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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153화 (153/300)

153화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고(7)

훈이가 잡힌 인천항. 그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장소.

민물과 짠물이 섞여 흐르는 염하(鹽河)를 가로질러 놓인 다리. 그곳 너머에는 인천국제공항이 아침 해를 맞아 빛나는 유리 궁전처럼 서 있었다.

“꼬리 자르기가 성공했다는구먼. 일이 잘 풀렸어.”

“정말입니까, 형님?”

공항 건물 앞, 내리쬐는 아침 햇살을 손으로 막으며 웃음 짓는 주괘율. 그는 동행한 처남에게 자신의 휴대전화 화면을 내보이며 말했다.

“그래. 이 사진 좀 보게나. 유태촌이 보낸 사람이 훈이 옆자리에서 찍었다던데, 훈이 이놈 세상 다 끝난 표정을 짓고 있잖나.”

체포되기까지 격한 몸싸움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굳은 핏덩어리를 이마에 단 채, 양손에는 수갑을 찬 훈이의 사진.

모든 것이 그의 생각대로 흘러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미끼의 투척부터 해외로의 도주까지 전부. 그것도 지나치리만큼… 이상적일 정도로 순탄하게.

“다행입니다, 형님. 유태촌이가 비싸도 일은 확실히 하는군요. 세탁한 돈 송금도 바로 해 주고.”

“그 늙은이에게 가길 잘한 게지. 수수료로 절반이나 떼어먹는 데다가, 빌어먹을 그 딸년이라는 것이 내 심기를 뒤틀어 버리긴 했지만.”

빌어먹을 딸년.

아마 이름이 유세나라고 했던가, 그 불쾌하기 짝이 없던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한 주괘율.

‘하! 총알받이로 쓸 놈이 있다는 건가? 수괴로 잡히면 무기징역까지도 갈 텐데, 아무리 조폭 똘마니라지만 그 정도로 머리통에 똥 찬 놈이 있다고?’

다짜고짜 초장부터 내지르기 시작한 반말과 욕설.

반반한 얼굴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어딘가 걸걸한 말투는 살짝 어색하기까지 해 보였다. 마치 누군가가 뒤에서 실로 인형극을 하듯 조종하는 것처럼.

‘그렇다고 새파란 어린놈 머리통에 관리자 감투 씌워봐야 검찰에서 퍽이나 잘 속겠다! 적어도 당신네 고위 간부급에서 뽑아야 한다는 거 아니냐고!’

‘…자진해서는 못 보내지. 버림패로 쓰는 것일 뿐. 그나저나 아가씨 입이 심히 거치시구먼. 예의를 좀 갖추시게나.’

‘똥이나 싸쇼.’

‘참을 인(忍)’ 자를 가슴팍에 새기며 이 불편한 상황을 감내하던 주괘율.

그는 그 나름대로 이 어색한 촌극의 뒷바탕을 막연하게나마 추론했다. 아마 딸년을 앞세워 유태촌이 협상의 주도권을 쥐는 것이 아니겠냐는 정도의 잘못된 추론을.

‘크흠, 그놈이 누군지는 몰라도 순순히 함정에 빠질지는 모르겠구먼.’

그리고, 평소와 달리 망부석처럼 가만히 자리만 지키고 있던 유태촌.

충분히 간을 봤다고 여긴 것이었을까? 그 또한 다소 어색함이 묻어나오는, 반 박자 정도 느린 어투로 주괘율에게 물음을 던졌다.

‘보아하니 복안은 가지고 있는 모양인데? 설마 모든 것을 내게 다 해달라는 것은 아닐 테고.’

‘복안… 물론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 들어보시죠, 훈이라고 미끼로 쓰기에 딱 적당한 놈이 있으니.’

* * * *

공항 라운지 흡연실.

불쾌했던 기억을 연기에 섞어 환풍구 위로 날려 보낸 주괘율.

서너 평 남짓의 좁은 흡연실에서 날숨을 내뱉는 그의 모습은 꼭 다가올 미래를 암시하는 것만 같았다. 그저 창살이 달려 있지 않다는 차이가 있을 뿐.

“뭐, 되었다. 깨끗하게 세탁된 400억 원, 이 정도로도 충분히 재기할 수 있다.”

“캄보디아에서… 조직을 다시 일굴 수 있으리라 보십니까?”

“이번 폭풍이 좀 지나가면 다시 시작해야겠지. 이참에 바깥에서 터를 잡아도 나쁘지 않아.”

지금은 도망자의 신세일지언정,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이다.

지역 정치에 이미 발 한 짝을 들여놓은 주괘율. 그는 스스로의 생각을 곱씹으며 다짐하듯 말했다.

“다시 도박 사이트를 만들고, 자금을 모으고… 그럴듯한 외국인 신분을 만들어 다시 한국 땅을 밟는다.”

“형님, 그러면 최종적으로 다시 돌아오실 생각이신 겁니까?”

“자네 조카가 평택 쪽 조직은 다잡고 있다며. 성남으로 불러들여서 관리 좀 맡기고, 적당한 때에 재기하면 돼.”

툭, 툭. 주괘율은 스테인리스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어내며 아쉬운 듯 입을 열었다.

“이번 불상사만 없었어도… 권력 쥔 윗대가리 놈들은 돈 앞에서 장사가 없는 법이다. 그게 검은돈이든 새하얗게 빤 돈이든 간에.”

-캄보디아 프놈펜 국제공항으로 가는 A 항공 승객분들께서는 출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15번 탑승구로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흡연실 천장 스피커에서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방송 소리.

옷깃을 바로 여민 주괘율. 그는 흡연실 문을 열고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그 발걸음이… 다른 갇힌 공간으로 향하는 것임은 꿈에도 모르는 채로.

“바로 타면 되겠군. 시간도 딱 맞겠어. 어이, 잠시만. 먼저 좀 지나가겠소.”

“네, 그러세요. 바쁘신가 봅니다.”

흔쾌히 앞길을 터주는 양복 입은 청년.

분명 어디선가 먼발치에서나마 한 번쯤 본 적이 있는 듯한 인상이었지만… 바싹 가시 돋친 주괘율의 신경은 거기까지 신경 쓸 만큼의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

“후우….”

천천히 에스컬레이터 손잡이 위에 굳은살이 박인 거친 손바닥을 올려둔 주괘율.

분명 질감도 색감도 느낌도 전부 달랐지만, 그 고무 손잡이는 꼭 첫 번째 살인을 한 후, 손에 쥔 회칼의 느낌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마구잡이로 쿵쾅거리는 심장. 당장이라도 내달릴 준비를 마친 두 다리. 그리고… 불안감과 긴장감으로 녹아내릴 것만 같은 머릿속까지, 전부.

“허어…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람.”

“형님, 무슨 불편한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혹여라도 잡히지 않을까?

잡힌다면 어떤 파멸적인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그 끝에 선 자신은… 어떤 모습일까?

증폭되는 두려움. 손잡이를 꽉 쥔 주괘율의 손등에 돋아난 푸른 혈관은 당장이라도 터질 듯이 도드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불편한 일은 이제부터 많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

아까 전, 에스컬레이터 초입에서 앞길을 터준 젊은 청년.

언제 뒤따라온 것인지도 모르게 발소리조차 내지 않던 그는, 어느샌가 자신의 바로 뒤에 서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얼굴을 바라보기 시작한 주괘율. 증폭된 감정선이 기억의 편린 끝자락에 닿는 그 순간, 마침내 기억해 낸 이름 석 자.

“한서준… 회장! 당신이 어째서 여기에…!”

“그리 멀리 남지 않았습니다. 파멸이 점점 다가오고 있으니.”

위쪽을 향해 가리키는 손가락.

그 끝에는, 방금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사내들의 모습이 주괘율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저 첫인상만으로도 전형적인 수사기관의 사람임을 알 수 있는 사내들.

“허허허… 내가, 이 주괘율이가 새파랗게 어린 치에게 그대로 당해버린 것인가.”

자기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허탈한 헛웃음.

걷지 않아도, 뛰지 않아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절망이라는 풍경을 눈에 담으며, 주괘율이 물음을 던졌다.

“그날 유태촌이와 그 딸년이 벌인 연극도 한서준 회장, 네놈 작품이었겠구먼.”

“본격적인 연극이 시작된 것은 낙구 때부터였지만요. 물론 그 전에.”

주괘율의 어깨 위에 올려진 손.

그의 눈앞에 보이던 희미하게 지은 미소는 구겨진 종이처럼 조금씩 우그러들더니, 이내 점점 무표정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단호하고, 또 두렵기까지 할 정도의.

“주괘율 당신이 먼저 건드려선 안 될, 탄약그룹이라는 것을 내부에서부터 건드렸고.”

덜컹, 누군가가 기계를 조작한 듯, 그대로 멈춘 에스컬레이터.

뚜벅거리는 수사관들의 구둣발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조차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저 짧은 탄식만을 내뱉고 고개를 숙이는 주괘율.

“허어… 이거 지독한 놈에게 내 단단히 잘못 걸렸구먼.”

“주괘율! 서울중앙지검 박은지 검사다! 손들어, 손들라고! 이제 다 끝났어!”

언제 온 것인지 권총을 뽑아 든 채 건물이 떠나가라 쩌렁쩌렁 고함을 지르는 박은지 검사.

그러나 주괘율은 그 큰 목소리 대신, 오직 등 뒤에 선 남자의 말만이 귓가에 들어올 뿐이었다.

“뒤쪽에도 수사관들이 여럿 있음을 알았으면 합니다.”

“되었소. 다 끝난 마당에 여러 사람 수고스럽게 할 필요는 없겠지.”

고개를 들고 천장을 바라보는 주괘율. 유리로 된 천장에서는 지나치리만큼 따사로운 햇살이 오늘따라 유독 얄궂게도 내리쬐고 있었다.

“업보로군. 여러 의미로.”

* * * *

석 달 후.

“거럼, 거럼. 다 자기 업보지, 업보여.”

펄럭, 회색빛 종이 신문이 펼쳐지고 간만에 듣는 김원철 아저씨의 목소리.

오늘도 어김없이 회장 집무실에 찾아온 아저씨는, 또 냉장고에 있는 간식을 멋대로 꺼내 먹으며 주인 없는 방에 앉아 있었다.

“탄약그룹 회장실 냉장고 털이범에 대한 업보는 또 뭘까요.”

“에헤이, 냉장고 털이범이라니. 그건 우리 회장님이 살찌지 말라고 배려해준 내 센스고.”

“저는 원래 살도 잘 안 찌는 체질입니다만….”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은 나.

사실 간식 따위는 중요한 것도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아저씨가 보고 있는 신문 1면에 나온 내용일 뿐.

-서울중앙지방법원, <일정파> 수괴 주괘율에 무기징역, 휘하 박훈 등 간부진에 각기 징역 12년, 10년 선고.

“아주 제대로 박살을 내네요. 박은지 검사가.”

“화끈하더라. 무슨 싸움닭 보는 것 같았어야.”

“대충 고등법원 항소심 결과도 비슷할 거 같습니까?”

“법무팀 말로는 거의 근접할 거라던데? 워낙 증거들이 차고 넘치는 데다가 사고를 또 거하게들 치셔서 말이지. 뭐, 여기서 우리 회장님 관심사는.”

스윽, 내 쪽으로 내민 보고서.

검은색 서류철 커버를 넘기자, 그곳에는 내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내용이 문서화 되어 있었다.

“요 깍두기들 인생 종 치고 남은 유품들 아니겠어?”

범죄수익의 처분.

주괘율의 일정파가 소지하고 있던 모든 자산은 법원 공매에서 강제로 팔려나가고 있었다.

서울 변두리의 5층짜리 건물과 경기 남부 일대의 미개발 토지.

미처 처분하지 못했던 현금 뭉치와 골드바, 기타 잡스러운 보석류.

그리고… 내가 그토록 눈독을 들이고 있던 가상화폐까지.

“죽은 자의 온기가 남아 있는 비트코인. 지시하신 대로 이번에 공매에서 건졌걸랑.”

“단독입찰이라고 했던가요?”

“엉. 진짜 아무도 입찰을 안 해. 대기업부터 어디 사채꾼이나 이쪽 장사치 놈들까지 관심도 없던데?”

주괘율의, 아니, 정확히는 훈이가 모은 비트코인의 총량은 1만 개.

현재 개당 가격이 미화 15달러 정도씩 하니, 전체 가격은 한국 돈 1억 5천만 원 정도.

만일 사람들이 이 가격을 본다면 소도 웃을 일이라고 코웃음을 칠 것이다. 그들이 현재의 사람들이든 미래의 사람들이든 양쪽 모두가.

“사실 나도 이런 데에 돈 쓰는 게 영 내키는 것은 아닌데 말이지. 뭐, 별난 회장님의 별난 취미라 생각하고 해야지 별수 있겠나.”

“두고 보시면 알게 됩니다.”

그 별난 취미가 채 7~8년도 지나지 않아 초대박이 난다는 걸 아저씨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아저씨에게 미래의 비트코인 가격에 대해 내기라도 제안하려는데, 갑자기 바깥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유세나 보좌관이었다.

“저… 회장님?”

“무슨 일이죠, 유세나 보좌관?”

조금 난감하다는 듯한 얼굴의 그녀. 곧바로 유세나 보좌관의 입에서 영 반갑지 않은 내용의 말이 들려왔다.

“청와대 전화입니다. 대통령님께서 이번 사건에 대해서 직접 듣고 싶으시다고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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