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호랑이가 되고 싶은 개(5)
미국 상무부가 있는 워싱턴 D.C 교외. 차를 타고서도 1시간 가까이 가야만 나오는 한적한 마을 구석에는, 좀처럼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아채지도 못할 길 입구가 있었다.
돌담과 수풀로 가려진, 거대한 저택으로 향하는 오솔길 입구가.
“존 형님, 오셨습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버선발로 정원에 뛰어나와 그의 사촌 형 존 존슨을 맞이하는 딕 존슨.
근엄한 관료의 모습을 한 존 존슨은 손가락으로 특유의 콧수염을 다듬고는, 육중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형님께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일단 저택 안에 술자리와 계집들은 마련해 두었습니다.”
“그 전에, 정원이나 조금 걷지.”
술과 여자에 환장해 마지않는 평소 모습과는 달리, 오늘따라 유독 진지한 모습의 존 존슨.
사촌 형의 그런 모습이 심상치 않았던 모양이다. 곧바로 의아한 얼굴로 반문하는 딕 존슨.
“형님?”
“일을 마무리 짓는 순간은 조용해야 해.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이 드글거리는 저곳에서 뭘 어쩌자는 건가?”
“아… 알겠습니다. 일단 이리로 가시죠.”
수풀이 우거진 저택 뒤쪽 정원.
가지치기 중이던 정원사마저 저 멀리 내쫓은 후에야,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존 존슨이 입을 열었다.
“그 돈 보따리 싸 들고 왔다던 SA그룹은 한국 기업이고, 뒤에서 돈 대주는 놈들은 중국 쪽이라 했지?”
“<상하이 캐피탈>이라고, 중국계 자산운용 쪽에서는 제법 힘 좀 쓰는 놈들입니다.”
“그래 보이더군. 나한테까지 대놓고 힘을 쓰는 걸 보니 말이지.”
“그자들이 형님에게도 따로 연락을 주었습니까? 확실히 꼼꼼하긴 하네요.”
헤실거리는 딕 존슨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한 채로 다 타버린 담배꽁초를 아무렇게나 던져버리는 존 존슨. 손가락으로 미간을 움켜쥔 그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꺼내었다.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라, 딕.”
“형님…?”
이어지는 존 존슨의 간략한 설명.
자신을 포함한 몇몇 정부 관료들이 <상하이 캐피탈>을 비롯한 중국 정부 쪽에서 떳떳하지 못한 돈을 받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번 일이 어쩌면 그 대가로 치러야 할 첫 번째 일일지도 모른다는 점까지.
“후우. 이번 일, 윗선에서 별 관심 없는 지금이 타이밍이다. 무조건 성공시켜. 뒤탈 날 일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한숨을 토해낸 존 존슨. 그는 자신의 사촌 동생의 양어깨를 꽉 붙잡고는 핏발 선 눈으로 얼굴을 응시했다.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복잡하게 얽힌 것 같습니다만.”
“아직은 VIP가 중동 일 때문에 중국 쪽에 신경을 못 쓰고 있으니 괜찮다. 잡음만, 잡음만 안 일어나게 하라고.”
“잡음이라….”
잡음이라는 단어 하나에 등줄기에 섬찟함이 올라오는 딕 존슨.
다른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얼치기에 불과한 SA그룹의 임재호 부회장 따위야 그저 호구에 불과하고, 탄약그룹 쪽은 기억에서 지워진 지 오래.
그저 특허에 관한 소유권 문제. 법에 어두운 개발자들을 계속 무지한 상태로 두는 것만이 전부일 뿐이었다.
적어도… 임재호 부회장으로부터 모든 대금을 받기 전까지만이라도.
“아무런 걱정도 하실 필요 없습니다, 형님. 모든 것은 완벽하게 준비되었으니까요. 특히나.”
거기에, 만약을 위해 준비한 비장의 한 수.
나중에라도 일이 터지게 된다면, 그래서 미국을 떠나 어딘가로 도피해야 한다면, 반드시 필요하게 될 익명의 비밀계좌.
대서양 구석의 그 섬나라를 생각하며 딕 존슨은 천천히 웃음 지었다.
“혹시 몰라 마련해 둔 버뮤다 비밀계좌까지 전부.”
* * * *
양평 낚시터에서 출발해 서울을 향하는 차 안. 제한속도를 아슬아슬하게 지키며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상황이었건만, 뒷좌석에는 그런 다급함에 걸맞지 않은 고민이 이어지고 있었다.
“회장님아? 바로 본사로 갈 거지? 아무리 그 양반이랑 인연이 중요해도 우선순위라는 게 있으니까.”
문제는 목적지.
미국 상무부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허가가 떨어졌으니, 당연히 본사로 가 업무를 보아야 하지만… 또 다른 변수 하나가 여기에 더해진 상황.
“지금 비상인데… 아무래도 그룹 내부에 딱 회장님이 무게를 잡아 줘야 아래쪽 애들도 잘 돌아갈 것인디.”
“…….”
“고민할 것도 아니여. 아무리 임계현 회장 그 양반이 거물이라지만, 우리 일이 우선이지.”
임계현 회장.
몇 분 전, 유세나 보좌관에게 연락을 넣은 SA그룹의 비서실장.
금방 얼굴이 새하얗게 변한 것으로 보아, 무언가 보통 일은 아니라 생각되었건만. 슬픈 예감이 틀리는 일은 없는 모양이었다.
‘SA그룹 비서실장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임계현 회장님께서… 곧 임종하실 것 같은데 꼭 좀 와주셨으면 좋겠다고요.’
아직도 머릿속에서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유세나 보좌관의 몇 분 전 목소리.
딱히 인간적인 부분에 마음이 흔들렸다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몇 번 만나본 것에 불과한, 그것도 한참 기업 간의 경쟁 중인 임계현 회장.
굳이 내가 그의 임종을 지킬 필요도 지켜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
일평생을 마무리하는 그 순간, 그것도 한국 재계의 거목(巨木)이 그 숨을 거두기 전인 지금, 그는 나를 찾고 있다. 가족도, 친지도, 모두 차치한 채로.
분명… 생명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는 지금이 아니면 하지 못할 일이 남아 있을 터.
그렇기에 내린 결단.
“차 돌리세요. 지금 바로.”
“그렇지! 바로 본사로 가야지. 역시 우리 회장님은….”
“SA 의료원으로 갑니다. 시간이 없으니 최대한 빨리.”
“회장님아! 으아아아….”
동그란 눈을 끔뻑거리며 절규하는 김원철 아저씨.
바로 설명을 하고 싶지만… 지금은 아니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는 때론 독단적으로 나아가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혼자 올라갈 테니 대기하고 계시지요. 아, 참. 그리고.”
“아, 예. 회장님.”
유세나 보좌관을 향해 손을 내밀자, 곧바로 내 손에 들어온 누런색 서류 봉투 하나.
며칠 전, 임계현 회장으로부터 받은, 마지막 빈칸만이 남은 계약서가 든 서류 봉투.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회장님.”
어느새 도착한, 강동구에 있는 SA 의료원.
유세나 보좌관의 말을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깥으로 나아갔다. 이 모든 사달을 만든 임계현 회장의 마지막을 눈에 담기 위해서.
* * * *
“한서준 회장님, 어서 이쪽으로…!”
사안이 급하긴 한 모양이었다.
인사말마저 생략하고 나를 병실 안으로 들인 SA그룹의 비서실장.
“…….”
중환자실 한쪽을 통째로 비워둔 그곳에는, 전에 봤던 것보다 더 복잡하기 짝이 없는 의료장비를 몸에 두른 임계현 회장이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생명의 불씨가 꺼진들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의.
“그만, 자네들은 나가 있게나. 진통제도 더 넣을 필요 없네.”
“회장님, 하지만….”
“몽롱한 정신머리로는 내 하고 싶은 말을 못 할까 그러는 게야. 어서.”
링거에 걸어둔 진통제 통에서 한 방울씩 떨어져 내려오던 약이 멈추었다. 금방 괴로움이 밀려온 듯 찡그린 표정으로 입을 연 임계현 회장.
“시간이 없구먼. 아마 자네가 내 가기 전 마지막으로 보는 얼굴일 게야. 아들놈 얼굴은 못 보고 가게 생겼어.”
“회장님, 어째서 저를…? 임재호 부회장님을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또한… 다 재호 그 녀석을 위해서지.”
말끝을 흐리는 임계현 회장. 그의 시선 끝은 내 손에 든 누런 서류 봉투에 닿았다.
“마지막일세. 내 자네에게 고심할 시간을 넉넉히 주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내게도 답을 주어야겠지.”
“저를… 믿으시는 겁니까?”
“믿는다고? 자네를?”
산소호흡기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거친 숨소리. 괴로운 듯 헐떡이는 노인이었으나, 얼굴에는 묘한 웃음기가 가득했다.
“재계에 몸을 담고서 누군가를 신뢰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네. 아마 자네도 어깨 위에 회장 딱지를 달고 난 후부터 그러지 않았던가?”
“그야 그렇긴 합니다만.”
“사람은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신용하는 존재일 뿐일세. 난 눈에 보이지 않는 자유의지보다는… 한 회장 자네를 둘러싼 상황을 믿지. 쿨럭! 쿨럭!”
뿜어져 나오는 핏물.
괜찮냐며 다가서는 내게, 임계현 회장은 손을 휘저으며 내 입을 막았다.
그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자신이 해야 하는 말만을 담담히 이어나갈 뿐.
“그리고 그 상황은, 내게 이리 말하고 있고. 한서준이라는 사람이 재호 녀석의 모가지를 물어뜯지 않을 것임을 신용할 수 있다고.”
“…….”
“저 알량한… 종잇조각 마지막 장에 펜으로 몇 자 끄적이기만 한다면 말일세. 쿨럭! 쿨럭!”
한번 내뱉을 때마다 죽음에 가까워지는 듯한 거친 기침.
여기 병석에 누운 노인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라는 말?
절대 임재호 부회장의 등에 칼을 꼽지 않겠다는 말?
아니다. 아닐 것이다.
그가 내게 듣고 싶은 말. 그리고 내가 그에게 해야만 할 말은 바로.
“그 판단이 틀리실 수도 있습니다.”
“틀려도 이것이 최선일세. 재호 그 아이가 지금의 한 회장 자네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최악의 상황일 테니. 그리고.”
만족스러운 듯, 눈웃음을 짓는 임계현 회장.
떨림과 함께 힘없이 올라오는 그의 오른손.
메마른 나뭇가지 같은 그의 손아귀는 여기 없는 누군가의 손을 잡기라도 하듯 서서히 오므려졌다.
“내 아들이 가진 그릇에 미래의 물결은 담길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네. 평생 지켜본 아이니.”
그렇기에… 끝낼 수밖에 없는 내 고뇌.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입을 열었다.
“약속은 지키겠습니다.”
“그리될 줄 알았네.”
“백지 부분에 적을 계열사는 조만간 필요하게 될 테니까요. 아주 빠른 시일 내에. 그때까지 지켜보고 계셨으면 합니다만….”
그리고 그 순간,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량의 피를 토해내는 임계현 회장.
그의 팔다리에는 거센 떨림이 일었다.
“회장님!”
“가만히… 잠시… 이리로 가까이 와 주게. 말하기에 힘이 부치는구먼.”
점점 빠져가는 생명력.
마지막 힘을 짜내 임계현 회장이 속삭이듯 내게 말했다.
“자네에겐 참으로 고맙네. 그러니… 떠나기 전, 늙은이가 남기는 것도 있어야겠지.”
“임 회장님…?”
“미국 상무부 건. 해결하기 난망할 게야.”
“그걸 어찌….”
“J-Coco는 내 계속 눈여겨보던 기업일세. 돌아가는 상황은 모두 알고 있네. 그러니… 내부자, 그쪽 내부자를 건드리면 저 엉성한 모래성은 순식간에 무너질 터. 쿨럭! 쿨럭!”
움켜쥔 이불에 주름이 가시고 점점 힘을 잃어가는 노인의 손.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하는 의료기기의 소음 사이로 그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간신히 닿았다.
-삐! 삐! 삐! 삐!
“임 회장님…!”
“내 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주었네. 부디 자네를 신용한 내 눈이 틀리지 않기를….”
단말마를 토해내며 서서히 눈을 감은 임계현 회장.
생의 마지막 숙제를 끝마치기라도 한 듯, 그는 너무나도 편안한 모습으로 영원한 잠자리에 들었다.
급히 따라 들어온 의료진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들으며.
“2011년 1월 28일. 현재 시각 21시 50분. 환자분께서는… 사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