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호랑이가 되고 싶은 개(6)
교회의 색유리를 타고 들어온 빛은 목재 관에 닿아 오늘따라 유독 슬퍼 보였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임계현 회장. 그의 장례식은 여느 일반인들처럼 병원 산하 장례식장이 아닌, 모 대형 교회에서 거행되었다.
“이제는 주님의 품에 안기신 고인께서는! 이 나라와 사회를 위해 평생을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아멘!”
“부디 이제는 주님 안에서 평안하시길! 할렐루야!”
“할렐루야!”
성직자로 보이는 남자의 기도 소리. 비종교인을 위해 따로 마련된 빈소로 들어간 나는, 국화꽃 한 송이를 영전에 올려놓고는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쩝. 임계현 회장, 그 영감님도 결국 가시는구만. 역시 흘러가는 세월 앞에 장사는 없는 것이여.”
어느새 장례식 한 바퀴를 돌고 온 건지, 내 옆에 다가와 함께 선 김원철 아저씨.
“에휴, 괜히 그 영감님 돌아가시는 순간에 같이 있어서, 우리 회장님 마음이 좀 그렇겄어?”
“그건 상관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 자리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임계현 회장의 마지막 순간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나.
땅 위로 저물어버린 한 시대의 거목(巨木)의 끝은… 무언가 웅장하지도, 뜻깊은 시대정신이 있지도 않았다.
그저 감정.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로서 미쳐 손 떼지 못한 감정을 꼭 쥔 채로 스러져가던 노인이었을 뿐.
‘내 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주었네. 부디 자네를 신용한 내 눈이 틀리지 않기를….’
아직도 귓가에 생생히 들리는 것만 같은 그의 비공식적 유언.
눈에 보일 정도의 한계를 가진 아들. 임계현 회장의 마지막 선택은 그 아들의 몰락을 막는 것과 SA그룹이 누릴 수 있는 번영의 기회를 없애는 것, 두 가지의 맞교환이었다.
“숙제와 선물을 둘 다 주시고 떠나시네요.”
환히 웃는 모습 대신, 근엄한 경영자의 모습이 담긴 영정 사진.
작게 중얼거린 내 목소리가 들린 모양이었다. 내 등에 손을 올리고는 말을 거는 김원철 아저씨.
“에혀, 가신 분은 말이 없는 법이여. 일단 머리도 복잡하니 어서 본사로 가서 찬찬히 생각을… 크흠.”
겸연쩍은 듯, 갑작스레 끊겨버린 말허리. 그리고, 민망한 헛기침의 끝에 서 있는 한 남자.
교인들이 있던 빈소에서 막 이곳으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영전 바로 앞에 선 채로 나를 노려보는 임재호 부회장.
“…….”
“…….”
무언가… 복잡한 감정이 담긴 듯한 모습. 평소 나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만큼은 단순한 호감, 비호감의 문제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예의를 지켜 표한 조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진심으로.”
“아들보다 더 아끼시던 한 회장이니, 진심으로 명복을 빌지 않는다면 사람도 아니겠지.”
검은색 상복 위로 올라오는 미세한 떨림. 꽉 쥔 그의 두 주먹에서 올라오는 감정은 분노와 적개감이었다.
임계현 회장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 그리고 그 자리에 있었던 나에 대한 말 못 할 심리는 그의 눈에 핏발이 서게 하기 충분했으니까.
“…이래저래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만.”
“글쎄, 오해라. 따지고 보면 사실에 더 가까운 것을 굳이 내가 오해씩이나 해야 하나?”
“지금 임 부회장님이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는 알 것도 같습니다만. 후우….”
아무래도 대화가 통하지 않을 성싶어 보였다. 안 그래도 복잡한 상황을 굳이 더 복잡하게 만들 수는 없는 노릇. 이쯤에서 잠시 발을 빼는 것이 나을 터다.
그러나.
“가시는 길, 지금만큼은 잡음 없이 편히 보내드렸으면 합니다.”
“하! 꼭 숨겨둔 아들이라도 되는 것같이 구는군. 한 회장은 핏줄도 참 복잡해, 탄약 쪽 핏줄인지 SA 쪽 핏줄인지 헷갈린단 말이지.”
“……!”
“물론 어느 쪽이든 반쪽짜리 잡탕 핏줄이겠지만.”
선을 넘는 임재호 부회장.
마지막 순간까지 아들로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그 열등감은 비참한 눈물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에헤이! 임 부회장님. 거, 적절치 못한 말은 애당초 내뱉는 것도 아닙니다. 나중에 주워 담으려다가도 민망하잖아.”
“이봐, 김원철이. 지금 이 자리가 네놈 따위가 낄 곳인가?”
“끼고 못 끼고 할 게 뭐가 있어. 그만하시고 일단 마무리합시다. 거, 아버님 좋은 곳 보내 드려야지. 자꾸 이러시면 어떻게 해요!”
보다 못한 김원철 아저씨의 중재 시도. 슬슬 주변의 시선까지도 느껴지고 있었다. 재계 인물들뿐만이 아닌, 정·관계의 사람들까지도.
“어머, 임재호… 부회장? 무슨 일이지?”
“한서준 회장하고 무슨 일이 있나 본데? 일단 녹음기 전원 켜고 여차하면 바로 카메라 들이댈 준비 하자고.”
기자들마저 슬슬 냄새를 맡은 상황. 이제는 정말 정리해야 할 시간이다. 물론… 동시에 꼭 해야 할 말만큼은 남기면서.
나는 임재호 부회장을 향해 한 발자국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꺼내었다.
“상심이 크신 듯하니, 방금 하신 말은 못 들은 것으로 치겠습니다. 다만.”
“……?”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저 나이만 먹은 늙은 어른.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토해낼 뿐인 임재호 부회장에게 두렵거나 언짢은 감정 따위는 들지 않았다.
물론… 이 가여운 늙은 어른의 뒷덜미를 물어뜯지 않겠다는 계약 또한 지킬 것이고.
영전 옆에 수북이 쌓인 헌화용 국화꽃. 나는 그중 맨 위쪽에 있는 것을 집어 들고는, 다시금 영정 사진 앞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아들이 아닌, 그 아버지에게 말을 건네며.
“제가 작고하신 임 회장님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부디 더는 선을 넘지는 말아 주시길.”
* * * *
탄약그룹 본사, 회장 집무실.
“아이고야, 우리 회장님이 욕봤어. 진짜루.”
“욕은요, 무슨. 그런 거 아닙니다. 대충 그 양반 머릿속 상황이 이해 안 가는 것도 아니고.”
상복 넥타이를 아무렇게나 벗어 주머니에 넣는 김원철 아저씨.
소파에 앉아 엄지와 검지로 미간을 집고 있는 내게, 아저씨는 음료수 하나를 내게 내밀며 말했다.
“임재호 부회장. 아니, 재호 그 띨띨이는 원래 그런 놈이여.”
“띨띨이요?”
“애가 좀 모자라잖어. 그러니까… 우리 선대 회장이랑 나랑 같은 대학 같은 학과 나왔다는 거 알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교까지 학창 시절을 같이 보낸 아버지와 김원철 아저씨.
평소 오래전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 스타일이기에, 내가 관심을 보이자 아저씨는 신난 듯,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재호 그 푼수가 대학 후배여.”
어쩐지 장례식에서 충돌할 때 보통의 비즈니스적인 사이인 것만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더니.
“뭐, 그 당시에는 그 대학 그 학과가 재벌가 쪽 사람들이 많이 오긴 했지만.”
“아아….”
“아무튼, 임재호 그 친구는 좀 모자란 자여. 거대 재벌 그룹의 수장이 되기에는 더더욱. 왕관의 무게를 감내할 수 없는 자라고 해야 하나?”
왕관의 무게를 감내할 수 없는 자. 역설적으로… 나 또한 임재호 부회장과 같은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그 무게를 감내해야만 하는 셈.
딸깍, 나는 손에 쥔 음료수 뚜껑을 따고는 그 안에 든 것을 모두 집어삼켰다.
“크흐, 좀 낫네요.”
“고생 많았어야.”
“슬슬 다시 일어납시다. 임재호 부회장처럼 계속 가라앉아 있는 것은 제 스타일도 아니고.”
나는 손에 쥔 캔을 우그러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상에 빠져 있을 시간은 이제 끝이다. 나는 그저 내가 해야 할 일만을 해 나갈 뿐.
“우선…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으로는 상무부 건이 되겠네요.”
“급해. 보니까 최종 도장 찍히기까지 유예기간이 한 달밖에 안 남았더라구.”
문제가 된 미국 상무부 전략물자 수출통제 심사 위원회.
지극히 미국의 국익을 위해 움직이는 이 기구에서, 최첨단의 IT 기술을 보유한 회사가 가상 적국으로 넘어가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보통의 경우라면 말이지.
“이래저래 알아는 봤는데, 상무부 심사위원장이 딕 존슨 사촌 형이라네.”
“어쩐지 예상에서 좀 심하게 벗어났다 했습니다. 거기에 그쪽 혈연이 끼어 있을 줄은 저도 몰랐네요.”
아마 이쪽에서 재심 신청을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을 터다. 그 정도 위험성이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니 벌인 일일 테니.
결국, 정공법과는 거리가 먼 방법을 써야 하는 상황.
‘내부자, 그쪽 내부자를 건드리면 저 엉성한 모래성은 순식간에 무너질 터.’
그 방법론은… 이미 알고 있다. 임계현 회장이 내게 알려주었으니까. 나는 손바닥으로 턱을 쓸어올리며 중얼거렸다.
“내부자라….”
내부자.
얼핏 견고해 보이는 저 모래성 안쪽은 썩어 들어간다는 말. 결심이 선 나는 책상 서랍에 넣어 둔 USB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상황이 굳어졌다면, 아예 바깥에서 판을 한번 흔들어야겠네요.”
“판을 흔들어?”
“어차피 상무부 공식 채널로는 해결 안 될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외부에서 충격을 주어야 하는데.”
딸깍, USB를 집어넣자 곧바로 뜨는 파일 창. 마우스 휠을 몇 차례 굴리고 나니 내 눈에 들어온 그 이름. 딕 존슨.
“그렇다면 제법 그럴싸한 이슈로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게 가장 잘 먹히는 방법이고요.”
서희 누나가 예전에 준 USB에는 단지 CEO급의 간략한 정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해당 경영자가 있는 회사의 굵직한 핵심 인물들의 관계도. 특히나… 비서진의 경우에는 더더욱 세밀한 내용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이런 거였나…?”
“응? 뭐가, 뭐가? 혼자만 웃지 말고 나도 좀 알려주라.”
멈칫, 한참을 아래로 내려가다 그대로 고정된 스크롤바.
거기에는… 한번은 눈에 담아 두었던 익숙한 한국계 동양인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딕 존슨의 화풀이 상대이자 생각보다 내부에서 중요 업무를 맡은, 자신과 여동생의 영주권 때문에 목줄이 잡힌 그 남자.
“뭐, 대충 이런 겁니다. 굳이 명언 하나를 곁들이자면.”
살짝 새어 나오는 웃음.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 또한 고(故) 임계현 회장과 연관이 있는 것이었다.
대형 교회 장례식장 출입구에서 문상을 온 사람들에게 뿌리듯이 내어준 미니 성경 한 권.
그 성경책에는 각기 포인트가 된다고 여긴 구절마다 따로 포스트잇을 붙여 두었다.
“친절한 사람은 자신에게 유익을 끼치고, 잔인한 사람은 자신에게 해를 끼친다.”
“무슨 말이여? 목사 안수라도 받으려고…?”
잠언 어딘가에 포스트잇으로 표시된 구절. 어쩌면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나는 지금 상황에 딱 맞는 이 구절을 보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고(故) 임계현 회장이 내게 바라던 것은, 이루어지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바로 움직입시다. 돌아가신 양반한테 이 정도 도움을 받았는데, 빨리빨리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 드려야겠네요.”