. 연기처럼.”
“하여간 이 양반, 자기 몫은 오지게도 잘 가지고 간단 말이야.”
괜히 심술이 난 것인지 툴툴거리는 박은지 검사. 그녀는 내 물컵의 물을 모조리 마셔버리더니, 아까 자기 컵에 했던 그대로 내 컵에 소주를 채워 넣었다.
그것도 절반이 아니라, 한 컵 가득히, 간신히 넘치지 않을 만큼.
“…인심이 후하네요.”
“히히히. 나 혼자만 마시니 심심해서. 거, 회장님도 좀 드쇼.”
“무슨 술을 이렇게 먹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리고 오늘 진짜 술이 필요한 사람은 따로 있는걸요.”
머리 위에 물음표 하나를 올려둔 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박은지 검사. 나는 고개를 돌려 나무 살 아래 창호지로 마감한 미닫이문을 턱짓했다.
“……!”
전등불 아래 비친 누군가의 그림자. 방금까지의 대화를 엿들은 듯, 애써 인기척을 숨죽이던 그를 향해 내가 소리쳤다.
“문간에서 괜히 고심하지 말고, 그만 들어들 오지요.”
* * * *
“후우….”
안쪽 방의 들어오라는 소리를 듣고서도 낙구는 쉽사리 오금을 펴지 못했다.
바로 어젯밤,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 자신에게 전화를 건 탄약그룹의 회장이라는 자.
‘책임이 다 낙구, 당신에게 가고 있다지요? 탄약그룹이나 그쪽 건달패거리나.’
‘탄약그룹… 설마?’
등골에 싸한 기운을 느끼던 낙구.
너무나도 갑작스레 결정된, 총알받이들이 고의로 펑크낸 오피스텔 분양권의 인수 결정. 이를 못 박기라도 하듯 작정하고 벌인 대외적 쇼.
거기에… 탄약 인프라 국내 건설 부문에 단행한 감찰과 그에 따른 후폭풍까지.
여전히 불붙은 듯 마구잡이로 시큰거리는 자신의 손가락. 그 손가락을 이렇게 만든 모든 퍼즐 조각의 큰 그림이 한눈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전부… 당신이 벌였다? 이 개 같은 판을? 어째서 재벌 회장이라는 자가 이딴 구정물 같은 판에…!’
‘당신이 볼 수 없는 것까지 알려줄 수는 없고.’
단호하게 내려진 대답.
탄약그룹의 회장, 그는 낙구에게 긴 감정적 대화 따위는 일절 나눌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자신이 내민 선택지 내에서 하나만을 골라 집어낼 것을 요구할 뿐.
‘당신이 살 수 있는 법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곳이 음지가 되었든 양지가 되었든, 가리지 않고 전부.’
‘무슨 그런…?’
‘곧 전화가 끊어진 후 문자 메시지 하나가 갈 겁니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서 만나길.’
말한 대로 곧바로 끊긴 전화. 그리고 얕은 진동과 함께 도착한 문자 메시지 한 통.
-내일 오후 4시, 인천항 박식이네 횟집 안쪽 방.
그리고 지금, 새끼손가락이 잘린 채, 떨리는 손으로 다시금 꺼내든 휴대전화.
화면에는 연결되지 못한 통화목록이 가득했다. 자신 밑에 있던, 그토록 믿을만하다 여겼던 조직 동생들의 배신.
훈이를 위로 세운 주괘율. 모든 조직원은 일제히 낙구를 없는 사람 취급하기 시작했다.
언제라도 명령만 있다면, 옛정 따위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묻어버릴 준비를 하기라도 하듯이.
“…들어가겠습니다, 회장님.”
드르륵 소리와 함께 열린 미닫이문. 회장이라는 자는 생각보다 훨씬 더 젊어 보였다.
낙구는 수직으로 허리를 굽히고는 눈을 감았다. 삶의 끝자락에서 동아줄일지 모를 끈 하나를 던져줄 이 사내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며.
“낙구입니다.”
“잘 왔습니다.”
“원하시는 바 전부 행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말씀하셨던 살 수 있는 방법 그것 하나만 알려 주십시오.”
피식, 가볍게 웃음 짓는 탄약그룹의 회장. 그는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여자와 눈웃음을 주고받고는 낙구 쪽을 향해 물컵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가득 차다 못해, 가장자리가 찰랑거리는 스테인리스 물컵을.
“일단… 많이 긴장한 듯하니, 이것부터 한 잔 마시고 이야기 나눕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