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천조국(2)
청와대에서 조금 북쪽에 있는, 북한산 자락의 모 사격장.
묵직한 엽총 하나를 든 대통령. 탄창 두 개에 각각 산탄을 집어넣은 그는 열 십(十)자 가늠쇠에 시선을 집중했다.
“조금만 더… 그렇지, 지금!”
탕! 탕! 귀를 찢는 듯한 폭발음과 함께 공중에서 산산조각이 난 플라스틱 접시 한 개.
두 발 중 하나라도 명중한 것이 퍽 기분이 좋은 듯, 소음 방지용 헤드셋을 벗은 대통령은 박동희 정책실장에게 말을 건네었다.
“시원하구먼. 날씨도 선선하고, 총질도 잘 되고.”
“각하께서는 모든 일을 시원하게 해결하시는, 대한민국 정치계의 만발 사수시니까 말입니다.”
“하, 박 실장 이 사람 참. 또 괜한 소리나 하고.”
피식, 가볍게 웃음 짓는 대통령.
그는 인간 비데 박동희 실장의 아부가 퍽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산탄총을 꺾어 빈 탄피를 꺼낸 대통령은, 김이 솟아오르는 장갑 낀 손 위에 탄피 두 개를 올려두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접시는 하나니, 두 발 중에 하나만 맞으면 그만인 법이지. 사격에서든 정치에서든. 아니 그러한가?”
“일전에 말씀하신… IT 선두 기업 선정 사업 건 말씀이신지요?”
제 주인의 눈치를 살살 살피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는 박동희 정책실장의 모습.
간이 의자에 앉아 총을 손질하며 대통령이 대답했다.
“자네는 돗자리나 깔아야겠군. 독심술사도 아니고 사람 마음을 그리도 잘 읽으니 말일세.”
“고심하시던 모습이 눈에 밟혔습니다. 송구합니다.”
“무슨 송구씩이나. 뭐, 그래도 잘 해결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누가 되어도 내게는 이득인 판인 것을.”
재장전된 총알 두 개.
기계에서 날아간 접시를 향해 산탄을 쏘면서, 대통령은 거칠게 입을 열었다.
-탕!
“SA그룹이 된다면, 상속이라는 목줄을 쥐고 흔들 수가 있고.”
-탕!
“탄약그룹이 된다면 주괘율 그놈 건으로 목줄을 잡을 수 있고.”
잘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박동희 정책실장.
그런 그의 약간은 어설퍼 보이는 모습이 주인으로서 조금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탁자 위에 엽총을 내려놓으며 추가 설명을 덧붙이는 대통령.
“그 주괘율 뇌물 리스트 가지고 온 게 한서준 회장이잖나. 공개적으로 야당 쪽 인간들과 척지는 것을 그 친구도 원하지는 않을 테니까.”
“…역시 현명하십니다, 대통령 각하.”
야당 차기 대선 유력 후보 계파 의원들과도 연관된 주괘율 리스트.
대통령은 이를 목줄로 삼아 선거까지 탄약그룹을 같은 편으로 삼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 여우 같은 셈법에 기가 차 속으로 혼잣말을 구시렁대는 박동희 정책실장.
‘흐미, 괴물 딱지 같은 인간 같으니… 하여간, 이쪽으로 머리 돌아가는 건 기가 막히네. 그나저나.’
딸그락, 시멘트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황동제 탄피 두 개.
이중 누가 날아오른 접시를 깼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단 한 발의 총알만이 목표에 명중했다는 것.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을 맞으며, 박동희 정책실장이 생각했다.
‘한서준, 임재호. 둘 다 갑자기 미국으로 간 걸 보면…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막이 오르나 보구먼.’
* * * *
회귀 이전 생에도 가 본 적이 없었던 미국 땅. 그러나 지금, 나는 금문교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위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한 손엔 꼭 먹어야 한다고 김원철 아저씨가 그렇게 비행기 안에서부터 노래를 부르던 햄버거 하나를 든 채로.
“크흐, 이게 햄버거지. 우리 탄약버거랑은 급이 달라. 그건 어찌 보면 화약 맛도 좀 나는 게, 역으로 돈 받고 먹어야 한다니까?”
“아니, 그래도 그런 말은 좀…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합니다만.”
탄약그룹 계열사 중 가장 답이 없기로 소문난 탄약버거. 워낙 악평이 자자했으나, 주력 사업이 아니라 큰 신경을 못 쓰고 있기는 했다.
원래 내 입맛이 아무거나 잘 먹는 편이라 몰랐는데, 확실히 미국 본토 햄버거와 비교하니 차이가 심하게 나기는 한 것 같다.
“어흐, 이 육즙 좀 보게. 회장님아, 우리도 그 맛도 없고 답도 없는 탄약버거 폐기 처분하고 이런 거나 좀 직수입하자니까.”
“확실히 다르기는 하네요. 이번 건 끝나고 여유 생기면 추진해 봅시다. 그래도, 일단 지금은.”
마지막 남은 한 입. 햄버거를 모조리 먹어 치운 후 냅킨으로 입술을 닦은 나는 품에서 노트 하나를 꺼내 들었다.
서희 누나가 준 USB. 그 안에 담긴 인맥 리스트 가운데 쓸만하다 여긴 자들을 추린 것을 따로 적은 것이었다.
“바로 여기, 이 회사 특허부터 먹어 치우는 게 우선입니다.”
맨 앞 페이지. 가장 유심히 조사했던 기업 J-Coco.
내가 손가락으로 그 묘한 이름을 가리키자, 김원철 아저씨는 턱을 문지르며 무언가 고심하는 눈치였다.
기업인이 아닌, 한 사람의 자존심 강한 남자로서.
“CEO 이름이 딕 존슨(Dick Johnson)이라. 쓰흡… 이거 이 양반 이름만 봐서는 여간 거물이 아닐 것 같긴 한데. 여러 의미로.”
“이름은 묵직한데 성품이나 인성은 그렇지 못하다고 하더라고요. 남자로서의 다른 것도 묵직한지는…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요.”
이름이 이상한 백인 아저씨의 바지 속 사정 따위야 내 알 바 아니다. 진짜 관심이 가는 부분은… 딕 존슨, 이 양반의 머릿속 사정이니까.
“돈벌레라고 합니다. 딕 존슨 그 사람.”
“원래 이쪽 업계 사람들은 죄다 돈벌레여. 능력은 있는데 성질머리는 더럽다? 돈 벌기 딱 좋은 성격이지.”
“성질머리는 더러운 게 맞는데, 능력에 물음표가 찍히니 문제죠.”
딕 존슨.
최근 10년 새 실리콘밸리 내에서 이 사람을 모르는 개발자는 없다고 한다.
지속적인 폭언, 욕설, 인격 모독으로 직원 몇 명이 정신병원에 입원하거나 자살한 것은 이제 연례행사일 정도.
무엇보다, 투자자의 입장에서 정말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바로.
“이래저래 문제가 많습니다. 동업자에게 지분 장난을 쳐서 회사를 통으로 삼켰는데, 키우기보다는 팔 생각뿐이라는 말도 있어요.”
“전형적인 한탕주의라. 이거… 대놓고 자본 싸움이 될 거 같은디. 괜찮을라나?”
“상황을 좀 봐야죠. 두드리면 열리는 게 세상 일이니까.”
두드리면 열린다.
회귀 이후, 이제껏 해결해 온 모든 일이 그렇게 풀렸으니까.
거기에 앞으로 IT 산업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모두 알고 있는 나로서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모든 기회가 보이는 셈이다.
나는 컵에 남은 음료를 모조리 빨아 마신 후,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늘 중요한 일에 앞서 그러하듯, 옷매무새를 바로 고치며.
“출발합시다. 그 딕인지 뭔지 하는 거물 양반 만나러.”
* * * *
금문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 호세의 실리콘벨리.
건조한 대지에 올라선 고층 빌딩 한복판, 그곳 꼭대기 층에서 J-Coco의 CEO 딕 존슨은 눈앞의 회계 직원에게 서류 뭉치를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이런 미친!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왜 내 눈을 이런 구더기 토사물 같은 숫자가 오염시키고 있는 거냐고!”
정신이 이상한 사람처럼 마구잡이로 화를 내며 서류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딕 존슨.
깔끔한 외모와 겉으로 드러나는 유쾌한 모습 뒤편에 숨은, 그의 진짜 모습은 이 집무실 안에서만 나타나고 있었다.
“…미스터 존슨. 제 말을 좀 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1년이 넘도록 저 정신병자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하는 회계 직원.
비자 문제가 얽힌, 가난한 이민자 출신의 이 한국계 직원은, 최대한 딕 존슨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었다.
“가치평가 산정은 제가 아니라 은행에서 수행한 것이라, 달리 개입 수단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기업가치평가.
며칠 전, 딸아이가 다니는 보딩스쿨에서 만났던 SA그룹 임재호 회장.
전형적인 호구 냄새가 풀풀 풍기는 그에게 미화 50억 달러라는 허풍을 미리 쳐 두었기에, 딕 존슨은 이를 가짜로라도 입증해야 했다.
호구가 눈치를 채고 저 먼 태평양 너머로 달아나기 전에.
“그만! 그런 개똥 같은 변명은 네놈 마누라 귓구녕에다가 지껄이도록!”
“미스터 존슨, 다른 은행에 가치평가를 다시 맡기는 방법으로 한들, 최대 20억 달러가 한계인지라….”
“시끄럽다! 닥치고 냄새나는 네놈 입이나 벌려, 당장!”
입을 닥침과 동시에 입을 벌리라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요구를 하는 딕 존슨.
“네놈이 가지고 온 이 기업 가치 평가서는 쓰레기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지능이 오랑우탄보다는 조금 낫군. 바로 복명복창한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찢어진 종잇조각을 한데 뭉친 실리콘밸리의 미치광이. 그는 아주 모욕적이게도 그것을 동양인 부하 직원 입에 거침없이 쑤셔 넣었다.
누군가의 목줄을 쥔 소시오패스, 그 전형적인 모습으로.
“씹어먹어! 당장!”
“끄읍…!”
“또 일 처리를 개똥으로 했다간, 비행기 화물칸에 처박아서 네놈 나라로 반품할 것이다! 명심하도록!”
-똑똑!
그리고 그 순간, 노크 소리와 함께 열린 문.
흉악하게 생긴 흑인 남자 하나가 문간에 얼굴을 빼꼼 내밀며 말을 걸었다.
“보스, 잠깐 중요한 일이… 오우, 해피타임 중이셨습니까?”
“옐로 몽키에게 밥 주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듯, 익숙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흑인 남성. 굳이 이 모습을 길게 감상할 마음은 없었기에, 그는 곧바로 본론부터 꺼내 들었다.
“안 그래도 동양인 관련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한국? 아아, 그 SA그룹 말인가. 하여간, 그놈들 성격은 더럽게 급하단 말이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
실무자급 조율이 예정된 협상 일정. 생각보다 일찍 일이 진행되나 생각한 딕 존슨이었지만, 뒤이은 흑인 남성의 말에 그의 표정이 급변했다.
“아, SA가 아닙니다. 다른 회사거든요.”
“뭐라고? 어디서 온 놈들인데?”
“어디 보자. 그치들 회사 이름이… 탄약, 탄약그룹이라고 하더군요. 회장이 직접 왔다고 합니다.”
“회장이 직접 왔다라. 그 서준 한이라는 미치광이 말이지?”
서준 한 회장.
딕 존슨에게 있어 그는 분명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재작년 사우디아라비아 쿠데타의 핵심 주역인 인물. 아직도 황금 권총을 들고 허공에 축포를 발사하던 그 장면이 뇌리에서 잊힐 리가 없었으니까.
거기에 딕 존슨, 그와 비슷하게 여자관계도 꽤 복잡한 것으로 보였다.
마카오 카지노에서 토끼 가면을 썼다던 여성 보좌관 하나에 태국 잉탁 총리의 딸, 심지어는 이제 막 아홉 살이 되었다던 빈 살만 왕세자의 막내 여동생까지.
“뭐, 마지막 여자에 대해서는… 좀 법적인 문제가 있군. 하여간, 독특해. 성깔 있는 놈들 취향 꼬라지 하고는.”
“보스?”
뭔가 심각하게 이상한 오해가 깊어지는 순간.
딕 존슨은 면전의 흑인 남성에게 지시를 내렸다.
“천천히 구경 좀 시키다가, 이리로 들어오라고 해. 서준 한이라는 그 친구, 어디 얼굴 한번 보고 싶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